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새책 마이너리티의 눈으로 서구 문명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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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12 16:32 조회 6,268회 댓글 0건본문
영화를 글감으로 삼은 책들의 유형은 더할 나위 없이 다양해졌다. 고매한 식견을 갖춘 영화이론가나 비평가들의 비평집은 물론이요, 세상살이의 단상을 영화에 투과한 에세이, 허다한 주옥편들에 대한 개인의 감상 모음까지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제각각이다. 이는 대중문화의 총아로서 그 위상에 기인하는 바, 또 다른 이유를 대자면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혼성적 특성과도 결부된 문제라 하겠다.
『문명과 야만의 블록버스터』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을 단 김창진 교수의 이 책은 인문학의 토대 위에 영화를 포개 놓는다. 저자는 대중들에게 익숙한 유력 영화들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그들이 묘사하는 이미지 뒤에 숨겨진 전략을 갈파하는 데 책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꼭 ‘블록버스터’라는 영화적 개념에 부합되는 작품들이 취택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저자가 사용한 블록버스터의 의미를 추론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블록버스터는 할리우드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만들어낸 고유 상품의 의미라기보다는 문명과 교화의 명목으로 제국이 행한 험상스러운 횡포에 대한 은유이다. 막대한 규모와 물량을 탑재한 거대한 덩치로 군림하려는 패권의 역사에 대한 완곡한 비유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제인 ‘영화로 보는 제국의 역사’는 사실 제목인 ‘문명과 야만의 블록버스터’보다 좀 더 직접적으로 이 책이 다루려는 바를 명시한다. ‘제국’과 ‘제국주의’라는 명제를 대중영화의 화법 속에서 밝혀내는 작업에 몰두하면서 저자는 영화를 통해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그리고 서서히 몰락의 징후를 드러내고 있는 미국과 과거 세계를 지배했던 서구 유럽열강들의 ‘영광의 역사’가 얼마나 기만적인 토대 위에서 기술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독해한다. 텍스트에 대한 이와 같은 독해는 비단 영화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문화 생산품에 유사한 잣대로 적용될 수 있을 터이다. 그러나 서사 양식으로서 영화가 지닌 반영적 특징, 가장 생생하게 현실 이미지를 재현하는 능력으로 인해 압도적인 동일시를 조장한다는 측면에 이 책은 주목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서구의 시선을 토대로 만들어진 성공한 대중영화들이 제국과 열강이 자행한 질곡의 역사를 복기할 적절한 텍스트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인 것이다.
『문명과 야만의 블록버스터』는 제국주의와 파시즘, 미국의 패권주의를 나란히 놓는다. 논거로 동원되는 대부분의 영화는 장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서사 시대극이다. 고전적 영웅 서사에 그 뿌리를 댄 시대극이란 인간과 역사의 운명을 걸머진 초인적 영웅의 신묘한 능력에 기대는 장르이다. 시대의 한 단면을 상상과 고증에 의지해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극의 특성상 의식, 무의식적으로 거기에 서구 중심의 시선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그리스 연합을 선으로, 페르시아를 악으로 규정하는 영화 <300>에서, 한때 초라한 서양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문화적, 경제적 대국이었으며 동서양 문물의 교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페르시아 제국을 자신의 뿌리가 아니라는 이유로 야만의 세계로 몰아붙이는 서구의 뿌리 깊은 곡해를 읽어내는 식이다. 도합 11장으로 이루어진 책의 마디마디를 따라가다 보면독자들은 영화 속에서 장엄하고 아름답게 묘사된 서구의 화려한 유산이 학살과 파괴라는 또 다른 얼굴을 숨기고 있었다는 냉엄한 진실과 대면하게 된다.
오늘날 역사 서술의 경향은 서구 편향적인 관점의 지배력에 의해 밀려나고 경시되거나 때로는 심각하게 오도된 측면들에 대한 수정주의적 담론에 주목한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고려할때 인습적인 역사 서술 방식의 함정을 일갈하는 수정주의적 역사 담론의 입문판으로 이 책은 손색이 없다. 서구 중심의 영웅서사 이면에 웅크린 해악적 이데올로기를 읽어내려는 견결한 의도와 달리 간혹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필자의 취향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는 점이나, 본격적인 역사서 또는 문화비평서, 아니면 에세이 사이의 애매한 위치에 자리한다는 장단이 눈에 띈다. 그러나 신중히 선택한 작품들 안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 비틀린 역사의 흔적을 찾아내고,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저자의 의도는 충분히 전달되고도 남는다. 더군다나 자칫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 있는 역사에 관한 주제를 영화라는 친숙한 매체를 통해 알기 쉽게 해설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대중적 친화력을 충분히 갖는다. 이 책을 읽는 우리들도 이른바 제3세계에 속한 사람들이다.
저들의 의식과 무의식을 지배하는 제국주의의 파시즘은 이미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문명과 야만의 블록버스터』는 마치 우리의 것처럼 느껴지는 아름답고 현란한 서구의 문화 유산들이 기실 진짜 우리의 것을 약탈하고 비하하는 제3세계의 희생과 폭력의 토대 위에 세워졌음을 깨닫게 한다. 그것이 통절한 각성이 될는지 여기서 속단할 수는 없다. 혹자에게는 충격일 수 있고, 혹자에게는 정문일침의 깨달음이 될 수도 있을 이 책은, 역사와 영화에 모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기꺼이 생각해 볼 만한 숙제를 던진다.
『문명과 야만의 블록버스터』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을 단 김창진 교수의 이 책은 인문학의 토대 위에 영화를 포개 놓는다. 저자는 대중들에게 익숙한 유력 영화들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그들이 묘사하는 이미지 뒤에 숨겨진 전략을 갈파하는 데 책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꼭 ‘블록버스터’라는 영화적 개념에 부합되는 작품들이 취택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저자가 사용한 블록버스터의 의미를 추론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블록버스터는 할리우드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만들어낸 고유 상품의 의미라기보다는 문명과 교화의 명목으로 제국이 행한 험상스러운 횡포에 대한 은유이다. 막대한 규모와 물량을 탑재한 거대한 덩치로 군림하려는 패권의 역사에 대한 완곡한 비유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제인 ‘영화로 보는 제국의 역사’는 사실 제목인 ‘문명과 야만의 블록버스터’보다 좀 더 직접적으로 이 책이 다루려는 바를 명시한다. ‘제국’과 ‘제국주의’라는 명제를 대중영화의 화법 속에서 밝혀내는 작업에 몰두하면서 저자는 영화를 통해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그리고 서서히 몰락의 징후를 드러내고 있는 미국과 과거 세계를 지배했던 서구 유럽열강들의 ‘영광의 역사’가 얼마나 기만적인 토대 위에서 기술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독해한다. 텍스트에 대한 이와 같은 독해는 비단 영화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문화 생산품에 유사한 잣대로 적용될 수 있을 터이다. 그러나 서사 양식으로서 영화가 지닌 반영적 특징, 가장 생생하게 현실 이미지를 재현하는 능력으로 인해 압도적인 동일시를 조장한다는 측면에 이 책은 주목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서구의 시선을 토대로 만들어진 성공한 대중영화들이 제국과 열강이 자행한 질곡의 역사를 복기할 적절한 텍스트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인 것이다.
『문명과 야만의 블록버스터』는 제국주의와 파시즘, 미국의 패권주의를 나란히 놓는다. 논거로 동원되는 대부분의 영화는 장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서사 시대극이다. 고전적 영웅 서사에 그 뿌리를 댄 시대극이란 인간과 역사의 운명을 걸머진 초인적 영웅의 신묘한 능력에 기대는 장르이다. 시대의 한 단면을 상상과 고증에 의지해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극의 특성상 의식, 무의식적으로 거기에 서구 중심의 시선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그리스 연합을 선으로, 페르시아를 악으로 규정하는 영화 <300>에서, 한때 초라한 서양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문화적, 경제적 대국이었으며 동서양 문물의 교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페르시아 제국을 자신의 뿌리가 아니라는 이유로 야만의 세계로 몰아붙이는 서구의 뿌리 깊은 곡해를 읽어내는 식이다. 도합 11장으로 이루어진 책의 마디마디를 따라가다 보면독자들은 영화 속에서 장엄하고 아름답게 묘사된 서구의 화려한 유산이 학살과 파괴라는 또 다른 얼굴을 숨기고 있었다는 냉엄한 진실과 대면하게 된다.
오늘날 역사 서술의 경향은 서구 편향적인 관점의 지배력에 의해 밀려나고 경시되거나 때로는 심각하게 오도된 측면들에 대한 수정주의적 담론에 주목한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고려할때 인습적인 역사 서술 방식의 함정을 일갈하는 수정주의적 역사 담론의 입문판으로 이 책은 손색이 없다. 서구 중심의 영웅서사 이면에 웅크린 해악적 이데올로기를 읽어내려는 견결한 의도와 달리 간혹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필자의 취향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는 점이나, 본격적인 역사서 또는 문화비평서, 아니면 에세이 사이의 애매한 위치에 자리한다는 장단이 눈에 띈다. 그러나 신중히 선택한 작품들 안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 비틀린 역사의 흔적을 찾아내고,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저자의 의도는 충분히 전달되고도 남는다. 더군다나 자칫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 있는 역사에 관한 주제를 영화라는 친숙한 매체를 통해 알기 쉽게 해설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대중적 친화력을 충분히 갖는다. 이 책을 읽는 우리들도 이른바 제3세계에 속한 사람들이다.
저들의 의식과 무의식을 지배하는 제국주의의 파시즘은 이미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문명과 야만의 블록버스터』는 마치 우리의 것처럼 느껴지는 아름답고 현란한 서구의 문화 유산들이 기실 진짜 우리의 것을 약탈하고 비하하는 제3세계의 희생과 폭력의 토대 위에 세워졌음을 깨닫게 한다. 그것이 통절한 각성이 될는지 여기서 속단할 수는 없다. 혹자에게는 충격일 수 있고, 혹자에게는 정문일침의 깨달음이 될 수도 있을 이 책은, 역사와 영화에 모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기꺼이 생각해 볼 만한 숙제를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