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새책 타인의 가면에서 자신의 얼굴을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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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01 21:18 조회 6,403회 댓글 0건본문
미술이나 디자인 관련 전공을 했다고 하면 흔히 듣게 되는 이야기가 “내 초상화 한 장 그려줘.”라는 말이다. 최근 읽은 칼럼에 이런 부탁이 가장 난감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려줘도 좋은 소리를 못 듣기 때문이란다. 똑같이 그려주면 내가 이렇게 못났느냐 하고, 좀 예쁘게 그려주면 나랑 닮지 않았다는 불평이 돌아와 딜레마에 빠지기 일쑤다. 그만큼 누구나 자신의 얼굴에 대해 관심도 많고 남에게 보이는 모습에 마음을 많이 쓴다는 뜻일 것이다. 마흔 살 이후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던가.
미술 교사로서 불혹의 고개에 서있는 요즘, 지난 세월의 나이테가 묻어있을 내 얼굴이 신경 쓰였다. 덕이 우러나는 얼굴이고픈 마음에 너그럽고 인자한척 표정을 지어보지만, 이미 그건 가식에 지나지 않음을 고민하던 중 만난 『얼굴이 말하다』는 부쩍 거울을 들여다보게 되는 내게 많은 상념을 스치게 했다. “사람들을 저마다 살아온 삶을 자신의 얼굴 위에 새긴다. 얼굴은 거짓을 모른다. 혀는 거짓을 쏟아내지만 얼굴은, 표정과 눈빛은 언제나 진실로 향해 있다. 부지불식간에 모든 것을 발설한다.” _56쪽
이 책은 얼굴을 소재로 58명의 작가가 담아낸 아흔아홉 가지의 표정을 10개의 테마에 나누어 담아내고 있다. 똑같은 소재를 담고 있는 예술작품들을 다채롭게 다루려는 저자의 의도는 책장을 넘기는 손길을 머뭇거리게 한다. 때로는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대한 총체적인 이야기를 해설과 분석으로 풀어내기도 하고, 지은이의 개인적 경험을 녹여내기도 하며, 그 속에서 자신의 마음에 고였던 가치관과 생각들을 사색적인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얼굴’을 주제로 한 기획전시를 둘러보는 느낌을 안겨준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해설은 작가들의 사상이 어떻게 작품이라는 그릇 속에 오롯이 담길 수 있는지를, 또 예술작품으로 변이되는 과정에서 어떠한 방법론적인 차별성이 있었는가를 말해준다.
가시적인 결과물 뿐 아니라 표현재료를 찾고 선택하고 제작하는 행위도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작품 감상의 접근 방법은 창작과정을 이해하는 필자가 전해줄 수 있는 유의미한 팁이다. 가령, 정원철의 <회색의 초상>은 위안부 할머니의 얼굴을 납판에 치과용 드릴로 새긴 후 찍은 판화 작품이다. 작가는 위안부 할머니의 얼굴을 작품으로 재현하는 과정에서부터 우리는 겪지 못한 슬픔과 고통을 표현했다.
납판을 긁어내는 작업, 긁는 소리에서 빚어진 고통의 재현, 그 흔적으로 남은 얼굴의 수없는 생채기는 뼈아픈 현대사의 기록이다. 얼굴은 사회상의 기록이며 개인적인 삶의 흔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생존을 위한 원초적인 모습을 담은 것이 얼굴이며 지나온 시간이 담겨있는 것이 얼굴이라고 한다. 얼굴은 내면과 정신을 보여주며 자신을 대변하며 슬픔과 욕망, 삶과 죽음이 드러나는 장이다. “얼굴은 쉽고도 난해하다. 미술가들이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의 얼굴을 표상하려했던 시도는 그것이 사실과 외형의 표상을 넘어 주체와 정체성의 문제, 사회적 메타포와 삶의 방식을 은유하는 역동적인 표상의 장으로 기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_80쪽
정신심리학자 융은 그의 저서인 『원형과 집단무의식(The Archetypes and the Collective Unconscious)』에서 인간의 정
신구조를 그림자(shadow), 영혼(soul), 탈(persona)로 분류했다. 그 중 탈은 인간의 외적 인격이며 외적 태도로서 바깥 세계와 관계를 갖는 자아의 한 모습이며, 인간이 자신이 처한 세계화 현실에 적응하면서 드러나는 태도인 것이다. 그런데 세계와 현실을 수용하며 외적으로 나타나는 자아는 진정한 자아와 서로 대립되면 분열된다는 것이다. 책에 실린 작품들이 어둡고 슬픈 얼굴이 많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현대인의 얼굴은 고되고 지친 삶을 더 많이 담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내면을 드러내는 곳이 얼굴이면서도, 한편 가리고 위장해야 하는 현대인의 삶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거짓 없이 진실을 쏟아내지만 한편으론 자신을 위장하기 위한 가면으로서의 얼굴을 쓰고 살아야 하는 이 시대의 딜레마가 책에 소개된 얼굴들을 통해 변주되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여러 작가들과 그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는 학생들에게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예술 작품에 대한 접근 방법의 안내서로는 손색이 없다. 어린 학생들은 아직 자신의 의지보다는 주어진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얼굴을 보여주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까지는 만들어진 얼굴이라면 앞으로는 자신이 만들어 가는 얼굴이 되어야 할 것이다. 외면을 치장하는 수술보다는 내면의 얼굴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표정에 인간과 사회, 자신 그리고 삶에 임하는 태도를 어떻게 가질 것인가를 성찰해 갈 때 타인의 얼굴에서 발견한 자신의 얼굴과 대면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 교사로서 불혹의 고개에 서있는 요즘, 지난 세월의 나이테가 묻어있을 내 얼굴이 신경 쓰였다. 덕이 우러나는 얼굴이고픈 마음에 너그럽고 인자한척 표정을 지어보지만, 이미 그건 가식에 지나지 않음을 고민하던 중 만난 『얼굴이 말하다』는 부쩍 거울을 들여다보게 되는 내게 많은 상념을 스치게 했다. “사람들을 저마다 살아온 삶을 자신의 얼굴 위에 새긴다. 얼굴은 거짓을 모른다. 혀는 거짓을 쏟아내지만 얼굴은, 표정과 눈빛은 언제나 진실로 향해 있다. 부지불식간에 모든 것을 발설한다.” _56쪽
이 책은 얼굴을 소재로 58명의 작가가 담아낸 아흔아홉 가지의 표정을 10개의 테마에 나누어 담아내고 있다. 똑같은 소재를 담고 있는 예술작품들을 다채롭게 다루려는 저자의 의도는 책장을 넘기는 손길을 머뭇거리게 한다. 때로는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대한 총체적인 이야기를 해설과 분석으로 풀어내기도 하고, 지은이의 개인적 경험을 녹여내기도 하며, 그 속에서 자신의 마음에 고였던 가치관과 생각들을 사색적인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얼굴’을 주제로 한 기획전시를 둘러보는 느낌을 안겨준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해설은 작가들의 사상이 어떻게 작품이라는 그릇 속에 오롯이 담길 수 있는지를, 또 예술작품으로 변이되는 과정에서 어떠한 방법론적인 차별성이 있었는가를 말해준다.
가시적인 결과물 뿐 아니라 표현재료를 찾고 선택하고 제작하는 행위도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작품 감상의 접근 방법은 창작과정을 이해하는 필자가 전해줄 수 있는 유의미한 팁이다. 가령, 정원철의 <회색의 초상>은 위안부 할머니의 얼굴을 납판에 치과용 드릴로 새긴 후 찍은 판화 작품이다. 작가는 위안부 할머니의 얼굴을 작품으로 재현하는 과정에서부터 우리는 겪지 못한 슬픔과 고통을 표현했다.
납판을 긁어내는 작업, 긁는 소리에서 빚어진 고통의 재현, 그 흔적으로 남은 얼굴의 수없는 생채기는 뼈아픈 현대사의 기록이다. 얼굴은 사회상의 기록이며 개인적인 삶의 흔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생존을 위한 원초적인 모습을 담은 것이 얼굴이며 지나온 시간이 담겨있는 것이 얼굴이라고 한다. 얼굴은 내면과 정신을 보여주며 자신을 대변하며 슬픔과 욕망, 삶과 죽음이 드러나는 장이다. “얼굴은 쉽고도 난해하다. 미술가들이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의 얼굴을 표상하려했던 시도는 그것이 사실과 외형의 표상을 넘어 주체와 정체성의 문제, 사회적 메타포와 삶의 방식을 은유하는 역동적인 표상의 장으로 기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_80쪽
정신심리학자 융은 그의 저서인 『원형과 집단무의식(The Archetypes and the Collective Unconscious)』에서 인간의 정
신구조를 그림자(shadow), 영혼(soul), 탈(persona)로 분류했다. 그 중 탈은 인간의 외적 인격이며 외적 태도로서 바깥 세계와 관계를 갖는 자아의 한 모습이며, 인간이 자신이 처한 세계화 현실에 적응하면서 드러나는 태도인 것이다. 그런데 세계와 현실을 수용하며 외적으로 나타나는 자아는 진정한 자아와 서로 대립되면 분열된다는 것이다. 책에 실린 작품들이 어둡고 슬픈 얼굴이 많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현대인의 얼굴은 고되고 지친 삶을 더 많이 담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내면을 드러내는 곳이 얼굴이면서도, 한편 가리고 위장해야 하는 현대인의 삶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거짓 없이 진실을 쏟아내지만 한편으론 자신을 위장하기 위한 가면으로서의 얼굴을 쓰고 살아야 하는 이 시대의 딜레마가 책에 소개된 얼굴들을 통해 변주되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여러 작가들과 그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는 학생들에게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예술 작품에 대한 접근 방법의 안내서로는 손색이 없다. 어린 학생들은 아직 자신의 의지보다는 주어진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얼굴을 보여주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까지는 만들어진 얼굴이라면 앞으로는 자신이 만들어 가는 얼굴이 되어야 할 것이다. 외면을 치장하는 수술보다는 내면의 얼굴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표정에 인간과 사회, 자신 그리고 삶에 임하는 태도를 어떻게 가질 것인가를 성찰해 갈 때 타인의 얼굴에서 발견한 자신의 얼굴과 대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