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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활용수업 이제 좀 길이 보인다 - 진로교육과 학교도서관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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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01 14:08 조회 7,56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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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어둠속에서 헤매던 시절
“야, 너 무슨 과 갈 거냐? 응~ 전자과를 지원할 생각인데… 왜?”
“그럼, 나도 1지망에 전자과 쓰려고~”
“너, 지난번엔 건축과가 1지망이라고 했잖아?”
“그게 뭔 상관이야. 너 하고 같은 과 다니고 싶으니까 나도 전자과 쓰려고….”
“그래? 야, 좋은데…. 그럼 우리 같은 과 다니겠네!”

오래 전 중학교 3학년 담임을 할 때, 원서를 쓰려고 기다리고 있던 학생들끼리 주고받
던 말 중에 가장 많이 들었던 내용이다. 특히 실업계를 지망하려는 학생들의 경우는
사전에 진학하려고 하는 학교에 대한 정보가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상담이 이루어졌
다. 학부모들도 정보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내가 공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
였기 때문에 그 분야에 대해서는 비교적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었다.

어느 해인가는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던 제자가 1학기를 마칠 즈음 나를 찾아왔
다. 상담을 하는 동안 전공과목의 교과 내용이 자신과 너무 맞지 않아서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했다. 처음에는 생소한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공부 시간에 가슴이 답답해지고 선생님의 목소리도 제대로 전달되
지 않았다고 했다. 부모님에게도 말을 해보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서 나를 찾
아왔다고 했다.

그래서 적성검사를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서 다양한 검사와 면담을
한 결과 현재 전공하고 있는 분야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본인이 적
극적으로 문제의식을 느끼고 교사를 찾아온 경우는 극소수이고 3년 내내 흥미를 느
끼지 못한 채 졸업하는 학생들의 숫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당시는 3학년 수업에 주로 들어갔던 시절이므로 2학기 즈음에는 한두 시간을 내
서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적성’과 거리가 먼 진로 선택을 할 때
얼마나 시간을 낭비하는지를 들려주었다. 중학교 시절 나는 수학과 사회 과목 등에
관심이 많았지만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는 취업을 해서 가사를 도와야 한다는 가정
환경이 공업고등학교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3년 내내 전공과목은 커다란 스
트레스로 다가왔고, 성적도 좋지 못했다. 특히 제도製圖 시간에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다른 학생의 작품에 비해 형편없는 것을 확인하면서 적성이 변수라는 것을 발견했다.
간단한 제품 하나를 만들더라도 손에 익숙치 않았고, 열심히 해도 결과물이 시원찮았
다.

심지어 어떤 실습 시간에는 조교의 눈을 피해 수업에 빠지는 등 갈등을 많이 겪었
다. 그렇지만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할지 그리고 왜 열심히 해도 다른 학생보다 거
칠고 투박스런 제품밖에 만들지 못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알지 못했다. 마치 어두운
숲속에서 헤매는 것처럼 찬란했던 고등학교 시절을 방황하며 보냈던 슬픔이 있었다.

자신의 적성이나 능력을 개발하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취업하기 쉬운 전공이 무
엇인지에 더 관심이 많았던 시절이라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요즈음도 이런 추세가 크
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올바른 진로교육의 필요성은 강조하고 강조해도 부족
함이 없을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개인적인 전력이 학생들의 진로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나름대로 자료를 준비하여 3학년 부장을 할 때는 제법 투툼한 자
료집까지 만들어 담임 선생님들이 참고자료로 사용하도록 하기도 했다.

교육과정의 개편과 진로 교육의 시작
1987년~1992년 적용된 5차 교육과정에서 기술・가정 교과의 10개 영역에 ‘진로의 탐
색’이라는 내용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이때부터 기술・가정 교과에서 진로교육은 매
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학생 스스로 진로 탐색을 위한 활동지를 작
성해 보고, 포트폴리오를 작성하는 단계에 이르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2003년부
터 현장에 적용된, 개편된 기술・가정 교과서에 ‘산업과 진로’라는 단원이 있으며, 그
동안의 경험과 새로운 지식들이 녹아들어 제법 활용하기 쉽게 구성되어 있다. 나도 교
과서의 큰 줄기를 따라 학생 스스로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고 결정해가는 과정을 체험
할 수 있도록 수업안을 재구성했다. 학생들이 내 말대로 호락호락 따라주지 않기 때문
에 ‘포트폴리오’ 수행평가라는 강제적인 방법을 사용하게 됐지만.

1 단 계 : 나는 누구인가?
나 역시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청소년기를 보낸 만큼, 학생들에게 객관
적으로 자신에 대한 탐구를 하도록 안내했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과 구별되는 여러
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 키, 나이, 몸무게, 얼굴 모양, 말씨 등이 다를 뿐만 아니라 흥미,
적성, 성격, 가치관, 신체 조건도 모두 다르다. 남과 다른 나의 모습을 이해하는 것이야
말로 진로 선택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나에 대한 이해는 진로를 결정함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된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은 무엇인지, 내가 잘할 수 있
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아야 올바른 진로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 차원에서는 비용을 지불하고 할 수 있는 검사로 ‘홀랜드 직업 적성 검사’를
실시하였다. 이 검사를 통해 개인의 성격 특성과 적절한 진로 분야를 연결시켜 준다.
수업 시간에는 ‘커리어넷(www.careernet.re.kr)’ 회원 가입을 하고 적성검사, 흥미검
사, 가치관검사를 하여 그 결과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과제를 내주었다. 이 네 가지
과제를 수행하여 얻은 결과를 정리하면서 가장 많이 겹치는 분야를 찾는 것이다. 집
합으로 말하면 교집합에 속하는 직업 분야를 찾아내는 과정을 통해 평소 자신이 생각
했던 진로와 일치하는지 스스로 판단하도록 했다.

이 과정을 수행하는 동안 많은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찾아왔다. 자기가 평소에 생
각했던 직업 분야와 잘 일치하지 않는다는 학생들이 소수 있었으나, 참 잘 맞는 것 같
다는 학생들의 밝은 얼굴을 더 많이 보게 되었다. 보통은 1단계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자신에게 적합한 진로에 대한 윤곽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인문계와 실업계 중 한 곳
을 선택하도록 하고, 직접 포트폴리오 시트에 쓰도록 했다. 물론 인문계를 쓴 학생들
의 경우는 어떤 대학 어떤 학과를 원하는지까지 써야 하며, 그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짜도록 했다.



2 단 계 : 나보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간 사람 찾기
특별히 실업계를 지원하는 학생들의 경우, 자신보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간 롤 모델을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찾도록 했다. 그동안 근무했던 학교는 한결같이 도서관 시설
이 좋은 곳이었기 때문에 이런 과제에 큰 도움이 됐다. 평상시에는 도서관을 찾지 않
던 학생들도 자신의 미래와 관계된 일이 되고 보니 적극적인 자세로 바뀌었다. 대부
분 책보다는 도서관에 있는 컴퓨터를 찾는 경우가 많지만, 그곳을 서성거리다가 이런
책, 저런 책을 살펴보는 것 자체가 의미 있지 않나. 흔히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지만,
말로 아무리 강조해 봐야 본인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의사, 판・
검사, 학자 등의 경우야 롤 모델이 되는 인물들의 책이 많지만 요리사, 기술자, 미용사
등의 분야에서는 적합한 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주로 인터넷에서 성공 사례에 대한
자료들을 뽑아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찾아보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책과 마주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은 보너스 효과였다.

기술 수행평가를 통해서...
이번 기술 수행평가를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그동안 너무 내가 변호사라는 직업만 선호한 나머지 다
른 좋은 직업은 무시하지 않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훌
륭한 생명공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적성검사, 흥미검사, 가치관검사를 하면 생명
공학, 컴퓨터공학, 화학 쪽에서 항상 내가 하고 싶어하는 법률 쪽보다 적성에 잘 맞는다고 나왔고, 이번
탐구 결과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나의 미래 모습은 아무도 모르지만, 우선 나는 민사고 국제반을
졸업하여 하버드 대학교에 가서 법률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국제변호사 활동과 펀드매니저 활동을 함
께하는 유능한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다. 30대가 되면 UN에 가서 국제사회를 위해 공헌하는 것, 그것을
현재 목표로 잡고 민사고에 들어가 폭넓은 진로체험을 해보고 다시 결정하고 싶다. 이번 기술수행 평
가를 통해 내가 선택해야 하는 진로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면, 너무 피곤하고 졸린 상태에서 진로 검사를 진행해 사실이 좀 정확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 때 다시 하게 된다면 졸리지 않은 상태에서 정확한 검사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3 단 계 : 남은 기간 준비하기
3단계에 들어올 즈음에는 진학할 학교가 결정되고, 실업계의 경우 학교와 학과가 거
의 정해지게 된다. 여기서 학생들은 지난해 자료를 검색하거나 해당 학교 진학 담당
자와 전화 등을 통해 현재 자신의 점수로 진학이 가능한지를 파악하도록 했다. 다행
히 커트라인을 넘긴 경우는 예외겠지만 부족한 경우에는 남은 기간 어떻게 그 문제를
극복할 것인지 구체적인 학습 계획을 세우는 것도 포트폴리오 과제 속에 포함시켰다.

적어도 자신의 미래를 위해 걱정하는 학생들이 남은 기간을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는 동기 부여를 제공하려는 뜻이다. 많은 학생은 아니었지만, 3학년 기말고사가 끝
날 때까지 꾸준히 상담하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보람이기도 했다. 지금은
대학에 진학한 몇 명의 제자들과 그때 이야기를 하면서 대화를 나눌 때, 진로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더욱 희망적으로 바뀌는 환경
내가 살고 있는 관악구의 구청장은 ‘지식문화특구’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도서관에
서 시작하겠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학교도서관이 단순한 지식습득 장소가 아니라
교육, 일자리, 만남 등 지역주민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 하도록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이제 관악구 주민은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에서 도
서관을 만나게 될 것이다. 관악구의 예산으로 초・중등학교의 사서 인건비를 지원할
뿐 아니라, 성인들을 위한 편익시설을 설치하여 학부모와 지역주민들도 이용할 수 있
도록 개방을 유도할 것이라고 했다.

교사들의 주입식 교육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책 속에서 길을 찾고 진로를 발
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넓게 열리고 있다. 내년부터는 국가 차원에서도 진로교육
의 중요성이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관악구는 행정 기관까지 발벗고 나서서 도서관을
활성화시키려고 하니, 학생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된다. 기술・가정 교
과의 교사로서 진로교육과 도서관을 연결시키려고 노력했지만 미미한 움직임에 불
과했다.

이제 사회 여건과 환경이 성숙되면서 더 큰 발걸음을 딛을 수 있도록 변하고
있다. 도서관을 통해 학생들이 진로의 길을 발견할 뿐 아니라 질 높은 문화와 만나고
꿈을 키우는 장소로 발전될 날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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