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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도서관 학교도서관 분투기]반갑습니다, 저는 사서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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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9-02 17:58 조회 7,94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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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교사라는 풋풋한 꼬리표를 달고 출근하던 3월의 어느 날,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입학을 한 지 얼마 안 된 1학년 여학생 두 명이 도서관에서 필요 이상으로 소란을 피운게 발단이었다.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도서관은 모든 사람들이 와서 책을 읽는 곳이니 조용히 해야 한다고 차분히 말했다. 몇 분뒤에 학생들의 어머니로 보이는 두 분이 도서관으로 들어오셨고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와 운영 계획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어머니가 같이 있으니 내가 특별하게 주의를 주지 않아도 되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고 학생들은 아예 놀이터에 온 것처럼 뛰고 장난을 쳤다. 몇 분간 지켜보다가 학생들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시끄럽게 떠들고 뛰어다니는 것은 공공장소에서 예의가 아니라고 가볍게 꾸짖었다. 그런데 그때, 학부모님이 오히려 내게 당신이 뭔데 우리 아이를 기죽이냐며 화를 내셨다. 덧붙여 학부모 사서도우미면 책이나 정리할 것이지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다는 말씀도 함께 하셨다. 얼마 후 학교 교육 과정 설명회가 있었고 나는 정식으로 도서관에 근무하는 ‘사서교사’라고 소개가 되었다. 다른 선생님들을 소개할 때에 비해 호응은 거의 없었고 나를 쳐다보는 시선들이 매섭게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학부모님들 사이에서 이미 나에 대한 이야기가 안 좋게 들리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만약 예감이 틀리지 않다면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나를 제대로 알려 보리라 다짐했다.

이 학교로 신규 발령을 받았을 때, 같이 근무하게 된 동료 선생님들의 대다수가 교직 생활 중 이전까지 만나지 못했던 교사를 보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선생님들도 그러하신데 학부모님이 모르시는 건 당연하실 터. 나는 일단 스무 명 남짓한 학부모사서도우미들께 나를 소개하는 편지를 썼다. 신규 연수를 받을 때 편지 쓰기는 학급담임을 맡게 된 선생님들이 학부모님들께 담임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시켜 드리기 위해 쓰는 방법이라고 배웠다. 나는 담임 학급이 없으므로 담임 학급처럼 아껴야 할 학부모 분들께 나를 소개하기로 한 것이다. 출신학교와 사서교사가 되기로 한 이유, 사서교사가 되기까지의 과정, 사서교사가 할 수 있는 일과 앞으로 우리 학교 도서관을 어떻게 운영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들을 솔직하게 적어 편지로 보냈다.

그 편지를 보낸 후에도 학기 중에 1년에 두 번 이상, 특히 여름방학 전과 겨울방학전에는 꼭 편지를 보냈다. 여백이 많이 남으면 좋은 시를 써서 보내기도 했고 자녀교육과 관련한 서적들의 목록이나 신문 스크랩 기사를 보내기도 했다. 봉사를 해 주시는 학부모님들의 자녀들은 잘 기억해 놓았다가 추천도서를 권하고 독서 상담도 해드렸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학부모님들도 도서관이라는 공간에 매력을 느껴 오신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점차 대화를 나누기가 수월해졌다. 나중에는 담임선생님께는 하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내게는 부담이 없다며 상담을 자처하시는 학부모님들이 생겼다. 그렇게 1년을 보낸 어머님들은 해가 바뀌어도 계속 도서관에서 봉사활동을 해 주셨다. 그렇게 편지 한 장으로 시작하여 학부모사서도우미 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 것이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점차 나를 보는 학부모님들의 시선이 부드러워졌다고 느꼈다. 실제로 어떤 학부모님께서는 떠도는 소문만 믿고 나를 좋지 않게 생각했는데 직접 겪어보고 인상이 달라졌다는 고백을 하셨다. 사서도우미 어머님들은 자신들과 친한 학부모님들을 도서관에 방문하도록 했고, 도서관을 찾는 학부모님들이 점점 늘어났다.

[여름방학 때 보낸 편지]
안녕하세요? 예년보다 일찍 시작된 이른 장마에 여름철 건강관리는 잘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저도 에어컨을 틀어 놓은 실내에 있다가 밖에 잠시라도 나오면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은 후텁지근한 공기에 올여름이 참 힘들게 느껴지더군요. 이런 날씨에 우리 어머님들은 살림도 하시면서 도서관 봉사일도 꼬박꼬박 나와 주시고...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커 가면서 느는 것 중 하나가 잔소리라고 합니다. 저도 학창시절에는 부모님께 잔소리 듣던 딸이었고, 지금도 부모님께는 아직도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같은 딸이랍니다. 오늘 마침 신문을 보다가 잔소리에 관한 기사가 실렸기에 어머님들과 같이 읽어보고자 갈무리해서 보내드립니다. 더운 날씨에 건강하시고 봉사일에 뵙겠습니다. 사서교사 조예리 드림

물론 앞으로도 헤쳐 나갈 일은 많다. 교육과정에 대한 연구가 부족해서 조금 더 유기적인 독서교육을 하지 못해 스스로를 자책하고, 학생 수가 많은 학교에 있다 보니 학생들의 독서 행태를 면면이 살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 있다. 동료 선생님들의 무관심에 풀이 죽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이 나는 까닭은 우리 학교에 ‘사서교사’가 근무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는 학부모님들 덕분이다. 어떤 학부모님은 내가 다른 학교로 옮기게 되면 이 도서관은 어떻게 되는 거냐며 걱정을 하시기도 한다. 이제 사서교사를 모르는 학부모님들은 많지 않다. 그러나 난 여전히 매 학년 초가 되면 도서관에 새로 봉사활동을 신청하시는 학부모님들에게 편지를 쓴다. “반갑습니다. 저는 사서교사 조예리입니다.”로 시작하는 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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