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새책 깊게 읽기 - 감추고 싶은 역사 그러나 용기 있게 진실과 마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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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22 22:35 조회 6,331회 댓글 0건본문
서울시 중학동 일본 대사관 앞에서는 매주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집회가 열린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여 짧은 퍼포먼스도 하고 의견발표도 하며 한 시간 남짓 시위를 한다. 20년 동한 한 주도 빠지지 않고 계속되어 온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수요시위의 모습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사회에 알려진 것은 1990년이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일본에게 당한 고통과 수모를 잊을 수 없는 우리 국민들에게는 ‘위안부’문제는 충격과 분노 그 자체였다. 하지만 슬그머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버렸다. ‘위안부’하면 떠오르는 ‘성폭력’, ‘매춘’ 등의 잘못된 인식과 한일 양국의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 꼭 청산해야 할 아픈 역사가 그냥 방치되어 버린 것이다. 2010년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위안부’에 관한 진실을 다시 한 번 돌이켜 볼 수 있는 청소년들을 위한 책이 출간 된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 줬어요. ‘위안부’라는 이름이지요. ‘위안부(Comfort Woman)’, 어떻게 이런아름다운 이름을 나에게 붙일 수 있었단 말인가요? 나는 누군가를 위로해 주는 여자가 아니라 노예였어요. 그것도 성 노예였지요. -엘렌” (37쪽)
우리가 ‘정신대’라고 잘못 알고 있는 ‘위안부’는 일본군에 의해 저질러진 전쟁범죄다. 전쟁 중 점령지의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도 용납될 수 없는 범죄인데 ‘위안부’는 식민지 소녀들을 군의 성 노예로 만든 것이다. 말하자면 국가가 인정한 식민지 여성들에 대한 조직적인 집단 성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군 위안소 내에서는 ‘위안부’들에 대한 구타와 고문, 성병감염, 인공유산, 불임수술, 자궁 적출에 살인까지 다양한 범죄가 저질러졌음을 생존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위안부’의 범위와 규모는 한국, 중국, 필리핀, 동남아 소녀들은 물론 점령지 내의 백인소녀들까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이는 독일의 나치가 유럽 전역에서 저지른 유태인 탄압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이런 만행이 어떻게 때문에 피해자 스스로도 드러내놓고 이야기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피해자들이 전쟁터에서 죽음을 당했고 생존한 소녀들은 자신이 당한 일이 수치스러워 고향에도 돌아가지 못했다. 가해국인 일본은 당연히 자신의 죄를 숨기려 했고 피해국은 죄책감에 피해 여성들을 모른 척 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아무 잘못도 없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든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고 살아야 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몰라서 그렇게 심하게 당했어요. 알면 덜 당할 것 아니겠어요? …… 그래도 이렇게 내가 당한 일을 증언하는 것은 내가 당한 일을 알려서 여러분들은 나처럼 당하지 말아야 하니까…….” (239쪽)
‘위안부’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평생을 바친 윤정옥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위안부’는 일본의 의도대로 진실을 감춘 채 역사 속에 묻혔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신의 치욕스러운 과거를 용기 있게 밝힌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없었다면 ‘위안부’ 문제가 이렇게 명백하게 드러날 수 없었을 것이다.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 많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비로소 어두운 과거를 털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일본의 추악한 범죄가 생생한 증언으로 되살아 난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활약으로 국제 사회가 ‘위안부’ 문제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일이 진행 되는 동안 우리 정부와 우리 사회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얼마나 무심했는지 부끄러울 뿐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닌 일본 정부 차원의 사죄다. 일본정부는 지금도 ‘위안부’ 문제를 정부 차원이 아닌 민간 차원에서 해결하려고 한다. 아직도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와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이 문제를 접근한다면 일본정부도 언제까지나 모른 척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위안부’와 같은 문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세계 곳곳의 전쟁터에서 여성들이 성폭력을 당하고 있다. 보스니아 내전에서 벌어진 집단 강간, 르완다 등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녀들에 대한 폭력은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도 베트남전에 참전했을 때 많은 베트남 여성들을 강간, 고문, 살해했다. 물론 우리 정부도 베트남의 피해 여성들에게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역시 부끄러운 일이다. ‘위안부’ 문제는 이미 한 지역의 과거 문제가 아닌 반전, 여성 인권운동으로 확대되고 있다.
“세상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를 역사적 진실에 다가서게 합니다. 편견과 독선을 버리고 서로의 아픈 곳을 보듬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겠지요.” (28쪽)
이 책은 이 엄청난 이야기들을 손녀에게 들려주듯 찬찬히 풀어낸다. 덧붙이지도 않은 있는 그대로의 증언과 봉사자들의 눈을 통해 말해준다. ‘위안부’의 명칭부터 시작한 서사적 진술은 우리를 그 당시로 이끌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 어떤 증언이나 설명보다 더 생생하게 다가온 것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직접 그린 그림과 사진이다. 할머니들의 그림 속에는 과거의 고통과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또 사진 속 할머니들의 깊고 맑은 눈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실을 전해준다. 후손들에게 이 아프고 부끄러운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해 다시는 이런 고통을 겪지도, 주어서도 안 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사회에 알려진 것은 1990년이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일본에게 당한 고통과 수모를 잊을 수 없는 우리 국민들에게는 ‘위안부’문제는 충격과 분노 그 자체였다. 하지만 슬그머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버렸다. ‘위안부’하면 떠오르는 ‘성폭력’, ‘매춘’ 등의 잘못된 인식과 한일 양국의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 꼭 청산해야 할 아픈 역사가 그냥 방치되어 버린 것이다. 2010년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위안부’에 관한 진실을 다시 한 번 돌이켜 볼 수 있는 청소년들을 위한 책이 출간 된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 줬어요. ‘위안부’라는 이름이지요. ‘위안부(Comfort Woman)’, 어떻게 이런아름다운 이름을 나에게 붙일 수 있었단 말인가요? 나는 누군가를 위로해 주는 여자가 아니라 노예였어요. 그것도 성 노예였지요. -엘렌” (37쪽)
우리가 ‘정신대’라고 잘못 알고 있는 ‘위안부’는 일본군에 의해 저질러진 전쟁범죄다. 전쟁 중 점령지의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도 용납될 수 없는 범죄인데 ‘위안부’는 식민지 소녀들을 군의 성 노예로 만든 것이다. 말하자면 국가가 인정한 식민지 여성들에 대한 조직적인 집단 성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군 위안소 내에서는 ‘위안부’들에 대한 구타와 고문, 성병감염, 인공유산, 불임수술, 자궁 적출에 살인까지 다양한 범죄가 저질러졌음을 생존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위안부’의 범위와 규모는 한국, 중국, 필리핀, 동남아 소녀들은 물론 점령지 내의 백인소녀들까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이는 독일의 나치가 유럽 전역에서 저지른 유태인 탄압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이런 만행이 어떻게 때문에 피해자 스스로도 드러내놓고 이야기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피해자들이 전쟁터에서 죽음을 당했고 생존한 소녀들은 자신이 당한 일이 수치스러워 고향에도 돌아가지 못했다. 가해국인 일본은 당연히 자신의 죄를 숨기려 했고 피해국은 죄책감에 피해 여성들을 모른 척 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아무 잘못도 없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든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고 살아야 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몰라서 그렇게 심하게 당했어요. 알면 덜 당할 것 아니겠어요? …… 그래도 이렇게 내가 당한 일을 증언하는 것은 내가 당한 일을 알려서 여러분들은 나처럼 당하지 말아야 하니까…….” (239쪽)
‘위안부’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평생을 바친 윤정옥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위안부’는 일본의 의도대로 진실을 감춘 채 역사 속에 묻혔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신의 치욕스러운 과거를 용기 있게 밝힌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없었다면 ‘위안부’ 문제가 이렇게 명백하게 드러날 수 없었을 것이다.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 많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비로소 어두운 과거를 털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일본의 추악한 범죄가 생생한 증언으로 되살아 난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활약으로 국제 사회가 ‘위안부’ 문제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일이 진행 되는 동안 우리 정부와 우리 사회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얼마나 무심했는지 부끄러울 뿐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닌 일본 정부 차원의 사죄다. 일본정부는 지금도 ‘위안부’ 문제를 정부 차원이 아닌 민간 차원에서 해결하려고 한다. 아직도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와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이 문제를 접근한다면 일본정부도 언제까지나 모른 척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위안부’와 같은 문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세계 곳곳의 전쟁터에서 여성들이 성폭력을 당하고 있다. 보스니아 내전에서 벌어진 집단 강간, 르완다 등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녀들에 대한 폭력은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도 베트남전에 참전했을 때 많은 베트남 여성들을 강간, 고문, 살해했다. 물론 우리 정부도 베트남의 피해 여성들에게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역시 부끄러운 일이다. ‘위안부’ 문제는 이미 한 지역의 과거 문제가 아닌 반전, 여성 인권운동으로 확대되고 있다.
“세상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를 역사적 진실에 다가서게 합니다. 편견과 독선을 버리고 서로의 아픈 곳을 보듬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겠지요.” (28쪽)
이 책은 이 엄청난 이야기들을 손녀에게 들려주듯 찬찬히 풀어낸다. 덧붙이지도 않은 있는 그대로의 증언과 봉사자들의 눈을 통해 말해준다. ‘위안부’의 명칭부터 시작한 서사적 진술은 우리를 그 당시로 이끌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 어떤 증언이나 설명보다 더 생생하게 다가온 것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직접 그린 그림과 사진이다. 할머니들의 그림 속에는 과거의 고통과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또 사진 속 할머니들의 깊고 맑은 눈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실을 전해준다. 후손들에게 이 아프고 부끄러운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해 다시는 이런 고통을 겪지도, 주어서도 안 된다고 말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