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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합니다! [사려 깊은 번역가의 말 걸기] 어린이 독자를 믿지 못하는 번역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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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4-07-04 09:47 조회 18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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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독자를 믿지 못하는 

번역의 한계 


신수진 번역가




제주시 한 도서관에서 그림책 강좌를 맡았다. 덕분에 총 10회에 걸쳐 1938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칼데콧상 수상작을 전부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10년 단위로 모든 수상작의 원서 제목과 번역본 제목을 비교했고, 그중 좀더 자세히 읽어 볼 필요가 있는 책들은 2∼3번씩 읽어 보면서 번역으로는 다 전달되지 않는 미묘한 언어적·문화적 차이에 대해 알아보았다. 칼데콧상을 받은 책들이 당시 미국에서 문화적·교육적으로 의미 있다고 판단되었던 작품들이었으므로 미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 같아, 그림책 강좌였지만 미국사와 현대사 강의까지 곁들였다. 이러다 보니 강의 준비에 각오했던 것 이상으로 품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만큼 나 또한 배운 것도 많고 보람도 있었다. 수강생들에게도 해당 시기에 다룰 주요 작가와 작품을 연구해 오는 숙제를 매시간 드렸는데, 매번 놀랍도록 꼼꼼하고 날카로운 비평을 준비해 오셔서 감탄하곤 했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정말 책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분들인 것 같다!




원제목의 뉘앙스를 존중하지 않는 번역들 

 

그림책 원서와 번역본을 비교해 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특징은 제목의 뉘앙스가 달라질 때가 많다는 점이었다. 특히 주인공 이름이 책제목일 때는 “○○한(형용사) (주인공 이름)” 같은 식으로 주인공의 성격이나 특징을 설명하는 형용사를 주인공 이름 앞에 붙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주인공의 성격이 형용사 하나로만 설명될 수 있을까. 아무리 씩씩하더라도, 아무리 개구쟁이라 하더라도 늘 그 상태로만 사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책을 다 읽고 주인공과 친해지기도 전에 제목에서부터 성격을 한마디로 규정해 버리는 건 인물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를 방해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원서 제목은 주인공 이름인데, 번역본 제목은 문장형인 경우도 꽤 많았다. 대표적으로 이언 포크너(Ian Falconer)의 『Olivia』는 『그래도 엄마는 너를 사랑한단다』(베틀북, 2013)로 번역되었는데, 이는 이야기의 주체를 원서와는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본 제목이다. 원작에서는 결코 고분고분한 어린이로 살아가지 않는 주인공 올리비아의 분주한 일상이 강조되었지만, 한국어판에서는 에너지 넘치는 어린이를 돌보는 양육자(엄마)의 고단함을 더 중요하게 보고 있어서, 제목은 마치 엄마의 굳센 다짐처럼 들린다. 이런 관점은 본문 번역에서도 중요한 차이를 낳는다. 맨 마지막 장면에서 올리비아와 엄마가 나누는 대화가 둘 사이의 미묘한 애증(?)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 작품을 이해하는 관건이자 매력인데, 번역본에서는 그런 감정이 소거되어 버렸다. 엄마는 올리비아를 재우면서 말한다. “나를 지쳐 떨어지게 하지만, 어쨌거나(anyway) 난 너를 사랑한다.” 엄마의 말을 올리비아도 똑같이 되받는다. “응. 나도 어쨌거나(anyway) 엄마를 사랑해.”라고. 둘 사이에는 끝까지 긴장이 감도는 것이다. 양육 과정에서 지쳐 떨어진 경험이 있는 수강생들은 “어쨌거나”라는 단어는 충분히 강조되었어야 한다며 만감이 교차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좋은 번역은 어린이를 한 사람의 독자로서 존중한다


가장 문제적인 번역은 어린이들이 혹시라도 이해를 못 할까 봐 원서에 있지도 않은 온갖 문구들을 집어넣어 장면을 구구절절 설명한 번역, 게다가 그 설명이 잘못되기까지 한 번역이다. 브랜든 웬젤(Brendan Wenzel)의 『They All Saw a Cat』의 한국어판 『어떤 고양이가 보이니?』(애플비, 2016)는 “The cat walked through the world, with its whiskers, ears, and paws···”라는 문장을 “세모 귀를 쫑긋, 흰 수염을 쫙, 도톰한 발바닥으로 사뿐사뿐 고양이가 걸어가요.”라고 번역했다. 이 문장은 중요하게 반복되며, 모두가 같은 고양이를 보지만 누군가에게는 고양이 귀가 세모가 아니고, 발바닥이 두툼하게 보이지도 않는다는 것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원문에는 없는 저 단어들이 과연 필요한지의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긴다. 이 

책 안에서 지렁이의 경우, 눈이 없기에 온몸으로 고양이를 ‘감각’한다. 이를 원문은 “and the worm saw A CAT.”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 문장의 한국어 번역은 다음과 같다. “땅속 지렁이는 고양이가 지나가자 꿈틀거려요.” 이것은 명백히 ‘틀린’ 번역이다. 지렁이가 ‘보는’ 행위는 다른 생물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작가의 의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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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은 결코 지식이 적지 않다. 공룡에 대해서라면 웬만한 어른 이상으로 알고 있는 어린이가 얼마나 많은가. 곤충이나 파충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They All Saw a Cat』의 한국어판 번역은 곤충과 뱀, 금붕어의 눈에 고양이가 어떻게 보이는지, 왜 그런 식으로 보이는지를 어린이가 모를 것이라고 전제한다. 하지만 다양한 생물의 눈과 시각에 대해 알지 못하고, 알아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쪽은 번역자다(그리고 이 한국어판 책에는 놀랍게도 번역자 이름이 그 어디에도 표기되어 있지 않았다).

어린이를 한 사람의 독자로서 존중할 때,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교육해야 하는 존재라고만 생각하지 않을 때 우리는 더 좋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고 더 멋진 세상을 그려낼 수 있으며, 다른 문화를 편견 없이 전달하는 좋은 번역을 할 수 있다. 어린이는 결코 어른보다 열등한 존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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