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책으로 말 걸기] 그림책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정훈이 이야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12-20 04:21 조회 7,699회 댓글 0건본문
고정원 대안학교 말과글 교사
그림책이 불편한 ‘상남자’ 정훈이
“에이~ 나이가 몇 개인데 그림책을 읽고 그러세요?”
내기 선아와 『폭풍우가 지난 후』라는 그림책 마지막 장을 펼쳐보며 어디에 살고 싶은지 짚어 보며 즐거워하고 있는데 정훈이가 한심하다는 듯이 한마디 던지고 지나갔다. 선아가 정훈이 얼굴 앞으로 그림책을 펼쳐 보이며 퍼시 아저씨와 동물들이 얼마나 귀여운지를 이야기했다. 정훈이는 징그러운 것이라도 본 듯이 인상을 쓰며 가버렸다. 정훈이는 항상 인상을 쓰고 다니는데 오늘은 좀 기분이 좋은지 먼저 말을 걸기도 했다. 다른 아이들 말로는 그냥 있는 척 하느라고 그런다는데 나는 그런 정훈이가 귀여웠다.
수업을 시작하고 정훈이 표현대로라면 ‘고등학생이나 된 아이들’에게 그림책 『고 녀석 맛있겠다』를 읽어 주었다. 여자아이 몇 명은 눈물 날 뻔했다며 좋은 책이라고 박수까지 쳤고, 남자아이들 몇몇은 애니메이션으로 봤다며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해 주었다. 정훈이는 다시 불쾌한 표정이 되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수업 시간에 왜 그림책을 보는지를 물었다. 나는 먼저 그림책을 보는 것이 재미없는지, 불편한지를 물었다. 그러자 정훈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정훈이를 제외한 아이들은 그림책이 무척 재미있다고 했다. 그리고 선아는 “그림책은 그림으로 그린 시랑 비슷한 것 같다.”고 했다.
“하긴 정훈이랑 그림책은 안 어울려요. 정훈이가 그림책을 읽는다고 생각만 해도… 하하.”
정훈이 옆에 앉은 민식이가 웃었다. 정훈이는 다시 표정이 굳어지며 “난 그림책 이 별로예요.”라며 수업이나 하자고 했다.
강하면 돼요! 약한 건 나쁜 거예요!
오늘 수업은 ‘위인과 인물의 차이’에 대한 것이었다. 우선 아이들에게 알고 있는 위인을 물어보았다. 정훈이가 ‘칭기즈칸’이라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가장 위대한 정복자”이기 때문이라고 하며 “남자는 힘”이라며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여학생들이 또 남자 운운한다며 야유를 보냈지만 정훈이는 오히려 그런 것을 즐기는 표정이었다. 평소에도 여자, 남자를 이야기하며 여자아이들을 무시했다고 했다. 그리고 남자아이들에게도 자주 번쩍 들어 올리거나 헤드록을 거는 장난을 해서 왜소한 남자 아이들은 정훈이를 싫어했다.
아이들에게 칭기즈칸이 위인인지를 물었다. 누군가 집에 있는 위인전집 중에 칭기즈칸이 있으니 위인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럼 ‘히틀러’는 위인인지를 물었다. 아이들은 빠르게 아니라고 했다. 광개토대왕도 물어보았더니 혼돈스러워했다.
그러자 정훈이가 “역사는 이긴 사람만 기억하는 거잖아요.”라며 박정희 대통령도 위인이 아니고 싫다고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할머니 동네에 박정희기념도서관이 있는 것을 보면 강한 거 아니냐고 했다. 약하면 결국 다들 무시해서 나쁜 것이라고 하며 점점 목소리가 높였다가 “어른들은 다 짜증나”라며 말을 멈추었다.
다시 ‘인물과 위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쉬는 시간에 정훈이에게 짜증 나는 건 좀 어떤지 말을 걸어보았다.
“엄마가요…”
정훈이와 어울리지 않는 시작이었다. 아니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시작이었다. 덩치만 커다란 귀여운 아이가 속상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티라노사우루스는 아빠와 닮았다!
정훈이는 어제 친구네 집에 갔다가 그 집에서 잘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친구 부모님이 모두 철야기도를 가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한테 전화해서 허락을 받으려고 했지만 어른 되기 전에 외박은 안 된다며 화를 내셨다.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난다. 정말 진지하게 가출을 할까 고민 중이다. 엄마랑 아빠랑 자주 하는 이야기가 “안 된다면 안 돼.”이다. 도대체 언제 어른이 되는지 시간이 너무 가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어른이 되어 돈을 버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어른이 되면 당당해질 수 있을 것 같고, 돈 버는 것이 지금 집에서 구박 당하고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이랑 어른이랑 뭐가 다른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다 갑자기 『고 녀석 맛있겠다』 생각이 났다. 자신도 어렸을 때 아빠처럼 되고 싶다고 말을 한 기억이 났다. 하지만 뭔가 속이 움찔움찔하면서 불편한 느낌이었다. 학교에서 자신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들이 많은데 그때 받은 느낌이랑 비슷했다. 평소에도 이런 느낌이 싫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이런 감정에 대해 말해야 할 때는 인상 쓰고 앉아 말하지 않고, 쓰라는 것은 쓰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림책은 좀 다른 느낌이다. 이상하지만 그렇게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엄마, 아빠와 이야기할 때는 항상 혼나거나 화를 냈던 것 같다. ‘또 못하게 하려는 거겠지’ 이런 생각들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엄마가 그 다음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더 화내고 짜증 내고 했다. 이제 엄마한테는 지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한 소리를 듣기만 하면 끝났을 일들인데 정훈이가 말대꾸(엄마 입장에서는 말대꾸, 정훈이 입장에서는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를 해서 이야기는 길어지고 격해지며 서로 감정이 쌓이게 되었다.
나는 정훈이에게 조심스럽게 이 책의 주인공 티라노사우루스가 엄마와 아빠랑 닮은 것 같지 않은지를 물었다. 걱정되었다는 말은 하지 않고 화를 내며 소리를 친 것처럼 말이다. 정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아빠가 소리치고 화를 낼 때 자신을 걱정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고, 오직 그저 빨리 집을 나가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그림책으로 의사소통에 대한 이야기 시작하기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시 수업을 시작했을 때 『이상한 녀석이 나타났다』라는 그림책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개구리들과 분홍돼지 표정이 귀엽다며 그림책에 집중했다. 정훈이도 경계(?)를 풀고 재미있게 들었다. 이 책의 이야기는 분홍돼지가 개구리 연못에 와서 ‘개굴’이라고 말하는데 개구리들은 왜 돼지가 ‘개굴’이라고 우는지 모른다. 결국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현명한 딱정벌레를 데리고 오는데 그 동안 분홍돼지는 가버리고 없다. 딱정벌레는 혹시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온 것일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개구리들은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며 분홍돼지를 찾아 나선다. 나무 위 새들 곁에 있는 분홍돼지를 찾아낸 개구리들은 그 곁으로 가서 ‘짹짹짹’이라고 하며 이야기가 끝난다. 아이들이 웃었다. 그리고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쉽게 사람들에게 “왜 저래”라고 말하며 화내고, 속상해하며, 무시하기도 했다고 반성도 했다. 아이들은 그림책이 철학적이라고 했다. 나는 그래서 그림책을 보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세상을 좀 더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문학과 예술이 있다고 했다.
그 시간 뒤에도 “여자가…”라고 정훈이가 이야기하자 여자 아이들이 ‘개구리 같은 놈’이라고 했다. 그러자 정훈이는 “개굴”하면서 분홍돼지 흉내를 냈다. 정훈이도 웃고 아이들도 웃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그림책이 불편한 ‘상남자’ 정훈이
“에이~ 나이가 몇 개인데 그림책을 읽고 그러세요?”
내기 선아와 『폭풍우가 지난 후』라는 그림책 마지막 장을 펼쳐보며 어디에 살고 싶은지 짚어 보며 즐거워하고 있는데 정훈이가 한심하다는 듯이 한마디 던지고 지나갔다. 선아가 정훈이 얼굴 앞으로 그림책을 펼쳐 보이며 퍼시 아저씨와 동물들이 얼마나 귀여운지를 이야기했다. 정훈이는 징그러운 것이라도 본 듯이 인상을 쓰며 가버렸다. 정훈이는 항상 인상을 쓰고 다니는데 오늘은 좀 기분이 좋은지 먼저 말을 걸기도 했다. 다른 아이들 말로는 그냥 있는 척 하느라고 그런다는데 나는 그런 정훈이가 귀여웠다.
수업을 시작하고 정훈이 표현대로라면 ‘고등학생이나 된 아이들’에게 그림책 『고 녀석 맛있겠다』를 읽어 주었다. 여자아이 몇 명은 눈물 날 뻔했다며 좋은 책이라고 박수까지 쳤고, 남자아이들 몇몇은 애니메이션으로 봤다며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해 주었다. 정훈이는 다시 불쾌한 표정이 되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수업 시간에 왜 그림책을 보는지를 물었다. 나는 먼저 그림책을 보는 것이 재미없는지, 불편한지를 물었다. 그러자 정훈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정훈이를 제외한 아이들은 그림책이 무척 재미있다고 했다. 그리고 선아는 “그림책은 그림으로 그린 시랑 비슷한 것 같다.”고 했다.
“하긴 정훈이랑 그림책은 안 어울려요. 정훈이가 그림책을 읽는다고 생각만 해도… 하하.”
정훈이 옆에 앉은 민식이가 웃었다. 정훈이는 다시 표정이 굳어지며 “난 그림책 이 별로예요.”라며 수업이나 하자고 했다.
강하면 돼요! 약한 건 나쁜 거예요!
오늘 수업은 ‘위인과 인물의 차이’에 대한 것이었다. 우선 아이들에게 알고 있는 위인을 물어보았다. 정훈이가 ‘칭기즈칸’이라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가장 위대한 정복자”이기 때문이라고 하며 “남자는 힘”이라며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여학생들이 또 남자 운운한다며 야유를 보냈지만 정훈이는 오히려 그런 것을 즐기는 표정이었다. 평소에도 여자, 남자를 이야기하며 여자아이들을 무시했다고 했다. 그리고 남자아이들에게도 자주 번쩍 들어 올리거나 헤드록을 거는 장난을 해서 왜소한 남자 아이들은 정훈이를 싫어했다.
아이들에게 칭기즈칸이 위인인지를 물었다. 누군가 집에 있는 위인전집 중에 칭기즈칸이 있으니 위인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럼 ‘히틀러’는 위인인지를 물었다. 아이들은 빠르게 아니라고 했다. 광개토대왕도 물어보았더니 혼돈스러워했다.
그러자 정훈이가 “역사는 이긴 사람만 기억하는 거잖아요.”라며 박정희 대통령도 위인이 아니고 싫다고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할머니 동네에 박정희기념도서관이 있는 것을 보면 강한 거 아니냐고 했다. 약하면 결국 다들 무시해서 나쁜 것이라고 하며 점점 목소리가 높였다가 “어른들은 다 짜증나”라며 말을 멈추었다.
다시 ‘인물과 위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쉬는 시간에 정훈이에게 짜증 나는 건 좀 어떤지 말을 걸어보았다.
“엄마가요…”
정훈이와 어울리지 않는 시작이었다. 아니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시작이었다. 덩치만 커다란 귀여운 아이가 속상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티라노사우루스는 아빠와 닮았다!
정훈이는 어제 친구네 집에 갔다가 그 집에서 잘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친구 부모님이 모두 철야기도를 가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한테 전화해서 허락을 받으려고 했지만 어른 되기 전에 외박은 안 된다며 화를 내셨다.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난다. 정말 진지하게 가출을 할까 고민 중이다. 엄마랑 아빠랑 자주 하는 이야기가 “안 된다면 안 돼.”이다. 도대체 언제 어른이 되는지 시간이 너무 가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어른이 되어 돈을 버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어른이 되면 당당해질 수 있을 것 같고, 돈 버는 것이 지금 집에서 구박 당하고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이랑 어른이랑 뭐가 다른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다 갑자기 『고 녀석 맛있겠다』 생각이 났다. 자신도 어렸을 때 아빠처럼 되고 싶다고 말을 한 기억이 났다. 하지만 뭔가 속이 움찔움찔하면서 불편한 느낌이었다. 학교에서 자신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들이 많은데 그때 받은 느낌이랑 비슷했다. 평소에도 이런 느낌이 싫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이런 감정에 대해 말해야 할 때는 인상 쓰고 앉아 말하지 않고, 쓰라는 것은 쓰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림책은 좀 다른 느낌이다. 이상하지만 그렇게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엄마, 아빠와 이야기할 때는 항상 혼나거나 화를 냈던 것 같다. ‘또 못하게 하려는 거겠지’ 이런 생각들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엄마가 그 다음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더 화내고 짜증 내고 했다. 이제 엄마한테는 지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한 소리를 듣기만 하면 끝났을 일들인데 정훈이가 말대꾸(엄마 입장에서는 말대꾸, 정훈이 입장에서는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를 해서 이야기는 길어지고 격해지며 서로 감정이 쌓이게 되었다.
나는 정훈이에게 조심스럽게 이 책의 주인공 티라노사우루스가 엄마와 아빠랑 닮은 것 같지 않은지를 물었다. 걱정되었다는 말은 하지 않고 화를 내며 소리를 친 것처럼 말이다. 정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아빠가 소리치고 화를 낼 때 자신을 걱정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고, 오직 그저 빨리 집을 나가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그림책으로 의사소통에 대한 이야기 시작하기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시 수업을 시작했을 때 『이상한 녀석이 나타났다』라는 그림책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개구리들과 분홍돼지 표정이 귀엽다며 그림책에 집중했다. 정훈이도 경계(?)를 풀고 재미있게 들었다. 이 책의 이야기는 분홍돼지가 개구리 연못에 와서 ‘개굴’이라고 말하는데 개구리들은 왜 돼지가 ‘개굴’이라고 우는지 모른다. 결국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현명한 딱정벌레를 데리고 오는데 그 동안 분홍돼지는 가버리고 없다. 딱정벌레는 혹시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온 것일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개구리들은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며 분홍돼지를 찾아 나선다. 나무 위 새들 곁에 있는 분홍돼지를 찾아낸 개구리들은 그 곁으로 가서 ‘짹짹짹’이라고 하며 이야기가 끝난다. 아이들이 웃었다. 그리고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쉽게 사람들에게 “왜 저래”라고 말하며 화내고, 속상해하며, 무시하기도 했다고 반성도 했다. 아이들은 그림책이 철학적이라고 했다. 나는 그래서 그림책을 보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세상을 좀 더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문학과 예술이 있다고 했다.
그 시간 뒤에도 “여자가…”라고 정훈이가 이야기하자 여자 아이들이 ‘개구리 같은 놈’이라고 했다. 그러자 정훈이는 “개굴”하면서 분홍돼지 흉내를 냈다. 정훈이도 웃고 아이들도 웃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