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이데아 [색다른 모두의 그림책 교실] 서로 마음이 엇갈리지 않고 마주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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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3-12-04 11:24 조회 1,292회 댓글 0건본문
서로 마음이
엇갈리지 않고 마주치도록
권경은, 김진경, 김민지, 오주영, 이다요솔, 이미화, 이복음, 정미숙, 주소영, 주효림, 최수임 지그재그 특수교사 모임
그림책 수업을 시작한 계기는 간단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우리 반 아이들을 하나로 모을 중심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임용 후 첫 발령을 받은 해, 우리 교실에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성격과 상황 등 모든 게 다른 학생들이 모였다. 등교 거부를 하는 학생부터 감각이 예민해 소음과 빛을 모두 차단해야 안정되는 학생, 미성숙한 사회성으로 눈만 마주쳐도 뭘 보냐며 소리치는 학생과 마냥 해맑게 웃으며 복도를 뛰어다니는 학생까지. “이 학생들과 어떤 수업을 해야 할까?”가 아닌 “이 학생들을 데리고 수업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던 중 교사 공동체 지그재그에 함께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림책의 세계에 빠졌다. 그림책의 장점은 그림책에 나를 투영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나는 이랬던 경험이 있나?’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단순히 그림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그림책을 통해 나와 주변을 비추어 보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나를 알게 되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관심이 깊이 닿았다.
제각기 다른 아이들이 아니라 각자의 색을 가진 ‘무지개 같은 아이들’로 학생들을 바라보니 아이들과 나의 공통점을 찾아보게 되었다. 첫 번째로 찾은 공통점은 모두 다 감정이 있다는 것이었다. 자발적이진 않지만 화가 나면 종이를 찢고, 때때로 자기중심적이지만 먼저 손을 내밀며 자신의 용기를 표현하는 감정이 있는 학생들이었다. 그림책으로 감정 수업을 꾸준히 진행한다면 이 아이들을 하나로 모아 교실에 중심점을 찍을 수 있겠다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하고픈 말과 마음을 그림책으로 전달하기로 했다.
네겐 특별한 힘이 있어: 파워 카드
『에일리언』 이찬혁 지음│이윤우 그림│스푼북│2022 |
가수 겸 작가인 이찬혁 저자의 그림책 『에일리언』은 ‘우린 모두 특별한 존재이며, 다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더 사랑하자’라는 메시지를 담은 책이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자, 엄마는 아이에게 한 가지 비밀을 알려 준다. “사실 넌 저 먼 별나라에서 온 에일리언이야!” 칭찬보다 혼나는 것이 익숙한 우리 아이들은 매번 주변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보며 눈치를 본다.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특별함’, 숨겨진 특별함을 발견하기 위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활용해 ‘파워 카드’를 만들었다. 파워 카드란 학생의 강점을 활용하여 목표 행동을 이끌어내는 도구다. 우리는 매일 아침 파워 카드를 읽고 “할 수 있어요!”를 외치며 하루를 시작했다. 경직되어 있던 학생들의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웃는 얼굴로 바뀌었을 때 필자가 전하고자 했던 마음이 아이들에게 닿은 것 같아 뿌듯했다. |
너와 내가 만나 더 큰 우리가 되어
조금 느린 우리 반에는 사회적 기술을 습득하지 못한 학생도 있고 왜곡된 신념으로 조금 엇나간 사회성을 가진 학생도 있다. 임수현 작가의 『친구 베이커리』는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빵에 ‘친구’라는 개념을 녹여내어 학생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다. 꽈배기, 식빵, 단팥빵 등 다양한 종류의 빵을 그림으로 보여 주며 우정의 의미를 되새긴다. 가령 꽈배기를 그린 장면에서는 “함께하는 거야: 마음과 마음을 돌돌 말고 꽈배기처럼 언제나 함께 있으니까.” 알려 주며 작은 음식 하나로 친구의 의미와 친구를 대하는 마음가짐을 비유하듯 들려준다. ‘우리’라는 단어에 깃든 의미와 작가가 빵에 빗대어 표현한 것처럼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할 때 큰 힘이 생긴다는 울림을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누구보다 먹을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라 흥미를 단번에 이끌 수 있었다. |
친구와 나눠 먹고 싶은 빵을 쓰고 우정을 다질 수 있도록 마련한 독후활동지 |
그림책을 번갈아 읽고 책 속 빵을 친구에 빗대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친구는 특별한거야.”, “친구는 나와 달라도 괜찮은 거야.”, “친구는 나누고 싶은 거야.” 이야기를 나누며 같은 교실에서 생활하는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하루는 1∼2교시에 통합 선생님들께 양해를 구해 친구와 나누어 먹고 싶은 빵을 투표한 후 같이 빵을 만들었다. 통합반이나 특수반에 같이 빵을 나누어 먹고 싶은 친구가 있는지, 무슨 빵을 나누어 먹고 싶은지 물어보자 아이들은 저마다 대답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이랑 나누어 먹을 거야.”, “친구는 샌드위치 같은 거야.”, “하나만 먹을 수 있어요?” 중구난방 대답들 속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방법은 잘 몰라도 다 같은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 직접 만든 빵을 들고 가는 모습을 보며 내 마음도 갓 나온 빵처럼 따뜻해졌다.
네모난 교실에서 둥글게 사는 방법
김효은 작가의 『우리가 케이크를 먹는 방법』은 얼핏 보면 나눗셈에 관한 그림책 같지만, 천천히 살펴보면 일상 속 나눔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우리는 다섯입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딸기 케이크가 놓인 동그란 테이블에 다섯 사람이 앉아 있고, “혼자서 다 먹을 수 없는” 음식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세밀하게 들려준다. 작가는 케이크를 나누는 것에서 나아가 사과 한 알, 여러 개의 문어 모양 소시지, 통닭 한 마리, 아이스크림 한 통 등을 다섯 명이 어떻게 나눠 먹는지, 나아가 어떻게 타인을 헤아릴지 일상 속 여느 장면들처럼 오밀조밀하게 보여 준다. |
『우리가 케이크를 먹는 방법』 김효은 지음│문학동네│2022 |
‘나눔’이란 어른뿐 아니라 어린이들도 알고 실천해야 할 가치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외동인 경우가 많아 누군가와 나누거나 양보하는 상황이 익숙하지 않다. 우리 아이들 역시 누군가와 몫을 나누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실천해 본 경험이 적다. 그래선지 교실에서 의도치 않게 실수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 그림책은 우리 주변에는 색연필이나 케이크처럼 균일한 크기대로 몫을 나눌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삼촌이나 시간처럼 눈에 보이도록 나눌 수 없는 것(편집자 주: 아이들이 삼촌에게 서로 놀아 달라고 매달리는 장면)들도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학생들과 그림책을 읽고 “나눌 수 있는 것과 나눌 수 없는 것들을 어떻게 함께 사용할 수 있을까?”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선생님을 곤충처럼 머리, 가슴, 배로 나누어야 한다는 엽기적인(?) 의견을 내놓는 아이도 있었지만, 칠판 도우미를 요일별로 나누어야 한다는 창의적인 대답을 한 아이도 있었다.
이렇게 아이들과 마인드맵을 그리며 요일별 칠판 도우미, 날씨 요정 등 새로운 학급 역할을 만들었다. 그리고 “교실 물건은 순서대로 사용해요.”, “먼저 양보해요.”와 같이 학급 규칙을 추가하여 개정했다. 마무리 활동으로 그림책에서 감동을 느낀 부분을 선택해 모형 케이크를 같이 만들어 보았다. 색종이 초를 ‘후∼’ 불며 나눌수록 우리의 행복은 커진다는 이 책의 주제 의식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가 케이크를 먹는 방법』을 읽고 느낀 감정들을 칠판에 기록한 모습
함께 걸어갈 이 모든 순간
아이들은 그림책을 통해 스스로 감정을 표현하고 마음을 나누며 손발을 맞추는 순간을 경험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이 쌓일수록, 함께한 웃음이 많아질수록 교실의 중심점은 선명해졌다. 세상의 속도로 우리 아이들을 바라본다면 손톱만큼의 성장을 이뤘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조금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우리 아이들을 바라본다면 그 성장은 무엇보다 찬란하게 다가올 것이다.
『우리가 케이크를 먹는 방법』(김효은) 본문 중에서.
“이 그림책은 우리 주변에는 색연필이나 케이크처럼 균일한 크기대로 몫을 나눌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삼촌이나 시간처럼 눈에 보이도록 나눌 수 없는 것들도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