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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간적 모멸감과 자괴감은 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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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6-08 14:19 조회 7,41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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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도서관을 떠나는 사람들
“선생님, 나 그만두려고….”
전화기 너머로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요? 선생님!”

“이젠 지쳤어. 그동안 사서로서의 자부심이나 도서관과 아이들에 대한 애정만으로 버텨냈는데, 그게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 일을 너무 하찮게 생각하는 학교 관리자나 교사들을 참아낼 수가 없어. 그래서 그만두려고…. 내 나름으로는 열심히 일했는데, 우리는 책이나 보고 놀고먹는 줄 아나봐. 한 학기 내내 매주 도서관 행사며 이벤트 했는데, 도서관에서 한 일이 없다나? 죽어라 일은 내가 다 하고, 공은 도서담당 선생이나 부장교사에게 다 돌아가고, 갑자기 내가 그냥 소모품처럼 느껴졌어.”

초창기부터 10년도 훨씬 넘게 학교도서관을 지켜오던 용인시 최고령 왕고참 사서선생님은 결국 그렇게 학교도서관을 떠나고 말았다. 내가 처음 학교도서관 사서로 발을 들였을 때 이것저것 부족한 나를 이끌어주던, 나에게는 큰언니 같고 스승 같던 사서선생님이었다.
사서를 천직으로 알고, 누구보다 열심히 학교도서관에 정성을 쏟던 많은 비정규직 사서들이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하는 설움과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학교도서관을 떠나거나, 떠나려 하고 있다.

비정규직 사서의 비애
학교에서 비정규직 사서가 겪어야 하는 설움은 다양하다. 대부분의 도서관 업무와 독서교육 업무를 하고 있으면서도 일에 대한 아무런 인정도 받지 못하고, 그것이 고스란히 담당교사의 공으로 돌아가는 현실에서 겪어야 하는 자괴감, 의욕적으로 일하고자 해도 도서관은 그저 책이나 빌려 볼 수 있도록 돌아가게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일 벌이는 것 자체를 꺼려하는 도서담당과의 마찰, 평소에는 도서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독서교육을 어떻게 하는지 관심도 지원도 기울이지 않다가 학교 실적 보고 때만 되면 뭔가 큰 실적 하나 터뜨려 주기를 바라는 느닷없는 요구들, 도서관은 언제나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며 절대 문을 닫아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조퇴・휴가・연수로 인한 출장조차 불허하는 인색함, 심지어는 사서를 하는 일 없이 학교 예산만 탕진하는 애물단지로 여겨 온갖 허드렛일을 떠맡아야 하는 수모 등….

어디 그뿐이랴! 무기계약을 하지 않기 위해 채용기간을 2년이 안 되게 하는 얌체 학교도 있고, 만 2년이 넘어 무기계약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다른 학교와의 맞교환으로 무기계약을 피하기도 한다.

무기직 전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문득 작년 일이 생각난다. 지난해 비정규직자를 무기직으로 전환한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하자 내 주변의 지인들은 나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이제 정식 된 거지? 잘됐다. 그럼 이제 월급도 오르고 하겠네.” 처음 그 말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던 나는 이내 그들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를 이해했다. 그들 대부분은 ‘무기직 전환=정규직’으로 잘못 이해했던 것이다. 비정규직에 처해보지 않은 대부분의 많은 이들이 ‘비정규직=정식’이라고 잘못 인식한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무기직 전환은 말 그대로 계약기간의 변화일 뿐이지 열악한 근무환경이나 월급체계의 변화는 아닌 것이다. 물론 언제 해고될지 내일을 모르는 고용불안을 겪는 이들에는 다행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무기계약자라고 해서 직책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마음만 먹으면 예산 확보의 어려움을 이유로 언제든 내보낼 수 있다. 오히려 채용 당시부터 ‘우리 학교는 무기계약을 해줄 수가 없으니 2년이 되면 알아서 다른 자리를 알아보라’는 것을 조건으로 채용하기도 한다.

보상도 혜택도 없이 일만 늘어난다고?
2012년부터는 사서 고유의 업무 외에 여타의 업무도 떠맡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기도 하다. 교원 업무경감 차원에서 학교 회계직 근무자(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많은 업무가 이관될 예정이어서 사서의 경우도 도서담당이나 다른 교사들이 나눠 맡던 교과서 업무, 독서논술교육 등과 같은 일들이 떠맡겨질 예정이라고 한다. 또 주5일제 시행으로 토요일 도서관 개방을 이유로 토요일 근무도 강요받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독서전문가로서 사서의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문제는 이에 따른 아무런 보상이나 혜택 없이 업무만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사서 업무와는 무관한 일들이 떠맡겨질 우려 또한 적지 않다.

2010년 현재 학교도서관을 담당하는 전담인력의 85%를 비정규직 사서가 차지(<한국도서관연감 2010> 한국도서관협회)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위에서 언급한 예들이 학교도서관의 현주소를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드웨어만 번지르르한 깡통도서관
21세기 급변하는 지식정보화 사회에 맞는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 학교교육이 변화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는 교수・학습 중심센터로서의 학교도서관 역할과 독서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에 2003년 이후 ‘학교도서관 활성화 종합방안’에 따라 2010년 현재 학교도서관 설치율이 99%를 넘어섰고, 학생 1인당 장서량이 16권을 넘어서는 성과를 이루었다. 그러나 정작 학교도서관을 이끌어가고 주도할 전담인력에 대한 지원과 투자는 너무도 미흡하다.

사서교사 배치율은 6.2%에 불과하고, 비정규직 사서가 35.4%, 전담인력 미배치교가 58.3%에 이른다(<한국도서관연감 2010> 한국도서관협회). 학교도서관을 이끌어갈 전문성을 갖춘 전담인력에 대한 확보와 투자 없이 공간을 설치하고 장서만 갖춘다고 학교도서관이 교수・학습의 중심센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마치 하드웨어만 번지르르한 컴퓨터와 같다. 학교도서관이 학교교육의 현장에서 뿌리내려 제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갖춘 전담인력 확보와 학교도서관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맘껏 펼칠 수 있는 처우개선과 지원이 절실히 요구된다.

아,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제자리라면…
지난 겨울방학 우리 학교에서 열심히 하기로 정평이 난 한 선생님이 새학기에는 도서관과 연계한 수업을 하고 싶다며 내게 협조를 구하러 도서관을 찾아왔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하는 내 모습을 보고 늘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던 선생님은 이야기를 마치고 자리를 뜨며 불쑥 이런 말을 했다.

“밤늦도록 도서관 불이 훤히 켜 있는 걸 자주 보았어요. 교사가 아닌데도 참으로 열심히 일하시는 선생님을 보며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도 사서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해 보시는 게 어때요?”
“안타깝게도, 사서교사가 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답니다. 2012년만 해도 사서교사 임용 TO는 전북에 단 한 명뿐이었는걸요.”

“정말이요? 그럼, 학교도서관에 계신 대부분의 사서선생님들이 비정규직이에요? 보건교사, 영양교사도 모두 교사화되어 학교에 배치되었는데, 왜 사서교사는 안 뽑지요? 요즘 같은 지식정보 사회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창의성교육을 해야 한다, 통합교육을 해야 한다 외쳐대면서 왜 그러한 교육을 가능하게 하는 도서관과 그 담당인력의 지원에는 인색한 거죠? 학교교육 발전의 측면에서도 안타깝지만, 선생님의 헌신적이고 열성적인 노력이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승진도 없고, 호봉도 없고… 어떤 보상이나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 너무 안타깝네요.”

내 노력을 알아주는 것 같아 위안과 힘이 되기도 했지만, 문득 마음 한켠이 싸해졌다. ‘이 일이 좋아서, 보람되어 열심히 했는데, 그러고 보니 나는 일만 열심히 하는 거였구나. 지금처럼 학교도서관 전담인력 정책에 변화가 없다면 1년 후에도, 5년 뒤에도, 10년이 지나도 나는 여전히 제자리겠구나….’

학교도서관의 정상화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다른 무엇보다 능력 있고 열정 넘치는 도서관 전담인력의 확보가 최우선이다. 열심히 일하고 싶은,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근무여건, 처우개선 없이 일의 가치와 자부심만으로 학교도서관을 발전시키라고 하는 것은 억지다. 더 이상 인간적 모멸감과 자괴감은 겪지 않았으면 한다. 일한 만큼 능력을 인정하고,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게 대우하라! 미치도록 일하고 싶게 해줘라! 그것이 학교도서관 정상화의 핵심이고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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