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활용수업 내일의 교육,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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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9 17:07 조회 8,578회 댓글 0건본문
해외 교육을 체험한 학생들은 왜 국내로 돌아오려 하지 않는가?
어떻게 하면 교육을 잘하고,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 학교 선생님은 물론 학생, 학부모의 공통된 화두이다. 학교 선생님들은 학력 신장을 위해서 정규수업은 물론 보충수업이며 자율학습 감독에 열중하고, 학생들은 학교 공부가 끝나자마자 과외 받으러 혹은 학원에 가기 바쁘다. 학부모들은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에도 많은 돈을 아낌없이 사교육비에 투자하고 있다. 가히 온 나라와 국민들이 교육 열풍에 빠져 있다.
정부는 어떤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교육개혁을 말하고, 교육선진화를 부르짖으며, 텔레비전에서는 잊을 만하면 교육문제에 대해 토론회를 벌여 진단하고 처방을 내놓지만 시원하게 해결됐다는 소리를 듣기 어렵다. 선생님들은 점점 수업하기 힘들고 잡무에 시달린다는 푸념이 난무하고, 학생들은 줄 세우기식 경쟁과 진학 문제로 좌절과 열등감에 빠져 있으며, 부모들은 여전히 사교육비에 시름하고 있다. 2년 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한국의 교육을 부러워했다고 하던데, 한국 교육열을 부러워한 것이지 왜곡된 한국의 교육 현실을 칭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교육 현실에 대한 자화상을 그려낸 말로 ‘기러기 아빠’가 있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 아이와 아내를 해외에 보내고, 홀로 국내에 남아서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고대하고 있는 아버지를 일컫는 말이다. 기러기 아빠는 돈 많고 잘나가는 집안의 일로만 생각하기 쉬우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최근 들어 초·중등학교의 선생님들한테도 학습 연구년 제도가 도입된다고 하던데 대학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해외 연구년 제도가 있어 왔다. 교수들이 연구년을 떠날 때는 대개 가족과 함께 떠나는 경우가 많다. 1년쯤 지나 연구년이 끝나면 국내로 돌아와야 하는데, 거기서 문제가 생긴다.
해외의 초·중등학교를 체험한 자녀들의 십중팔구는 국내 학교로 돌아오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애들과 엄마를 놔두고 혼자 돌아와 원치 않는 기러기 아빠가 되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아빠를 따라 해외로 가기 싫어했던 학생들까지 해외의 맛을 보고나서 돌아오려 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 해외의 학교에서는 공부는 시키지 않고 놀기만 해서 그럴까? 아니면 영어를 배울 수 있어서 그럴까?
그 정답은 교육 방법에 있다. 점차 나아지고는 있으나 우리나라의 교육은 여전히 학급 전체를 대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주입식 교육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편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지식을 교과서에 수록하여, 이를 획일적으로 전달하고 얼마나 암기했는가를 측정하는 선택형 시험만으로는 21세기 교육이 추구하는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할 수 없으며, 지식을 단순히 외우고 그 결과를 평가하여 경쟁토록 하는 교육만으로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전통적인 교육 방식의 틀을 깨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교육은 가능하면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양의 지식을 학생들이 잊어버리지 않도록 전달하는 데 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지식을 전달하는 데 교육의 목적이 있다면 교사는 보편적인 지식을 교과서에 담아 이를 반복적으로 암기시키고, 어느 정도 암기했는가를 지필시험으로 측정하여 외울 때까지 숙달시키는 주입식 교육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지식·정보를 교과서에 모두 수록하여 학생에게 일일이 가르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과를 중시하는 교육에서 과정을 중시하는 교육으로
우리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식사하는 것도 잊은 채 게임이나 놀이에 빠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헝가리 출신의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는 ‘플로우’라 하였다. 칙센트미하이에 의하면 플로우란 “어떤 활동에 깊이 몰두하여 외적인 보상이 없더라도 행동 자체가 즐겁고,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지속되는 행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험”이라 하였다. 즉 플로우란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의식하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흐르는 몰아 지경의 느낌으로서, 흔히 말하는 몰입이나 삼매경三昧境과 유사한 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플로우 현상은 운동, 게임, 놀이, 그리기, 쇼핑 등의 활동에서 쉽게 체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언제, 어떤 상황에서 플로우 현상을 느낄까? 학생들이 지겹고 어려우며 정말로 하기 싫은 것으로 생각하는 공부를 통해서는 플로우를 체험할 수 없는 것일까? 플로우 이론의 창시자인 칙센트미하이에 따르면 다른 사람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행하는 경우보다는 자신이 스스로 활동을 조절하고 결과 혹은 어떤 것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삼지 않고, 행위 자체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 활동하고 과정을 즐길 때 플로우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부나 학습 또한 플로우를 경험할 수 있는 과정임에 분명한데, 왜 많은 학생들이 플로우를 경험하지 못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이 아직도 진학이나 입시 위주의 교육에 치중한 ‘결과 중심’의 교육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과 중심의 교육과 ‘과정 중심’의 교육은 어떻게 다른가?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먼저 교육의 목적을 생각해보자. 목적 없는 교육은 없다. 교육은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의도적, 계획적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인 것이다. 교육의 목적을 보다 구체화하여 교육목표, 수업목표,학습목표라고도 한다. 교육목적이나 학습목표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도달해야 할 성취 수준으로서 국가의 교육과정이나 교과서에 명시되어 있다.
다음은 ‘중학교 사회 교과서’의 일부분이다. ‘Ⅱ. 다양한 기후 지역과 주민 생활’이라는 대단원 아래에 ‘2. 더운 지역과 추운 지역의 주민 생활은 어떨까?’라는 소단원이 나오고, 이 소단원을 통해서 학생들이 성취해야 할 학습목표로 ‘기온이 대비되는 지역 간의 주민생활을 비교할수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 학습목표를 보면 교사가 가르쳐야 할 내용으로서 ‘기온이 대비되는 지역 간의 주민생활’과 학생들이 수행해야 할 활동으로서 ‘비교할 수 있다’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학생들이 자료를 비교하는 활동을 통해서 ‘기온이 대비되는 지역 간의 주민생활’에 대해 알도록 학습목표가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사회과 교사가 진도를 맞추고 시험에 대비할 목적으로 ㉮와 같은 지적 내용만을 칠판에 쓰거나 유인물로 만들어 일방적으로 설명한다면 이는 결과 중심의 교육이며, 이러한 방식의 수업에서 학생들이 할 일은 노트 필기와 암기 외에 다른 활동이 필요없다.
반면에 ㉯와 같이 관련 자료를 학생들에게 제시하고, 학생 스스로가 독서 활동을 전개하면서 두 자료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내는 비교 활동을 통해 ‘기온이 대비되는 지역 간의 주민생활’을 알 수 있도록 유도했다면 과정 중심의 교육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매우 단순하고 극단적인 사례이기는 하지만 결과 중심의 교육과 과정 중심 교육의 차이를 알 수 있으며, 학교 현장에서 얼마나 결과 중심의 교육에 치중하고 있는가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학교도서관은 단순히 교양도서를 빌려주는 곳이 아니라 교육의 목적에 부합하는 자료를 비치하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어떤 활동과 과정을 통해 학습을 지원할 것인가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학교도서관은 과정 중심의 교육을 위한 핵심 요체임을 알 수 있다.
앞으로의 교육은 어찌해야 하는지 그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학생 스스로가 정보를 활용하는 경험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가도록 도와줌으로써 창의적 사고와 문제 해결력을 신장해야 한다. 경쟁과 결과 중심의 평가를 강조하는 결과 중심에서 과정 중심으로 바꾸고 전환해야 한다.
독서와 정보 활용을 잘하면 공부도 잘하고 사고 능력도 늘어난다
우리가 ‘학습한다, 공부한다’, ‘책을 읽는다’, ‘정보를 활용한다’, ‘학교도서관의 정보자료를 활용하여 수업을 한다’, ‘창의적으로 사고한다’ 등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이것은 모두 사람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정신적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동일하다. 다만, 공부 혹은 학습을 할 때와 책을 읽을 때 그리고 정보를 활용하는 과정에 있어서 동원되는 기능에 다소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지각, 분석, 평가, 기억, 분류, 범주화, 비교, 순서화, 추론, 예측, 요약, 검증, 조직, 구성 등의 사고 기능이 공통적으로 작용한다. 각 교과의 내용을 단순히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학생 스스로가 ‘분석, 평가, 분류, 비교, 추론, 예측, 요약, 조직, 구성’해보는 활동을 통해서 지적 내용을 습득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과정 중심의 교육을 구현하고, 21세기에 요구되는 창의적 사고력을 신장할 수 있는 것이다.
창의적 사고력은 지적 내용을 전달하고, 암기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지적 내용을 ‘분석, 평가, 분류, 비교, 추론, 예측, 요약, 조직, 구성’해보는 과정을 통해서 신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책을 읽는 활동이며, 정보를 활용하는 과정인 것이다. 따라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책을 효과적으로 읽고, 정보자료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학생이라 말할 수 있으며, 정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면 공부, 즉 성적을 높일 수 있다. 최근에 독서를 통한 학습, 학교도서관의 자원을 활용한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교도서관은 정보자료를 통해 공부하고 과정 중심의 교육을 위한 실험실
학교도서관은 학교 울타리 내에 있다는 물리적 의미보다는 학교교육을 위해서 존재하는 도서관을 뜻한다. 학교도서관은 교육적 역할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는 점에서 다른 도서관과 구별되며, 학교교육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존재한다.
필자가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던 70년대에도 도서실이라는 이름의 학교도서관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선생님들께서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고, 시골의 고향 마을에서는 책 구경을 하기도 힘이 들던 시절이라 학교 도서실을 자주 방문했다. 학홍길동전, 이순신 전기’ 등 교양을 넓힌다는 관점에서 도서실을 이용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책이 귀하던 시절에는 도서실이 있고, 많은 책이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현대 학교도서관의 필요성과 존재 가치를 이러한 역할만으로 말할 수 있을까?
학교도서관은 자료를 모아 놓고 단순히 대출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정보자료의 이용과 독서를 통해서 공부하고, 사고력과 탐구 능력을 기르며, 문제 해결의 과정을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교육의 실험실이어야 한다.
우리는 교과서에 있는 내용이나 교사가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내용을 지식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단지 정보에 지나지 않는다. 도서관의 많은 자료에 포함된 내용이나 교과서의 내용은 저자의 지식일 뿐 학생의 지식이 아닌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생산한 지식, 즉 정보 내용을 읽고 보고 들으면서 내용을 이해, 분석, 비교, 추론, 요약, 조직 등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갈 때 학생 자신의 지식이 되는 것이다. 학교도서관은 책, 잡지, 신문, 비디오, 컴퓨터 자료 등의 정보 내용만을 수집, 보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정보 내용을 처리하여 학생 자신의 지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교육하는 곳이다. 이러한 활동이 곧 학습이요, 사고력과 탐구 능력 신장을 위한 과정인 것이다.
공 하나 주고 운동장에 방치하면 축구 실력이 자동으로 생기는가?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창의적,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능력은 ‘뭐니 뭐니 해도 책을 많이 읽고, 감상문을 써보며 정보자료를 비판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라고 교사가 권장한다고 21세기에 필요한 능력이 저절로 생기는가? 또, 학교도서관을 이용하여 숙제를 하도록 유도하거나 수업 시간에 토론을 전개한다고 해서 갑자기 사고력이나 창의력, 문제 해결 능력이 생기는가? 그렇지 않다. 국어교사는 국어과의 단원과 관련된 정보를 가지고, 사회교사는 사회과 단원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탐구하며 사고하는 방법과 과정을 자연스럽게 알도록 유도할 때 가능한 일이다. 한두 번 이런 활동을 했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수업 자체가 이런 활동이 되도록 생활화할 때 가능한 일이다.
지금은 예전과 다르겠지만 필자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만 해도 체육 시간은 약간 과장하여 노는 시간으로 생각했었다. 체육 시간이 되면 선생님께서 잠시 출석을 부르고 나서 좋은 운동장과 공이 있으니 열심히 뛰어라 하시면 한 시간 내내 축구 시합에 열중했던 기억이 있다. 축구는 그냥 발로 공을 차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지 공을 차는 방법이나 포지션에 따른 공격과 수비 전략 등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세월이 지난 뒤에 성인이 되어 우연히 전문 코치와 인연을 맺어 공을 차되 멀리 그리고 정확하게 차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내심 신기하고, 이런 것이 바로 전문가의 교육이 아닌가 싶었다.
학교도서관도 축구와 다르지 않다. 시설과 환경이 좋은 학교도서관을 만들어 놓고, 여기에 좋은 책이 많이 있으니 학생들에게 알아서 읽어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떤 종류의 책을 읽어야 하는지, 책의 종류에 따라서 어떤 방법과 전략으로 읽어야 하는지, 뭘 생각하면서 읽어야 하는지, 읽기 전에는 무엇을 하고 읽고 난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고 무조건 읽으라 하는 것은 공을 차는 방법이나 전략을 가르쳐 주지 않고 체력에 좋으니 열심히 공을 차라고 하는 ‘축구장 이론’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책을 읽는 과정이 곧 공부요, 정보자료를 스스로 탐구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곧 학습 활동임에도 교과서를 읽는 방법,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워보거나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한글만 깨치면 누구든지 책을 읽을 수 있고, 교과서를 읽으면서 공부를 할 수 있으나, 어떤 과정과 방법을 거쳐 공부하고 사고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면 훨씬 더 효과적으로 학습하고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곧 과정을 중시한 교육의 핵심이다.
교과교사가 내용 전문가라면 사서교사는 과정 전문가,
사서교사에게 관리자 역할만 요구하는 것은 국가적 손실
학교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전문 교사를 사서교사라 한다. 사서교사는 교사이기 이전에 사서로서 교육에 필요한 자료를 선정하여 학교도서관에 구비하고, 쉽게 자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조직화하고, 컴퓨터로 업무를 처리하는 등의 많은 업무를 담당해야 한다. 이런 사서로서의 역할이 전부라면 굳이 교사를 배치할 필요 없이 사서를 배치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사서교사는 학교도서관에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학생들이 책을 잘 읽을 수 있도록 지도하고, 정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데 더 큰 존재 이유가 있다. 다시 말해서 정보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탐구하고, 학습하는 과정 전문가이다.
따라서 내용 전문가인 교과교사와 과정 전문가인 사서교사가 협력하여 수업을 전개한다면 독서의 과정, 정보 활용의 과정을 통해 결과로서의 교과 내용 습득과 동시에 과정에 대한 능력도 함께 신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수업 형태를 도서관 활용수업 혹은 도서관 협력수업이라고 한다. 이러한 교육적 역할을 도외시한 채 사서교사의 업무를 학교도서관 관리나 대출·반납에 국한시킨다면 이는 국가적 손실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중학교 사회 교과서’의 단원(더운 지역과 추운 지역의 주민 생활은 어떨까?)을 살펴보자. 사회과 교사가 이 단원을 지도함에 있어서 학생들이 스스로 탐구하면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학교도서관에서 수업을 전개한다고 가정해보자. ‘학습목표’와 관련된 자료를 학생들에게 찾아보도록 하거나 사전에 교육목적에 부합하는 자료를 교사가 선별하여 학생들에게 배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사서교사는 정보 전문가로서 교사와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자료의 탐색에 관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며, 과정 전문가로서 학생들이 직접 찾거나 교사가 배부한 자료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사회과 교사와 사서교사가 협의하여 사회과 단원에 적합한 자료 두 개를 찾았다고 가정해보자. 사회과 교사가 위 ㉯와 같은 두 개의 자료를 유인물로 만들어 학생들에게 배부하고, 수업과 관련이 있으니 5분 동안 읽어보라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교과서만 가지고 설명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체육 선생님이 축구공을 내주며 열심히 뛰어라, 그러면 체력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두 자료를 읽도록 하되, 학생들이 독서하는 과정에서 효과적인 전략이나 독서방법에 의해서 읽도록 유도하고, 지도해야 한다. 그냥 읽으라고 하는 것보다는 아래와 같은 활동지를 작성하면서 읽도록 유도한다면 독서자료의 이해는 물론 학생들의 독서활동을 도울 수 있다. 이것이 곧 독서과정에 대한 안내이며, 지도전략이다.
단편적이고 극단적인 사례일 수도 있으나 과정 전문가인 사서교사가 교과수업의 지원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혹은 어떠한 교육적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많은 학교에서는 사서교사가 학교도서관에서 각 교과와 관련된 자료를 선별하여 읽히거나 비디오를 보여주되, 그냥 읽거나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전략과 방법으로 읽도록 지도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사서교사에게 주어진 별도의 시간에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고, 교과수업 시간에 사서교사가 참여하여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구체적으로 상술하기로 한다.
어떻게 하면 교육을 잘하고,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 학교 선생님은 물론 학생, 학부모의 공통된 화두이다. 학교 선생님들은 학력 신장을 위해서 정규수업은 물론 보충수업이며 자율학습 감독에 열중하고, 학생들은 학교 공부가 끝나자마자 과외 받으러 혹은 학원에 가기 바쁘다. 학부모들은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에도 많은 돈을 아낌없이 사교육비에 투자하고 있다. 가히 온 나라와 국민들이 교육 열풍에 빠져 있다.
정부는 어떤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교육개혁을 말하고, 교육선진화를 부르짖으며, 텔레비전에서는 잊을 만하면 교육문제에 대해 토론회를 벌여 진단하고 처방을 내놓지만 시원하게 해결됐다는 소리를 듣기 어렵다. 선생님들은 점점 수업하기 힘들고 잡무에 시달린다는 푸념이 난무하고, 학생들은 줄 세우기식 경쟁과 진학 문제로 좌절과 열등감에 빠져 있으며, 부모들은 여전히 사교육비에 시름하고 있다. 2년 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한국의 교육을 부러워했다고 하던데, 한국 교육열을 부러워한 것이지 왜곡된 한국의 교육 현실을 칭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교육 현실에 대한 자화상을 그려낸 말로 ‘기러기 아빠’가 있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 아이와 아내를 해외에 보내고, 홀로 국내에 남아서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고대하고 있는 아버지를 일컫는 말이다. 기러기 아빠는 돈 많고 잘나가는 집안의 일로만 생각하기 쉬우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최근 들어 초·중등학교의 선생님들한테도 학습 연구년 제도가 도입된다고 하던데 대학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해외 연구년 제도가 있어 왔다. 교수들이 연구년을 떠날 때는 대개 가족과 함께 떠나는 경우가 많다. 1년쯤 지나 연구년이 끝나면 국내로 돌아와야 하는데, 거기서 문제가 생긴다.
해외의 초·중등학교를 체험한 자녀들의 십중팔구는 국내 학교로 돌아오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애들과 엄마를 놔두고 혼자 돌아와 원치 않는 기러기 아빠가 되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아빠를 따라 해외로 가기 싫어했던 학생들까지 해외의 맛을 보고나서 돌아오려 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 해외의 학교에서는 공부는 시키지 않고 놀기만 해서 그럴까? 아니면 영어를 배울 수 있어서 그럴까?
그 정답은 교육 방법에 있다. 점차 나아지고는 있으나 우리나라의 교육은 여전히 학급 전체를 대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주입식 교육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편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지식을 교과서에 수록하여, 이를 획일적으로 전달하고 얼마나 암기했는가를 측정하는 선택형 시험만으로는 21세기 교육이 추구하는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할 수 없으며, 지식을 단순히 외우고 그 결과를 평가하여 경쟁토록 하는 교육만으로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전통적인 교육 방식의 틀을 깨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교육은 가능하면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양의 지식을 학생들이 잊어버리지 않도록 전달하는 데 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지식을 전달하는 데 교육의 목적이 있다면 교사는 보편적인 지식을 교과서에 담아 이를 반복적으로 암기시키고, 어느 정도 암기했는가를 지필시험으로 측정하여 외울 때까지 숙달시키는 주입식 교육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지식·정보를 교과서에 모두 수록하여 학생에게 일일이 가르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과를 중시하는 교육에서 과정을 중시하는 교육으로
우리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식사하는 것도 잊은 채 게임이나 놀이에 빠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헝가리 출신의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는 ‘플로우’라 하였다. 칙센트미하이에 의하면 플로우란 “어떤 활동에 깊이 몰두하여 외적인 보상이 없더라도 행동 자체가 즐겁고,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지속되는 행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험”이라 하였다. 즉 플로우란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의식하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흐르는 몰아 지경의 느낌으로서, 흔히 말하는 몰입이나 삼매경三昧境과 유사한 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플로우 현상은 운동, 게임, 놀이, 그리기, 쇼핑 등의 활동에서 쉽게 체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언제, 어떤 상황에서 플로우 현상을 느낄까? 학생들이 지겹고 어려우며 정말로 하기 싫은 것으로 생각하는 공부를 통해서는 플로우를 체험할 수 없는 것일까? 플로우 이론의 창시자인 칙센트미하이에 따르면 다른 사람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행하는 경우보다는 자신이 스스로 활동을 조절하고 결과 혹은 어떤 것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삼지 않고, 행위 자체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 활동하고 과정을 즐길 때 플로우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부나 학습 또한 플로우를 경험할 수 있는 과정임에 분명한데, 왜 많은 학생들이 플로우를 경험하지 못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이 아직도 진학이나 입시 위주의 교육에 치중한 ‘결과 중심’의 교육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과 중심의 교육과 ‘과정 중심’의 교육은 어떻게 다른가?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먼저 교육의 목적을 생각해보자. 목적 없는 교육은 없다. 교육은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의도적, 계획적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인 것이다. 교육의 목적을 보다 구체화하여 교육목표, 수업목표,학습목표라고도 한다. 교육목적이나 학습목표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도달해야 할 성취 수준으로서 국가의 교육과정이나 교과서에 명시되어 있다.
다음은 ‘중학교 사회 교과서’의 일부분이다. ‘Ⅱ. 다양한 기후 지역과 주민 생활’이라는 대단원 아래에 ‘2. 더운 지역과 추운 지역의 주민 생활은 어떨까?’라는 소단원이 나오고, 이 소단원을 통해서 학생들이 성취해야 할 학습목표로 ‘기온이 대비되는 지역 간의 주민생활을 비교할수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 학습목표를 보면 교사가 가르쳐야 할 내용으로서 ‘기온이 대비되는 지역 간의 주민생활’과 학생들이 수행해야 할 활동으로서 ‘비교할 수 있다’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학생들이 자료를 비교하는 활동을 통해서 ‘기온이 대비되는 지역 간의 주민생활’에 대해 알도록 학습목표가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사회과 교사가 진도를 맞추고 시험에 대비할 목적으로 ㉮와 같은 지적 내용만을 칠판에 쓰거나 유인물로 만들어 일방적으로 설명한다면 이는 결과 중심의 교육이며, 이러한 방식의 수업에서 학생들이 할 일은 노트 필기와 암기 외에 다른 활동이 필요없다.
반면에 ㉯와 같이 관련 자료를 학생들에게 제시하고, 학생 스스로가 독서 활동을 전개하면서 두 자료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내는 비교 활동을 통해 ‘기온이 대비되는 지역 간의 주민생활’을 알 수 있도록 유도했다면 과정 중심의 교육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매우 단순하고 극단적인 사례이기는 하지만 결과 중심의 교육과 과정 중심 교육의 차이를 알 수 있으며, 학교 현장에서 얼마나 결과 중심의 교육에 치중하고 있는가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학교도서관은 단순히 교양도서를 빌려주는 곳이 아니라 교육의 목적에 부합하는 자료를 비치하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어떤 활동과 과정을 통해 학습을 지원할 것인가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학교도서관은 과정 중심의 교육을 위한 핵심 요체임을 알 수 있다.
앞으로의 교육은 어찌해야 하는지 그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학생 스스로가 정보를 활용하는 경험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가도록 도와줌으로써 창의적 사고와 문제 해결력을 신장해야 한다. 경쟁과 결과 중심의 평가를 강조하는 결과 중심에서 과정 중심으로 바꾸고 전환해야 한다.
독서와 정보 활용을 잘하면 공부도 잘하고 사고 능력도 늘어난다
우리가 ‘학습한다, 공부한다’, ‘책을 읽는다’, ‘정보를 활용한다’, ‘학교도서관의 정보자료를 활용하여 수업을 한다’, ‘창의적으로 사고한다’ 등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이것은 모두 사람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정신적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동일하다. 다만, 공부 혹은 학습을 할 때와 책을 읽을 때 그리고 정보를 활용하는 과정에 있어서 동원되는 기능에 다소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지각, 분석, 평가, 기억, 분류, 범주화, 비교, 순서화, 추론, 예측, 요약, 검증, 조직, 구성 등의 사고 기능이 공통적으로 작용한다. 각 교과의 내용을 단순히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학생 스스로가 ‘분석, 평가, 분류, 비교, 추론, 예측, 요약, 조직, 구성’해보는 활동을 통해서 지적 내용을 습득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과정 중심의 교육을 구현하고, 21세기에 요구되는 창의적 사고력을 신장할 수 있는 것이다.
창의적 사고력은 지적 내용을 전달하고, 암기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지적 내용을 ‘분석, 평가, 분류, 비교, 추론, 예측, 요약, 조직, 구성’해보는 과정을 통해서 신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책을 읽는 활동이며, 정보를 활용하는 과정인 것이다. 따라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책을 효과적으로 읽고, 정보자료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학생이라 말할 수 있으며, 정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면 공부, 즉 성적을 높일 수 있다. 최근에 독서를 통한 학습, 학교도서관의 자원을 활용한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교도서관은 정보자료를 통해 공부하고 과정 중심의 교육을 위한 실험실
학교도서관은 학교 울타리 내에 있다는 물리적 의미보다는 학교교육을 위해서 존재하는 도서관을 뜻한다. 학교도서관은 교육적 역할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는 점에서 다른 도서관과 구별되며, 학교교육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존재한다.
필자가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던 70년대에도 도서실이라는 이름의 학교도서관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선생님들께서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고, 시골의 고향 마을에서는 책 구경을 하기도 힘이 들던 시절이라 학교 도서실을 자주 방문했다. 학홍길동전, 이순신 전기’ 등 교양을 넓힌다는 관점에서 도서실을 이용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책이 귀하던 시절에는 도서실이 있고, 많은 책이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현대 학교도서관의 필요성과 존재 가치를 이러한 역할만으로 말할 수 있을까?
학교도서관은 자료를 모아 놓고 단순히 대출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정보자료의 이용과 독서를 통해서 공부하고, 사고력과 탐구 능력을 기르며, 문제 해결의 과정을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교육의 실험실이어야 한다.
우리는 교과서에 있는 내용이나 교사가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내용을 지식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단지 정보에 지나지 않는다. 도서관의 많은 자료에 포함된 내용이나 교과서의 내용은 저자의 지식일 뿐 학생의 지식이 아닌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생산한 지식, 즉 정보 내용을 읽고 보고 들으면서 내용을 이해, 분석, 비교, 추론, 요약, 조직 등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갈 때 학생 자신의 지식이 되는 것이다. 학교도서관은 책, 잡지, 신문, 비디오, 컴퓨터 자료 등의 정보 내용만을 수집, 보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정보 내용을 처리하여 학생 자신의 지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교육하는 곳이다. 이러한 활동이 곧 학습이요, 사고력과 탐구 능력 신장을 위한 과정인 것이다.
공 하나 주고 운동장에 방치하면 축구 실력이 자동으로 생기는가?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창의적,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능력은 ‘뭐니 뭐니 해도 책을 많이 읽고, 감상문을 써보며 정보자료를 비판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라고 교사가 권장한다고 21세기에 필요한 능력이 저절로 생기는가? 또, 학교도서관을 이용하여 숙제를 하도록 유도하거나 수업 시간에 토론을 전개한다고 해서 갑자기 사고력이나 창의력, 문제 해결 능력이 생기는가? 그렇지 않다. 국어교사는 국어과의 단원과 관련된 정보를 가지고, 사회교사는 사회과 단원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탐구하며 사고하는 방법과 과정을 자연스럽게 알도록 유도할 때 가능한 일이다. 한두 번 이런 활동을 했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수업 자체가 이런 활동이 되도록 생활화할 때 가능한 일이다.
지금은 예전과 다르겠지만 필자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만 해도 체육 시간은 약간 과장하여 노는 시간으로 생각했었다. 체육 시간이 되면 선생님께서 잠시 출석을 부르고 나서 좋은 운동장과 공이 있으니 열심히 뛰어라 하시면 한 시간 내내 축구 시합에 열중했던 기억이 있다. 축구는 그냥 발로 공을 차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지 공을 차는 방법이나 포지션에 따른 공격과 수비 전략 등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세월이 지난 뒤에 성인이 되어 우연히 전문 코치와 인연을 맺어 공을 차되 멀리 그리고 정확하게 차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내심 신기하고, 이런 것이 바로 전문가의 교육이 아닌가 싶었다.
학교도서관도 축구와 다르지 않다. 시설과 환경이 좋은 학교도서관을 만들어 놓고, 여기에 좋은 책이 많이 있으니 학생들에게 알아서 읽어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떤 종류의 책을 읽어야 하는지, 책의 종류에 따라서 어떤 방법과 전략으로 읽어야 하는지, 뭘 생각하면서 읽어야 하는지, 읽기 전에는 무엇을 하고 읽고 난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고 무조건 읽으라 하는 것은 공을 차는 방법이나 전략을 가르쳐 주지 않고 체력에 좋으니 열심히 공을 차라고 하는 ‘축구장 이론’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책을 읽는 과정이 곧 공부요, 정보자료를 스스로 탐구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곧 학습 활동임에도 교과서를 읽는 방법,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워보거나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한글만 깨치면 누구든지 책을 읽을 수 있고, 교과서를 읽으면서 공부를 할 수 있으나, 어떤 과정과 방법을 거쳐 공부하고 사고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면 훨씬 더 효과적으로 학습하고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곧 과정을 중시한 교육의 핵심이다.
교과교사가 내용 전문가라면 사서교사는 과정 전문가,
사서교사에게 관리자 역할만 요구하는 것은 국가적 손실
학교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전문 교사를 사서교사라 한다. 사서교사는 교사이기 이전에 사서로서 교육에 필요한 자료를 선정하여 학교도서관에 구비하고, 쉽게 자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조직화하고, 컴퓨터로 업무를 처리하는 등의 많은 업무를 담당해야 한다. 이런 사서로서의 역할이 전부라면 굳이 교사를 배치할 필요 없이 사서를 배치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사서교사는 학교도서관에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학생들이 책을 잘 읽을 수 있도록 지도하고, 정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데 더 큰 존재 이유가 있다. 다시 말해서 정보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탐구하고, 학습하는 과정 전문가이다.
따라서 내용 전문가인 교과교사와 과정 전문가인 사서교사가 협력하여 수업을 전개한다면 독서의 과정, 정보 활용의 과정을 통해 결과로서의 교과 내용 습득과 동시에 과정에 대한 능력도 함께 신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수업 형태를 도서관 활용수업 혹은 도서관 협력수업이라고 한다. 이러한 교육적 역할을 도외시한 채 사서교사의 업무를 학교도서관 관리나 대출·반납에 국한시킨다면 이는 국가적 손실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중학교 사회 교과서’의 단원(더운 지역과 추운 지역의 주민 생활은 어떨까?)을 살펴보자. 사회과 교사가 이 단원을 지도함에 있어서 학생들이 스스로 탐구하면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학교도서관에서 수업을 전개한다고 가정해보자. ‘학습목표’와 관련된 자료를 학생들에게 찾아보도록 하거나 사전에 교육목적에 부합하는 자료를 교사가 선별하여 학생들에게 배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사서교사는 정보 전문가로서 교사와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자료의 탐색에 관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며, 과정 전문가로서 학생들이 직접 찾거나 교사가 배부한 자료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사회과 교사와 사서교사가 협의하여 사회과 단원에 적합한 자료 두 개를 찾았다고 가정해보자. 사회과 교사가 위 ㉯와 같은 두 개의 자료를 유인물로 만들어 학생들에게 배부하고, 수업과 관련이 있으니 5분 동안 읽어보라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교과서만 가지고 설명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체육 선생님이 축구공을 내주며 열심히 뛰어라, 그러면 체력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두 자료를 읽도록 하되, 학생들이 독서하는 과정에서 효과적인 전략이나 독서방법에 의해서 읽도록 유도하고, 지도해야 한다. 그냥 읽으라고 하는 것보다는 아래와 같은 활동지를 작성하면서 읽도록 유도한다면 독서자료의 이해는 물론 학생들의 독서활동을 도울 수 있다. 이것이 곧 독서과정에 대한 안내이며, 지도전략이다.
단편적이고 극단적인 사례일 수도 있으나 과정 전문가인 사서교사가 교과수업의 지원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혹은 어떠한 교육적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많은 학교에서는 사서교사가 학교도서관에서 각 교과와 관련된 자료를 선별하여 읽히거나 비디오를 보여주되, 그냥 읽거나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전략과 방법으로 읽도록 지도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사서교사에게 주어진 별도의 시간에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고, 교과수업 시간에 사서교사가 참여하여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구체적으로 상술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