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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이데아 [사서교사의 문해력 코칭 수업] 쓰는 즐거움을 발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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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3-09-01 11:02 조회 1,17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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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즐거움을 발견했어요


허민영 전주 우림중 사서교사




인류는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했지만, 문자의 발명은 오천 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의 뇌는 읽기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영역이 없다1)고 합니다. 그러니까 인류는 책을 읽는 데 적합하도록 태어나지 않은 것이죠. 그래서 매리언 울프는 독서를 ‘뇌가 새로운 것을 배워 스스로 재편성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인류의 기적적 발명’이라고 했습니다. 타고나지 않았기 때문에 잘 읽기 위해서는 글을 꾸준히 읽으며 뇌의 회로를 바꾸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쓰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쓰기 능력을 습득하기 위해선 꾸준한 쓰기 훈련이 필요합니다. 


“선생님, 제가 글 쓰는 걸 싫어해서 처음에 문해력 수업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수업을 들으며 글쓰기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요.” 


올해 1학기가 끝날 때쯤 한 학생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많은 학생이 쓰기를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배운 단어를 활용한 글쓰기는 문해력 수업의 꽃이기에 어렵다고 그만할 수 없습니다. 교사가 씨앗을 심었으면 꽃을 피우겠다는 일념으로 노력해야지요. 한 글자도 적지 못하고 연필을 놓아 버린 학생에게 한 문장이라도 쓸 수 있도록 위로하고 독려하며 여러 번의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학기말이 되면 모든 학생이 자신의 글을 씁니다. 적어도 아무것도 적지 못한 빈 활동지를 제출하지 않습니다. 몇몇 학생은 쉬는 시간이 끝날 때까지 반으로 가지 않고 도서관에 남아 글을 마저 씁니다. 취미로 소설을 쓰는 학생도 있습니다. 권민이는 그중 한 명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수업을 통해 글 쓰는 즐거움을 찾은 권민이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학생과 글로 적극 소통하려는 교사의 노력에 집중하며 읽어 주세요.



1) 『당신의 문해력』(김윤정) 중에서 발췌. 



쉬는 시간마다 도서관에 오는 권민이


학교도서관에 자주 오는 중학교 신입생에게 작년에도 학교도서관에 자주 갔는지 물어보면 백이면 백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어찌나 책을 좋아하는지 수업 끝나는 종이 울리면 헐레벌떡 도서관에 달려와 수업 시작하는 종이 울리기 몇 초 전까지 책을 읽습니다. 권민이는 중2가 된 지금까지 2년째 매 쉬는 시간마다 학교도서관에 달려와 책을 읽습니다. 친구들과 놀고 싶거나 교실에서 자고 싶을 수도 있을 텐데 단 한 번도 독서를 게으르게 한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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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일까요. 권민이는 문해력 수업 초반부터 글을 거침없이 썼습니다. 배운 단어 2개 또는 3개를 활용하여 글을 쓰도록 했지만 권민이는 배운 단어 10개를 활용해 긴 글을 쓰더니 어느 날부터는 배운 모든 단어를 활용해 아주 긴 글을 쓰더군요. 글은 주로 소설이었는데 시공간적 배경은 매번 달랐습니다. 『조선역사실록』을 읽고 있을 땐 조선시대 왕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글을 썼으며 『삼국지』를 읽고 있을 땐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글을 썼습니다. 학교도서관에서 권민이가 읽고 있는 책을 들여다보면 문해력 수업에서 권민이가 어떤 소재로 글을 쓸지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펴져라! 글 쓰는 즐거움: 슬로그의 고민 카페


쓰기에 재미를 붙인 권민이는 자신이 쓴 글을 가지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쉬는 시간마다 조용히 책만 읽던 권민이가 저와 글로 소통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처음에는 쑥스럽게 다가와 읽어 보라는 말과 함께 공책을 내밀었습니다. 저는 연필로 쓴글이 혹여나 번질까 봐 페이지를 조심스럽게 넘기며 독자로서 궁금한 것을 메모했습니다. 그리고 공책을 돌려줄 때 작가와의 만남을 하고 싶다며 권민이에게 작가로서 이야기할 것을 청했습니다. 권민이는 자신의 글을 읽고 질문을 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습니다. 그런 권민이를 보며 저도 어찌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권민이가 연재한 ‘슬로그의 고민 카페’는 고민 카페를 운영하는 주인 슬로그가 카페에 방문한 손님의 고민을 듣고 조언을 건네는 소설입니다. 카페라는 배경을 중심으로 에피소드마다 새로운 손님과 고민이 등장하는 옴니버스 형식은 권민이가 여러 번 읽은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듯합니다. 「슬로그의 고민 카페」 1편에는 교우 관계를 고민하는 학생이, 2편에는 아버지와 갈등하는 학생이 등장하며 슬로그는 이들에게 항상 현명한 해결법을 일러 줍니다. 권민이는 자신의 이야기에서 글의 소재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저는 손님과 슬로그 모두에게서 권민이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권민이는 자신을 힘들게 하는 문제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다 아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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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생의 글에 대한 추천사 쓰기

권민이는 꽤 자주 새로운 글을 써서 독자인 저에게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저는 독자로서 권민이에게 줄 수 있는 즐거움을 고민했습니다. 그때 읽고 있던 『스노볼』(박소영) 뒤에 추천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스노볼』은 스마트폰을 이기는 소설이다. 정말이지 너무 재미있다. (중략) 당신은 흠뻑 빠져들게 될 것이다.” 작가에게 추천사가 얼마나 큰 힘이 될지 상상하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소설 흥미를 유도하는 글을 적어 도서관에 게시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쓴 글을 많은 사람이 읽어 주길 바라는 권민이의 마음을 헤아린 선물입니다. 권민이의 허락을 받고 소설을 출력하여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읽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아이들은 그중에서 『자크의 폐공장』이란 소설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오싹한 살인 사건에 마술이란 신비스러운 소재를 더하여 중간에 책장을 닫을 수 없을 만큼 흡인력이 강한 이야기입니다. 권민이는 자신이 쓴 글로 이야기를 나눌 때면 어금니가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습니다. 평소에 웃음을 자주 보여 주지 않는 학생이라 그 미소가 저를 많이 행복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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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출판을 위한 책모임 구성하기

저는 학교에서 ‘도란도란 책모임’이란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도란도란 책모임은 마음이 맞는 학생 몇 명이 모여 함께 책 읽는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교사는 책모임이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책과 간식을 지원하고 저자와의 만남을 기획합니다. 또 학기말 책모임에 참여하는 모든 학생이 모여 활동을 발표하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저는 권민이에게 책모임 활동을 제안했습니다. 여러 명이 모여 공통 관심사로 이야기를 나누는 기쁨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권민이의소설을 책으로 출판하는 것을 목표로 모임을 만들고 삽화를 그릴 학생을 모집했습니다. 저는 그림 그리기에 흥미가 있는 학생에게 삽화란 무엇인지 알려 주며 동화 『긴긴밤』(루리)을 보여 주었습니다. 글과 함께 자신의 그림이 빛을 더할 좋은 기회라고 설명하자 학생들은 호기심을 보였습니다. 이때 권민이의 소설을 읽도록 했고 아이들은 어서 삽화를 그리고 싶다며 권민이와 함께하는 모임을 신청했습니다. 올해 겨울 출판할 권민이의 소설 제목은 『설인전사』입니다.



세상을 연결하는 글쓰기


선생님께서는 글을 쓰는 사람인가요? 리베카 솔닛은 읽기와 쓰기의 고독이 지닌 깊이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나를 다른 사람들과 이어지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누군가의 글을 읽고 그를 사랑하게 된 경험이 있다면 ‘글로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서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하시겠죠. 저는 문해력 수업을 통해 학생에게 이런 경험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독일 아비투어 시험의 외국어 과목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다고 합니다. “교육부 장관을 인터뷰하려고 한다. ‘학교는 어느 정도로 우리의 인생을 준비해 주고 있나?’라는 주제에 대해 인터뷰 문안을 작성해 보시오.” 선생님은 학생들의 인생을 어느 정도로 준비해 주고 있으신가요? 저도 고민에 빠졌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긴 인생을 살아야 하는 학생에게 어떤 교육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권민이가 「슬로그의 고민 카페」 두 번째 에피소드를 가져왔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을 보니 저의 고민도 해결되더군요. 학생들은 누군가 알려 주지 않아도 글을 쓰며 스스로 인생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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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쓰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쓰기는 과거의 나를 만나고 현재의 나를 인지하며 미래의 나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여러 차원의 나를 만나는 기적은 내면을 꺼내 쓰는 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글을 꾸준히 쓰다 보면 나의 형상이 뚜렷해집니다. 삶이란, 길을 걸으며 목적지를 몰라 방황하기도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저는 문해력 수업을 통해 살면서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을 학생에게 그 길을 동행해 줄 쓰기의 매력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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