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식과 사고가 함께 깊어져야 진정한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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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06 22:25 조회 6,635회 댓글 0건본문
교육과학기술부가 재학생을 잘 가르쳐 국어, 영어, 수학 성적을 중학교 때보다 많이 올린 ‘전국 향상도 우수 고등학교’ 100곳을 공개했다. 민간 기관도 아닌 교과부 주도하에 성적을 가장 많이 올린 학교를 선정한 것이다. 한국 교육의 방향성이 정확하게 드러나는 지표다.
최고를 향한 인간의 욕망은 한결같다. 그 욕망 중의 일부분이 자식 교육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부모라면 누구나 내 자식이 남보다 공부 잘하길 바라고, 좋은 대학, 좋은 학과를 졸업하고, 훌륭한 직장에 취직해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주길 원한다.
그러나 교육 본연의 모습을 놓고 볼 때 과연 우리는 정도를 가는 것일까? 제어 장치도 없이 욕망을 부추기는 행위가 과연 진정한 교육일까? 이 대목에 이르면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욕망을 부추기는 행위가 과연 진정한 교육인가
그리스어에서 온 독일어의 페다고긱Pädagogik, 즉 ‘교육’이라는 단어는 ‘어린이를 인도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교육은 학생을 옳은 길로 인도하고 삶을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은 어떤가. 우수 고등학교라고 선정된 100개 학교 학생들이 어떻게 학습했는지 비결을 들어보면 행복이란 말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성적을 올리기 위해 교사가 학생의 집까지 찾아가 가정환경을 알아내서 적절한 지도를 했다고 자랑하고,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보충수업을 해서 성적부진 학생들을 끌어올렸다며 성공담을 늘어놓는다. 방과 후에 유명학원 강사를 초빙해서 가르쳤다고도 한다. 교육을 이야기하는데 정작 교육의 주체인 아이들은 없다. 어른들이 만든 프로그램이 얼마나 기술적이고 완벽한지가 관심사다.
거기다가 야간 자율학습과 강제 보충학습을 금지한 진보교육감 지역은 기초학력 미달학생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는 것을 강조하며 학생의 행복과 인권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진보교육감들을 깎아내리고 있다.
도대체 공교육이 어디까지 달려가야 직성이 풀리는 것일까. 교육이란 불구덩이에 온몸을 던져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참모습을 일러주기는커녕, 비교하고 줄 세우며 오히려 부추기고 있으니 말이다.
이기적이거나 부도덕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서야
독일에도 간혹 극성 부모들이 있다. 그러나 극소수의 극성 부모 바이러스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감염되지 않는 이유는 흔들림 없이 중심을 잡고 있는 교육기관과 교육전문가와 정책들에 있다. 아무리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1등을 만들어도 이 나라 교육시스템 안에서는 성적으로만 두각을 나타낼 수는 없다. 지식교육에 몰두하다가 인격과 사회성이 결핍되면 지식조차 주변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언제나 선진국 중 바닥을 면치 못하고 있는 ‘공부 못하는 나라’ 독일에서는 여전히 인성교육을 강조하고, OECD 국가 중 ‘공부 잘하는 나라’ 2위인 한국은 여전히 지식수준에 만족하지 못하니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의 한 김나지움 교장선생님과의 인터뷰에서 교육에 대해 들었던 중요한 말 중 한 대목이 생각난다.
“학습은 개인의 정신적인 수준과 함께 가야 한다. 지식이 높아지면 그만큼 사고도 깊어져야 하며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져야 하는 것이다. 경쟁 위주의 교육은 주입식으로 흐를 수밖에 없고, 주입식 학습법은 정신적인 발달을 무시하고 단순 암기와 지식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런 교육환경 속에서는 사고의 깊이가 없는 사람들도 공부를 잘할 수 있고 그런 사람들이 쉽게 성공할 수도 있다. 때문에 이기적이거나 부도덕한 사람이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희대의 독재자 히틀러다.
나치시대를 혹독하게 경험한 독일인은 사고의 깊이와 인성이 고양되지 않은 지식인을 키우는 교육을 가장 경계하게 되었다. 대외적으로 아무리 독일교육 수준이 낮게 평가되어도 이 부분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교육은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펼칠 수 있고,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점을 스스로 찾을 수 있는 사람을 키워내는 일이다. 그러나 그 문제를 지식에만 의존하지 않고 학문적, 인간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풀어나갈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교육이란 이 둘 중의 하나도 버려서는 안 된다.”
최고를 향한 인간의 욕망은 한결같다. 그 욕망 중의 일부분이 자식 교육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부모라면 누구나 내 자식이 남보다 공부 잘하길 바라고, 좋은 대학, 좋은 학과를 졸업하고, 훌륭한 직장에 취직해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주길 원한다.
그러나 교육 본연의 모습을 놓고 볼 때 과연 우리는 정도를 가는 것일까? 제어 장치도 없이 욕망을 부추기는 행위가 과연 진정한 교육일까? 이 대목에 이르면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욕망을 부추기는 행위가 과연 진정한 교육인가
그리스어에서 온 독일어의 페다고긱Pädagogik, 즉 ‘교육’이라는 단어는 ‘어린이를 인도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교육은 학생을 옳은 길로 인도하고 삶을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은 어떤가. 우수 고등학교라고 선정된 100개 학교 학생들이 어떻게 학습했는지 비결을 들어보면 행복이란 말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성적을 올리기 위해 교사가 학생의 집까지 찾아가 가정환경을 알아내서 적절한 지도를 했다고 자랑하고,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보충수업을 해서 성적부진 학생들을 끌어올렸다며 성공담을 늘어놓는다. 방과 후에 유명학원 강사를 초빙해서 가르쳤다고도 한다. 교육을 이야기하는데 정작 교육의 주체인 아이들은 없다. 어른들이 만든 프로그램이 얼마나 기술적이고 완벽한지가 관심사다.
거기다가 야간 자율학습과 강제 보충학습을 금지한 진보교육감 지역은 기초학력 미달학생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는 것을 강조하며 학생의 행복과 인권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진보교육감들을 깎아내리고 있다.
도대체 공교육이 어디까지 달려가야 직성이 풀리는 것일까. 교육이란 불구덩이에 온몸을 던져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참모습을 일러주기는커녕, 비교하고 줄 세우며 오히려 부추기고 있으니 말이다.
이기적이거나 부도덕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서야
독일에도 간혹 극성 부모들이 있다. 그러나 극소수의 극성 부모 바이러스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감염되지 않는 이유는 흔들림 없이 중심을 잡고 있는 교육기관과 교육전문가와 정책들에 있다. 아무리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1등을 만들어도 이 나라 교육시스템 안에서는 성적으로만 두각을 나타낼 수는 없다. 지식교육에 몰두하다가 인격과 사회성이 결핍되면 지식조차 주변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언제나 선진국 중 바닥을 면치 못하고 있는 ‘공부 못하는 나라’ 독일에서는 여전히 인성교육을 강조하고, OECD 국가 중 ‘공부 잘하는 나라’ 2위인 한국은 여전히 지식수준에 만족하지 못하니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의 한 김나지움 교장선생님과의 인터뷰에서 교육에 대해 들었던 중요한 말 중 한 대목이 생각난다.
“학습은 개인의 정신적인 수준과 함께 가야 한다. 지식이 높아지면 그만큼 사고도 깊어져야 하며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져야 하는 것이다. 경쟁 위주의 교육은 주입식으로 흐를 수밖에 없고, 주입식 학습법은 정신적인 발달을 무시하고 단순 암기와 지식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런 교육환경 속에서는 사고의 깊이가 없는 사람들도 공부를 잘할 수 있고 그런 사람들이 쉽게 성공할 수도 있다. 때문에 이기적이거나 부도덕한 사람이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희대의 독재자 히틀러다.
나치시대를 혹독하게 경험한 독일인은 사고의 깊이와 인성이 고양되지 않은 지식인을 키우는 교육을 가장 경계하게 되었다. 대외적으로 아무리 독일교육 수준이 낮게 평가되어도 이 부분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교육은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펼칠 수 있고,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점을 스스로 찾을 수 있는 사람을 키워내는 일이다. 그러나 그 문제를 지식에만 의존하지 않고 학문적, 인간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풀어나갈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교육이란 이 둘 중의 하나도 버려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