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새책 자연이 들려주는 지혜 더불어 살아가는 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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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09 22:23 조회 6,320회 댓글 0건본문
오래 전 TV에서 ‘아무도 2등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하는 광고를 봤습니다. 그 시대에는 그 말에 모두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긍정적으로 공감하며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편 요즘 TV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어 가운데 술 취한 척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외치는 것이 있습니다. 1등도 좋지만 1등이 아닌 자의 수많은 노력과 가치는 제대로 평가되지 않는 데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는 말입니다. 여전히 세상은 ‘1등’, ‘최고’,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이미지를 강조하지만, 이제 오로지 1등만의 노력과 가치를 인정하는 세상을 향해 쓴소리를 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것이 사람들을 일깨울 광고든 우스개 개그든 세상의 가치를 반영하는 것인데, 앞으로 이 세상에서 울고 웃으며 삶을 펼쳐 나갈 아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가치를 가르쳐줄 수 있을까요? 이 책 『모르는 게 더 많아』에서 아이들은 그 해답에 조금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책 표지에 숲을 배경으로 손을 잡고 선 어른과 어린아이가 검은 실루엣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주먹을 쥔 채 어른이 가리키는 손끝의 날갯짓하는 새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표정은 전혀 알아볼 수 없지만 가르쳐주려는 사람과 새로운 것을 알게 된 아이의 표정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나무와 새,두 사람을 제외하고 곱디 고운 붉음과 노랑으로 노을을 배경으로 처리한 표지는 제목과 함께 책장을 펼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첫 장을 열면 산 모양을 닮은 움집 위의 수탉이 한껏 목청을 높여 아침을 부릅니다. 저 멀리 산 너머 푸른 새벽을 가르며 찬
란하고 황홀한 황금빛 태양이 서서히 떠오릅니다. 그리고 아이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어린아이네 가족의 이름은 모두 ‘노을’에서 따왔습니다. 불씨를 지키는 할머니는 저녁놀, 밭을 매는 엄마의 이름은 고운놀, 사냥을 떠나는 아빠의 이름은 타는놀, 아이의 이름은 아침놀입니다.
아침놀과 마을 애들도 모두 숲에 갑니다. 그러나 창이나 활을 들고 짐승을 사냥하는 아이들과 다르게 아침놀은 다친 짐승이나 새들을 돌보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합니다. 아침놀은 마을에서 가장 힘이 센 작은곰과 씨름을 해서 이기기도 하고, 마을에서 가장 빠른 쌩쌩이와 나란히 달리기도 하고, 똥만 보고도 짐승을 알아맞히고, 발자국만 보아도 어디로 갔는지 압니다. 하지만 사냥을 하지 않으려는 아침놀을 아버지는 “너, 내 아들 맞니?”라며 늘 야단을 치십니다. 마침내 아빠에게 떠밀려 사냥을 나가게 된 아침놀에게 마을 사람들은 냉담하기만 합니다. 사실 아침놀은 늘 돌아가신 할아버지 붉은놀과 함께 숲을 다녀서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숲과 동물들을 아껴 차마 사냥을 할 수 없었던 아침놀은 마을에서 사냥을 가장 잘하는 집 아들 날쌘범이 독이 있는 열매를 먹고 쓰러진 것을 구해줍니다. 둘은 친구가 되고 그 일이 있은 뒤 아버지는 드디어 아침놀이 사냥 말고 다른 일에 더 소질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줍니다. 아침놀의 독백처럼 이어지는 이야기에 그윽하고 아름다운 색감과 검은 실루엣으로 처리한 인물들이 이야기를 살아나게 합니다. 물감으로 칠한 종이 위에 왁스 페인트를 불에 녹여 바른 다음 철필로 거듭 긁어내는 방식으로 그린 그림은, 어렸을 적 여러 가지 색의 바탕 위에 검은색으로 덧칠하여 날카로운 도구로 긁어 선이나 면으로 표현한 그림을 보는 듯 익숙하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검은 실루엣 방식으로 표현되어 얼굴의 표정을 살펴볼 수는 없지만, 배경을 이루는 색감이 오히려 인물의 감정에 몰입하게 만들어 당시의 상황이나 기분이 마치 자신의 것인 듯 자연스럽게 느끼게 됩니다. 사냥을 하는 아이들의 배경에 사용한 초록과 다친 짐승을 돌보는 아침놀의 배경에 쓰인 초록은 생명과 슬픔의 차이를 확연하게 보여줍니다. 새벽빛 여명, 햇살이 비쳐드는 숲속, 작은 풀꽃들이 일렁이는 초원, 보름달이 떠 있는 푸른빛 밤하늘… …
날쌘범에게 약초를 건네는 순간, 아버지가 아침놀의 가치를 인정하고 서로를 마주보는 순간 등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이 모두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때로는 그윽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때로는 황홀하게, 그 그림들 속에서 아침놀의 이야기가 조용히 가슴속으로 스며듭니다.
아침놀이 살던 시대는 사냥이 생업이자 주된 가치였던 때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냥의 능력으로 가족과 부족을 이끌던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에 아침놀이 가진 능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처럼 취급됐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온종일 사냥의 기술을 배우고 숲의 환경과 짐승들은 오로지 나의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인 시대에 숲을 사랑하고 동물을 사랑한 아침놀은 ‘이상함’ 그 자체였겠지요. 존재 가치가 불투명하고 쓸모없는 사람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만납니다. 자연이 들려주는 지혜에 귀를 기울이는 아이, 숲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아이, 아침놀을 만납니다. 아침놀의 이야기가 그윽하고 황홀한 그림을 만나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섬세한 선들이 빗살을 이루며 곱디 고운 노을이, 햇살이, 들판이, 숲이 그 아름다움을 쏟아내며 아름다움을 넘어 황홀하게 느껴집니다. 아침놀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우리 아이들을 생각합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에 떠밀려 온종일 남을 제치는 ‘기술’을 배우고 또 배우느라 타인의 아픔이나 슬픔에 ‘무관심’하고,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아름다움과 가치를 느끼는 못하는 ‘무감각’이라는 돌림병에 걸려 있지는 않은지… … . 각자가 가진 개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오로지 ‘1등’과 ‘최고’의 가치에만 몰입하도록 잘못 가르치고 있지는 않은지… … .
우리는 비로소 아침놀을 이해의 시선으로 마주보게 된 아버지에게서 진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방법을 알게 됩니다. 더 나아가 할아버지가 아침놀에게 가르쳐준 것처럼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에 가르쳐주고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합니다. 가슴 깊은 곳을 두드리는 소중한 그림책입니다.
긍정적으로 공감하며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편 요즘 TV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어 가운데 술 취한 척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외치는 것이 있습니다. 1등도 좋지만 1등이 아닌 자의 수많은 노력과 가치는 제대로 평가되지 않는 데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는 말입니다. 여전히 세상은 ‘1등’, ‘최고’,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이미지를 강조하지만, 이제 오로지 1등만의 노력과 가치를 인정하는 세상을 향해 쓴소리를 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것이 사람들을 일깨울 광고든 우스개 개그든 세상의 가치를 반영하는 것인데, 앞으로 이 세상에서 울고 웃으며 삶을 펼쳐 나갈 아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가치를 가르쳐줄 수 있을까요? 이 책 『모르는 게 더 많아』에서 아이들은 그 해답에 조금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책 표지에 숲을 배경으로 손을 잡고 선 어른과 어린아이가 검은 실루엣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주먹을 쥔 채 어른이 가리키는 손끝의 날갯짓하는 새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표정은 전혀 알아볼 수 없지만 가르쳐주려는 사람과 새로운 것을 알게 된 아이의 표정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나무와 새,두 사람을 제외하고 곱디 고운 붉음과 노랑으로 노을을 배경으로 처리한 표지는 제목과 함께 책장을 펼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첫 장을 열면 산 모양을 닮은 움집 위의 수탉이 한껏 목청을 높여 아침을 부릅니다. 저 멀리 산 너머 푸른 새벽을 가르며 찬
란하고 황홀한 황금빛 태양이 서서히 떠오릅니다. 그리고 아이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어린아이네 가족의 이름은 모두 ‘노을’에서 따왔습니다. 불씨를 지키는 할머니는 저녁놀, 밭을 매는 엄마의 이름은 고운놀, 사냥을 떠나는 아빠의 이름은 타는놀, 아이의 이름은 아침놀입니다.
아침놀과 마을 애들도 모두 숲에 갑니다. 그러나 창이나 활을 들고 짐승을 사냥하는 아이들과 다르게 아침놀은 다친 짐승이나 새들을 돌보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합니다. 아침놀은 마을에서 가장 힘이 센 작은곰과 씨름을 해서 이기기도 하고, 마을에서 가장 빠른 쌩쌩이와 나란히 달리기도 하고, 똥만 보고도 짐승을 알아맞히고, 발자국만 보아도 어디로 갔는지 압니다. 하지만 사냥을 하지 않으려는 아침놀을 아버지는 “너, 내 아들 맞니?”라며 늘 야단을 치십니다. 마침내 아빠에게 떠밀려 사냥을 나가게 된 아침놀에게 마을 사람들은 냉담하기만 합니다. 사실 아침놀은 늘 돌아가신 할아버지 붉은놀과 함께 숲을 다녀서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숲과 동물들을 아껴 차마 사냥을 할 수 없었던 아침놀은 마을에서 사냥을 가장 잘하는 집 아들 날쌘범이 독이 있는 열매를 먹고 쓰러진 것을 구해줍니다. 둘은 친구가 되고 그 일이 있은 뒤 아버지는 드디어 아침놀이 사냥 말고 다른 일에 더 소질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줍니다. 아침놀의 독백처럼 이어지는 이야기에 그윽하고 아름다운 색감과 검은 실루엣으로 처리한 인물들이 이야기를 살아나게 합니다. 물감으로 칠한 종이 위에 왁스 페인트를 불에 녹여 바른 다음 철필로 거듭 긁어내는 방식으로 그린 그림은, 어렸을 적 여러 가지 색의 바탕 위에 검은색으로 덧칠하여 날카로운 도구로 긁어 선이나 면으로 표현한 그림을 보는 듯 익숙하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검은 실루엣 방식으로 표현되어 얼굴의 표정을 살펴볼 수는 없지만, 배경을 이루는 색감이 오히려 인물의 감정에 몰입하게 만들어 당시의 상황이나 기분이 마치 자신의 것인 듯 자연스럽게 느끼게 됩니다. 사냥을 하는 아이들의 배경에 사용한 초록과 다친 짐승을 돌보는 아침놀의 배경에 쓰인 초록은 생명과 슬픔의 차이를 확연하게 보여줍니다. 새벽빛 여명, 햇살이 비쳐드는 숲속, 작은 풀꽃들이 일렁이는 초원, 보름달이 떠 있는 푸른빛 밤하늘… …
날쌘범에게 약초를 건네는 순간, 아버지가 아침놀의 가치를 인정하고 서로를 마주보는 순간 등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이 모두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때로는 그윽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때로는 황홀하게, 그 그림들 속에서 아침놀의 이야기가 조용히 가슴속으로 스며듭니다.
아침놀이 살던 시대는 사냥이 생업이자 주된 가치였던 때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냥의 능력으로 가족과 부족을 이끌던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에 아침놀이 가진 능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처럼 취급됐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온종일 사냥의 기술을 배우고 숲의 환경과 짐승들은 오로지 나의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인 시대에 숲을 사랑하고 동물을 사랑한 아침놀은 ‘이상함’ 그 자체였겠지요. 존재 가치가 불투명하고 쓸모없는 사람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만납니다. 자연이 들려주는 지혜에 귀를 기울이는 아이, 숲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아이, 아침놀을 만납니다. 아침놀의 이야기가 그윽하고 황홀한 그림을 만나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섬세한 선들이 빗살을 이루며 곱디 고운 노을이, 햇살이, 들판이, 숲이 그 아름다움을 쏟아내며 아름다움을 넘어 황홀하게 느껴집니다. 아침놀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우리 아이들을 생각합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에 떠밀려 온종일 남을 제치는 ‘기술’을 배우고 또 배우느라 타인의 아픔이나 슬픔에 ‘무관심’하고,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아름다움과 가치를 느끼는 못하는 ‘무감각’이라는 돌림병에 걸려 있지는 않은지… … . 각자가 가진 개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오로지 ‘1등’과 ‘최고’의 가치에만 몰입하도록 잘못 가르치고 있지는 않은지… … .
우리는 비로소 아침놀을 이해의 시선으로 마주보게 된 아버지에게서 진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방법을 알게 됩니다. 더 나아가 할아버지가 아침놀에게 가르쳐준 것처럼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에 가르쳐주고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합니다. 가슴 깊은 곳을 두드리는 소중한 그림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