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활용수업 [책으로 말 걸기] 이제는 정말 행복해져도 좋을 희영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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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03-10 21:48 조회 8,305회 댓글 0건본문
고정원 대안학교 말과글 교사
아직은 깜깜한 새벽, 핸드폰 창이 환하다. 머리맡에 둔 안경을 더듬어 쓰고 핸드폰을 들었다.
“너무 무서운 꿈을 꿨어요ㅠㅠ”
희영이다. 짐작 가는 일은 있지만 며칠 전에 만났을 때 분명 잘 있다고 했다. 다 잘되고 있고, 앞으로도 잘될 거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대학에도 갔고, 남자친구도 있으며, 2학기 때는 장학금도 받았고, 교수님들께 인정도 받고 있으니 취업은 걱정 없을 거라며 자랑이 늘어선 희영이에게 차마 ‘그게 그렇게 없는 일처럼 지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꺼내질 못했다.
그 일이 일어난 지 벌써 4년이 지났다. 중학교 3학년, 그렇게 작고 예쁜 아이가 온몸을 떨며 친구와 함께 내게 왔던 그날, 나는 우리가 늦은 밤에 만났던 커피숍에 놓여 있던 머그컵의 작은 무늬까지도 아직 기억난다.
4년 전 겨울 이야기
희영이는 말을 못했다. 자기 앞에 놓인 식어버린 레몬차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커피숍 안은 살짝 덥기까지 했는데도 아이는 몸을 떨며 점점 더 고개가 아래로 내려갔다. 희영이와 같이 온 친구, 혜진이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희영이네는 10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가 가장 믿고 의지하던 이모네 집 옆으로 이사 왔다. 엄마는 이모와 함께 식당 서빙을 시작했고, 경제적으로는 무척 어려웠지만 행복했다. 이모부도 친절했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무뚝뚝한 오빠만 있다고 투덜거리던 귀여운 사촌동생은 희영이를 잘 따랐다. 그래서 공부를 좀 못하는 것, 언니랑 같은 방 쓰기가 너무 힘든 것 등 사소한 고민거리들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았다. 그 고민거리 중 몇 가지는 희영이에게 들어서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러던 4년 전 겨울, 중학교 3학년만 외부에 나갔다가 일찍 끝나서 집으로 돌아오던 중 비가 왔다. 몸이 흠뻑 젖었는데 감기가 걸릴 것 같았다. 희영이네 집은 욕조가 없었는데 이모네 집에 욕조가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이모네 집에는 아무도 없으니 살짝 쓰고 깨끗이 치워놓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열쇠는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다.
한참 목욕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허락도 받지 않고 목욕탕을 쓴 것이 미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족인데 하는 생각에 “희영인데요. 목욕 중이에요.”라고 일부러 명랑하게 이야기했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니 사촌오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그 뒤에 일어난 일은 기억나질 않는다고 했다. 오빠가 생리 마지막 날을 물었고, 그럼 다행이라고 했던 것 같으며, 아무 일 없었던 듯 평소처럼 저녁을 같이 먹었다. 그날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오빠가 저녁 먹은 후 물을 마시며 이모에게 “보리차야?”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 희영이가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그날 저녁 오빠가 이모에게 물어본 그 말이었다. 평소에는 집에서 말 한마디도 하지 않던 오빠가 그날 소리를 내어 말을 했다. 자기에게 생리일이 언제였는지를 물어 본 것과 같은 목소리로 “보리차야?”라고 말했다.
혜진이가 이야기하는 동안 희영이는 그냥 계속 몸을 떨고 있었다. 혜진이는 희영이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선생님! 제일 문제는 이 바보가 자기 잘못이 크다고 하는 거예요.”
가족 성폭력! 여러 이야기를 듣게 되지만 그때마다 참 쉽지 않은 문제이다. 아니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문제이다. 가족이라는 ‘더러운’, ‘지저분한’(더 이상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 관계 속에서 피해자인 아이들이 더 심한 상처를 받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선 희영이에게 혜진이처럼 좋은 친구가 있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희영이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알리자고 설득했다. 지금 엄마라는 역할을 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리는 것이 맞다고 했다.
“아빠 돌아가시고 웃기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제 엄마도 행복해지셨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이모 옆에 있다고 좋아했는데, 그리고 오빠는 이모네 집 장손이라는데.”
이제야 희영이가 울기 시작했다. 한 번 시작된 울음은 그칠 줄 몰랐고, 혜진이와 내가 함께 희영이를 좀 더 설득시킨 후에 나는 희영이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이야기는 희영이네 거실에서 나누었고, 희영이는 방에 들어가 있었다.
한눈에 봐도 희영이보다 더 작고 약한 사람처럼 보였다. 밤늦도록 음식점 서빙일로 무척 지쳐 보였고, 차라리 밝은 날에 희영이 엄마가 좀 건강해 보일 때 다시 찾아올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야기가 시작되자 희영이 엄마는 희영이보다 강해 보였고,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희영이에게 선생님처럼 찾아가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라며 거듭 내게 고마워했다. 엄마는 여전히 힘들어 보였지만 울지 않았고, 담담해 보였다. 나는 살짝 걱정이 되어 희영이 잘못이 아니고, 신고가 가장 좋은 방법이며, 희영이가 사촌오빠를 보게 하면 안 된다고 당부하며 집을 나왔다.
그 후 신고는 하지 않았지만 희영이네 집이 이모네 집과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갔고, 사촌오빠는 바로 군대에 갔으며, 나 역시 학교를 옮겨서 더 이상 매일 희영이를 만날 수 없게 되었지만 희영이는 잘 해결되었다며 내게 고맙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지금...
그 당시 나는 희영이에게 이야기 한 편을 들려주었다. 『유진과 유진』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유치원에서 똑같이 성추행을 당한 아이들이 부모의 대응방식에 따라 다른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며칠 전 희영이를 만났을 때 희영이가 『유진과 유진』 이야기를 했다. 나와의 만남 이후 엄마는 달라졌다고 했다. 이모와도 만나서 이야기했고, 그래서 사촌오빠는 빨리 군대에 가게 되었으며 며칠 되지 않아 이사도 뚝딱 끝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끝마치고 나니 희영이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꿈인가 싶었다.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중에는 이모네 집에 혼자 다녀오기도 했다. 사촌오빠를 만나는 일은 아직도 껄끄럽기는 하지만.
여전히 날은 밝지 않았다. 나는 희영이에게 네가 오늘 꾼 악몽이 그 일과 관련된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희영이에게 맞다는 답장이 왔다. 그리고 이모네 집에 가는 것도 엄마에게 자신이 괜찮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냐고 물었다. 희영이는 “ㅠㅠ”라고 답장을 보냈다. 사실 며칠 전부터 누군가 부르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도 들린다고 했다. 나는 희영이에게 네 마음이 괜찮지 않으니 꿈으로, 몸으로 네게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에 외면하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힘들어질지 모른다고 협박도 했다. 다행히 희영이는 내 말을 들었다. 그래서 같이 성폭력 피해자 상담소에 가기로 했다. 그 일을 다시 입 밖으로 내기도 힘들 것 같다고 해서 전화상담은 내가 해주었으며, 상담소에도 같이 가기로 했다.
사촌오빠는 어찌 지내고 있냐는 내 물음에 벌 받았는지 계속 취직도 안 되고, 교통사고도 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빠가 하늘에서 벌주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희영이는 언니나 엄마보다도 자신을 제일 사랑했던 아빠였는데 지금 살아계셨으면 이런 일은 당하지 않았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희영이가 보낸 문자를 보면서 하늘에서 속상해하고 계실 희영이 아빠 모습이 상상이 되어 해가 환하게 뜰 때까지 계속 눈물이 났다.
내일은 희영이를 만날 것이다. 예쁜 카페에서 같이 차도 마시고, 산책도 하다가 성폭력 피해자 상담소에 가기로 했다. 이제 더 이상 억지로 괜찮다며 숨겨 놓은 감정의 찌꺼기들 때문에 희영이가 아프지 않게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싶다.
아직은 깜깜한 새벽, 핸드폰 창이 환하다. 머리맡에 둔 안경을 더듬어 쓰고 핸드폰을 들었다.
“너무 무서운 꿈을 꿨어요ㅠㅠ”
희영이다. 짐작 가는 일은 있지만 며칠 전에 만났을 때 분명 잘 있다고 했다. 다 잘되고 있고, 앞으로도 잘될 거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대학에도 갔고, 남자친구도 있으며, 2학기 때는 장학금도 받았고, 교수님들께 인정도 받고 있으니 취업은 걱정 없을 거라며 자랑이 늘어선 희영이에게 차마 ‘그게 그렇게 없는 일처럼 지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꺼내질 못했다.
그 일이 일어난 지 벌써 4년이 지났다. 중학교 3학년, 그렇게 작고 예쁜 아이가 온몸을 떨며 친구와 함께 내게 왔던 그날, 나는 우리가 늦은 밤에 만났던 커피숍에 놓여 있던 머그컵의 작은 무늬까지도 아직 기억난다.
4년 전 겨울 이야기
희영이는 말을 못했다. 자기 앞에 놓인 식어버린 레몬차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커피숍 안은 살짝 덥기까지 했는데도 아이는 몸을 떨며 점점 더 고개가 아래로 내려갔다. 희영이와 같이 온 친구, 혜진이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희영이네는 10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가 가장 믿고 의지하던 이모네 집 옆으로 이사 왔다. 엄마는 이모와 함께 식당 서빙을 시작했고, 경제적으로는 무척 어려웠지만 행복했다. 이모부도 친절했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무뚝뚝한 오빠만 있다고 투덜거리던 귀여운 사촌동생은 희영이를 잘 따랐다. 그래서 공부를 좀 못하는 것, 언니랑 같은 방 쓰기가 너무 힘든 것 등 사소한 고민거리들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았다. 그 고민거리 중 몇 가지는 희영이에게 들어서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러던 4년 전 겨울, 중학교 3학년만 외부에 나갔다가 일찍 끝나서 집으로 돌아오던 중 비가 왔다. 몸이 흠뻑 젖었는데 감기가 걸릴 것 같았다. 희영이네 집은 욕조가 없었는데 이모네 집에 욕조가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이모네 집에는 아무도 없으니 살짝 쓰고 깨끗이 치워놓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열쇠는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다.
한참 목욕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허락도 받지 않고 목욕탕을 쓴 것이 미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족인데 하는 생각에 “희영인데요. 목욕 중이에요.”라고 일부러 명랑하게 이야기했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니 사촌오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그 뒤에 일어난 일은 기억나질 않는다고 했다. 오빠가 생리 마지막 날을 물었고, 그럼 다행이라고 했던 것 같으며, 아무 일 없었던 듯 평소처럼 저녁을 같이 먹었다. 그날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오빠가 저녁 먹은 후 물을 마시며 이모에게 “보리차야?”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 희영이가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그날 저녁 오빠가 이모에게 물어본 그 말이었다. 평소에는 집에서 말 한마디도 하지 않던 오빠가 그날 소리를 내어 말을 했다. 자기에게 생리일이 언제였는지를 물어 본 것과 같은 목소리로 “보리차야?”라고 말했다.
혜진이가 이야기하는 동안 희영이는 그냥 계속 몸을 떨고 있었다. 혜진이는 희영이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선생님! 제일 문제는 이 바보가 자기 잘못이 크다고 하는 거예요.”
가족 성폭력! 여러 이야기를 듣게 되지만 그때마다 참 쉽지 않은 문제이다. 아니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문제이다. 가족이라는 ‘더러운’, ‘지저분한’(더 이상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 관계 속에서 피해자인 아이들이 더 심한 상처를 받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선 희영이에게 혜진이처럼 좋은 친구가 있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희영이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알리자고 설득했다. 지금 엄마라는 역할을 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리는 것이 맞다고 했다.
“아빠 돌아가시고 웃기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제 엄마도 행복해지셨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이모 옆에 있다고 좋아했는데, 그리고 오빠는 이모네 집 장손이라는데.”
이제야 희영이가 울기 시작했다. 한 번 시작된 울음은 그칠 줄 몰랐고, 혜진이와 내가 함께 희영이를 좀 더 설득시킨 후에 나는 희영이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이야기는 희영이네 거실에서 나누었고, 희영이는 방에 들어가 있었다.
한눈에 봐도 희영이보다 더 작고 약한 사람처럼 보였다. 밤늦도록 음식점 서빙일로 무척 지쳐 보였고, 차라리 밝은 날에 희영이 엄마가 좀 건강해 보일 때 다시 찾아올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야기가 시작되자 희영이 엄마는 희영이보다 강해 보였고,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희영이에게 선생님처럼 찾아가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라며 거듭 내게 고마워했다. 엄마는 여전히 힘들어 보였지만 울지 않았고, 담담해 보였다. 나는 살짝 걱정이 되어 희영이 잘못이 아니고, 신고가 가장 좋은 방법이며, 희영이가 사촌오빠를 보게 하면 안 된다고 당부하며 집을 나왔다.
그 후 신고는 하지 않았지만 희영이네 집이 이모네 집과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갔고, 사촌오빠는 바로 군대에 갔으며, 나 역시 학교를 옮겨서 더 이상 매일 희영이를 만날 수 없게 되었지만 희영이는 잘 해결되었다며 내게 고맙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지금...
그 당시 나는 희영이에게 이야기 한 편을 들려주었다. 『유진과 유진』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유치원에서 똑같이 성추행을 당한 아이들이 부모의 대응방식에 따라 다른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며칠 전 희영이를 만났을 때 희영이가 『유진과 유진』 이야기를 했다. 나와의 만남 이후 엄마는 달라졌다고 했다. 이모와도 만나서 이야기했고, 그래서 사촌오빠는 빨리 군대에 가게 되었으며 며칠 되지 않아 이사도 뚝딱 끝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끝마치고 나니 희영이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꿈인가 싶었다.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중에는 이모네 집에 혼자 다녀오기도 했다. 사촌오빠를 만나는 일은 아직도 껄끄럽기는 하지만.
여전히 날은 밝지 않았다. 나는 희영이에게 네가 오늘 꾼 악몽이 그 일과 관련된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희영이에게 맞다는 답장이 왔다. 그리고 이모네 집에 가는 것도 엄마에게 자신이 괜찮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냐고 물었다. 희영이는 “ㅠㅠ”라고 답장을 보냈다. 사실 며칠 전부터 누군가 부르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도 들린다고 했다. 나는 희영이에게 네 마음이 괜찮지 않으니 꿈으로, 몸으로 네게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에 외면하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힘들어질지 모른다고 협박도 했다. 다행히 희영이는 내 말을 들었다. 그래서 같이 성폭력 피해자 상담소에 가기로 했다. 그 일을 다시 입 밖으로 내기도 힘들 것 같다고 해서 전화상담은 내가 해주었으며, 상담소에도 같이 가기로 했다.
사촌오빠는 어찌 지내고 있냐는 내 물음에 벌 받았는지 계속 취직도 안 되고, 교통사고도 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빠가 하늘에서 벌주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희영이는 언니나 엄마보다도 자신을 제일 사랑했던 아빠였는데 지금 살아계셨으면 이런 일은 당하지 않았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희영이가 보낸 문자를 보면서 하늘에서 속상해하고 계실 희영이 아빠 모습이 상상이 되어 해가 환하게 뜰 때까지 계속 눈물이 났다.
내일은 희영이를 만날 것이다. 예쁜 카페에서 같이 차도 마시고, 산책도 하다가 성폭력 피해자 상담소에 가기로 했다. 이제 더 이상 억지로 괜찮다며 숨겨 놓은 감정의 찌꺼기들 때문에 희영이가 아프지 않게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