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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활용수업 플로우 대對스톡, 그리고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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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1 13:32 조회 7,04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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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나?’에 관하여 가장 흥미로운 질문 중 하나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활동(F)과 미래를 대비하는 활동(S)에 어떤 비중을 주어야 하는가이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활동을 간단히 플로우flow라고 하자. 플로우란 흐름이다. 흐르는 것은 저장해 둘 수가 없다. 미래를 대비하는 활동을 간단히 스톡Stock이라고 하자. 스톡은 저장되는 것이다. 인생사의 ‘의미 있는 경험’은 대표적인 플로우고, ‘자본’은 대표적인 스톡이다. 플로우와 스톡 둘 다 가치가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을 배타적으로 선택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비중을 선택하는 일이 고민거리가 된다.

전 세계의 문화는 스톡과 플로우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에 관하여 통찰을 주는 수많은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플로우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예를 들어 톨스토이 단편 「사람에게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의 ‘파홈’은 최대한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하루 만에 엄청나게 먼 거리를 다 돌기 위해서 죽을힘을 다하다가 진짜 죽어버렸고, 그 결과 그가 묻히는 크기만큼의 땅만 차지하게 되었다. 실제로 파홈이 잃은 것은 그에게 남은 일생 동안의 시간이라는 플로우다.
플로우를 강조하는 것은 헐리우드 영화들의 단골 주제이기도 하다. 애덤 샌들러 주연의 <클릭>에서 회계사인 주인공은 파트너 회계사가 되기 위해서 프로젝트를 완수할 때까지의 기간을 FF 버튼으로 빨리감기 해버린다. 그러나 다음 프로젝트가 있었고, 또 다음 프로젝트도…. 이런 식으로 빨리감기를 하니 순식간에 부자가 된, 이제 곧 죽음을 눈앞에 둔 노인이 되어버렸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어떤가? 대학 강사가 “내일 당신이 죽는다면 오늘 무엇을 하겠는가?”라고 질문을 던지자, 대학생들이 “부모님께 전화를 하겠다”,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고마웠다고 편지를 쓰겠다”,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겠다” 등등의 답을 한다. 그러자 강사는 “오늘 지금 그 일을 하라!”고 답한다.

어떻게 균형을 맞출 것인가…
그러나 이런 영화, 소설, 우화들은 우리 인생에 확정적인 답을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스톡의 가치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스톡 친화적인 이야기는 「개미와 베짱이」다. 하루 종일 일만 하던 개미는 살아남았고 띵가띵가 놀던 베짱이는 스톡을 쌓지 않았기 때문에 굶어죽었다. 스톡 없이 번영 없다는 것은 ‘경제 법칙’이다. 1960년대의 한국 사람들이 저축하고 자본을 쌓지 않았다면 2011년의 한국은 없다. 앞서의 이야기에서 대학강사가 시키는 대로 내일 죽는다고 가정하고 오늘 할 일을 했다고 치자. 그러면 내일은 뭘 하나? 편지를 365일 쓰나? 내일 죽는다 그러면 오늘 직장 일을 하거나 공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 문제는 흥미롭긴 하지만 정말 골치가 아프다. “내 인생에선, 플로우 비중은 30%, 스톡 비중은 70%이다”라고 선언한다고 하자. 그 답은 무슨 근거로 정당화되는가? 왜 30:70인가.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흥미로운 문제 해결 활동’은 스톡과 플로우의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이 활동은 독특한 플로우이자 스톡이다. 예를 들어 “GDP는 증가했는데도 왜 국민들의 행복 수준은 그대로인가?”라는 문제의 답을 구하는 한 사람을 생각해보자. 그 문제를 풀기 위해 배운 것은 유용한 것으로 머리에 남게 되어 다른 문제를 푸는 데도 분명히 도움이 되는 ‘자산’이 된다. 동시에 이 문제 해결 활동은 상당히 ‘의미 있는 경험’이 된다. 창의성, 단순노동, 혼란스러움, 고통, 감질남, 기쁨, 삼매경이 이리저리 혼합되어 매우 독특한 경험을 하게 해준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봐서 이 경험은 ‘좋은 것’이며, 또 ‘계속하고 싶은 것’이다.

공부가 그 묘안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공부란 원래 스톡과 플로우의 골치 아픈 대립을 일정 부분 해소하는 인생의 묘안이 될 수 있는 활동이다. 따라서 더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스톡이자 동시에 플로우를 충분히, 직접 경험하며 사는 사회일수록 만족스러운 사회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교육제도는 공부의 이 독특한 성격을 지워버린다. 중등학교에서 학생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업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고, 대학생들은 강의가 휴강하면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면서 끝없이 FF 버튼을 누르고자 하는 <클릭>의 주인공처럼 지낸다. 학생들은 학교 성적이 남지 않는다면 학교 활동의 대부분은 ‘헛짓’이라고 느낄 것이다.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않거나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한심하게 생각하는 교사들은 이 점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학교 수업과 관련하여 시험(내신·수능)이 없다고 하여도, 이 수업을 듣는 것이 가치 있을까? 곧 잊어버리고 말 정보를 시험지 위에 무의미하게 쏟아내기 위한 활동은, 시험이라는 제도가 없으면 가치가 없으며, 시험이 있을 때에도 그 시험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치가 없다.

최근 어떤 교사로부터 학생들이 ‘공부 자체에 흥미가 없다’는 불평을 들었다. 이 말은 틀렸다. 흥미는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많고’, ‘적고’의 문제다. 따라서 질문은 ‘현실의 흥미로운 문제 해결과 어떻게 조금이라도 더 긴밀히 연결되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내용을 가르침으로써 학생의 배움을 더 플로우에 가깝게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가’의 형식이 되어야 한다. 이 질문을 제대로 던지기 위해서는, 가르치는 사람은 끝없이 자기 활동의 가치를 진지하게 평가해야 하며, 언제나 즐겁고도 고통스러운 배움의 여정 속에 있어야 한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머리가 굳었다고 하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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