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새책 빛나는 우리 과학의 정체성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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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01 21:35 조회 6,410회 댓글 0건본문
우리는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들여 수학과 과학을 배운다. 그러나 그 어느 수업 시간에도 우리나라 과학자나 수학자가 정립한 이론이나 정리를 배운 적이 없고 과학책과 수학책에 우리나라 과학자와 수학자가 등장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배우고 상대성이론을 이해하지는 못해도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견하여 세상을 뒤바꾸는 업적을 세웠다는 것은 안다. 갈릴레이의 “그래도 지구는 돈다.”
라는 말이나, 퀴리부인이 노벨상을 받은 여자 과학자였다는 사실은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과학자에 대한 지식은 장영실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칠정산』이나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무엇인지조차 잘 모른다. 70년대에 학교교육을 받았던 나는 외국에 나가서야 비로소 우리 것을 얼마나 모르는지 깨달았다. 유학 시절, 한 교수가 나를 보고 반갑게 다가와 한문으로 쓰인 문헌의 슬라이드를 보여주며 붉은 인주로 찍은 도장이 어떤 의미인지 묻는데, 한문으로 된 슬라이드 내용은 물론 도장의 글씨마저 읽지 못해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던 난감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후 나는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커지긴 했지만 여전히 역사와 역사책에 나오는 인물에 머물렀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우리 것에 대한 내용이 이전보다는 많아졌지만 여전히 장영실을 제외하면 국어책이나 사회책에 등장할 뿐이다. 지난 몇 년간 고인돌, 첨성대, 성덕대왕신종, 도자기, 인쇄술, 해시계, 물시계, 측우기와 같은 우리 문화재나 유물을 다루는 어린이책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이 또한 그 물건을 만드는 데 필요한 과학적 원리를 설명하기보다는 아이들에게 전통문화를 알리거나 우리 조상의 기술과 창의성이 얼마나 뛰어난지 강조하는 데에만 열심이다.
이런 점에서 카이스트에서 한국 과학사를 가르치는 저자가 쓴 『한국 과학사 이야기』는 의미 있는 책이다. 우리 과학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1,2권에서는 과학을, 3권에서는 기술과 발명 및 현대과학 100년을 다룰 예정인데 우선 하늘의 과학과 땅의 과학이 담긴 1권이 나왔다.
고인돌에 새겨진 별, 무덤 벽화의 별자리, 첨성대, 천재지변, 우리 옛 별자리 천상열차분야지도에 이어 측우기와 해시계, 물시계 자격루, 지구 자전설, 역법과 칠정산, 수학, 도량형과 음악의 관계를 하늘의 과학으로, 풍수지리, 지도, 길, 광물을 땅의 과학으로 분류했다. 과학에 대해서 초등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중간 중간 질문을 던져 이해를 돕는가 하면 사진과 정확한 그림을 풍부하게 포함시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측우기가 세 개로 분리된 사진이나 시간과 절기 읽는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해시계 앙부일구에 절기와 시를 적어 넣은 그림은 다른 책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기록의 부족으로 학자들 사이에 해석이 다를 때에는 여러 의견을 소개하면서 결론을 끌어내는 점도 돋보인다. 여러 차례의 논쟁을 통해, 첨성대의 정체가 천문대이기도 하지만 정치 종교적 의미를 띈 구조물로 시각이 넓어졌다는 대목이 그러하다. 또 김담, 김석문 등 몰랐던 과학자를 알게 되는 즐거움도 크다. 그러나 이 책이 다른 책과 가장 차별화되는 것은 옛날의 과학을 오늘날의 시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파악해야 한다는, 전통과학을 보는 태도와 한국 과학과 서양 과학의 다른 점을 밝히는 것이다.
전통사회에서는 모든 자연현상이 인간사회의 잘잘못에 따라 일어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에 일식, 혜성, 지진, 가뭄, 홍수를 상세히 기록한 것이며, 그것들을 분석하여 지진의 반복을 예측하는 것은 과학에 대한 오늘날의 기대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과학은 군주를 정점으로 하는 중앙집권적인 관료체제에서 왕의 효율적인 통치를 강화하는 것이자 통치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또한 저자는 한국 과학을 하늘의 과학, 땅의 과학, 생물의 과학, 몸의 과학으로 분류하여 오늘날 과학을 천문학, 물리학, 화학, 지구과학, 생명과학으로 나누는 것과 달리한다.
그 이유는 서양의 과학이 과학을 천문학, 물리학 등으로 나누고 다시 하나의 ‘과학’으로 파악한 것과 달리, 한국의 전통과학은 천문, 역법曆法, 산학算學, 의학, 지리, 양생술 등이 각각 독자적으로 자연을 이해하는 체계를 갖추어 내적 연결성이 서양의 과학처럼 긴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단순한 지식의 전달을 넘어 한국 과학의 정체성을 논하고 유물에 담긴 과학 원리와 그 유물이 만들어진 이유를 짚어 과학과 전통 가치관을 유기적으로 설명하는 방식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이 책이 어렵고 지루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중국 수학책 『구장산술』에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해당하는 구고법이 있었고 태양력보다 태음력이 훨씬 더 과학적이라는 것만 알아도 한국 과학에 대한 독자의 시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아이들이 스스로 읽고 이해하는 만큼 받아들여도 되겠지만 교과와 연계하여 수업시간에 활용해도 좋을 듯하다.
라는 말이나, 퀴리부인이 노벨상을 받은 여자 과학자였다는 사실은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과학자에 대한 지식은 장영실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칠정산』이나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무엇인지조차 잘 모른다. 70년대에 학교교육을 받았던 나는 외국에 나가서야 비로소 우리 것을 얼마나 모르는지 깨달았다. 유학 시절, 한 교수가 나를 보고 반갑게 다가와 한문으로 쓰인 문헌의 슬라이드를 보여주며 붉은 인주로 찍은 도장이 어떤 의미인지 묻는데, 한문으로 된 슬라이드 내용은 물론 도장의 글씨마저 읽지 못해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던 난감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후 나는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커지긴 했지만 여전히 역사와 역사책에 나오는 인물에 머물렀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우리 것에 대한 내용이 이전보다는 많아졌지만 여전히 장영실을 제외하면 국어책이나 사회책에 등장할 뿐이다. 지난 몇 년간 고인돌, 첨성대, 성덕대왕신종, 도자기, 인쇄술, 해시계, 물시계, 측우기와 같은 우리 문화재나 유물을 다루는 어린이책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이 또한 그 물건을 만드는 데 필요한 과학적 원리를 설명하기보다는 아이들에게 전통문화를 알리거나 우리 조상의 기술과 창의성이 얼마나 뛰어난지 강조하는 데에만 열심이다.
이런 점에서 카이스트에서 한국 과학사를 가르치는 저자가 쓴 『한국 과학사 이야기』는 의미 있는 책이다. 우리 과학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1,2권에서는 과학을, 3권에서는 기술과 발명 및 현대과학 100년을 다룰 예정인데 우선 하늘의 과학과 땅의 과학이 담긴 1권이 나왔다.
고인돌에 새겨진 별, 무덤 벽화의 별자리, 첨성대, 천재지변, 우리 옛 별자리 천상열차분야지도에 이어 측우기와 해시계, 물시계 자격루, 지구 자전설, 역법과 칠정산, 수학, 도량형과 음악의 관계를 하늘의 과학으로, 풍수지리, 지도, 길, 광물을 땅의 과학으로 분류했다. 과학에 대해서 초등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중간 중간 질문을 던져 이해를 돕는가 하면 사진과 정확한 그림을 풍부하게 포함시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측우기가 세 개로 분리된 사진이나 시간과 절기 읽는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해시계 앙부일구에 절기와 시를 적어 넣은 그림은 다른 책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기록의 부족으로 학자들 사이에 해석이 다를 때에는 여러 의견을 소개하면서 결론을 끌어내는 점도 돋보인다. 여러 차례의 논쟁을 통해, 첨성대의 정체가 천문대이기도 하지만 정치 종교적 의미를 띈 구조물로 시각이 넓어졌다는 대목이 그러하다. 또 김담, 김석문 등 몰랐던 과학자를 알게 되는 즐거움도 크다. 그러나 이 책이 다른 책과 가장 차별화되는 것은 옛날의 과학을 오늘날의 시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파악해야 한다는, 전통과학을 보는 태도와 한국 과학과 서양 과학의 다른 점을 밝히는 것이다.
전통사회에서는 모든 자연현상이 인간사회의 잘잘못에 따라 일어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에 일식, 혜성, 지진, 가뭄, 홍수를 상세히 기록한 것이며, 그것들을 분석하여 지진의 반복을 예측하는 것은 과학에 대한 오늘날의 기대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과학은 군주를 정점으로 하는 중앙집권적인 관료체제에서 왕의 효율적인 통치를 강화하는 것이자 통치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또한 저자는 한국 과학을 하늘의 과학, 땅의 과학, 생물의 과학, 몸의 과학으로 분류하여 오늘날 과학을 천문학, 물리학, 화학, 지구과학, 생명과학으로 나누는 것과 달리한다.
그 이유는 서양의 과학이 과학을 천문학, 물리학 등으로 나누고 다시 하나의 ‘과학’으로 파악한 것과 달리, 한국의 전통과학은 천문, 역법曆法, 산학算學, 의학, 지리, 양생술 등이 각각 독자적으로 자연을 이해하는 체계를 갖추어 내적 연결성이 서양의 과학처럼 긴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단순한 지식의 전달을 넘어 한국 과학의 정체성을 논하고 유물에 담긴 과학 원리와 그 유물이 만들어진 이유를 짚어 과학과 전통 가치관을 유기적으로 설명하는 방식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이 책이 어렵고 지루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중국 수학책 『구장산술』에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해당하는 구고법이 있었고 태양력보다 태음력이 훨씬 더 과학적이라는 것만 알아도 한국 과학에 대한 독자의 시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아이들이 스스로 읽고 이해하는 만큼 받아들여도 되겠지만 교과와 연계하여 수업시간에 활용해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