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새책 깊게 읽기 육식주의에 젖어 동물권리를 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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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9 19:42 조회 8,816회 댓글 0건본문
얼마 전 한 방송에서 방영 중인 세계여행기를 보다가 코코넛쥐를 요리해 먹는사람들을 보았다. 드넓은 메콩 삼각주지대에 있는 ‘벤째성’은 코코넛 삼림에 둘러싸인 비옥한 지역으로 특히 과수원과 논이 많은 섬인데, 벤째에서 코코넛을 재배하는 농부들은 코코넛 열매를 먹고 사는 코코넛쥐를 잡아서 먹기도 하고 귀한 손님이 오면 특별식으로 대접한다고 한다. 우리 민족이 여름 보양식으로 개고기를 먹어온 것처럼 지역의 음식문화는 사람들이 깃들어 사는 자연환경과 관계 깊다 하겠다. 최근의 한 통계를 보면 한국인의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소비량은 1990년 1인당 19.9㎏에서 2009년 36.8 ㎏으로 지난 20년 사이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한다.
우리가 얼마나 육식에 길들여져 있는지는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점심시간 풍경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고기반찬이 나오는 날이면 급식실 앞에서 줄서서 기다리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앞으로 앞으로 밀려드는 학생들 때문에 급식을 지도하는 교사들이 곤욕을 치른다.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까지 급식으로 점심을 제공하는 우리나라 학교의 점심시간 풍경은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은 왜 이렇게 고기반찬이 나오는 점심시간이면 흥분하는 것일까?
또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가 2010년 겨울 이후 우리나라의 농촌에서 소와 돼지, 오리며 닭 같은 가축의 씨를 거의 말리고 있다. 덩달아 전셋값을 비롯해온통 물가가 들썩이는 와중에 쇠고기, 돼지고기 같은 육류의 값이 엄청나게 올라 소비자의 장바구니를 더욱 가볍게 할 뿐더러 언땅을 파고 가축을 묻은 곳에서는 비 온 뒤 지하로 스며 들거나 날이 풀린 뒤 흘러나올 침출수가 어떤 2차 재앙을 불러올지도 걱정이다. 어떤 이는 ‘공장식 축산’이라는 비인도적인 행위를, 어떤 이는 ‘초동 대응 실패’를 성토하기도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인간은 왜 고기를 먹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다.
미국의 메사추세츠 대학에서 사회학과 심리학을 가르치면서 인간이 다른 인간들이나 동물, 환경과 맺는 관계를 이해하려는 학술적 연구와 그 관계를 개선하려는 사회활동을 활발하게 해온 사회심리학자 멜라니 조이는 인간의 육식 습관을 심리학 및 사회학적으로 접근하여 풀어나가면서 우리가 ‘고기를 먹으면 왜 안 되는 지’가 아니라 ‘고기를 왜 먹는지’를 이야기한다. 인간이 평등하듯이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것은 기본적인 전제이다.
저자는 수만 종의 동물 가운데 혐오감 없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왜 극소수인지, 그들을 먹는 일에 우리는 왜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지, 또 우리는 먹을 수 있는 동물과 먹을 수 없는 동물은 어떻게 구분하는지에 대해 질문한다. 이런 의문들을 풀어내는 핵심어로 저자는 ‘육식주의(carnism)’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고 다양한 사례와 연구 결과들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육식주의란 ‘왜 그러는지 생각지도 않고 고기를 먹’고 ‘그 행위의 근저에 있는 신념체계가 우리에게 보이지 않기’에 ‘당연한 것, 자연스러운 행위, 언제나 그래 왔고 앞으로 항상 그럴’ 것이라고 보게 만드는 그 신념체계에 대해 분석한다. 육식주의는 특정 동물을 먹는 일이 윤리적이며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신념체계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념체계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심리학적으로 접근하는데 시공을 넘나드는 다양한 연구 사례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에 대해 ‘귀엽다’, ‘충성스럽다’, ‘다정하다’, ‘영리하다’, ‘재미있다’, ‘애정 깊다’, ‘나를 보호해준다’는 생각을 하고 돼지를 상상했을 때는 ‘진창’ 또는 ‘땀’, ‘더럽다’, ‘멍청하다’, ‘게으르다’, ‘뚱뚱하다’, 그리고 ‘못생겼다’ 같은 말을 떠올린다고 한다. 매 학기마다 가르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보면 대부분의 학생이 개는 좋아하거나 사랑하는데 돼지는 역겹다고 느끼며, 자신과의 관계를 묘사해보라고 하면 개는 ‘당연히’ 친구이자 가족의 일원으로, 돼지는 식품으로 요약하는데 이때 저자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에 따라 설명을 덧붙이면서 육식주의를 이끌어낸다.
저자는 육류를 먹는 일은 ‘정상이며(normal), 자연스럽고(natural), 필요하다(necessary)’는 3N이 동물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행동에 내재하는 모순을 감추게 하고 우리가 어쩌다 그 모순을 알아채게 되더라도 그럴싸하게 해명하고 넘어가는 정신적, 정서적 눈가리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우리가 ‘돼지’ 하면 떠올리는 것은 그 ‘돼지다움(더러움, 게으름 등)’과 ‘먹을 수 있다는 점’뿐이라고 하면서 이런 방식으로 동물을 보는 데는 ‘인식의 트리오’라는 세 가지 방어기제인 ‘대상화, 몰개성화, 이분화’가 개입한다고 설명한다.
육식주의 아래에서 동물과 인간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입맛의 후천성, 공감 능력의 선천성, 다른 문화 다른 시대의 정신적 마비, 전장에서 총을 쏘지 않는 병사들 등각종 사례와 과학적 연구 결과들을 별도의 상자에 넣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 책은 ‘육식주의 이데올로기’ 의 실상을 벗기면서 동물권動物權에 대한 인도적인 인식을 키워줄 뿐 아니라 육식주의에 젖어 동물의 실상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을 위해 지구에 함께 깃들어 사는 동물에 대한 공감 능력을 회복하게 하는 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얼마나 육식에 길들여져 있는지는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점심시간 풍경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고기반찬이 나오는 날이면 급식실 앞에서 줄서서 기다리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앞으로 앞으로 밀려드는 학생들 때문에 급식을 지도하는 교사들이 곤욕을 치른다.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까지 급식으로 점심을 제공하는 우리나라 학교의 점심시간 풍경은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은 왜 이렇게 고기반찬이 나오는 점심시간이면 흥분하는 것일까?
또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가 2010년 겨울 이후 우리나라의 농촌에서 소와 돼지, 오리며 닭 같은 가축의 씨를 거의 말리고 있다. 덩달아 전셋값을 비롯해온통 물가가 들썩이는 와중에 쇠고기, 돼지고기 같은 육류의 값이 엄청나게 올라 소비자의 장바구니를 더욱 가볍게 할 뿐더러 언땅을 파고 가축을 묻은 곳에서는 비 온 뒤 지하로 스며 들거나 날이 풀린 뒤 흘러나올 침출수가 어떤 2차 재앙을 불러올지도 걱정이다. 어떤 이는 ‘공장식 축산’이라는 비인도적인 행위를, 어떤 이는 ‘초동 대응 실패’를 성토하기도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인간은 왜 고기를 먹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다.
미국의 메사추세츠 대학에서 사회학과 심리학을 가르치면서 인간이 다른 인간들이나 동물, 환경과 맺는 관계를 이해하려는 학술적 연구와 그 관계를 개선하려는 사회활동을 활발하게 해온 사회심리학자 멜라니 조이는 인간의 육식 습관을 심리학 및 사회학적으로 접근하여 풀어나가면서 우리가 ‘고기를 먹으면 왜 안 되는 지’가 아니라 ‘고기를 왜 먹는지’를 이야기한다. 인간이 평등하듯이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것은 기본적인 전제이다.
저자는 수만 종의 동물 가운데 혐오감 없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왜 극소수인지, 그들을 먹는 일에 우리는 왜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지, 또 우리는 먹을 수 있는 동물과 먹을 수 없는 동물은 어떻게 구분하는지에 대해 질문한다. 이런 의문들을 풀어내는 핵심어로 저자는 ‘육식주의(carnism)’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고 다양한 사례와 연구 결과들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육식주의란 ‘왜 그러는지 생각지도 않고 고기를 먹’고 ‘그 행위의 근저에 있는 신념체계가 우리에게 보이지 않기’에 ‘당연한 것, 자연스러운 행위, 언제나 그래 왔고 앞으로 항상 그럴’ 것이라고 보게 만드는 그 신념체계에 대해 분석한다. 육식주의는 특정 동물을 먹는 일이 윤리적이며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신념체계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념체계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심리학적으로 접근하는데 시공을 넘나드는 다양한 연구 사례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에 대해 ‘귀엽다’, ‘충성스럽다’, ‘다정하다’, ‘영리하다’, ‘재미있다’, ‘애정 깊다’, ‘나를 보호해준다’는 생각을 하고 돼지를 상상했을 때는 ‘진창’ 또는 ‘땀’, ‘더럽다’, ‘멍청하다’, ‘게으르다’, ‘뚱뚱하다’, 그리고 ‘못생겼다’ 같은 말을 떠올린다고 한다. 매 학기마다 가르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보면 대부분의 학생이 개는 좋아하거나 사랑하는데 돼지는 역겹다고 느끼며, 자신과의 관계를 묘사해보라고 하면 개는 ‘당연히’ 친구이자 가족의 일원으로, 돼지는 식품으로 요약하는데 이때 저자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에 따라 설명을 덧붙이면서 육식주의를 이끌어낸다.
저자는 육류를 먹는 일은 ‘정상이며(normal), 자연스럽고(natural), 필요하다(necessary)’는 3N이 동물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행동에 내재하는 모순을 감추게 하고 우리가 어쩌다 그 모순을 알아채게 되더라도 그럴싸하게 해명하고 넘어가는 정신적, 정서적 눈가리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우리가 ‘돼지’ 하면 떠올리는 것은 그 ‘돼지다움(더러움, 게으름 등)’과 ‘먹을 수 있다는 점’뿐이라고 하면서 이런 방식으로 동물을 보는 데는 ‘인식의 트리오’라는 세 가지 방어기제인 ‘대상화, 몰개성화, 이분화’가 개입한다고 설명한다.
육식주의 아래에서 동물과 인간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입맛의 후천성, 공감 능력의 선천성, 다른 문화 다른 시대의 정신적 마비, 전장에서 총을 쏘지 않는 병사들 등각종 사례와 과학적 연구 결과들을 별도의 상자에 넣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 책은 ‘육식주의 이데올로기’ 의 실상을 벗기면서 동물권動物權에 대한 인도적인 인식을 키워줄 뿐 아니라 육식주의에 젖어 동물의 실상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을 위해 지구에 함께 깃들어 사는 동물에 대한 공감 능력을 회복하게 하는 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