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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합니다! 책으로 죽기도 하고, 책으로 살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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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21 22:38 조회 6,63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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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아, 너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읽었어? 니체가 쓴 책인데.”
“누구?”
“니체.”
“아니. 아직 안 읽었는데?”
“그럼 『쇼펜하우어 인생론』은 읽었어?”
“쇼펜하우어? 누군데?”

“독일 철학자야. 여태 쇼펜하우어와 니체 책을 못 읽었단 말이야? 그러면서 무슨 책을 읽었다고 그러냐?”
고등학교 1학년 가을이었다. 그 친구가 갑자기 나한테 물었다. 우리 둘은 학교 도서실에 자주 드나들었
고, 책에 대해서도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무렵 조선인 차별에 화가 나 총을 들고 인질극을 벌였던 일
본 조직폭력배 김희로가 쓴 『분노는 폭포처럼』을 읽고, 석방 서명을 받으러 다녔다. 그 친구한테도 한 권 읽
으라고 주었는데,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뜬금없이 ‘쇼펜하우어’와 ‘니체’가 쓴 책을 읽어보았느
냐고 물었다.

세상 살 가치가 없다던 친구
그는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보았다. 그는 세상은 허무하고, 살 가치가 없다, 여자보다는 개를 사랑하는 게
차라리 낫다, 사람은 벌레고, 원숭이보다 나을 게 없다, 아니 원숭이보다 더 잔인하고 비열하다, 인간은 욕
망 때문에 서로를 죽이고 잡아먹는다, 이런 세상은 살 가치가 없고, 여자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태어
나게 하는 건 죄라고 했다. 그러면서 네가 하고 있는 서명운동이 무슨 의미가 있냐, 국가나 민족이 무슨 소
용이 있냐고 했다. 산다는 게 다 허무인데….

그날 학교 도서실에 갔다. 『쇼펜하우어 인생론』은 있는데, 니체가 썼다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
다』는 없었다. 내가 다니던 서울공고는 큰 강당 2층 전체가 도서관이었다. 웬만한 책은 다 있었다. 그런데 『짜라-』는 없었다. 『쇼펜하우어 인생론』을 보니 참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그래도 끝까지 다 읽었다. 여자에 대해 쓴 글을 보니 그 친구가 하던 말 그대로다. 그 문장을 나한테 그대로 쏟아놓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엔 주로 청계천 헌책방을 순례하였다. 한두 권 사 들고 남산, 또는 창경궁에서 창
덕궁(비원) 담을 넘어 들어가 숲속에서 책을 읽거나 자다 오곤 했다. 그 주에 『짜라-』를 사러 갔는데, 겨우 한 집에서 표지가 누렇게 바랜 얇은 책을 구했다. 1948년인가 나온 책이었다. 『짜라-』는 재미있어서 그날 바로 다 읽었다. 마치 긴 시를 한 편 읽은 느낌이었다. 신은 죽었다. 초인이 되어 인간을 사랑하라. 성자는 인간을 욕하면서 차라리 숲속 짐승들한테 가라고 하지만 초인은 인간 세계로 내려와 세상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삶에 대해 노래한다. 남산 기슭에 앉아서 읽었는데, 다 읽고 고개를 드니 남산 아래로 용산과 한강, 그 건너 노량진 위로 어둠이 어슴프레 내리고 있었다. 뭔가 모를 감동에 온몸이 젖어들었다.

책 에서 내가 살 길을 찾다 쇼펜하우어와 니체 책을 읽고 나서 그 친구와 격렬한 토론을 여러 차례 했다. 그는 주로 쇼펜하우어와 허무에 대해 이야기하였고, 나는 주로 짜라투스트라와 초인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나는 점차 그가 펼치는 치밀한 논리와 결연한 생각에 동화되기 시작했고, 인간 사회와 내 삶에 대해 회의가 들기 시작하였다. 끝내 1학년 말에 자살을 결심하고, 2학년 여름방학 때 자살을 결행했다. 내가 선택한 자살 방법은 사회악을 퍼뜨리는 사람들을 죽이고, 나는 사형을 당하는 것이다. 그 무렵 읽었던 러시아 소설 영향이다. 내가 자살하기 위해 공격하기로 선택한 대상이 동대문에 있던 왜색종교 한국본부였다. 8월 13일 새벽, 혼자 도끼와 칼, 휘발유를 들고 쳐들어갔다.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이려다 잠에서 깬 신도들, 신고 받고 출동한 경찰과 격투를 벌이다 잡혔다. 칼과 도끼를 휘둘러 몇 명이 중경상을 입었지만 죽지는 않았다.

오히려 사건이 알려지면서 애국학생으로 둔갑하였고, 각계각층 구명운동 덕분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나는 자살에 실패했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 졸업 뒤 자살했다. 신도들과 경찰 폭행으로 망가진 몸을 치료하고, 10월 중순 쯤에 복학했다. 그 사건 이후 읽은 책이 『백범일지』다. 백범 김구 아들인 김신 씨가 나를 불러서 직접 주셨다. 1947년에 나온 책인데, 몇 번을 읽었다. 「나의 소원」은 외우다시피 했다. 백범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는 교육의 힘으로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했다. 나는 여덟 달 동안 독서실에 박혀서 죽어라 공부해서 겨우 교대에 진학하고, 교사가 되었다. 나는 요즘도 백범에 관한 책은 보는 대로 사서 읽는다. 나는 아직도 백범이 소원한 아름다운 나라를 꿈꾼다. 나는 청소년기에 책 때문에 죽을 뻔했고, 책에서 내가 살 길을 찾기도 했다. 나는 그래서 어린이들이 삶을 가꾸는 좋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권리를 누려야 하고, 청소년들이 살길을 열어주는 독서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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