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새책 깊게 읽기 - 미술관을 나와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간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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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8 16:15 조회 8,434회 댓글 0건본문
‘세상 참 좋아졌네. 좀 어질어질 하겠지만 집에서도 3D 영상을 볼 수 있게 되다니!’ 이런 생각을 하며 3D-TV 광고를 보고 있자니 광고 속 모나리자는 3D 영상을 보기 위해 입체 안경을 쓰고 누워있고, 고흐는 소파에 앉아 클림트의 <키스> 커플을 감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최첨단 신기술 전자제품 광고에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미술작품과 화가가 등장하는 것을 보며 일상생활과는 멀게 느껴졌던 순수예술이 조금만 신경을 써서 살펴보면 구석구석에서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에는 베토벤의 <Ich Liebe Dich>가 깔리고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날>에는 비발디의 <사계> 선율이 흘러 마음을 사로잡는다. 너무 구식 노래라서 잘 모르겠다면 미국의 팝가수 스윗박스의 노래와 신화의 <TOP>를 들어보시라. 스윗박스는 거의 모든 노래에 클래식을 차용했고, <TOP>에는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들어 있다.
특히 광고에서 순수예술을 차용한 예는 영국의 토마스배럿이 비누 광고에 존 에버렛 밀레이경의 그림 <어린이의 세계>를 이용하기 시작한 188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광고와 예술』, 배리 호프먼, 2009),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에 반바지를 입힌 청바지 광고, 앵그르의 <샘>을 차용한 향수 광고, 마티스의 <붉은 방>을 이용한 에어컨 광고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사례를 찾아 볼 수 있다.
『명화의 재탄생』은 저자가 미술관보다 크리스마스카드나 어머니의 손거울 뒷면에서 먼저 명화를 만났던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많은 명화들이 대중문화로 재생산되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여러 명화에 등장하는 천사 중 가장 사랑스러운 라파엘로의 천사는 커피숍의 로고가 되어 우리를 맞는다. 헐리우드의 시상식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여배우들의 드레스는 존 싱어 사전트가 그린 <마담X>의 검은 드레스와 경쟁한다. 영화 <300>의 복근을 자랑하는 전사들은 자크 루이 다비드의 <사비니 여인의 중재>에 등장하는 헐벗은 전사들이 살아 돌아온 것만 같다.
책에 소개된 명화들은 원작의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하는가 하면 차용되는 과정에서 입맛대로 바뀌어 원작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표현되기도 한다. 미국의 어머니상으로 잘 알려진 휘슬러의 그림은 어머니날 기념우표의 그림으로도 쓰였지만, 사실 휘슬러는 그림이 사상과 감정을 전달하는 도구가 되는 것에 반대하여 그림의 제목도 <회색과 검정의 배열>로 붙였다고 한다.
원작자의 의도에 맞든 그렇지 않든, 순수예술이 대중문화 곳곳에 스며 있다는 것을 저자는 많은 사례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그렇다면 왜 대중문화는 끊임없이 순수예술을 끌어들이는 것인가? 처음 광고에 명화를 이용했던 토마스 배럿은 고급스러움을 추구하는 대중의 갈망에 부합하기 위해 명화를 사용했고 대중들은 그 제품을 사용하면서 귀족적이고 고귀한 인간이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짧은 시간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깊은 인상을 남기기 위한 대중문화의 전략은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대신 이미 예술성을 검증 받은 순수예술을 이용함으로써 대중문화를 한층 차원 높은 고급문화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순수 예술이 상업적 이유로 대중문화에 이용되고 있다 해도 지금도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있는 대중문화 속 명화들은 원본과는 다른 문화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제 미술관에 걸려 있는 원본보다 그것이 대중문화로 재탄생한 이미지에 더 익숙하다. 미술 작품이 단순히 물리적으로 존재해서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에게 인식됨으로써 가치를 지니는 것이라면, 대중문화 속에 재현된 이미지는 그 인식에 중대한 영향을 끼쳐서 원본의 가치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중략)
이러한 대중문화 속 명화의 재탄생은 원본의 천박한 왜곡일 수도 있지만 원본이 미술관에 갇혀 죽어가는 존재가 아니라 후대의 대중과 교류하고 살아 숨 쉬는 존재가 되는 길이기도 하다. (8쪽)
대중문화 속 명화는 미술관에 갇혀 박제가 돼 가는 명화를 한 걸음 더 가깝게 느끼도록 해 주는 고마운 안내자일까? 아니면 단지 대중문화의 소재로 값싸게 이용당하기만 하는 것일까? 그 어느 쪽이든 명화가 대중문화 속에서 재탄생되어 또 다른 문화가 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 책이 대중문화 속 순수예술을 새로운 눈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해주리라 기대한다. 또한 저자의 말대로 책을 읽은 청소년들이 영감을 받아 새로운 재창조의 주체가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에는 베토벤의 <Ich Liebe Dich>가 깔리고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날>에는 비발디의 <사계> 선율이 흘러 마음을 사로잡는다. 너무 구식 노래라서 잘 모르겠다면 미국의 팝가수 스윗박스의 노래와 신화의 <TOP>를 들어보시라. 스윗박스는 거의 모든 노래에 클래식을 차용했고, <TOP>에는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들어 있다.
특히 광고에서 순수예술을 차용한 예는 영국의 토마스배럿이 비누 광고에 존 에버렛 밀레이경의 그림 <어린이의 세계>를 이용하기 시작한 188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광고와 예술』, 배리 호프먼, 2009),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에 반바지를 입힌 청바지 광고, 앵그르의 <샘>을 차용한 향수 광고, 마티스의 <붉은 방>을 이용한 에어컨 광고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사례를 찾아 볼 수 있다.
『명화의 재탄생』은 저자가 미술관보다 크리스마스카드나 어머니의 손거울 뒷면에서 먼저 명화를 만났던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많은 명화들이 대중문화로 재생산되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여러 명화에 등장하는 천사 중 가장 사랑스러운 라파엘로의 천사는 커피숍의 로고가 되어 우리를 맞는다. 헐리우드의 시상식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여배우들의 드레스는 존 싱어 사전트가 그린 <마담X>의 검은 드레스와 경쟁한다. 영화 <300>의 복근을 자랑하는 전사들은 자크 루이 다비드의 <사비니 여인의 중재>에 등장하는 헐벗은 전사들이 살아 돌아온 것만 같다.
책에 소개된 명화들은 원작의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하는가 하면 차용되는 과정에서 입맛대로 바뀌어 원작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표현되기도 한다. 미국의 어머니상으로 잘 알려진 휘슬러의 그림은 어머니날 기념우표의 그림으로도 쓰였지만, 사실 휘슬러는 그림이 사상과 감정을 전달하는 도구가 되는 것에 반대하여 그림의 제목도 <회색과 검정의 배열>로 붙였다고 한다.
원작자의 의도에 맞든 그렇지 않든, 순수예술이 대중문화 곳곳에 스며 있다는 것을 저자는 많은 사례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그렇다면 왜 대중문화는 끊임없이 순수예술을 끌어들이는 것인가? 처음 광고에 명화를 이용했던 토마스 배럿은 고급스러움을 추구하는 대중의 갈망에 부합하기 위해 명화를 사용했고 대중들은 그 제품을 사용하면서 귀족적이고 고귀한 인간이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짧은 시간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깊은 인상을 남기기 위한 대중문화의 전략은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대신 이미 예술성을 검증 받은 순수예술을 이용함으로써 대중문화를 한층 차원 높은 고급문화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순수 예술이 상업적 이유로 대중문화에 이용되고 있다 해도 지금도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있는 대중문화 속 명화들은 원본과는 다른 문화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제 미술관에 걸려 있는 원본보다 그것이 대중문화로 재탄생한 이미지에 더 익숙하다. 미술 작품이 단순히 물리적으로 존재해서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에게 인식됨으로써 가치를 지니는 것이라면, 대중문화 속에 재현된 이미지는 그 인식에 중대한 영향을 끼쳐서 원본의 가치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중략)
이러한 대중문화 속 명화의 재탄생은 원본의 천박한 왜곡일 수도 있지만 원본이 미술관에 갇혀 죽어가는 존재가 아니라 후대의 대중과 교류하고 살아 숨 쉬는 존재가 되는 길이기도 하다. (8쪽)
대중문화 속 명화는 미술관에 갇혀 박제가 돼 가는 명화를 한 걸음 더 가깝게 느끼도록 해 주는 고마운 안내자일까? 아니면 단지 대중문화의 소재로 값싸게 이용당하기만 하는 것일까? 그 어느 쪽이든 명화가 대중문화 속에서 재탄생되어 또 다른 문화가 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 책이 대중문화 속 순수예술을 새로운 눈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해주리라 기대한다. 또한 저자의 말대로 책을 읽은 청소년들이 영감을 받아 새로운 재창조의 주체가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