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상품 검색

장바구니0

칼럼 [메뚝샘의 교사들을 위한 인문에세이]좋은 책을 고르는 13가지 전략

페이지 정보

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10-28 17:35 조회 7,334회 댓글 0건

본문

김준산 홍천 매산초 교사, 『교사, 가르고 치다』 저자

 
『일반통행로 사유이미지』
발터 벤야민 지음김영옥, 윤미애, 최성만 옮김┃길┃2007
『도덕의 계보/이 사람을 보라』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김태현 옮김┃청하┃1999
 
1_
여기, 바로 이 강산에 하늘과 바람과 별을 되우 사랑합니다. 살랑한 물들과 송송한 풀들과 아담한 산들의 향기가 좋습니다. 옹기종기 소박한 우리네 마음이 살가우며, 쌩쌩하리만큼 건강한 이 국토가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이 질박한 흙에서 기쁘게 피어나야 할 ‘문화라는 삶의 형식’은 사뭇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강산의 자존만큼 우리 문화를 마땅히 자긍할 수는 없는 게지요. 거창한 건축물이나 광활한 규모의 관광자원이 부족한 탓이 아닙니다. 우리 자연이 소담스럽듯, 문화 또한 조용한 품격을 닮으면 충분합니다. 새것의 ‘광’보다는 헌것의 ‘윤’이 문화의 가치가 되는 이유이지요.
일찍이 백범 김구는 “문화의 힘이 강성한 나라가 위대한 나라”라고 했습니다. 국력(정치)은 남의 나라의 침략을 막을 수 있을 만큼이라면 만족스럽고, 가난과 기근만 견딜 수 있다면 경제도 충분합니다. 남의 위에 군림하는 강국이 아니라 각자의 삶을 지배할 수 있는 굳건한 나라가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저 또한 그리 믿습니다. 제가 바라는 나라는 알싸하게 흘리는 노동의 땀, 그 징그럽게 조용한 고통을 윤리학으로 삼아, 자못 평화롭게 더불어 노래하는 나라입니다.
함께 갈 수 있다면 더디 가도 무방합니다. 뽐내기 위한 문화가 아니라 스스로 당당한 문화가 정당한 이상향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땅에 문화강국이라는 김구의 꿈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경제와 정치가 삶을 몽땅 지배하고 있습니다. 온 사람이 경제와 정치에만 골몰합니다. 문화는 단지 경제와 정치의 부산물 정도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배병삼 선생님은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문화는 부사다. 정치가 정명(正名)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명사이고, 경제가 살아 있는 생물에 비유된다는 점에서 동사라면, 문화는 본질에 대한 형식, 또는 내용물의 장식이라는 점에서 부사다. 정치가 폭력이라는 돌멩이의 힘을 갖고 있고 경제가 유통이라는 에너지의 힘을 갖고 있는 반면, 문화는 부사에 불과하다. 특히 자본주의가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오늘날의 문화는 기껏 정치를 장식하거나 경제를 수식할 뿐이다. 요컨대 문화는 힘이 없다.◆1
오늘날의 문화는 힘이 없습니다. 사회는 정치와 경제라는 치열한 경쟁을 소원합니다. 문화는 경제의 덤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문화는 나약합니다. 문화가 중심인 세상은 요원합니다. 예컨대 오늘날의 문화는 디테일입니다. 정치적 피로를 달래주는 이완제이거나 경제적 고통을 잊게 하는 진통제입니다. 문화가 주인의 문법을 찾지 못한 사회는 나약하며, 그 사회 속에 사는 사람들의 영혼은 가난합니다. 많이 가져도 빈곤한 자, 많이 벌어도 가난한 삶. 우리가 사는 문화소국. 이 땅의 현실입니다.                                          
                                                                            
 ◆1 『풀숲을 쳐 뱀을 놀라게 하다』 배병삼 지음, 문학동네, 104쪽

2_
그렇지만, 문화 강국의 꿈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문화는 인간성의 척도요, 이 땅의 질이며, 삶의 품격인 까닭입니다. 그렇다면 어찌 이 데데한 문화를 개진하고 증진할 수 있을까요. 크고 복잡한 국가적 정책이 아니라 소담한 개인적 실천 전략은 없을까 고민해 봅니다. 약간의 비약은 저당하고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바는 문화 양생의 기초 체력을 담당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물부터 시작합니다. 단단한 현명함은 못 되지만, 반증하기 어려운 관점임을 믿어봅니다.
인류 역사의 위대한 발명품, 바로 책입니다. 책은 문화의 농축액이며 삶을 풍부하게 하는 가장 경제적인 도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책을 통해 문화는 계승되고 연대합니다. 그러나 책들의 범람이 유난한 까닭에 문화의 기초 사물을 현명하게 택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전문 출판평론가들의 도움을 받아 보겠지만, 매개자가 끼어든 책은 스스로 선택한 책보다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서가에 묵묵히 먼지를 인내하는 많은 책들은 전문가의 의견을 들었던 것들이 종종 있습니다. 관점이 다르거니와 스스로 선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영화 평론에서 대중과 평론가의 평점 차이가 반복해서 나타나는 이유와 비슷합니다. 전문성이 강한 평론가들의 의견은 세속성이 강한 우리네 의견과 같아지기 어렵습니다. 평론가들은 일반적 의견을 제시할 순 있어도 특수한 개인의 삶을 경험할 수 없는 탓이겠지요. 때문에 지극히 개인적인 방법은 수려한 전문가의 전문성을 추월하는 힘이 있습니다. 적어도 선택하는 사람 각자가 똑똑한 사람보다 뛰어난 자기 삶의 평가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극진히 개인적인 맥락에서 좋은 책을 고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봅니다.
 
 
3_
책 사랑의 열혈광인 발터 벤야민의 의견을 듣습니다. 그는 수려한 고서 수집가이며, 가방에 생필품 대신 고서를 들고 다닌 지독한 책벌레였습니다. 그가 책에 집착한 이유는, 먹물로서 종이를 지독하게 탐하는 사치이기도 했습니다만, 문화의 질이 빼곡하게 눌린 그 문화의 더께를 아끼기 위한 자존심이기도 했을 텁니다.
 벤야민이 말한 좋은 책은 강렬합니다. 강렬한 책만이 책이라는 이미지를 온당히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책의 윤리는 온화한 도덕교과서 삽화 같은 느낌이 아닙니다. 책은 날카로운 칼입니다.타성에 저당 잡힌 우리네 무딘 감수성을 예리하게 여미는 칼입니다. 그 칼날이 누추한 우리의 문화 또한 썰어 낼 수 있습니다. 예민한 칼날은 훌륭한 의학입니다. 날카로운 칼만이 정확한 칼입니다. 진짜 칼을 고르는 방법을 고민해 보았습니다. 문화강국의 요원한 꿈에 대한 미력한 기준을 다듬기 위함입니다.
※ 다음의 서술은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 중 「13번지」라는 단락에 있는 ‘책과 창녀’라는 내용에 대한 나름의 해설입니다. 벤야민은 책과 창녀를 교차하면서, 책의 본질을 비유적으로 서술합니다. 책에 대한 숭고를 비꼬는 생각들도 있습니다. 최고의 가치가 최상의 교환이 되는 자본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도 섞여 있습니다. 그의 예리함은 책 고르는 비법을 현명하게 구축할 이미지를 제시합니다. 가치 교환에 매몰되는 책이 아니라,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진정한 책에 대한 단서와 단상을 제공하는 것이지요. 단, 그의 기술은 대화나 소통을 위한 묘사가 아니라 대상을 이미지화 한 회화법이기에, 구체적인 계명들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제 해설 또한 그의 화화 기법에 대한
오마주입니다.
 
현명하게 책을 고르기 위한 13가지 전략◆2
◆2 『일방통행로 사유이미지』 발터 벤야민 지음,
김영옥·윤미애·최성만 옮김, 길, 103쪽.

0번째 전략
–13권을 동시에 골라라. 프루스트는 13이라는 숫자에서 멈추는 데서 잔인한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왜냐? 금기의 습관이 만들어낸 마귀의 숫자가 호기심을 강력하게 당기기 때문이다. 호기심 가지 않는 책은 볼 이유가 없다. 13권의 책을 동시에 골라, 그것의 연관 속에 은밀히 녹아 있는 금기의 희열을 찾아라. 상반되고 통하지 않는 분야의 책들을 동시에 고르면 더 좋다. 저주 받은 숫자는 반드시 열망의 편이다.
 
첫 번째 전략 책과 창녀는 잠자리에 갖고 들어갈 수 있다.
–책은 반드시 매혹적이어야 한다. 겉표지가 매혹적이라면 우선 믿어라. 속을 위해 겉까지 지배하지 못하는 책은 가치를 지불 받을 자격이 없다. 잠자리에 들고 가고 싶은 매혹적인 책을 골라라. 같이 자고 싶은 책. 잠자기 전 가장 불안한 순간에 곁에 두고 싶은 잘 빠진 책이 좋은 책이다.
 
두 번째 전략 책과 창녀는 시간을 교차시킨다. 그들은 밤을 낮처럼 지배하고 낮을 밤처럼 지배한다.
–밤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고르지 말라. 잠을 방해할 수 있는 책이 진짜다. 베개 맡에 고이 모셔둘 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열정적으로 잠자리를 함께할 수 있는 책을 골라라. 침대 맡에서 땀을 흠뻑 젖게 하는 책이 좋다. 밤을 낮처럼 지배할 힘이 없는 나약한 책에 돈을 지불하는 것은 낭비다.
 
세 번째 전략 아무도 책과 창녀에게 몇 분을 할애하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과 가까워지면 그들이 얼마나 급한지 알아차리게 된다. 우리가 그들에 탐닉하는 동안 그들은 시간을 잰다.
–읽을 때 시간을 붙잡고 싶은 책을 골라라. 자기 시간을 빼앗으려는 책이 나의 시간을 배려하는 책이다. 한시가 급하게 읽어 낼 수 있는 책이 좋은 책이다. 책에 매혹돼 다른 일상이 무너져야 한다.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책이 아니라, 한시라도 빨리 탐하고 싶은 책이 좋다. 그렇지 못한 책은 내가 가진 시간을 재며, 빨리 책을 덮으라고 보챈다.
 
네 번째 전략 책과 창녀는 예전부터 서로 불행한 사랑을나누어 왔다.
–행복한 사람이 쓴 책은 공감을 얻게 하지만, 깨달음을 주진 못한다. 통찰을 위한 책을 고르기 위해선 불행한 사람이 쓴 고통의 씨앗을 골라라. 그는 자기 불행을 자가 치유해 본 자이기에 남의 고통에 대해서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다. 불행한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의 책 속엔 진실이 없다. 비극적 사랑이 사랑의 오마주를 남기듯, 불행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책은 내 삶을 붕괴하지 않는다.
 
다섯 번째 전략 책과 창녀는 각각 자신에게 맞는 타입의 남자들을 갖고 있는데, 이 남자들은 그들 덕택에 살면서그들을 핍박한다. 책들은 비평가를 갖고 있다.
–내게 맞는 책, 내 타입을 고집하게 하는 공감 가는 책들은 돈 주고 사지 말라. 빌려 읽는 것은 좋다. 이런 책들을 읽는 행위는 독서라기보다 오락이기에 그렇다. 이 오락은 중독성이 강해서 한 번 빠지면 탈출하기가 쉽지 않다. 이 중
독성 덕택에 타입을 가지고 공감에 호소하는 책들은 무척 소비되며 잘 유통된다. 그리하기에 이런 책은 삶의 여유를 위해 빌려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절대 사지는 말라.
 
여섯 번째 전략 공공장소에서의 책과 창녀- 대학생용.
–공공장소에 데려갈 수 없는 책을 골라라. 명품은 베스트셀러가 아니다. 은밀하게 나만 탐하는 비밀스러운 책을 택하라. 내 명품은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비밀은 성인용이다. 동화책은 어린아이들에게 읽어 줄 때만 유용하다. 뽐내고 싶은 책은 오래 읽을 수 없는 책이고 도덕적인 책은 새로움이 없는 책이다.
 
일곱 번째 전략 책과 창녀를 소유하는 자 치고 그들이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는 드물다. 그들은 몰락하기 전에 사라지곤 한다.
–이 책과 함께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은 무조건 사라. 매춘이 사랑이 될 수 있으면, 그것은 유일한 사랑에 가깝다. 좋은 책은 가장 비싼 책이 아니라, 이 책을 대리하는 그 어떤 책도 없는 책이다. 몰락을 경험하게 하는 책을 골라라. 심연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주지 못하는 책은 멀리해야 좋다. 단지 소유하고자 하는 책이 아니라, 책을 읽다가 자기가 침윤되어 사라질 것 같은 책이 좋은 책이다.
 
여덟 번째 전략 책과 창녀는 어떻게 해서 지금의 자신들이 됐는지를 얘기하기 좋아하고, 그것도 거짓으로 꾸며 댄다.사람들은 ‘사랑하는 마음’에서 온갖 것을 여러 해 동안 따라가다가 어느 날엔가는 그들 자신이 언제나 ‘연구한다’는 명분으로 어슬렁거렸던 곳에서 비대한 몸이 되어 서 있다.
–뚱뚱한 책은 웬만하면 피하라. 줄일 수 없는 생각은 건강하지 못하다. 반복적인 긴 문장을 구사하는 사람들의 책은 연구자들의 몫이다. 독자는 연구자가 아니다. 독자는 강렬한 느낌을 단칼에 끝장낼 수 있는 책으로 골라야 한다. 연구자는 연구로 밥을 먹는 사람이고, 독자는 연구자들에게 밥을 주는 사람이다. 따라서 지나치게 자기 밥그릇을 늘리려는 연구자들의 책을 조심하라. 책이 두꺼우면 그 안의 생각도 비만이기 쉽다.
 
아홉 번째 전략 책과 창녀는 자신을 전시할 때 등을 내보이기를 좋아한다.
–내 지적 능력을 깔보는 책을 골라라. 뒤태가 좋은 책이 그런 책이다. 자신 없는 책일수록 추천사가 많다. 깔끔하고군더더기 없는 뒤태를 갖춘 책을 골라야 후회가 적다.
 
열 번째 전략 책과 창녀는 무척 젊게 만들어 준다.
–최근에 나온 책을 골라라. 고전이라도 예전에 나온 책은 한계가 있다. 비싸더라도 젊은 책을 골라야 독서 후 내 삶도 회춘할 수 있다.
 
열한 번째 전략 책과 창녀는 ‘나이 든 극성신도와 젊은 매춘부’의 관계와 같다. 오늘날 청소년들이 배워야 할 수많은 책들이 과거에 비방을 받던 책들이 아닌가!
–극성인 팬텀이 짙은 저자의 책은 조심하라. 욕보다 칭찬이 강한 저자들의 책은 미래에 비방받기 일쑤다. 현실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책이 아니라 현실을 저주하고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게 하는 불친절한 책을 골라라. 지금의 미인보다 미래의 미인이 될 것 같은 여인의 주가를 생각하라. 저평가 주식이 가치를 내포하듯, 저평가된 저자들의 책이 미
래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열두 번째 전략 책과 창녀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싸움질한다.
–싸움질 잘하는 책을 피하라. 인내심이 없는 책이다. 싸울 때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깊이 있게 싸울 줄 아는 책을 골라야 한다. 독보적인 책은 싸우지 않는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뻔뻔히 싸우는 책은 화장이 두터울 수 있으며, 그리하여 속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세련되고 수려하게 싸움질하는 비평가들의 책을 조심하는 게 독서 건강에 좋다.
 
열세 번째 전략 책과 창녀. 한쪽에서 각주인 것이 다른 쪽에서는 양말 속에 끼워 넣은 지폐이다.
–각주와 미주 등, 인용의 출처가 꼼꼼한 책을 피하라. 각주는 독자를 위한 친절이 아니라 연구자들을 위한 양말 속 비용이다.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책은 아무것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각주는 모든 것을 하나의 생각으로 포섭하려는 객관주의자의 덫이다.
 
이상으로 제시된 13가지(사실 14가지) 방략은 개인적 차원에서 좋은 책에 대한 이미지를 사유할 단서를 제공할 뿐입니다. 그 단서를 따라 전략을 구체화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겠지요. 분석하기보다 느끼길 부탁드립니다. 특정한 느낌을 날카롭게 경험하셨다면 이제 문화강국을 위한 문화시민으로의 출발선에 섰다고 볼 수 있습니다.

 
4_
당대 문화의 질은 당시 사람들이 즐겨 읽는 책으로 살짝 엿볼 수 있습니다. 독서판매량 분석은 사회 윤리를 측정하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하지요. 현실에 집착하는 사회는 현실적인 책을 읽을 것이며, 미래를 추구하는 사회는 아직 오지 못한 그곳을 향해 열려 있을 것입니다.
니체의 말처럼 진정한 “책이란 것은 빈번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커녕 가능성 없는 사건에 대해 언급할 뿐”입니다. 자기계발서와 여행에세이가 베스트셀러에 올라오는 상황은 우리가 진짜 독서를 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겠습니다. 좋은 “책이란 결국 새로운 일련의 경험에 대한 최초의 서술”◆3입니다. 아니, 그러한 미래의 서술만이 ‘책’이라는 고유명사를 붙일 자격이 있겠습니다. 일반명사화 된 책은 ‘문서철’이라고 보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문화강국을 위해 우리가 어떤 책을 선택해야 할지 재고해야 할 이유겠습니다.
 아울러 니체는 좋은 책의 유통을 위해 독자가 갖춰야 할 이미지를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상상한 좋은 독자는 “항상 용기와 호기심이 어우러진 하나의 괴물로 변하곤.”◆4 하는 변신의 마법사였지요. 천사의 높이와 괴물의 깊이를 모두 볼 수 있는혜안. 그것이 니체가 바란 독자이며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기실 온화한 것들이 온당하다고 받아들이는 사회는 강국이 아닙니다. 온화한 현실을 읽어 내는 기술은 굳이 책을 통해 공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책이라는 독특한 사물이 사람들의 수준을 끌어올리기위해선, 책은 독특한 그 물성을 극단까지 활용할 수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책은, 아직 오지 않을 세상을 그리는 책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문화강국의 시민은 현실적 감각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현실의 일반성보다 미래의 특수성을 가치의 척도로 삼는 사람들의 나라를 문화강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실을 중탕하는 문화가 아니라 미래를 달구는 문화가 문화강국의 본질입니다. 이를 위해 우린 조금 더 나를 괴롭히는 책을 현명하게 골라 읽을 필요가 있겠지요. 나를 괴롭히는 독서의 시간이 나의 미래를 조금 더 나아가게 할 테니 말입니다.
 
◆3 『도덕의 계보/이 사람을 보라』니체 지음, 김태현 옮김, 청하, 237쪽
◆4 같은 책. 240쪽
목록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개인정보 이용약관 광고 및 제휴문의 instagram
Copyright © 2021 (주)학교도서관저널.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