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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03 19:18 조회 6,97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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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는 20여 년 동안 이장 일을 보셨다.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했으나 그해 고추농사 수익이 월급보다 훨씬 나아서 회사를 그만둔 후 평생 농부로 사셨던 아버지. 벼를 수확하고 나면 그 논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겨우내 참외, 오이, 딸기 등을 길러 동생들을 가르치고 자식들을 키우던 아버지는 40대가 되면서 마을의 이장 일을 보기 시작하셨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버지의 트레이드마크인 오토바이를 타고 면에 나가 회의에 참석하고 마을 사람들의 행정적인 대소사를 처리하고 돌아오셔서는 확성기로 이런저런 소식을 전하던 모습이 얼마나 근사하던지.

마을의 바깥노인들이 한 분씩 세상을 뜨고 자식들은 집을 떠나 홀로 남은 안노인들을 대신하여 면에 나가는 일이 더 잦아지셨던 아버지가 나는 늘 자랑스러웠다. 강 언덕 아래 우물에서 물을 길어먹던 마을에 수도가 놓이고, 마을 한 가운데 가로등이 서고, 주천강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오는 길이 시멘트로 포장된 일 등이 아버지가 이장을 보시던 시절 이루어졌으니 개발이니 투기니 하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에서 한참 벗어나 있던 마을은 그저 시절이 변하는 대로 조금씩 모습을 바꾸어 간 셈이다. 태어난 고향에서 오랫동안 농부로 살던 아버지가 지방행정 구역의 마지막 단위인 ‘이里’를 대표하여 일을 맡아보는 사람인 이장이 된 것은 글을 배운 사람으로서 부족하나마 마을을 위해 봉사하리라는 사명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있어야 할 교수인 저자는 왜 시골에 가서 볕에 얼굴이 시커멓게 탄 이장이 되었을까?

지방에 있는 대학에 선생으로 부임하면서 ‘대학교수’가 된 저자는 학교 근처 시골 마을에 귀틀집을 짓고 텃밭을 일구며 온 가족이 함께 살면서 ‘작은 농부’가 되고 마을 안 고층 아파트 건설을 저지하는 투쟁에 뛰어들었다가 주민들에 의해 ‘마을 이장’으로 추대된다. 마을이장과 농부, 대학교수라는 세 가지 역할은 저자의 삶의 철학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모습이다. 저자는 전작 『살림의 경제학』(인물과사상사, 2009)에서 삶의 문제가 돈으로 귀결되는 자본주의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고 외치는 신자유주의를 성찰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1차 산업 중심의 생태사회를 바탕으로 한 연대와 소통이라는 대안을 제시한 바 있으니, 저자가 택한 농부와 이장에는 실천하는 학자로서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집이 온 가족이 함께 사랑을 나누고 쉬는 삶의 터전이 아니라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한 시대에 저자가 부모님까지 모시고 살
기 위해 울타리 없는 귀틀집을 짓는 과정은 사뭇 감동적이다. 저자는 땅을 구하는 과정에서 땅에 대한 경외감을 얻게 되고, 집을 설계하고 지으면서 가족과 일꾼이 함께 의논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3대가 함께 살 수 있는 소박한 집을 지으면서 ‘자발적 간소함’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했던 저자는, 우리 내면이 공허할수록 소유나 소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고 일갈한다. 정말 가슴이 뜨끔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는 살던 집을 두 번 고쳐 지으셨다. 장마철이면 삽을 들고 고인 물에 흙이 무너지는 곳이 없나 밤중에도 집을 둘러보
며 물길을 내던 초가집을 헐어내고, 손수 시멘트 벽돌을 찍어 벽을 쌓고 슬레이트 지붕을 올린 집이 처음 지은 집이었다. 그 집에 들 때 아버지는 언니와 내가 쓰는 작은 방에 당신이 쓰시던 앉은뱅이책상 대신 녹색 비닐의자가 딸린 꽃무늬 책상을 놓아주셨다. 비록 언니와 같이 썼지만 처음 생긴 내 방과 내 책상이 얼마나 좋았던지 책이 가지런히 꽂힌 책상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저절로 되는 것 같았다. 두 번째 집을 지을 때 나는 이미 고향을 떠난 후라 아버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자세히 모르지만 집을 짓는 서너 달 동안 아버지는 한시도 집터를 떠나지 않고 종고모부가 맡아서 짓는 집을 꼼꼼히 감시하셨다고 한다. 저자는 ‘참여 건축’으로 집을 지으면서 ‘과정으로서의 삶’이 가진 기쁨을 맛보는데, 우리 아버지도 농부와 이장 그리고 가장으로 살아오면서 그 행복을 누린 분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여유 있는 생활을 하는 교수가 쓰는 아름다운 전원일기만은 아니다. 마구잡이식 개발이 시골과 도시를 가리지 않고 삶의 터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우리 사회에서, 한적하고 평화롭기만 한 전원생활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저자는 직접 땀을 흘려 농사를 지으면서 사람과 자연이 공생하는 살림의 경제를 꾸리고, 마을 아이들과 글쓰기 교실을 진행하고, 마을 도서관을 재정비하고, 마을 축제를 만들어내면서 주민 자치의 길을 찾는다. 그리하여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는 ‘생태적 자율 공동체’를 꿈꾸고 또 일구어 간다. ‘오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저자의 행복론은 직접 경험하여 얻은 것이기에 더욱 진실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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