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합니다! 괴짜 사나이가 들려주는 오키나와 사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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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04 18:58 조회 7,141회 댓글 0건본문
계간 「아시아」 창간호를 내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제2호를 기획하던 중, 한
편집위원이 어느 일본인 소설가를 추천했다. 당시에 어떻게 그에 대한 첫 이야기
를 시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 머릿속에 정확히 남은 한 단어는 ‘오키나
와’였다. 일본 작가가 아닌 오키나와 작가 메도루마 슌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어로 처음 번역된 그의 단편 「투계鬪鷄」를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짐짓 진지한
자세로 오키나와 작가의 한국 데뷔를 환영했다. 오은경 교수의 번역이 워낙 매끄
럽기도 했지만, 「투계」에서 느껴지는 담담하면서도 섬뜩하고, 정확하면서도 부
드러운 문장에서 그가 예사롭지 않은 작가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아쿠타가와 상과 가와바타 야스나리 상을 수상했다는 실적(?) 외에 메도루마 슌
에 대해 한국에 알려진 것은 거의 없었다. 물론 위의 두 수상 실적만으로도 한국
의 많은 출판사가 그를 탐냈을 것은 분명한데, 어찌된 일인지 새내기 출판사인
아시아에서 연락하기 전까지 그와 통신한 한국 사람은 없었던 듯하다. 그럼에도
「투계」에서 느껴지는 비범함은 나뿐 아니라 편집위원들에게도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간 모양이다. 휴대전화는 커녕, 연락도 팩스로만 주고받는 그를 만나기 위해
아시아 편집위원 두 분이 직접 오키나와의 한 마을을 방문했다. 사진 찍히기를 매
우 싫어해서 그를 담은 사진은 고작 몇 장뿐이었으며, 그것도 카메라 렌즈를 정면
으로 바라보는 사진은 아예 없었다. 오키나와까지 가서 만난 작가의 사진이 너무
형편없는 게 아니냐는 내 투덜거림에 두 분은 이렇게 대답했다.
“메도루마 슌, 괴짜 사나이야.”
오키나와는 ‘류큐 왕국’이라는 이름의 독립된 섬이었지만, 메이지 시대에 일본 본토의 무력 침공으로 오키
나와 현으로 복속된 이후 학교에서 오키나와 말 사용이 금지되는 등 가혹한 동화정책에 시달렸다. 태평양 전
쟁 말기에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이 벌어졌는데, 바로 오키나와 전쟁이다. 미군의 총공격으로 섬 전체
가 초토화되는 비극을 시작으로, 아군인 줄 알았던 일본군마저 식량을 강탈하고 주민을 학살하기도 했다. 일
본의 패전 후 오키나와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군사적 요충지로서 미국 군정 아래에 놓였다가 1972년 일
본에 반환되었다.
하지만 미군 기지는 여전히 오키나와에 남아 있다. 이러한 역사의 현장 오키나와에서 메도
루마 슌의 소설은 시작된다. 메도루마 슌의 부모님은 오키나와 전쟁을 경험했고, 그 자신 역시 전쟁의 흔적이
남은 오키나와에서 자랐으며, 미군이 여전히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까닭에 전쟁의 상처와 기억을 말하는 것
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함께 나누고파 아시아에서 그를 한국으로 두 번이나 초대
했지만 두 번 모두 거절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의 문제는 오키나와 안에서 풀고 싶다는 것이었다. 작가
에게 주제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한 그의 고집이 단단하고 견고하게 느껴진다.
「투계」는 계간 「아시아」 2006년 가을호에 수록되었고, 편집부에서는 그즈음 이미 단행본 출간을 염두에 두
고 그의 단편집을 계약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드디어 2008년 3월, 「투계」를 비롯한 여섯 편의 중단편을 엮
은 『브라질 할아버지의 술』(원제:魂込め)이 출간되었다. 때마침 제주에서는 제주 4.3 60주년 기념 국제 문
학 심포지엄이 ‘평화 공동체를 꿈꾸는 상생의 문학’이라는 주제로 열렸고, 김응교 시인이 메도루마 슌의 작
품 세계에 대해 발표하기도 했다.
‘일본’이 아닌 ‘오키나와’를 바라보기는 낯설기도 하면서 동시에 동질감을 느끼게도 한다. 침략 당한 역사를
지닌 민족만이 가지는 가슴 쓰라린 상처가 이 책 곳곳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밝히기 부끄럽지만 이 책을 만
들어내면서야 비로소 나는 오키나와를 조금 알게 되었다. 또한 많은 독자들이 이 오키나와의 괴짜 사나이
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길 기대했지만, 그리 많은 독자들의 손에 안겨주지는 못했다. 군소 출판사의 영업
적 한계를 느끼는 부분이다. 유난히 정성들여 표지를 고르고, 삽화도 한 장 한 장 세심하게 그렸다. 하지만 이
책이 출간된 2008년은 화려한 일러스트로 채워진 표지가 서점의 매대를 압도할 때이므로, 예스러운 느낌이
나는 누런 표지의 책은 촌스러워 보였을지도 모른다. 못나고 고집 센 편집자의 한계였으리라.
오키나와인은 일본인이기보다는 ‘우치난추(오키나와 원주민)’이기를 원한다고 한다. 내가 나에게 묻고, 독
자에게 다시 묻는다.
“가슴을 저미는 이 낯설고 독특한 감각을 일본 문학으로 부를 것인가, 오키나와 문학으로 부를 것인가?”
편집위원이 어느 일본인 소설가를 추천했다. 당시에 어떻게 그에 대한 첫 이야기
를 시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 머릿속에 정확히 남은 한 단어는 ‘오키나
와’였다. 일본 작가가 아닌 오키나와 작가 메도루마 슌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어로 처음 번역된 그의 단편 「투계鬪鷄」를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짐짓 진지한
자세로 오키나와 작가의 한국 데뷔를 환영했다. 오은경 교수의 번역이 워낙 매끄
럽기도 했지만, 「투계」에서 느껴지는 담담하면서도 섬뜩하고, 정확하면서도 부
드러운 문장에서 그가 예사롭지 않은 작가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아쿠타가와 상과 가와바타 야스나리 상을 수상했다는 실적(?) 외에 메도루마 슌
에 대해 한국에 알려진 것은 거의 없었다. 물론 위의 두 수상 실적만으로도 한국
의 많은 출판사가 그를 탐냈을 것은 분명한데, 어찌된 일인지 새내기 출판사인
아시아에서 연락하기 전까지 그와 통신한 한국 사람은 없었던 듯하다. 그럼에도
「투계」에서 느껴지는 비범함은 나뿐 아니라 편집위원들에게도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간 모양이다. 휴대전화는 커녕, 연락도 팩스로만 주고받는 그를 만나기 위해
아시아 편집위원 두 분이 직접 오키나와의 한 마을을 방문했다. 사진 찍히기를 매
우 싫어해서 그를 담은 사진은 고작 몇 장뿐이었으며, 그것도 카메라 렌즈를 정면
으로 바라보는 사진은 아예 없었다. 오키나와까지 가서 만난 작가의 사진이 너무
형편없는 게 아니냐는 내 투덜거림에 두 분은 이렇게 대답했다.
“메도루마 슌, 괴짜 사나이야.”
오키나와는 ‘류큐 왕국’이라는 이름의 독립된 섬이었지만, 메이지 시대에 일본 본토의 무력 침공으로 오키
나와 현으로 복속된 이후 학교에서 오키나와 말 사용이 금지되는 등 가혹한 동화정책에 시달렸다. 태평양 전
쟁 말기에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이 벌어졌는데, 바로 오키나와 전쟁이다. 미군의 총공격으로 섬 전체
가 초토화되는 비극을 시작으로, 아군인 줄 알았던 일본군마저 식량을 강탈하고 주민을 학살하기도 했다. 일
본의 패전 후 오키나와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군사적 요충지로서 미국 군정 아래에 놓였다가 1972년 일
본에 반환되었다.
하지만 미군 기지는 여전히 오키나와에 남아 있다. 이러한 역사의 현장 오키나와에서 메도
루마 슌의 소설은 시작된다. 메도루마 슌의 부모님은 오키나와 전쟁을 경험했고, 그 자신 역시 전쟁의 흔적이
남은 오키나와에서 자랐으며, 미군이 여전히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까닭에 전쟁의 상처와 기억을 말하는 것
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함께 나누고파 아시아에서 그를 한국으로 두 번이나 초대
했지만 두 번 모두 거절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의 문제는 오키나와 안에서 풀고 싶다는 것이었다. 작가
에게 주제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한 그의 고집이 단단하고 견고하게 느껴진다.
「투계」는 계간 「아시아」 2006년 가을호에 수록되었고, 편집부에서는 그즈음 이미 단행본 출간을 염두에 두
고 그의 단편집을 계약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드디어 2008년 3월, 「투계」를 비롯한 여섯 편의 중단편을 엮
은 『브라질 할아버지의 술』(원제:魂込め)이 출간되었다. 때마침 제주에서는 제주 4.3 60주년 기념 국제 문
학 심포지엄이 ‘평화 공동체를 꿈꾸는 상생의 문학’이라는 주제로 열렸고, 김응교 시인이 메도루마 슌의 작
품 세계에 대해 발표하기도 했다.
‘일본’이 아닌 ‘오키나와’를 바라보기는 낯설기도 하면서 동시에 동질감을 느끼게도 한다. 침략 당한 역사를
지닌 민족만이 가지는 가슴 쓰라린 상처가 이 책 곳곳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밝히기 부끄럽지만 이 책을 만
들어내면서야 비로소 나는 오키나와를 조금 알게 되었다. 또한 많은 독자들이 이 오키나와의 괴짜 사나이
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길 기대했지만, 그리 많은 독자들의 손에 안겨주지는 못했다. 군소 출판사의 영업
적 한계를 느끼는 부분이다. 유난히 정성들여 표지를 고르고, 삽화도 한 장 한 장 세심하게 그렸다. 하지만 이
책이 출간된 2008년은 화려한 일러스트로 채워진 표지가 서점의 매대를 압도할 때이므로, 예스러운 느낌이
나는 누런 표지의 책은 촌스러워 보였을지도 모른다. 못나고 고집 센 편집자의 한계였으리라.
오키나와인은 일본인이기보다는 ‘우치난추(오키나와 원주민)’이기를 원한다고 한다. 내가 나에게 묻고, 독
자에게 다시 묻는다.
“가슴을 저미는 이 낯설고 독특한 감각을 일본 문학으로 부를 것인가, 오키나와 문학으로 부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