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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8 21:08 조회 6,83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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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에서 본 다큐멘터리가 기억난다. 유치원에 다니는 일곱 살짜리 어린이들의 생활을 담아낸 것인데 그 어린 삶에도 이런저런 애환이 있고 사랑이 있다는 것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준 나름 재미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보다 매우 놀라운 장면을 보았다. 유치원 아이를 앉혀 놓고 어머니가 한자를 가르치는 장면이었다. 유치원 아이에게 한자 가르치는 거야 요즘 세상에 드문 일이 아니겠지만 하기 싫어 울고불고하는 아이를 몽둥이까지 들어가며(때리지는 않았다) 공부시키는 장면은, 나로선 놀라웠다.

요즘 조기 교육 열풍으로 어린 시절부터 이리저리 공부에 시달린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일이지만 막상 일곱 살짜리가 눈물을 흘려가며 한자 공부하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충격적인 건 그것뿐이 아니었다. 유치원에서 한자 시험을 보고 점수를 매겨 아이들에게 상을 주고 있었다. 시험 못 본다고 야단치지는 않았지만 유치원 시절부터 아이들에게 경쟁을 가르치고 점수의 노예가 되게 만드는 모습은, 그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모든 흐뭇한 장면들을 다 잊게 할 만큼 불쾌했다.

경쟁심을 부추긴다고 경쟁력이 키워지나
유치원 아이들에게 한자와 영어를 가르치는 논리는 분명하다. 이른바 선행학습이란 거다. 남보다 먼저 상급 과정을 공부시킴으로써 좀 더 나은 경쟁력을 갖게 한다는 뜻이겠다. 아마도 처음엔 고등학교 저학년 때 고학년 과정을 공부하는 것부터 시작되었을 게다. 그런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차별성이 줄어들자 남보다 앞서고 싶은 사람들이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시키기 시작했을 테고 그런 경쟁이 급기야 유치원 과정까지 내려가지 않았을까 싶다. 하긴 이미 미취학 아동에게 영어를 비롯해 갖가지 학습을 시키는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으니 선행학습 경쟁도 갈 데까지 간 셈이다. 교육열 하나는 세계 최고라는 이 땅의 부모들이 또 어떤 새로운 경지의 선행학습을 개발할지는 알 수 없지만.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영국에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 본 경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로는 영국에서 선행학습이란 개념은 없다. 영국에서 교육은 문제 해결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지 문제 풀이의 능력을 키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영국의 학교에서는 수영을 잘해서 빨리 헤엄치는 능력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들은 물에 빠졌을 때 죽지 않는 법을 가르친다.

그들에게 중요한 교육은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물건 값을 정확히 계산해서 틀리지 않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초등학생들은 자기 고장의 지도를 그리면서 지리를 공부하고 그 지역의 박물관을 방문하면서 역사를 배우고 역사에서 배운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미술을 이해한다. 우리의 교육 관념으로 보면 도무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을 그나마도 답답할 정도로 느려터지게 배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런 게 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소양을 차근차근 배우는 진짜 교육이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탈락에 대한 두려움은 누가 심어 놓았나
이런 식의 교육은 물론 우리와는 많이 다른 영국 사회의 구조와 연결되어 있다.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무너졌지만 그래도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탄탄한 사회 안전망이 있고 그렇기에 경쟁으로부터 오는 압박이 훨씬 덜하고 경쟁 탈락에 대한 두려움도 훨씬 적다는 것이다. 경쟁보다 공존의 논리가, 탈락에 대한 공포라는 부정적 동기보다는 자기 성취라는 긍정적 동기가 훨씬 더 중요한 교육의 원리로 작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저 개인의 경쟁력을 키우는 게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한 교육의 목표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시대가 되면서 영국 사회 역시 과거보다 각박한 경쟁 사회의 요소가 많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우리 사회에 비교하면 여전히 경쟁의 스트레스가 훨씬 덜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교육은 기본적으로 탈락과 배제에 대한 두려움을 기반으로 한다. 그런 두려움은 누가 심어 놓았나. 당연히 현재의 경쟁 시스템에서 가장 이득을 보고 있는 집단이다. 이 사회의 부와 권력을 과점하면서 담론 체계를 장악하고 있는 세력이다. 그들은 이미 자신이 발 딛고 선 기반 위에 최대한의 진입 장벽을 만들어 자신들의 지위를 영구화하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학력과 학벌 구조를 강화하고 모든 사회적 문제를 단지 개인의 경쟁력 문제로 치환해 버리는 것이다. “모든 것은 네 책임이며 네 능력이, 학벌이, 경쟁력이, 스펙이 부족한 탓이다.”라고 끊임없이 되풀이해 말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의 의미는 기본적으로 이 논리에서 시작된다. 모든 것이 개인의 책임으로 돌아가는 구조에서 경쟁 체제로부터의 탈락은 두려운 일일 수밖에 없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개인들은 어쩔 수 없이 체제의 상층부로 진입하기 위해 아등바등하게 된다. 우리의 높은 교육열이 결국은 공포심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공포심은 모든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 구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이 난마 같은 교육 문제를 풀기 위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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