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새책 깊게 읽기 - 선생님이 좋아하는 책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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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2 17:49 조회 8,297회 댓글 0건본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어떤 나라에 살았는지 알아요?” 하고 묻자, 몇몇 아이들이 “조선”이라고 답한다. 책에서도 봤고, 드라마에서도 봤단다.
“오늘 선생님이랑 같이 볼 책은 조선시대에 살던 유길준이라는 사람이 미국도 가고, 영국도 가고 프랑스도 가서 쓴 일기예요. 너희들 혹시 다른 나라에 가봤니?”
아뿔싸. 마지막 질문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여름방학에 다녀온 태국부터, 아빠가 출장 다녀온 중국, 엄마가 여행 다녀온 캐나다까지 자기가 아는 나라 이름을 모두 쏟아낸다. 이재원은 “니하오마, 곤니찌와” 하고 다른 나라말을 할 줄 안다며 신이 났다. 사촌누나가 공부를 잘해서 호주에 갔다며 자랑하는 민수 이야기까지 듣고, 책을 펼쳤다.
책의 맨 앞 장에 적혀있는 “여행의 시작 1883년 7월 15일” 첫 부분을 읽자마자 채연이가 깜짝 놀란다. “우리 엄마는 천구백 몇 년에 태어났다고 했는데, 저 때는 천팔백 몇 년이네요.” 2004년에 태어난 우리 반 아이들에게는 참 옛날 일이다. 눈썰미 좋은 양재원은 주황머리 외국인을 보며 깜짝 놀라 달아나는 조선 사람들의 모습도 놓치지 않는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그림을 보고는 “배는 진짜 같은데, 사람들은 인형 같다.” 하고 평을 한다. 진짜 배 말이 나왔으니, 진짜 배 타본 이야기가 빠질 수 없지. 한강에서 탄 유람선이며, 바다에서 낚시할 때 탄 배 이야기까지 끝이 없다. 마차를 타는 모습을 보고는 외가가 경주인 세영이가 외할머니랑 진짜 말이 모는 마차를 타봤다며 좋아한다. 어린이대공원에서 말 탄 이야기도 들린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다음 장으로 넘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 100년도 넘은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급할 것 없지.
조선 외교사절단 보빙사가 미국 대통령을 만난 다음에 뉴욕으로 돌아왔다. 미국의 병원, 신문사, 학교 등 새로운 곳을 둘러보느라 바쁘다. “피어슨 국장이 미국의 우편 제도에 대해 설명해 주었어. 홍영식 부사가 특히 큰 관심을 보였지. 집배원들은 배달할 편지를 정리하느라 바빠서 우리는 안중에도 없어보였어.”(23쪽)
“나 홍영식 알아요. 우체국 처음 만든 사람이잖아요.”
“미국에서 우체국 구경하고 우리나라에도 만들었나 봐요.”
“『딩동딩동 편지 왔어요』에서 읽었어요.”
찬언이와 세영이가 ‘홍영식’ 이름만 듣고도 우체국을 만든 사람이라고 단번에 알아맞힌다. 아이들이 똑똑하니 대견하다고 칭찬해야 하는데 미안하고 안쓰럽다. 『딩동딩동 편지 왔어요』는 <학교도서관저널>에서 추천한 좋은 책이라 학년 권장도서가 되었다. 거기서 끝이면 좋으련만 권장도서 10권을 읽고 독서 시험을 보았다. 시험을 잘 본 사람은 독서 골든벨에 나가서 경기를 했다. 덕분에 처음부터 끝까지 책 내용을 달달 외운 아이들도 여럿이다. 어른들의 욕심이 미안하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도록 돕기 위한 방법인데, 이런 시험 때문에 책 읽기가 싫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바닥에 둥그렇게 앉아 이렇게 책을 읽어주며 미안한 마음을 달랜다.
느릿느릿 책을 읽으니 다섯째 장을 넘길 즈음 집중력이 떨어진다. 1학년이니 그럴 수밖에. 태현이는 아예 몸을 돌려 앉아 예찬이와 이야기한다.
“자, 이번에는 퀴즈! 내가 말하는 것이 뭔지 한 번 맞춰보세요. ‘종업원을 따라 작은 방으로 들어갔더니, 문이 사르르 닫히며 붕 하고 위로 떠올랐어. 모두들 지진이라도 난 줄 알고 꽥 소리를 질렀지!’(10쪽)”하고 책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문제로 낸다. 흩어졌던 아이들이 흥미를 가진다. 정답을 알고 난 다음에 낄낄 웃으며 “엘리베이터도 모르나?”, “그때는 엘리베이터가 없었으니까 그렇지.” 한다.
좋은 책을 골라 아이들에게 권하면서 가장 어려울 때는 아이들이 그 책을 재미없어 할 때다. 권장도서와 이달의 새 책을 잔뜩 꽂아 놓아도 아이들은 보는 둥 마는 둥 한다. 요즘 우리 반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은 『곤충백과』, 『수수께끼』이다. 겉장이 너덜너덜한 책을 서로 보겠다고 다투는 아이들을 보면서 정말 좋은 책은 어떤 책인지 고민이 된다. 추천위원 선생님들이 만장일치로 추천한 『조선 선비 유길준의 세계 여행』은 아이들이 어떻게 볼까 더 궁금했다. 똑똑이 한나와 세영이에게 물으니 “재미있었어요. 마음에 들어요.” 한다. 워낙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물었으니 믿음이 가지 않았다. 예찬이는 재미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엘리베이터도 모르고 화장실도 모르는 건 웃기다고 한다. 책 읽기를 힘들어하는 태산이와 슬우에게 물어보니 녀석들도 재미있었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파도가 돌 부시는 게 재미있었어요.” “미국 사람들이 막 불 끄는 게 웃겨요.” 한다. 조선인 최초로 세계 여행을 한 유길준의 눈에 비친 다른 나라가 어땠는지 기대한 1학년 초보 선생의 욕심에 웃음이 났다. 그래, 재미있다니 다행이다.
“오늘 선생님이랑 같이 볼 책은 조선시대에 살던 유길준이라는 사람이 미국도 가고, 영국도 가고 프랑스도 가서 쓴 일기예요. 너희들 혹시 다른 나라에 가봤니?”
아뿔싸. 마지막 질문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여름방학에 다녀온 태국부터, 아빠가 출장 다녀온 중국, 엄마가 여행 다녀온 캐나다까지 자기가 아는 나라 이름을 모두 쏟아낸다. 이재원은 “니하오마, 곤니찌와” 하고 다른 나라말을 할 줄 안다며 신이 났다. 사촌누나가 공부를 잘해서 호주에 갔다며 자랑하는 민수 이야기까지 듣고, 책을 펼쳤다.
책의 맨 앞 장에 적혀있는 “여행의 시작 1883년 7월 15일” 첫 부분을 읽자마자 채연이가 깜짝 놀란다. “우리 엄마는 천구백 몇 년에 태어났다고 했는데, 저 때는 천팔백 몇 년이네요.” 2004년에 태어난 우리 반 아이들에게는 참 옛날 일이다. 눈썰미 좋은 양재원은 주황머리 외국인을 보며 깜짝 놀라 달아나는 조선 사람들의 모습도 놓치지 않는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그림을 보고는 “배는 진짜 같은데, 사람들은 인형 같다.” 하고 평을 한다. 진짜 배 말이 나왔으니, 진짜 배 타본 이야기가 빠질 수 없지. 한강에서 탄 유람선이며, 바다에서 낚시할 때 탄 배 이야기까지 끝이 없다. 마차를 타는 모습을 보고는 외가가 경주인 세영이가 외할머니랑 진짜 말이 모는 마차를 타봤다며 좋아한다. 어린이대공원에서 말 탄 이야기도 들린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다음 장으로 넘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 100년도 넘은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급할 것 없지.
조선 외교사절단 보빙사가 미국 대통령을 만난 다음에 뉴욕으로 돌아왔다. 미국의 병원, 신문사, 학교 등 새로운 곳을 둘러보느라 바쁘다. “피어슨 국장이 미국의 우편 제도에 대해 설명해 주었어. 홍영식 부사가 특히 큰 관심을 보였지. 집배원들은 배달할 편지를 정리하느라 바빠서 우리는 안중에도 없어보였어.”(23쪽)
“나 홍영식 알아요. 우체국 처음 만든 사람이잖아요.”
“미국에서 우체국 구경하고 우리나라에도 만들었나 봐요.”
“『딩동딩동 편지 왔어요』에서 읽었어요.”
찬언이와 세영이가 ‘홍영식’ 이름만 듣고도 우체국을 만든 사람이라고 단번에 알아맞힌다. 아이들이 똑똑하니 대견하다고 칭찬해야 하는데 미안하고 안쓰럽다. 『딩동딩동 편지 왔어요』는 <학교도서관저널>에서 추천한 좋은 책이라 학년 권장도서가 되었다. 거기서 끝이면 좋으련만 권장도서 10권을 읽고 독서 시험을 보았다. 시험을 잘 본 사람은 독서 골든벨에 나가서 경기를 했다. 덕분에 처음부터 끝까지 책 내용을 달달 외운 아이들도 여럿이다. 어른들의 욕심이 미안하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도록 돕기 위한 방법인데, 이런 시험 때문에 책 읽기가 싫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바닥에 둥그렇게 앉아 이렇게 책을 읽어주며 미안한 마음을 달랜다.
느릿느릿 책을 읽으니 다섯째 장을 넘길 즈음 집중력이 떨어진다. 1학년이니 그럴 수밖에. 태현이는 아예 몸을 돌려 앉아 예찬이와 이야기한다.
“자, 이번에는 퀴즈! 내가 말하는 것이 뭔지 한 번 맞춰보세요. ‘종업원을 따라 작은 방으로 들어갔더니, 문이 사르르 닫히며 붕 하고 위로 떠올랐어. 모두들 지진이라도 난 줄 알고 꽥 소리를 질렀지!’(10쪽)”하고 책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문제로 낸다. 흩어졌던 아이들이 흥미를 가진다. 정답을 알고 난 다음에 낄낄 웃으며 “엘리베이터도 모르나?”, “그때는 엘리베이터가 없었으니까 그렇지.” 한다.
좋은 책을 골라 아이들에게 권하면서 가장 어려울 때는 아이들이 그 책을 재미없어 할 때다. 권장도서와 이달의 새 책을 잔뜩 꽂아 놓아도 아이들은 보는 둥 마는 둥 한다. 요즘 우리 반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은 『곤충백과』, 『수수께끼』이다. 겉장이 너덜너덜한 책을 서로 보겠다고 다투는 아이들을 보면서 정말 좋은 책은 어떤 책인지 고민이 된다. 추천위원 선생님들이 만장일치로 추천한 『조선 선비 유길준의 세계 여행』은 아이들이 어떻게 볼까 더 궁금했다. 똑똑이 한나와 세영이에게 물으니 “재미있었어요. 마음에 들어요.” 한다. 워낙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물었으니 믿음이 가지 않았다. 예찬이는 재미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엘리베이터도 모르고 화장실도 모르는 건 웃기다고 한다. 책 읽기를 힘들어하는 태산이와 슬우에게 물어보니 녀석들도 재미있었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파도가 돌 부시는 게 재미있었어요.” “미국 사람들이 막 불 끄는 게 웃겨요.” 한다. 조선인 최초로 세계 여행을 한 유길준의 눈에 비친 다른 나라가 어땠는지 기대한 1학년 초보 선생의 욕심에 웃음이 났다. 그래, 재미있다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