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새책 한글을 돈으로 사고팔 생각은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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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1 12:28 조회 6,963회 댓글 0건본문
인간의 감각과 사고의 확장은 문자를 기반으로 한다. 문자가 없으면 인간은 외부 세계와 소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이런 말은 너무 어려우니, 예를 들어 쉽게 설명하겠다. ‘책상’을 설명하는 글을 한번 지어 보라.
책상 하면 누구든 그 형상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그러나 언어로 표현하자면 곤란을 겪는다. ‘책이 있는 상’인지 ‘책을 읽는 상’인지부터 모호하다. ‘네 개의 다리 위에 널빤지를 붙인 상’이란 설명부터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인간 혁명이 시작된 곳’이란 거창한 설명을 붙이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문자로 정리를 하다 보면 그 책상의 실체가 분명해진다. 쉽게 말해, 개념이 잡히는 것이다.
문자의 중요성에 대해 이보다 쉽게 풀어 쓸 재간이 없어, 다른 책 속 글을 인용한다. <학교도서관저널> 11월호에도 『한국음식문화박물지』로 소개하였던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의 다른 저서 『미각의 제국』 초입 부분에 쓰인 글이다. 말은 있는데 그것을 적을 문자가 없다는 것. 우리에겐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 찌아찌아족에겐 언어는 있는데 문자가 없다. 그런 그들의 말을 2010년부터 한글로 표기하기로 했다. 그동안 할 수 없었던 문자 표기를 한글이 도와주게 된 것이다.
한글로 그들의 말을 적게 되면 찌아찌 아어는 지금보다 더 활발하게 쓰이게 될 것이다. 또한 그들의 문화, 생활은 문자로 새겨져 역사로 남을 것이다. 느낌, 생각도 맘껏 표현하고 그것을 많은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를 미래에 넘겨 줄 수 없을지도 모를 위기에 처한 인도네시아 한 소수 민족의 삶을 한글을 통해 구해낸다. 이보다 멋진 일이 또 있을까? 그 멋진 나눔을 위해 정덕영 선생이 2010년 인도네시아 부톤 섬으로 떠났다. 이것이 훈민정음학회에서 주관한 한글 나눔 사업의 시작이었다. 1년간 부톤 섬에서 아이들에게 한글 표기법을 가르치며 보낸 행복한 시간들이 문장 하나하나로 남아 책속에 담겼다.
“인도네시아 부톤 섬에는 찌아찌아족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말은 있지만 글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찌아찌아족은 그들의 글로 된 동화책이 없고, 연애편지도 쓸 수가 없다고 합니다. 훈민정음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 문화유산에 등재됐고 유네스코는 ‘세종대왕 문맹 퇴치상’을 제정하기도 했는데 그 대단함을 찌아찌아족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 갑니다.”
혼자 숙연해져서 마음속으로 출사표를 올리는데 세종대왕은 당연히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사진을 찍고 구경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인자하게 웃고만 계실 뿐. 그러나 그 인자한 웃음도 그날만큼은 나만을 향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힘을 얻고 돌아섰다.(146쪽)
작은 섬에서 한글 나눔을 위해 혼신을 다하던 정덕영 씨가 비자 갱신을 위해 잠시 귀국했을 때,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에 서서 고해 올린 말이다. 더 많은 이들이 알면 좋을 만한 반가운 이야기였기에 나는 이 책을 다 읽기도 전에 망설임 없이 추천도서 후보로 올렸다. 그런데 추천위원 회의에 가서 “그 사업 엎어졌대요.”라는 말을 들었다. 별안간 하늘빛이 바뀌었다. 당장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니 기사들이 줄줄이 뜬다.
찌아찌아족 한글 보급 사실상 무산 위기
(노컷뉴스 2011.10.9)
찌아찌아족 한글 도입 진통
바우바우시 “훈민정음학회와 결별”…경제지원 갈등인 듯
(중앙일보 2011.10.10)
공교롭게도 이 책의 초판 발행일은 2011년 10월 9일, 반갑지 않은 기사가 신문에 처음 난 날도 2011년 10월 9일이다. ‘와~!’라는 탄성은 순식간에 ‘아~!’라는 탄식으로 바뀌었다. 길을 잃어 버렸다. 하지만 이 사실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고,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다. 또 함께 움직여 현재 상황을 바꿀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었기 때문에 그냥 전진하기로 했다. 이 뜻 깊은 일을 국가와 국가 간, 그리고 사업을 주관한 단체와 서울시와의 마찰로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경제적 지원에 대한 이해가 서로 이루어지지 않아 중단되었다니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돈 때문에 한글 나눔 사업을 이대로 끝내버리겠다니, 이보다 더 무책임한 일이 있을까? 열심히 한글 표기법을 배우고, 익히고 있던 찌아찌아족은 앞으로 대체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인지. 그럴 거였으면 시작을 말았어야 한다.
‘아무쪼록 찌아찌아 족 어린이와 함께했던 시간이 한글 정착의 씨앗이 되어 그들의 문화가 활짝 꽃 피우기를 간절히 원한다.’ (11쪽)
중대한 일이 이토록 허무하게 끝나버릴 것을 알지 못했을 저자가 여는 글의 맨 끝에서 한 말이 더욱더 간절하게 다가왔다. ‘아무쪼록’과 ‘간절히’ 내가 바라는 것도 그와 같다. 서울시장도 바뀌었는데,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재빨리 나서 주었으면 좋겠다. 힘없는 자는 마음만 그러할 뿐, 손 놓고 바랄 수밖에 없음이 안타깝다. 물론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을 당장 바꾸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눔은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책상 하면 누구든 그 형상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그러나 언어로 표현하자면 곤란을 겪는다. ‘책이 있는 상’인지 ‘책을 읽는 상’인지부터 모호하다. ‘네 개의 다리 위에 널빤지를 붙인 상’이란 설명부터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인간 혁명이 시작된 곳’이란 거창한 설명을 붙이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문자로 정리를 하다 보면 그 책상의 실체가 분명해진다. 쉽게 말해, 개념이 잡히는 것이다.
문자의 중요성에 대해 이보다 쉽게 풀어 쓸 재간이 없어, 다른 책 속 글을 인용한다. <학교도서관저널> 11월호에도 『한국음식문화박물지』로 소개하였던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의 다른 저서 『미각의 제국』 초입 부분에 쓰인 글이다. 말은 있는데 그것을 적을 문자가 없다는 것. 우리에겐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 찌아찌아족에겐 언어는 있는데 문자가 없다. 그런 그들의 말을 2010년부터 한글로 표기하기로 했다. 그동안 할 수 없었던 문자 표기를 한글이 도와주게 된 것이다.
한글로 그들의 말을 적게 되면 찌아찌 아어는 지금보다 더 활발하게 쓰이게 될 것이다. 또한 그들의 문화, 생활은 문자로 새겨져 역사로 남을 것이다. 느낌, 생각도 맘껏 표현하고 그것을 많은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를 미래에 넘겨 줄 수 없을지도 모를 위기에 처한 인도네시아 한 소수 민족의 삶을 한글을 통해 구해낸다. 이보다 멋진 일이 또 있을까? 그 멋진 나눔을 위해 정덕영 선생이 2010년 인도네시아 부톤 섬으로 떠났다. 이것이 훈민정음학회에서 주관한 한글 나눔 사업의 시작이었다. 1년간 부톤 섬에서 아이들에게 한글 표기법을 가르치며 보낸 행복한 시간들이 문장 하나하나로 남아 책속에 담겼다.
“인도네시아 부톤 섬에는 찌아찌아족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말은 있지만 글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찌아찌아족은 그들의 글로 된 동화책이 없고, 연애편지도 쓸 수가 없다고 합니다. 훈민정음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 문화유산에 등재됐고 유네스코는 ‘세종대왕 문맹 퇴치상’을 제정하기도 했는데 그 대단함을 찌아찌아족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 갑니다.”
혼자 숙연해져서 마음속으로 출사표를 올리는데 세종대왕은 당연히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사진을 찍고 구경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인자하게 웃고만 계실 뿐. 그러나 그 인자한 웃음도 그날만큼은 나만을 향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힘을 얻고 돌아섰다.(146쪽)
작은 섬에서 한글 나눔을 위해 혼신을 다하던 정덕영 씨가 비자 갱신을 위해 잠시 귀국했을 때,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에 서서 고해 올린 말이다. 더 많은 이들이 알면 좋을 만한 반가운 이야기였기에 나는 이 책을 다 읽기도 전에 망설임 없이 추천도서 후보로 올렸다. 그런데 추천위원 회의에 가서 “그 사업 엎어졌대요.”라는 말을 들었다. 별안간 하늘빛이 바뀌었다. 당장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니 기사들이 줄줄이 뜬다.
찌아찌아족 한글 보급 사실상 무산 위기
(노컷뉴스 2011.10.9)
찌아찌아족 한글 도입 진통
바우바우시 “훈민정음학회와 결별”…경제지원 갈등인 듯
(중앙일보 2011.10.10)
공교롭게도 이 책의 초판 발행일은 2011년 10월 9일, 반갑지 않은 기사가 신문에 처음 난 날도 2011년 10월 9일이다. ‘와~!’라는 탄성은 순식간에 ‘아~!’라는 탄식으로 바뀌었다. 길을 잃어 버렸다. 하지만 이 사실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고,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다. 또 함께 움직여 현재 상황을 바꿀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었기 때문에 그냥 전진하기로 했다. 이 뜻 깊은 일을 국가와 국가 간, 그리고 사업을 주관한 단체와 서울시와의 마찰로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경제적 지원에 대한 이해가 서로 이루어지지 않아 중단되었다니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돈 때문에 한글 나눔 사업을 이대로 끝내버리겠다니, 이보다 더 무책임한 일이 있을까? 열심히 한글 표기법을 배우고, 익히고 있던 찌아찌아족은 앞으로 대체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인지. 그럴 거였으면 시작을 말았어야 한다.
‘아무쪼록 찌아찌아 족 어린이와 함께했던 시간이 한글 정착의 씨앗이 되어 그들의 문화가 활짝 꽃 피우기를 간절히 원한다.’ (11쪽)
중대한 일이 이토록 허무하게 끝나버릴 것을 알지 못했을 저자가 여는 글의 맨 끝에서 한 말이 더욱더 간절하게 다가왔다. ‘아무쪼록’과 ‘간절히’ 내가 바라는 것도 그와 같다. 서울시장도 바뀌었는데,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재빨리 나서 주었으면 좋겠다. 힘없는 자는 마음만 그러할 뿐, 손 놓고 바랄 수밖에 없음이 안타깝다. 물론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을 당장 바꾸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눔은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