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이데아 [공감의 교과 협력 독서토론] 청소년소설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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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2-10-06 16:40 조회 2,547회 댓글 0건본문
청소년소설로 출발합니다
책으로 마음을 여는 비경쟁 감상 토론
김보란 인천남중 사서교사
텅. 점심시간임에도 도서관 문을 열지 않고 반납함에 책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연체 학생이거나, 부끄러움이 많은 학생일 것이라는 추측을 하고 반납함으로 향했다. 10여 페이지 남짓한 부분에 책날개가 끼워져 있었다. 1학년 학생에게 쉽고 재미있는 청소년소설을 추천했는데, 그 책이 그대로 반납함에 있었 다. 속상함은 미뤄 두고, 혹시 책을 읽기 어려운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어려워요.” 학생은 그렇게 답했다. 미디어 세대인 아이들 대부분은 어휘력이 부족해서 독서에 어려움을 느낀다. EBS <당신의 문해력> 제작팀이 기획한 중학교 3학년 학생 대상의 ‘어휘력 진단평가’에 따르면 교과서의 세부 내용을 혼자 힘으로 이해할 수 있는 청소년의 비율은 9%이다. 80%는 전반적인 내용만 겉 핥기로 이해하고, 나머지 11%는 교과서 내용 파악이 어려웠다(『EBS 당신의 문해력』, EBS BOOKS). 교과서 속 학습 관련 단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은 낮은 독서율과 상관관계가 있다.
교과 연계 독서토론은 책을 통해 교과와 연계한 지식을 확장하고, 독서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공감 능력을 키우고자 계획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책에 대한 흥미를 끌어올려 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상담·음악·국어 세 교과와 협력하되, 첫 회차는 짧은 청소년소설로 독서 흥미를 끌어올리고자 사서교사가 단독 운영하는 수업을 마련했다.
청소년소설로 독서 흥미 이끌기
다양한 미디어 세상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독서 시간이 줄어든 것은 수많은 통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독서가 생활에서 밀려남에 따라 독해력, 어휘력, 문해력 등 각종 언어 능력이 함께 하향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따라서 학교도서관에서 학생들이 흥미있게 독서를 시작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필요하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독자는 만족감과 희열감이 커지기 마련이다. 독서의 시작을 어떻게 끌어 주느냐, 지속성 있게 밀어 주느냐 하는 것이 독서프로그램을 계획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최근 다양한 주제와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청소년소설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학년에 따라 독해력이 같지 않기에 학년별 추천도서보다 오히려 독서력 혹은 독서 흥미도에 중점을 둔 도서 목록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다만, 이는 개별 학교에서 만들기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기에 지역 혹은 학교급 단위로 사서교사로 이뤄진 공동체가 필요하다. 매년 새로운 책들이 무수히 나오기에 공유 작업이 가능한 오픈 액세스 기반의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한 시점이다. 여러 환경을 고려하여 학년별로 기획한 독서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1학년 '소설의 첫 만남'으로 책과 마주하기
첫째, 부담감을 덜어 주는 책 고르기
독서토론 프로그램을 준비할 때, 도서부 아이들과 잠깐 논의를 한 적 있다. 프로그램 참여자를 10여 명으로 구성하되, 도서부 아이들은 가급적 참여하도록 장려했기 때문에 그들의 의견이 궁금했다. 독서 그리고 토론이라는 단어 자체가 재미없어 보인다는 솔직한 의견부터, 숙제가 있느냐는 나름 중요한 질문까지 나왔다. 하지만, 아이들이 공통으로 가장 궁금해했던 것은 바로 읽어야 하는 책의 양이었다. 두꺼운 책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 부담감을 없애 주고자 얇은 책을 찾아 나섰다.
‘소설의 첫 만남’ 시리즈는 독서에 부담감을 갖는 아이들에게 추천하기 좋은 책이다. 독서력, 표현력, 창의력 등 다양한 카테고리별 묶음이 있기에, 토론의 주제를 정하여 책을 선택하기에도 괜찮다. 한 주제에 속하는 다양한 책을 보면서 지속적인 토론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이 책들은 100여 페이지 남짓 되는 짧은 분량과 큼직한 글자, 페이지를 가득 채운 그림이 인상적이다. 모든 요소들이 독서에 대한 부담감을 조금씩 더는 것 같아, 책을 받은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지기 마련이다. 이렇게 얇고 삽화도 많은데, 동화가 아니라 무려 소설이라니… 학생들에게 책과 함께 뿌듯함을 건네 줄 수 있다.
둘째, 멋있는 라면 이야기 : 『라면은 멋있다』
소설의 첫 만남 시리즈를 천천히 살펴보며, 중학교 1학년 남학생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책들을 추려 보았다. 1학년 대상의 첫 독서토론 대상 도서는 제목이 인상적이었던 『라면은 멋있다』(공선옥)로 정했다. 아이들과 첫 토론 책으로 부족함이 없었던 이 책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 토론은 1학년 10명이 참여하여 도서관에서 대면 방식으로 운영했다. 감상을 이야기하는 자유 토론 이지만 토론 활동지를 활용하여 정리할 시간을 주었다. 생각해 볼 주제가 담긴 활동지 문항을 책과 연계 하여 보고, 생각을 정리한 후에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더불어 책에 나오는 내용 중 깊이 있게 생각해 볼 만한 사회적 주제는 사서교사가 미리 조사하여 준비했다. 토론 문항은 답변의 깊이를 고려하여 기본과 심화 질문으로 나누었다. 학생들은 기본 편에서 2문항, 심화 편에서 1문항을 선택하여 발표할 수 있으나 강제는 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자신이 선택한 문항을 읽고, 책을 살펴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물론 선택하지 않은 다른 문항에도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덧붙일 수 있다. 문항 중 배경 설명이 필요한 주제는 미리 준비하여 학생들 의 생각 나눔이 끝난 후 사서교사의 설명을 더했다.
라면의 상징성(기본 3번)과 관련하여 학생들에게 우리나라의 근대화 속 끼니로 자리 잡은 ‘라면의 역사’ 에 관해 설명했다. 가정환경과 경제 상황을 묻는 주제(심화 2번)에서는 주인공 누나를 대입하여 ‘대학생에 게 필요한 돈(등록금 및 생활비) 계산해 보기’를 학생들과 함께 정보 찾기 활동으로 짧게 해 보았다. 신문기사 및 대학 홈페이지에서 등록금·기숙사 비용 등을 찾아보고, 한 학기 및 한 달 생활비를 계산하여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발생하는 비용을 계산하는 활동이었다. 이 활동은 ‘청소년의 연애 비용’ 계산 활동과도 함께 이어 볼 수 있었다. 짧지만 다양한 사회적 고민거리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이 가득했다.
“가난, 어려움, 그렇지만 함께라는 희망.”
한 학생이 라면의 상징적 의미에 관해 발표한 답변이다. 짧지만 다양한 사회적 주제가 담긴 이 책은 초등 고학년 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두 읽고 토론할 수 있는 생각거리를 준다.
3학년 이꽃님 소설로 작가에 대한 관심 북돋기
첫째, 읽고 싶게 만드는 책으로 대화 물꼬 트기
중학교 최고 학년인 3학년은 성숙함이 한껏 더해진 시기로, 이야기가 가장 잘 통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교사의 이야기를 한 귀로 흘리기에도 좋은 학년이다(물론 나에게 한정된 사항일 수도 있다). 본교 도서관은 3학년 교실과 가장 가까이 있어, 아이들과의 만남이 비교적 수월했다. 도서관 바로 옆 상담실은 모든 학년에게 인기가 높아 학기 초부터 무척 부러웠으나, 그중 단연코 3학년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사랑방으로 통했다. 상담선생님과의 협력 독서토론을 계획했던 것도 이러한 인기에 편승하려는 마음이었음을 고백한다.
상담선생님과 함께한 독서토론 대상 도서는 이꽃님 작가의 『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이라는 책이 었다. 가정폭력을 끊어 내는 우정의 연대가 돋보였던 이 책을 읽고, 아이들은 꽤 많은 생각과 감정을 토로했다. 그리고 토론이 끝나갈 무렵, 나는 아이들의 격양된 감정에 작은 부채질을 일으켰다. 별것 아니었다. 작가의 신작 소설을 앞에 들고 한마디를 던졌을 뿐이다.
“신작 소설인데, 범죄 미스터리 장르인 것 같은데?”
아이들의 눈빛이 빛났다. 하나둘, 다음 독서토론은 언젠지 물어보는 아이들에게 둘러쌓여 마스크 속으로 씨익 미소를 지었을 뿐이었다. 좋은 작가의 책을 소개하는 것. 그것은 독서 흥미를 지속성 있게 이끄는 좋은 연결고리가 된다.
둘째, 경험을 바탕으로 공감하고 생각 표현하기
계획에 없던 독서토론은 아이들의 빛나는 눈빛에서 시작되었다. 『죽이고 싶은 아이』는 서은이의 죽음 그 리고 범인으로 지목된 주연이의 관계를 둘러싼 타인들의 인터뷰라는 독특한 전개 방식의 소설이다. 함께 읽은 아이들 모두가 후반에 나오는 반전에 놀라움과 분노를 그리고 작은 죄책감에 공감했다. 작가의 이 름은 독서의 충분한 명분이 된다. 지난 시간 작가의 책에 흥미를 느꼈던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3학년 6명 의 학생들로 온라인 독서토론을 꾸렸다.
학생들은 활동지에 담긴 토론 질문에 관해 깊게 고민하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편향적 인터뷰가 담긴 기사, 출처가 불분명한 정보들로 둘러싸인 세상의 모습이 책 속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아이들은 토론을 하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 속 등장인물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사실과 진실, 거짓과 믿음의 상 관관계(4번 문항)를 다룰 땐 예시문을 들어 교사의 설명을 덧붙였다. 수없이 보도되는 사건의 단면만을 보지 않고,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선 ‘후속 기사 찾아보기’ 같은 활동이 필요함을 함께 안내했다. 아이 들은 정보 찾기 이후, 책에 등장하는 열일곱 명의 인터뷰를 다시 읽으며, 자신이 진실 혹은 거짓이라 믿었 던 것들이 뒤섞일 때 혼란과 죄책감을 느꼈다고 답했다. 연예인 혹은 스포츠 스타의 사건들에 자신이 진실이라 믿는 정보만을 근거로 댓글을 달거나, 찬반 의견을 표했던 경험을 털어놓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 책은 사회적 관계, 청소년 범죄, 사실과 거짓의 정보 유통 등 사회 교과와 연계하면 더욱 심도 깊은 토론 이 가능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근거가 부족한 추측들만을 가진 채, 주연이 범인이길 바란다. 결국, 사람들이 죽이고 싶은 것은 범인이 되어 버린 주연이다.”
제목의 의미를 추론해 보는 문항에 한 학생이 남긴 답변이다. 사실과 진실 그리고 믿음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이 책을 청소년들과 함께 읽어 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