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새책 어른으로 살면서도 어른다움을 추슬러야 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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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01 00:31 조회 6,509회 댓글 0건본문
나는 내성적이다. 말을 잘 못한다. 두려운 게 많고, 잘 모르는 것도 너무 많다. 의연한 척이라도 하고 싶다. 슬픈 티, 힘든 티
는 내기 싫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어른은 척도 안 하고 티도 안 낸다. 그에 비하면 난 참 부끄럽다. 성인의 문턱을 넘은지 오래됐으나 아직도 어른이 아니니까. 이 책을 보며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을 떠올린다. 이제나저제나 내 꿈은 어른다운 어른 되기다. 그러면 내성적이어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을 지은 사람의 꿈도 여전히 어른 되기다. 과연 어떤 사람이기에 같은 꿈을 가졌을까. 그가 살아온 날은 이렇다. 고등학생 때부터 헌책방을 다니고, 대학생 때부터 자전거를 탄다. 우리말을 살리고, 골목길 문화를 외친다. 그는 남들이 돌보지 않는 것을 본다. 사라지는 것을 손으로 가리킨다. 게다가 겨우 보일러를 땔 만큼 가난하다. 가난해도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
아마 살아갈 날도 같을 것이다. 사는 나날은 부지런히 책으로 낸다. 벌써 사진책, 글쓰기책, 헌책방책 등 여덟 권이나 된다.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는 청소년책(푸른책)을 읽고 쓴 책이다. 그가 말하는 푸른책은 무슨 뜻일까. 제가 읽는 책들은 저 스스로 어른이 되어 가도록 길동무가 되고 어깨동무가 되는 책들이라고 여깁니다. 어린이책이라 해서 어린이만 읽는 책이 아니라, 어린이부터 어른 누구나 읽는 책입니다. 푸름이책이라면 마땅히 푸름이부터 어른 모두 읽는 책입니다. (중략) 추천도서나 권장도서가 아닌 푸름이로 살아가는 나 스스로한테 가장 착하고 참되며 고운 책을 찾아서 만나야 합니다. 베스트셀러도 아니지만 스테디셀러 또한 아닌, 나한테 가장 기쁘며 고맙고 반가울 책을 살펴서 쥐어 들어야 합니다._6쪽
푸른책을 읽으면 어른이 된다. 그림책, 만화책에서 노래책, 사진책까지. 문학, 문화에서 환경, 생태 이야기까지. 나를 자라게 하는 책은 나라, 분야,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읽는다. 겉(출판사, 지은이)을 읽지 않고 속(알맹이)을 읽는다. 가슴 깊이 뭉클하다고 느낀 대목을 오래오래 즐기고 싶어서 옮겨 적는다.
청소년책의 유익이라면 좀 알 것 같다. 그 속엔 아직도 어린 내가 있다. 나보다 훨씬 성숙한 아이도 있다. 나 같은 아이를 만
나면 미처 크지 못한 나를 이해한다. 어른보다 참된 아이를 통해 용기를 배운다. 그들을 보면 나도 함께 성장하는 기분이 든다. 지은이가 인용한 대목도 내가 겪는 느낌과 다르지 않다. 저도 모르게 자기의 삶을 되살아나게 만든다. 그리하여 이 책은 그가 읽은 책 이야기보다 글쓴이의 삶 이야기가 더 많다. 그런데 점점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는 그가 말하는 부끄러운 사람이다. 이제껏 많은 책을 읽었지만 생각만 많을 뿐, 직접 내 몸으로 치르는 일이 없다. 섣부른 다짐과 가벼운 어김에 머물 뿐, 계속 하는 일이 없다. 이를테면 실천으로 이어지는 환경・생태 책은 잘 보지 않는다.
사실 나는 알고 있다. 좋은 이야기를 읽었어도 나부터 스스로 아는 바를 바꾸려는 의지가 없음을. 알고 있어서 꺼리고, 보았으면서 보려 하지 않는다. 그 길이 너무 귀찮고 힘들기 때문에. 이게 바로 오늘날 부끄러운 어른의 모습은 아닐는지. 이웃을 사랑하겠노라 말만 하지 않고, 허름하면 허름한 대로, 내 주변 사람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사람, 이웃에게 끼칠 매연과 소음만 생각하면 앞으로도 자동차를 몰 생각이 없는 사람, 다 먹지 못해 버리는 밥은 이웃과도 나눌 수 없는 밥이기에 내 밥그릇을 싹싹 비우는 사람, 돈을 많이 벌고 나서 돕는 게 아니라 어려운 가운데 제 힘으로 올바르게 살며 삶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 골목에 핀 들꽃 하나 찬찬히 어루만지는 사람, 가난한 살림이지만 생협을 찾고, 주위 사람들에게 책 선물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 이렇듯 몸으로 살아내는 그의 남다른 생활은 곧 그가 이웃을 보는 방식이다.
그의 생활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 더 이상 언제까지 내면의 어린 아이만 돌보고 있을 것인가.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인생이 될 수는 없을까. 그러나 이 말에 일어선다. 그가 읽은 책에 나온 구절이다. 나는 현재의 어른들이 정말로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길 바란다. (중략) 절망적인 상황을 모르고는 참 희망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의 어른들이 주는 허무감은 퇴폐를 향해 간다. “어른들을 본받지 마라”는 것은 그러한 무의미한 허무와 냉소를 거절하고, 현실을 직시하며 새 희망으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_341쪽
부끄러우면서도 계속 책을 읽는 이유, 설령 덧없을지라도 각성을 준다. 비틀대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지만 끝없이 삶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푸른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그렇다. 어른으로 살면서도 어른다움을 추슬러야 한다. 재독을 하고 여러 번 밑줄을 긋는다. 가슴이 짠하다. 다시 인생에 대한 가닥을 잡은 기분이다. 조금 자란 나는 내일을 향해 씩씩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는 내기 싫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어른은 척도 안 하고 티도 안 낸다. 그에 비하면 난 참 부끄럽다. 성인의 문턱을 넘은지 오래됐으나 아직도 어른이 아니니까. 이 책을 보며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을 떠올린다. 이제나저제나 내 꿈은 어른다운 어른 되기다. 그러면 내성적이어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을 지은 사람의 꿈도 여전히 어른 되기다. 과연 어떤 사람이기에 같은 꿈을 가졌을까. 그가 살아온 날은 이렇다. 고등학생 때부터 헌책방을 다니고, 대학생 때부터 자전거를 탄다. 우리말을 살리고, 골목길 문화를 외친다. 그는 남들이 돌보지 않는 것을 본다. 사라지는 것을 손으로 가리킨다. 게다가 겨우 보일러를 땔 만큼 가난하다. 가난해도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
아마 살아갈 날도 같을 것이다. 사는 나날은 부지런히 책으로 낸다. 벌써 사진책, 글쓰기책, 헌책방책 등 여덟 권이나 된다.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는 청소년책(푸른책)을 읽고 쓴 책이다. 그가 말하는 푸른책은 무슨 뜻일까. 제가 읽는 책들은 저 스스로 어른이 되어 가도록 길동무가 되고 어깨동무가 되는 책들이라고 여깁니다. 어린이책이라 해서 어린이만 읽는 책이 아니라, 어린이부터 어른 누구나 읽는 책입니다. 푸름이책이라면 마땅히 푸름이부터 어른 모두 읽는 책입니다. (중략) 추천도서나 권장도서가 아닌 푸름이로 살아가는 나 스스로한테 가장 착하고 참되며 고운 책을 찾아서 만나야 합니다. 베스트셀러도 아니지만 스테디셀러 또한 아닌, 나한테 가장 기쁘며 고맙고 반가울 책을 살펴서 쥐어 들어야 합니다._6쪽
푸른책을 읽으면 어른이 된다. 그림책, 만화책에서 노래책, 사진책까지. 문학, 문화에서 환경, 생태 이야기까지. 나를 자라게 하는 책은 나라, 분야,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읽는다. 겉(출판사, 지은이)을 읽지 않고 속(알맹이)을 읽는다. 가슴 깊이 뭉클하다고 느낀 대목을 오래오래 즐기고 싶어서 옮겨 적는다.
청소년책의 유익이라면 좀 알 것 같다. 그 속엔 아직도 어린 내가 있다. 나보다 훨씬 성숙한 아이도 있다. 나 같은 아이를 만
나면 미처 크지 못한 나를 이해한다. 어른보다 참된 아이를 통해 용기를 배운다. 그들을 보면 나도 함께 성장하는 기분이 든다. 지은이가 인용한 대목도 내가 겪는 느낌과 다르지 않다. 저도 모르게 자기의 삶을 되살아나게 만든다. 그리하여 이 책은 그가 읽은 책 이야기보다 글쓴이의 삶 이야기가 더 많다. 그런데 점점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는 그가 말하는 부끄러운 사람이다. 이제껏 많은 책을 읽었지만 생각만 많을 뿐, 직접 내 몸으로 치르는 일이 없다. 섣부른 다짐과 가벼운 어김에 머물 뿐, 계속 하는 일이 없다. 이를테면 실천으로 이어지는 환경・생태 책은 잘 보지 않는다.
사실 나는 알고 있다. 좋은 이야기를 읽었어도 나부터 스스로 아는 바를 바꾸려는 의지가 없음을. 알고 있어서 꺼리고, 보았으면서 보려 하지 않는다. 그 길이 너무 귀찮고 힘들기 때문에. 이게 바로 오늘날 부끄러운 어른의 모습은 아닐는지. 이웃을 사랑하겠노라 말만 하지 않고, 허름하면 허름한 대로, 내 주변 사람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사람, 이웃에게 끼칠 매연과 소음만 생각하면 앞으로도 자동차를 몰 생각이 없는 사람, 다 먹지 못해 버리는 밥은 이웃과도 나눌 수 없는 밥이기에 내 밥그릇을 싹싹 비우는 사람, 돈을 많이 벌고 나서 돕는 게 아니라 어려운 가운데 제 힘으로 올바르게 살며 삶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 골목에 핀 들꽃 하나 찬찬히 어루만지는 사람, 가난한 살림이지만 생협을 찾고, 주위 사람들에게 책 선물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 이렇듯 몸으로 살아내는 그의 남다른 생활은 곧 그가 이웃을 보는 방식이다.
그의 생활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 더 이상 언제까지 내면의 어린 아이만 돌보고 있을 것인가.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인생이 될 수는 없을까. 그러나 이 말에 일어선다. 그가 읽은 책에 나온 구절이다. 나는 현재의 어른들이 정말로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길 바란다. (중략) 절망적인 상황을 모르고는 참 희망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의 어른들이 주는 허무감은 퇴폐를 향해 간다. “어른들을 본받지 마라”는 것은 그러한 무의미한 허무와 냉소를 거절하고, 현실을 직시하며 새 희망으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_341쪽
부끄러우면서도 계속 책을 읽는 이유, 설령 덧없을지라도 각성을 준다. 비틀대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지만 끝없이 삶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푸른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그렇다. 어른으로 살면서도 어른다움을 추슬러야 한다. 재독을 하고 여러 번 밑줄을 긋는다. 가슴이 짠하다. 다시 인생에 대한 가닥을 잡은 기분이다. 조금 자란 나는 내일을 향해 씩씩한 발걸음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