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합니다! ‘책’, 수족관에서 바다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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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12 20:30 조회 7,002회 댓글 0건본문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사서교사’라는 직함으로 처음 근무했던 학교의 도서관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도시에서 홀로 도서관으로 출근하는 날이면 나는 창문 너머푸른 바다에 한동안 넋을 놓고는 했다. 하지만 그 깊고 른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한 마리 물고기가 되어 수면 아래로 침잠하곤 했다. 일 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곳에 대한 나의 기억은 창문 너머 보이던 바다의 갯내음처럼 오래 나를 떠나지 않았다.
오랜 고전과 분투 끝에 해남으로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 난 또다시 바다를 끼고 앉은 어촌 마을의 풍경을 상했다. 그러나 내가 발령받은 읍내학교에서 바다가 는 땅끝까지는 무려 한 시간이나 걸렸다. 웬만큼 높은지대에 서 있지 않으면 바다를 바라보는 게 쉽지 않았다. 읍내에는 버스가 다니지 않아 무면허 뚜벅이인 나는 디를 가려면 무작정 걸어야만 했고,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학교도서관 아니면 방에 틀어박혀 있는 날이 많았다. 그렇게 방에 박혀 읽은 책 가운데 하나가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이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일본 작가 다나베 세이코의 연애에 관한 단편소설집이다. 사랑 이야기를 담은 일본의 소설들이 종종 그렇듯 이 책 또한 윤리에 어긋나는 소재로 몇몇 이야기들은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지만 그중에 와닿는 내용이 있었으니 표제작인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이 그것이다.
영화로 더 유명한 이 단편소설은 정확한 원인도 모른 채 뇌성마비 진단을 받고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반신 마비 장애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그녀는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은 집과 시설만을 오가며 닫히고 갇힌 삶을 보낸다. 프랑수와즈 사강의 소설을 즐겨 읽고 그 소설에 등장하는 제라는 여인의 자유분방한 삶을 동경해 자신을 조제라 불러주길 원하는 그녀. 츠네오란 청년이 그녀를 밖으로 끌고 나오기 전까지 그녀를 외부세계와 연결 짓는 일한 통로는 책뿐이었던 것 같다. 내가 이곳에 처음내려와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없는 답답한 생활을 책으로 달랬던 것처럼, 구미코(조제)는 자신의 불편한 몸을 속에서나마 위안 삼아 잊고 지냈나 보다.
동물원과 수족관을 좋아하는 조제. 무서워도 안길 있는 남자친구가 생기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을 고 싶다던 조제는 츠네오와 함께 호랑이를 보러 간다. 우리 안에 갇혀 있지만 그 속에서도 잃지 않은 야성의 본능, 강한 생명력.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의 호랑이는 어쩌면 조제가 닮고 싶은 이상형이 아닐까? 츠네오와 떠난 첫 여행에서 조제는 수족관의 물고기들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밤과 낮도 구분할 수 없는 공간, 마냥 흘러가는 시간, 그 속에서 공포와는 다른 어떤 도취에 빠져 끝도 없이 그 안을 뱅뱅 도는 조제. 그냥 내버려둔다면 죽을 때까지 그 안을 돌아다닐 것 같은 그녀. 어쩌면 안에서 그녀는 자신의 지난 모습을 발견하고 또다시 곳에 머무르고 안주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그녀와 달리 건강한 두 발을 갖고 있지만 한정된 공간과 장소에 묶여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고 있는 나. 스스로를 거대한 수족관에 가둬버린 채 흘러가는 대로 떠맡기고 있는 나. 과연 그녀의 갇힌 삶과 내 삶이 다른 게 엇일까? 어쩌면 학교라는 공간, 그리고 그속에 사는 아이들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해저 수족관의 물고기들처럼 밤과 낮도 구분하지 못한 채 흘러가는 시간속에 각자의 공간을 유영하는 아이들. 그속에서 아이들은 이 책의 여주인공처럼 속으로 되뇔지도 모른다. “우리는 죽은 거야. 죽은 존재가 된 거야”, “우리는 물고기야. 죽어버린 거야.”라고.
그렇게 아이들은 고등학교 3년을 죽어서 지낸다. 하지만 누구도 우리 아이들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려줄 ‘츠네오’ 같은 역할을 하기엔 쉽지 않다.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제도적 모순과 입시 위주 교육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 한, 인문계 고교에서는 그러한 작업이 너무 힘들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대안을 찾는다면 나는 학교도서관과 책에서 찾고 싶다. 닫힌 삶 속에서 조제가 책을 통해 자유를 만끽한 것처럼 아이들이 답답하고 막막한 현실 속에서 그나마 꿈꾸고 위안 받을 수 있는 곳은 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족관 속의 아이들이 좀 더 넓은 바다로 나와 자유를 만끽했으면 한다. 그리고 때로는 수면 위로 올라가 지상의 빛나는 밝은 햇살에 젖은 몸을 말리고 휴식도 취했으면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바쁜 아이들을 위해 좀 더 좋은 지상의 선물, 한 권의 책을 선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책 속에서 더 밝고 넓은 세상을 더 깊고 멀리 볼 수 있길 바라면서…….
오랜 고전과 분투 끝에 해남으로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 난 또다시 바다를 끼고 앉은 어촌 마을의 풍경을 상했다. 그러나 내가 발령받은 읍내학교에서 바다가 는 땅끝까지는 무려 한 시간이나 걸렸다. 웬만큼 높은지대에 서 있지 않으면 바다를 바라보는 게 쉽지 않았다. 읍내에는 버스가 다니지 않아 무면허 뚜벅이인 나는 디를 가려면 무작정 걸어야만 했고,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학교도서관 아니면 방에 틀어박혀 있는 날이 많았다. 그렇게 방에 박혀 읽은 책 가운데 하나가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이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일본 작가 다나베 세이코의 연애에 관한 단편소설집이다. 사랑 이야기를 담은 일본의 소설들이 종종 그렇듯 이 책 또한 윤리에 어긋나는 소재로 몇몇 이야기들은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지만 그중에 와닿는 내용이 있었으니 표제작인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이 그것이다.
영화로 더 유명한 이 단편소설은 정확한 원인도 모른 채 뇌성마비 진단을 받고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반신 마비 장애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그녀는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은 집과 시설만을 오가며 닫히고 갇힌 삶을 보낸다. 프랑수와즈 사강의 소설을 즐겨 읽고 그 소설에 등장하는 제라는 여인의 자유분방한 삶을 동경해 자신을 조제라 불러주길 원하는 그녀. 츠네오란 청년이 그녀를 밖으로 끌고 나오기 전까지 그녀를 외부세계와 연결 짓는 일한 통로는 책뿐이었던 것 같다. 내가 이곳에 처음내려와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없는 답답한 생활을 책으로 달랬던 것처럼, 구미코(조제)는 자신의 불편한 몸을 속에서나마 위안 삼아 잊고 지냈나 보다.
동물원과 수족관을 좋아하는 조제. 무서워도 안길 있는 남자친구가 생기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을 고 싶다던 조제는 츠네오와 함께 호랑이를 보러 간다. 우리 안에 갇혀 있지만 그 속에서도 잃지 않은 야성의 본능, 강한 생명력.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의 호랑이는 어쩌면 조제가 닮고 싶은 이상형이 아닐까? 츠네오와 떠난 첫 여행에서 조제는 수족관의 물고기들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밤과 낮도 구분할 수 없는 공간, 마냥 흘러가는 시간, 그 속에서 공포와는 다른 어떤 도취에 빠져 끝도 없이 그 안을 뱅뱅 도는 조제. 그냥 내버려둔다면 죽을 때까지 그 안을 돌아다닐 것 같은 그녀. 어쩌면 안에서 그녀는 자신의 지난 모습을 발견하고 또다시 곳에 머무르고 안주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그녀와 달리 건강한 두 발을 갖고 있지만 한정된 공간과 장소에 묶여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고 있는 나. 스스로를 거대한 수족관에 가둬버린 채 흘러가는 대로 떠맡기고 있는 나. 과연 그녀의 갇힌 삶과 내 삶이 다른 게 엇일까? 어쩌면 학교라는 공간, 그리고 그속에 사는 아이들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해저 수족관의 물고기들처럼 밤과 낮도 구분하지 못한 채 흘러가는 시간속에 각자의 공간을 유영하는 아이들. 그속에서 아이들은 이 책의 여주인공처럼 속으로 되뇔지도 모른다. “우리는 죽은 거야. 죽은 존재가 된 거야”, “우리는 물고기야. 죽어버린 거야.”라고.
그렇게 아이들은 고등학교 3년을 죽어서 지낸다. 하지만 누구도 우리 아이들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려줄 ‘츠네오’ 같은 역할을 하기엔 쉽지 않다.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제도적 모순과 입시 위주 교육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 한, 인문계 고교에서는 그러한 작업이 너무 힘들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대안을 찾는다면 나는 학교도서관과 책에서 찾고 싶다. 닫힌 삶 속에서 조제가 책을 통해 자유를 만끽한 것처럼 아이들이 답답하고 막막한 현실 속에서 그나마 꿈꾸고 위안 받을 수 있는 곳은 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족관 속의 아이들이 좀 더 넓은 바다로 나와 자유를 만끽했으면 한다. 그리고 때로는 수면 위로 올라가 지상의 빛나는 밝은 햇살에 젖은 몸을 말리고 휴식도 취했으면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바쁜 아이들을 위해 좀 더 좋은 지상의 선물, 한 권의 책을 선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책 속에서 더 밝고 넓은 세상을 더 깊고 멀리 볼 수 있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