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합니다! 49와 엄마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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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12 14:42 조회 6,218회 댓글 0건본문
‘수數’라는 제시어를 듣는 순간 천명관의 『고령화 가족』이 생각났다. 서른을 넘기면서 나이라는 숫자에 연연하게 되어서일까?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여러가지 수數 중 유독 나이에 집착하게 된 것이 조금 서글프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과 함께 인생사 새옹지마의 여유를 부리고 싶어진다. 이 책의 저자 천명관은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다 본격적으로 소설을 썼다. 그래서인지 글을 읽으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또한 책의 주인공은 작가가 충무로에서 직접 만나봤을 법한 ‘실패한 영화감독’이다. 영화가 일주일 만에 막을 내리며 흥행에 참패했고 이후 십여 년을 애써 왔다. 하지만 주인공 오 감독에게 남은 건 ‘영화판의 배신자’라는 낙인과 파산한 경제력, 이혼 그리고 알코올 중독이었다. 어느 날 닭죽을 먹으러 오라는 엄마의 전화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에게 나이 마흔 여덟에 칠순이 넘은 엄마 집에 얹혀산다는 건 생각만 해도 ‘쪽 팔리고 민망한 일’이었지만 더 끔찍한 건 이미 형이 얹혀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오함마(공사판에서 돌을 깨는 망치)라는 별명을 가진 그의 형은 ‘쉰 두 살, 백이십 킬로그램, 폭력과 강간, 사기와 절도로 얼룩진 전과 5범의 변태 성욕자, 정신불구의 거대한 괴물’로 표현된, 한마디로 인간 망종이다. 오 감독이 집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않아 여동생 미연이 이혼하고 딸 민경을 데리고 들어오면서 이 집의 평균연령은 49세가 되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인물설정과 콩가루 집안 배경은 자칫 글을 무겁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등장하는 오함마의 방귀소리와 어린 조카와 실랑이를 벌이는 외삼촌들의 모습을 통해 코믹한 분위기는 유쾌한 마음으로 글을 읽게 한다.
책을 읽다가 문득 우리 가족의 평균연령이 궁금해져 계산해 보니 49세에 가까운 수치가 나왔다(아직까지 결혼하지 않고 부모님 곁에 살고 있는 고등학교 미술교사와 의사인 우리 남매 때문이다). 작가는 왜 굳이평균나이를 49세로 했을까? 궁금해서 알아보니, 우리나라 풍습 중에 49와 관련된 것이 있었다. 망자의 혼을 위해 49일간 재를 올리는 49재齎가 그것이다. 다시 말해, 49라는 수는 이 세상을 떠나 다음 세상으로 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일종의 정리, 준비의 시간이다. 그러니 평균연령 49세와 엄마의 집은 힘겨운 세상살이를 피해 안식처에서 새 출발을 하고픈 오 씨 삼남매의 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오 감독이 누에처럼 엄마가 차려 놓은 밥을 먹고 다시 방으로 기어들어가 잠을 잤다는 것이나, 70 넘은 엄마가 40 넘은 자식들을 입 벌리고 밥 달라는 제비새끼 키우듯 매 끼니마다 삼겹살을 굽고 소의 사골을 고아 먹인 대목은 이러한 상징을 잘드러내고 있다.
삼남매가 모여 살면서 ‘막장드라마’에 나올 법한 출생의 비밀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것은 오갈 데 없어 살 맞대고 사는 중년의 삼남매에게 지금껏 무의식이라는 기억의 망각 속에 묻어 둔, 꺼내려 하지 않았던 가족의 과거와 상처였다. 하지만 연이어 터지는 사건속에 거부와 직면의 심리치유 과정을 밟아 불편함과 어색함을 끌어안고 가족이기에 자연스럽게 용서하고 사랑하는 모습으로 성장한다. 그 결과 인생 망종이었던 오함마도, 바람둥이 재혼녀 여동생 미연도, 주인공오 감독도 이 책의 끝에서는 읽는 사람의 마음에 넉넉한 미소를 짓게 할 아름다운 결말을 보여주며 엄마의 집을 떠난다.
20대의 나는 미래를 위해 달려왔지만 30대의 나는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미래를 위해 보다 의미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를 살아내는 것이고, 그 힘은 내 어머니, 혹은 가족이라는 뿌리를 기억하고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시 말해, 진정한 의미의 ‘나이 먹다’라는 말은 숫자로서의 나이가 아닌, ‘성장’의 의미라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 근무한 지난 5년 동안 티 없이 웃고 장난치는 학생들이 깨진 가정에서 상처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학생들에게 학교는 제2의 ‘엄마의 집’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나이만 먹고 성장하지 않은 오 감독 남매가 자신들의 치부를 직면하고 인정하기까지 그들을 품어준 어머니가 있었던 것처럼, 학교와 교사가 그리고 바로 나 자신이 학생들에게 그런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하는 미술수업이, 그리고 수업의 터전인 미술실이 오 씨 삼남매의 엄마의 집처럼 되기를 꿈꾸며 오늘도 나는 ‘현재를 산다’.
또한 책의 주인공은 작가가 충무로에서 직접 만나봤을 법한 ‘실패한 영화감독’이다. 영화가 일주일 만에 막을 내리며 흥행에 참패했고 이후 십여 년을 애써 왔다. 하지만 주인공 오 감독에게 남은 건 ‘영화판의 배신자’라는 낙인과 파산한 경제력, 이혼 그리고 알코올 중독이었다. 어느 날 닭죽을 먹으러 오라는 엄마의 전화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에게 나이 마흔 여덟에 칠순이 넘은 엄마 집에 얹혀산다는 건 생각만 해도 ‘쪽 팔리고 민망한 일’이었지만 더 끔찍한 건 이미 형이 얹혀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오함마(공사판에서 돌을 깨는 망치)라는 별명을 가진 그의 형은 ‘쉰 두 살, 백이십 킬로그램, 폭력과 강간, 사기와 절도로 얼룩진 전과 5범의 변태 성욕자, 정신불구의 거대한 괴물’로 표현된, 한마디로 인간 망종이다. 오 감독이 집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않아 여동생 미연이 이혼하고 딸 민경을 데리고 들어오면서 이 집의 평균연령은 49세가 되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인물설정과 콩가루 집안 배경은 자칫 글을 무겁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등장하는 오함마의 방귀소리와 어린 조카와 실랑이를 벌이는 외삼촌들의 모습을 통해 코믹한 분위기는 유쾌한 마음으로 글을 읽게 한다.
책을 읽다가 문득 우리 가족의 평균연령이 궁금해져 계산해 보니 49세에 가까운 수치가 나왔다(아직까지 결혼하지 않고 부모님 곁에 살고 있는 고등학교 미술교사와 의사인 우리 남매 때문이다). 작가는 왜 굳이평균나이를 49세로 했을까? 궁금해서 알아보니, 우리나라 풍습 중에 49와 관련된 것이 있었다. 망자의 혼을 위해 49일간 재를 올리는 49재齎가 그것이다. 다시 말해, 49라는 수는 이 세상을 떠나 다음 세상으로 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일종의 정리, 준비의 시간이다. 그러니 평균연령 49세와 엄마의 집은 힘겨운 세상살이를 피해 안식처에서 새 출발을 하고픈 오 씨 삼남매의 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오 감독이 누에처럼 엄마가 차려 놓은 밥을 먹고 다시 방으로 기어들어가 잠을 잤다는 것이나, 70 넘은 엄마가 40 넘은 자식들을 입 벌리고 밥 달라는 제비새끼 키우듯 매 끼니마다 삼겹살을 굽고 소의 사골을 고아 먹인 대목은 이러한 상징을 잘드러내고 있다.
삼남매가 모여 살면서 ‘막장드라마’에 나올 법한 출생의 비밀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것은 오갈 데 없어 살 맞대고 사는 중년의 삼남매에게 지금껏 무의식이라는 기억의 망각 속에 묻어 둔, 꺼내려 하지 않았던 가족의 과거와 상처였다. 하지만 연이어 터지는 사건속에 거부와 직면의 심리치유 과정을 밟아 불편함과 어색함을 끌어안고 가족이기에 자연스럽게 용서하고 사랑하는 모습으로 성장한다. 그 결과 인생 망종이었던 오함마도, 바람둥이 재혼녀 여동생 미연도, 주인공오 감독도 이 책의 끝에서는 읽는 사람의 마음에 넉넉한 미소를 짓게 할 아름다운 결말을 보여주며 엄마의 집을 떠난다.
20대의 나는 미래를 위해 달려왔지만 30대의 나는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미래를 위해 보다 의미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를 살아내는 것이고, 그 힘은 내 어머니, 혹은 가족이라는 뿌리를 기억하고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시 말해, 진정한 의미의 ‘나이 먹다’라는 말은 숫자로서의 나이가 아닌, ‘성장’의 의미라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 근무한 지난 5년 동안 티 없이 웃고 장난치는 학생들이 깨진 가정에서 상처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학생들에게 학교는 제2의 ‘엄마의 집’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나이만 먹고 성장하지 않은 오 감독 남매가 자신들의 치부를 직면하고 인정하기까지 그들을 품어준 어머니가 있었던 것처럼, 학교와 교사가 그리고 바로 나 자신이 학생들에게 그런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하는 미술수업이, 그리고 수업의 터전인 미술실이 오 씨 삼남매의 엄마의 집처럼 되기를 꿈꾸며 오늘도 나는 ‘현재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