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평등이 평범해지기 위한 수업] 취미는 축구: 여기 여기 다 모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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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3-07-04 15:05 조회 1,232회 댓글 0건본문
취미는 축구:
여기 여기 다 모여라
정승연, 주해선, 김소연, 박다솜 예민한 도서관
최근 스포츠 관련 영화가 줄줄이 개봉하고 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개봉한 지 5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인기가 높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복싱 영화 <카운트>, 농구 영화 <리바운드>, 축구 영화 <드림>도 연이어 인기를 얻고 있다. 대부분의 스포츠 영화는 남자 선수들이 주인공이고 그들의 꿈과 열정, 그리고 도전을 보여 준다. 올해 상반기에만 남자 선수가 주인공인 스포츠 영화가 4편이나 개봉한 데 비해 여자 선수가 주인공인 스포츠 영화를 생각하면 아직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 이후 남북 단일 탁구팀 결성을 다룬 <코리아>(2012), 아이스하키 경기 도전을 그려 낸 <국가대표 2>(2016), 고교 야구팀의 유일한 여자 선수의 분투기를 담은 <야구소녀>(2020)가 있지만 여자 선수들이 주인공인 스포츠 영화는 4년에 한 편 개봉하는 정도이다. 배구, 양궁, 컬링, 배드민턴, 탁구 등 많은 스포츠에서 여자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지금, 미디어가 오히려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건 아닌가 싶다.
올해 5월에 개봉한 영화 <드림>은 ‘홈리스 월드컵’을 위해 축구를 처음 해 보는 홈리스들이 맹연습하여 국가대표가 되고, 홈리스 월드컵에 출전하는 이야기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홈리스 대표팀을 지도하는 윤홍대 감독과 이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촬영하는 이소민 피디이다. 극중에서 두 인물은 자주 부딪친다. 월드컵 경기에서 이소민 피디가 외국인 용병을 쓰는 것에 대해 감독에게 항의하자 윤홍대 감독은 “그럼 네가 뛰면 되겠네. 여자도 뛰어도 된대.”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이소민 피디가 바로 선수가 되어 숨겨진 실력을 보여 줄 다크호스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전개되지 않았고, 기존의 남자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여 멋진 경기를 펼치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영화에서 잠깐 나온 내용이지만 실제 홈리스 월드컵에서도 혼성팀 출전이 가능하다. 혼성팀이 가능함에도 영화 초반에 홈리스들을 모아 놓고 국가대표를 뽑는 장면에서는 남자만 나온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지만 이 장면을 보면서 홈리스 월드컵에 여자는 출전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게 했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성별 떼고 붙어 보자!
스포츠 대회에서 여자 선수들, 여자팀은 작은 대회에서조차 여자가 출전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경기에 출전하게 된다. 마치 남자들은 모든 스포츠를 당연히 즐길 수 있지만 여자들은 허락을 맡고 즐겨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여자 선수들이 남자 선수들보다 실력이 뛰어나더라도 여자들에게는 그 당연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픽노블 『휘슬이 울리면: 그라운드를 질주하는 소녀들』(클로에 바리)은 프랑스 북부에 있는 한 마을의 여자 축구팀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이다. 이 책에 나오는 여자 축구팀 ‘FC 로시니 로즈’는챔피언십 우승을 목표로 열심히 연습하지만, 클럽에서는 예산 문제로 남자팀만 챔피언십에 출전시키려고 한다. FC 로시니 로즈의 주장 바바라는 이대로 포기할 수 없어 주변에 도움을 구하지만 무엇 하나 쉽지 않다. 그러다 바바라의 계속된 항의 덕분에 클럽에서는 남자팀과 여자팀이 경기하는 모습을 보고 투표로 챔피언십에 출전할 팀을 결정하기로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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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남자팀과 여자팀이 경기하면 당연히 남자팀이 이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력보다 성별을 먼저 보려 하고, 실력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FC 로시니 로즈는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의 실력을 맘껏 보여 준다. 자신들의 실력이 남자팀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면 챔피언십에 출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야기 속 세상도 실제 세상도 이상하다. 실력으로 판단하는 스포츠에서 실력이 더 높다는 것을 증명해도 여자들에게는 안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여자 배구는 세계 랭킹도, 인기도 남자 배구보다 훨씬 높지만 여자 배구 샐러리캡1) 총액은 남자 배구보다 30억이나 적다. FC 로시니 로즈도 남자팀보다 월등히 잘하지만 그들은 실력만큼 대우받지 못한다. 실력이 입증되었는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1) 한 팀 선수들의 연봉 총액이 일정액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제도를 일컫는 말.
#운동장의 주인
축구는 유독 기울어진 운동장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이전에 근무했던 학교의 운동장은 점심시간에는 특정 아이들만 축구를 했지만 평소에는 모든 아이들이 같이 놀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고학년 남학생들이 축구를 하고 있어 다른 학생들은 운동장의 가장자리나 놀이터에서만 논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 된다. 넓은 운동장에는 축구하는 몇몇 어린이들만 항상 있고, 다른 어린이들은 점점 운동장에 나가지 않게 된다. 『여성이 미래다』(사라 카노)에서 글쓴이는 어렸을 적 ‘운동장의 주인’이 된 일을 들려준다.
“운동장은 딱 축구밖에 할 공간이 없어서, 그것 말고 다른 놀이를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은 운동장 한 모퉁이나 구석,
수돗가 옆의 축축한 모랫바닥으로 가야 했다. 마치 운동장은 우리의 것이 아닌 것처럼···
남자아이들은 경기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떤 협박이나 폭력도 운동장 한 가운데에 선 여자아이들을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자아이들을 밀어내고 다시 축구를 할 수 있도록 축구광들이 선생님들을 데리고 왔을 때, 여자아이들은 다섯이 아니었다.
열 명, 스무 명, 서른 명도 넘는 여자아이들이 조용히 손을 잡고 축구장보다 더 많은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 『여성이 미래다』 중에서
글쓴이와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이 차지해 버린 기울어진 운동장의 주인이 되기 위해 다 같이 힘을 합쳤다. 『휘슬이 울리면』의 FC 로시니 로즈도 홍보 포스터를 붙이고, 후원처를 찾아 우리에게 투표하라고 얘기하며 그들의 힘을 보여 줬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여자들은 물러나지 않고 운동장의 주인으로서 그곳에 들어가 운동장을 계속 누비고 다닐 것이다.
#조기축구 한 판 하자
한때 나는 축구를 배우고 싶어 아마추어 축구팀에서 뛰었던 적이 있다. 처음으로 여자 축구팀을 찾았을 때 생각보다 많은 아마추어팀이 있어서 어느 팀에 들어가야 할지 골라야 한다는 게 놀라웠다. SBS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로 여자 축구에 대한 인기가 높아져 지금은 훨씬 더 많은 아마추어 팀들이 생겨나고 있다. 축구 에세이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김혼비)에서 글쓴이는 “왜 진작 축구를 하지 않았을까?”, “어렸을 때 우리는 왜 축구할 기회가 없었을까?”, “우리는 정말 운동을 싫어했을까?”라고 묻는다. 나도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 축구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축구를 할 생각조차 없었다. 공만 있으면 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지금 초등학교 4학년 체육 교육과정에는 축구형 게임이 나온다. 내가 배우던 학창 시절과 달리 지금은 성별과 상관없이 축구에 모두 진심이다. 이 어린이들만큼은 모두가 운동장의 주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머지않아 남자만 취미로 조기축구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여자들도 자연스럽게 축구가 취미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여성을 위한 스포츠 플랫폼인 위밋업 스포츠(https://wemeetupsports.com)에서는 매년 ‘언니들 축구 대회’를 열고 있다. 많은 아마추어 축구팀들이 출전하는데 올해는 28팀이 출전하고, 그중 10팀은 언니 조로서 40대 이상인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다. ‘언니들 축구 대회’ 소식을 들으면 나도 나이가 들어서 동료들과 오래오래 같이 뛰는 모습을 상상하고 웃게 된다.
#중요한 건 좋아하는 마음
최근에 동네 공원을 산책하다 아마추어 혼성팀이 축구 경기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유니폼도 맞추고 훈련을 강도 높게 하는 걸 보니 열심히 하는 팀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영화 <드림>의 바탕이 된 2010 홈리스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은 남자팀만 참가했지만, 이후 2017 홈리스 월드컵에서는 남자 및 혼성팀 부문에 참가했다. 어쩌면 축구를 하고 싶은 사람끼리 참여하는 건데 나에게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낯선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림책 『뻥! 나도 축구왕』(허아성)에는 FC 청룡과 FC 불꽃이 경기하는 모습이 나온다. 두 팀 모두 혼성팀으로 선수들은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여 뛴다. 주인공 유나는 FC 불꽃의 공격수이다. 유나는 멋지게 패스와 드리블을 한 후 이렇게 말한다. “더 신나는 게 뭔지 알아? 나보다 키가 크고 힘이 세도 제칠 수 있다는 거야. 축구는 키나 힘이 전부가 아니거든.” 유나의 말처럼 이 책에 등장하는 어린이 선수들은 키나 체형이 모두 다르고, 안경이나 스포츠용 고글을 쓰는 어린이도 있다. 각자 자신의 장점을 살려 운동장을 질주하는 모습을 보면 이 선수들이 축구를, 그리고 스포츠를 얼마나 즐기고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다.
다가오는 2023 호주·뉴질랜드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여자 축구는 7월 25일에 콜롬비아와 첫 경기를 치른다. “휘슬이 울리면” “우아하고 호쾌하게” 공을 뻥 차는 선수들의 모습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FC 로시니 로즈, FC 청룡, FC 불꽃처럼 축구를 사랑하는 어린이·청소년이 2023 월드컵을 보면서 더 큰 꿈을 가지길 바란다. 그들의 친구, 가족,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월드컵을 보면서 손에 땀을 쥐고, 나도 같이 뛰고 싶다는 마음으로 “골∼인!”을 외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