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진로를 묻다] 귀신 잡는 해병대가 되고 싶은 청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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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7-19 06:47 조회 8,310회 댓글 0건본문
문경보 문청소년교육상담연구소장
‘귀신 잡는 해병대’란 말이 있다. 이 말이 생긴 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공통점은 해병대가 전쟁터에서 용맹무쌍하게 잘 싸웠다는 의미가 담겨 있음은 일반적으로 잘 안다. 그런데 왜 ‘귀신’을 잡으면 용맹한 것일까? 물론 귀신은 무서운 존재이고 그 무서운 귀신마저도 잡을 정도로 용감하다는 말이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나는 좀 다른 방향에서 그 말을 생각한다. ‘귀신’의 특징 중 하나는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측할 수 없고 통제마저 불가능한 적군일지라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해병대는 천하무적’이란 뜻으로 여겨진다.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 보자. 사람이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해지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불안해진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도무지 짐작이 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그 일을 진행시킬 자신도 없을 때 사람들은 불안해서 여러 가지 부정적인 행동을 한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시험’이라는 전투를 꽤 여러 번 치른다. 처음에는 승리를 꽤 여러 번 한다. 그리고 전투에서 이기는 방법을 어느 정도는 알고 능숙하게 시험에 대비한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 즉 불안한 현실과 자주 만나게 된다. 어떻게 공부를 하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고, 시험 성적을 보고 자신의 앞날을 어느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할지 막막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고학년이 될수록 이 시험과 만나는 불안을 갖가지 방법으로 호소하기 시작한다. 자신도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시험을 ‘귀신’으로 여기게 되고 낙오된 벌판에서 혼자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그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갖가지 무의식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이제 그에 해당하는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청소년들의 아픈 마음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시험불안을 겪는 아이들
시험 때가 되면 몸이 아팠던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배가 아프고, 눈이 아프고, 두통이 심해지고, 병원에 가면 단순히 스트레스인 것 같다고 진단을 받을 때도 있다. 그리고 시험이 끝나면 거짓말처럼 아픈 게 사라져버린다. 큰 시험일수록 이 현상은 심하게 자주 나타나서 우리를 힘들게 만들어버린다. 이것은 힘든 일이 있을 때 무의식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나타나는 ‘신체화’현상이다. ‘신체화’란 외로움이나 분노 등의 심리적인 갈등을 신체적인 증상으로 호소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신체화는 마음이 아픈 것이 몸이 아픈 것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꾀병과는 차이가 있다. 꾀병은 자신은 아프지 않은 것을 알지만 신체화는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자신이 잘 모른다. 왜냐하면 실제로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이상이 없다고 진단을 받으면 화가 나서 다른 병원에 다시 가고 싶어 하고, 꾀병이라고 눈을 흘기거나 잔소리를 하는 엄마가 미워지는 것이다.
시험 때만 되면 반복적으로 자주 몸이 아픈 청소년들에게 시험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들은 시험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을 불안해하고 있고, 그로 인해 쏟아질 주변의 비난을 더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실은 자신의 미래를 염려하는 것이 앞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염려하는 것보다 더 앞서서 시험을 통해 현재 자신의 학업 상태를 점검하고 발전시킬 여유마저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 주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 청소년을 반걸음만 뒤에서 묵묵하게 기다려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험 볼 때만 되면 이가 아픈 자녀와 함께 병원에 갔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진단을 받고 돌아온 날에는 지나치게 자녀를 비난하거나 지나치게 격려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그냥 조용히 자녀가 먹을 수 있는 부드러운 죽이나 음식을 만들어주고 공부를 계속 하든, 쉼의 시간을 갖든 자녀가 선택해서 하는 행동을 잘했다고 속삭여주는 것이 좋다. 그래야 자신이 시험을 잘 보는 것과 상관없이 부모님은 내 곁에 있을 것이라는 평화를 선물받게 되고, 그로 인해 신체화가 줄어들고 성적도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줄다리기를 계속 하고 싶은 자녀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 중에 부모님께 이런 말을 하는 친구들이 꽤 있다.
“알았어요. 공부 한다니까요. 그런데요, 올해 대학을 가지는 않겠어요. 그러니까 보채지 마세요. 짜증나요. 아이씨! 지금까지 내신으로는 엄마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어요. 그리고 지금부터 죽어라고 공부해도 수능점수 잘 안 나와요. 재수하면 가능하니까 올해는 제발 절 그냥 두세요!”
이렇게 이야기하는 친구들 중에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시절, 그리고 고 1 초반까지 꽤 성적이 좋았던 학생들이 많다. 객관적으로 보면 자신감도 보이고 합리적인 이야기로 들리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올 한 해 동안은 부모님의 속을 왕창 썩이고 싶은 복수심리가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에 부모님께 일방적으로 강요당했던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그때의 감정들이 지금 ‘합리화’라는 옷을 입고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 학생이 의식적으로 계산해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꼭꼭 담아놓았던 무의식이 작동해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부모님께서 자식의 말을 믿어주면서 격려해주면 이상하게도 자녀들은 힘이 다 빠진 모습으로 이렇게 말한다.
“이젠 다 소용없어요. 저는 제 미래에 대해 아무런 기대가 없어요.”
그렇게 말하는 자녀 앞에서 부모님들은 당황하기 시작한다. 그동안 지나치게 강하게 교육을 시킨 것 같아서 자녀의 생각을 존중해주었는데 자녀는 오히려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상황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줄다리기를 한 번 생각해보자. 서로 잡아당길 때는 힘은 들지만 팽팽한 긴장감이 있다. 그런데 상대편이 줄을 놓아버리면 그때 계속 줄을 잡고 있던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허무해질 수 있는 것이다. 줄다리기를 계속하면서 그동안 끌려 다녔던 아픔을 풀고 싶은 기회를 박탈당하게 되는 것이다. 청소년의 주변 사람들은 “재수하면 가능하다.” 즉 “대학을 가기는 가겠다.”라는 말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꿈은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그 꿈을 향해 나아갈 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관심을 가져주는 부모님이 함께 가길 원하는 것이다. 불안을 극복할 때는 ‘고운 정’도 필요하지만 ‘미운 정’도 꽤 괜찮은 역할을 한다. 그렇게 밀고 당기면서 부모와 자식은 교사와 학생은 함께 미래를 향해 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도권을 청소년들에게 넘겨야 하는 것이다. 청소년이 올해는 입시에 실패하겠다고 어깃장을 놓는 것에 마음 상해하지 말고, 대학은 가겠다는 말에 더 방점을 찍어서 들어야 한다.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청소년에게 일임하지 말고 “그래, 그럼 내가 뭘 도와줄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해줄래?”라고 말하면서 청소년을 존중해줄 때 청소년들은 시험을 준비하면서 ‘함께 길을 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선물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집중하는 청소년들
시험 때만 되면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푹 빠져 있는 학생들이 있다. 공부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기도 하고 아예 대놓고 부모의 말을 무시하고 게임과 스마트폰에 몰두하다가 극단적인 상황까지 불러일으키는 청소년들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 학교에 와서는 시험문제를 빨리 풀고 그냥 엎드려 자버린다. 이런 청소년들이 인터넷 중독에 빠져 있는 것은 맞다. 그런데 왜 인터넷 중독에 빠지게 되었는가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확률은 낮지만 인터넷 중독을 치료했다고 해도 원인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그 친구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청소년들도 시험이 중요한 것을 알고 시험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아는 만큼 불안감도 커진다. 그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리’의 방법을 사용하면서 인터넷과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대개 남학생들은 인터넷 게임에 집중하고 여학생들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대화를 나누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버리는 것이다. 속된 말로 ‘갈 데까지 가버리는 것’이다. 그래야 시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시험은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하지만 게임과 스마트폰은 어느 정도 ‘예측’과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을 멀리하라는 교육은 지금 정도면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기성세대는 충분히 염려하고 충분히 교육하고,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 시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는 것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청소년들이 밝은 햇살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넓은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때론 사람이 없어도 자연과 있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고, 그 자연 속에서 다시 사람을 그리워하고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쉼의 시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서 여행은 가장 좋은 상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심리적으로 불안한 마음을 다독거리며 정리하기에는 여행만한 것이 없다. 또한 남학생은 운동 등 몸을 쓰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는 것이 필요하며 여학생은 이것저것 물건을 구경하러 가는 시간이 현재보다 더 많이 필요하다. 특히 여학생의 경우 엄마와 함께 가는 것도 좋지만, 이모나 고모와 함께 가거나 친구의 어머니, 언니 등과 함께 물건을 구경하러 가는 것이 불안을 내려놓는 한 방법이 된다.
함께 가는 사람들
시험 불안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이 학교와 가정, 그리고 사회에서 ‘힘들다’가 아닌 ‘힘들지만 즐겁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함께 가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자신이 불안을 느끼고 있는 그 일보다 더 큰 존재라는 것을 아는 순간 불안은 낮아지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러 형태의 여행을 가는 동안 읽었으면 하는, 저절로 마음이 편해지는 책 한 권을 권한다. 안도현 시인이 엮고 김기찬 작가가 사진을 담아 세상에 내놓은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이가서)를 여러분의 마음에 선물한다.
‘귀신 잡는 해병대’란 말이 있다. 이 말이 생긴 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공통점은 해병대가 전쟁터에서 용맹무쌍하게 잘 싸웠다는 의미가 담겨 있음은 일반적으로 잘 안다. 그런데 왜 ‘귀신’을 잡으면 용맹한 것일까? 물론 귀신은 무서운 존재이고 그 무서운 귀신마저도 잡을 정도로 용감하다는 말이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나는 좀 다른 방향에서 그 말을 생각한다. ‘귀신’의 특징 중 하나는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측할 수 없고 통제마저 불가능한 적군일지라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해병대는 천하무적’이란 뜻으로 여겨진다.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 보자. 사람이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해지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불안해진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도무지 짐작이 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그 일을 진행시킬 자신도 없을 때 사람들은 불안해서 여러 가지 부정적인 행동을 한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시험’이라는 전투를 꽤 여러 번 치른다. 처음에는 승리를 꽤 여러 번 한다. 그리고 전투에서 이기는 방법을 어느 정도는 알고 능숙하게 시험에 대비한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 즉 불안한 현실과 자주 만나게 된다. 어떻게 공부를 하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고, 시험 성적을 보고 자신의 앞날을 어느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할지 막막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고학년이 될수록 이 시험과 만나는 불안을 갖가지 방법으로 호소하기 시작한다. 자신도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시험을 ‘귀신’으로 여기게 되고 낙오된 벌판에서 혼자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그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갖가지 무의식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이제 그에 해당하는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청소년들의 아픈 마음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시험불안을 겪는 아이들
시험 때가 되면 몸이 아팠던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배가 아프고, 눈이 아프고, 두통이 심해지고, 병원에 가면 단순히 스트레스인 것 같다고 진단을 받을 때도 있다. 그리고 시험이 끝나면 거짓말처럼 아픈 게 사라져버린다. 큰 시험일수록 이 현상은 심하게 자주 나타나서 우리를 힘들게 만들어버린다. 이것은 힘든 일이 있을 때 무의식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나타나는 ‘신체화’현상이다. ‘신체화’란 외로움이나 분노 등의 심리적인 갈등을 신체적인 증상으로 호소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신체화는 마음이 아픈 것이 몸이 아픈 것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꾀병과는 차이가 있다. 꾀병은 자신은 아프지 않은 것을 알지만 신체화는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자신이 잘 모른다. 왜냐하면 실제로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이상이 없다고 진단을 받으면 화가 나서 다른 병원에 다시 가고 싶어 하고, 꾀병이라고 눈을 흘기거나 잔소리를 하는 엄마가 미워지는 것이다.
시험 때만 되면 반복적으로 자주 몸이 아픈 청소년들에게 시험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들은 시험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을 불안해하고 있고, 그로 인해 쏟아질 주변의 비난을 더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실은 자신의 미래를 염려하는 것이 앞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염려하는 것보다 더 앞서서 시험을 통해 현재 자신의 학업 상태를 점검하고 발전시킬 여유마저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 주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 청소년을 반걸음만 뒤에서 묵묵하게 기다려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험 볼 때만 되면 이가 아픈 자녀와 함께 병원에 갔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진단을 받고 돌아온 날에는 지나치게 자녀를 비난하거나 지나치게 격려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그냥 조용히 자녀가 먹을 수 있는 부드러운 죽이나 음식을 만들어주고 공부를 계속 하든, 쉼의 시간을 갖든 자녀가 선택해서 하는 행동을 잘했다고 속삭여주는 것이 좋다. 그래야 자신이 시험을 잘 보는 것과 상관없이 부모님은 내 곁에 있을 것이라는 평화를 선물받게 되고, 그로 인해 신체화가 줄어들고 성적도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줄다리기를 계속 하고 싶은 자녀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 중에 부모님께 이런 말을 하는 친구들이 꽤 있다.
“알았어요. 공부 한다니까요. 그런데요, 올해 대학을 가지는 않겠어요. 그러니까 보채지 마세요. 짜증나요. 아이씨! 지금까지 내신으로는 엄마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어요. 그리고 지금부터 죽어라고 공부해도 수능점수 잘 안 나와요. 재수하면 가능하니까 올해는 제발 절 그냥 두세요!”
이렇게 이야기하는 친구들 중에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시절, 그리고 고 1 초반까지 꽤 성적이 좋았던 학생들이 많다. 객관적으로 보면 자신감도 보이고 합리적인 이야기로 들리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올 한 해 동안은 부모님의 속을 왕창 썩이고 싶은 복수심리가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에 부모님께 일방적으로 강요당했던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그때의 감정들이 지금 ‘합리화’라는 옷을 입고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 학생이 의식적으로 계산해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꼭꼭 담아놓았던 무의식이 작동해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부모님께서 자식의 말을 믿어주면서 격려해주면 이상하게도 자녀들은 힘이 다 빠진 모습으로 이렇게 말한다.
“이젠 다 소용없어요. 저는 제 미래에 대해 아무런 기대가 없어요.”
그렇게 말하는 자녀 앞에서 부모님들은 당황하기 시작한다. 그동안 지나치게 강하게 교육을 시킨 것 같아서 자녀의 생각을 존중해주었는데 자녀는 오히려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상황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줄다리기를 한 번 생각해보자. 서로 잡아당길 때는 힘은 들지만 팽팽한 긴장감이 있다. 그런데 상대편이 줄을 놓아버리면 그때 계속 줄을 잡고 있던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허무해질 수 있는 것이다. 줄다리기를 계속하면서 그동안 끌려 다녔던 아픔을 풀고 싶은 기회를 박탈당하게 되는 것이다. 청소년의 주변 사람들은 “재수하면 가능하다.” 즉 “대학을 가기는 가겠다.”라는 말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꿈은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그 꿈을 향해 나아갈 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관심을 가져주는 부모님이 함께 가길 원하는 것이다. 불안을 극복할 때는 ‘고운 정’도 필요하지만 ‘미운 정’도 꽤 괜찮은 역할을 한다. 그렇게 밀고 당기면서 부모와 자식은 교사와 학생은 함께 미래를 향해 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도권을 청소년들에게 넘겨야 하는 것이다. 청소년이 올해는 입시에 실패하겠다고 어깃장을 놓는 것에 마음 상해하지 말고, 대학은 가겠다는 말에 더 방점을 찍어서 들어야 한다.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청소년에게 일임하지 말고 “그래, 그럼 내가 뭘 도와줄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해줄래?”라고 말하면서 청소년을 존중해줄 때 청소년들은 시험을 준비하면서 ‘함께 길을 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선물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집중하는 청소년들
시험 때만 되면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푹 빠져 있는 학생들이 있다. 공부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기도 하고 아예 대놓고 부모의 말을 무시하고 게임과 스마트폰에 몰두하다가 극단적인 상황까지 불러일으키는 청소년들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 학교에 와서는 시험문제를 빨리 풀고 그냥 엎드려 자버린다. 이런 청소년들이 인터넷 중독에 빠져 있는 것은 맞다. 그런데 왜 인터넷 중독에 빠지게 되었는가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확률은 낮지만 인터넷 중독을 치료했다고 해도 원인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그 친구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청소년들도 시험이 중요한 것을 알고 시험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아는 만큼 불안감도 커진다. 그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리’의 방법을 사용하면서 인터넷과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대개 남학생들은 인터넷 게임에 집중하고 여학생들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대화를 나누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버리는 것이다. 속된 말로 ‘갈 데까지 가버리는 것’이다. 그래야 시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시험은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하지만 게임과 스마트폰은 어느 정도 ‘예측’과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을 멀리하라는 교육은 지금 정도면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기성세대는 충분히 염려하고 충분히 교육하고,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 시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는 것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청소년들이 밝은 햇살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넓은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때론 사람이 없어도 자연과 있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고, 그 자연 속에서 다시 사람을 그리워하고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쉼의 시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서 여행은 가장 좋은 상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심리적으로 불안한 마음을 다독거리며 정리하기에는 여행만한 것이 없다. 또한 남학생은 운동 등 몸을 쓰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는 것이 필요하며 여학생은 이것저것 물건을 구경하러 가는 시간이 현재보다 더 많이 필요하다. 특히 여학생의 경우 엄마와 함께 가는 것도 좋지만, 이모나 고모와 함께 가거나 친구의 어머니, 언니 등과 함께 물건을 구경하러 가는 것이 불안을 내려놓는 한 방법이 된다.
함께 가는 사람들
시험 불안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이 학교와 가정, 그리고 사회에서 ‘힘들다’가 아닌 ‘힘들지만 즐겁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함께 가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자신이 불안을 느끼고 있는 그 일보다 더 큰 존재라는 것을 아는 순간 불안은 낮아지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러 형태의 여행을 가는 동안 읽었으면 하는, 저절로 마음이 편해지는 책 한 권을 권한다. 안도현 시인이 엮고 김기찬 작가가 사진을 담아 세상에 내놓은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이가서)를 여러분의 마음에 선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