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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합니다! 울돌목에서 부르는 희망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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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12 20:28 조회 6,98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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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의 동백꽃이 진다. 붉은 목숨처럼 선연한 꽃잎들이 낭자하다. 동백나무 맞은편 담장 너머엔 벚꽃이 한창이다. 지는 꽃은 추레하고 피는 꽃은 화사하다. 학교를 옮기면서 낯선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겨를 없는 날들이 흘러갔다. 젊고 발랄한 신규교사들 틈에서 철지난 외투를 걸치고 말없이 도서관을 기웃거리는 내 모습이라니! 문득 김훈의 ‘삶은 치욕을 견디는 나날’이라는 말이 뇌리에 소름처럼 돋아났다. 남도의 봄은 더디 오고 겨울은 교정에 오래 머물렀다. 바다 건너 먼 대륙에서 날아온 황사가 연일 하늘을 뿌옇게 덮은 봄날은 길고 황량했다. 그황량함 속에서 나는 다시 『칼의 노래』를 읽는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라는 첫 문장이 스산한 봄날처럼 을씨년스럽다. 9년 전 밤을 꼬박 새우며 읽었던 그때의 기억이 새롭다. 그때는 사십대의 봄이었고 지금은 오십대의 봄이다.

『칼의 노래』는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상처를 남겼다. 한 소설가가 세상을 향해 던진 ‘칼’이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베고 지나갔다. 그때 나도 그 칼에 가슴이 베였다. 세상에 대한 연민을 버려야 세상이 보일 것이라고, 사랑은 불가능에 대한 사랑일 뿐이라고, 칼은 세상을 향해 울었다. 그 칼의 울음소리는 베어도 베어지지 않는 헛것 같은 게 삶이라고 노래했다. 삶은 긍정하거나 부정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고, 부정하거나 긍정하거나 삶은 그저 삶으로 흘러간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이 김훈 선생이 말하는 “밥벌이의 지겨움”인지도 모른다.

지난해 이곳 해남 울돌목에서 열린 명량대첩 기념학술 심포지엄에서 김훈 선생은 “이순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두렵다”라고 말했다. 『칼의 노래』를 쓰는 동안 이순신의 침묵이 무서웠다고 한다. 이순신은 세상의 모멸과 치욕을 살아 있는 몸으로 감내하면서 한없는 침묵속에서 전쟁을 준비했다. 그 ‘한없는 침묵’의 힘이 수많은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 김훈 선생은 이순신의 그침묵의 내면, 그 내면의 풍경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침묵의 힘으로 완성된 인간이 되어가는 이순신의 양면성, 적 앞에서는 한없이 광폭하고 지휘계통과 백성 앞에서는 지극히 온순한 그 모순의 통합이 바로 이순신의 힘이요, 이순신의 리더십이라고 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절실한 것이 ‘이순신의 카리스마, 불굴의 의지, 군사와 백성을 사랑하는 따뜻한 인간미’ 같은 것이 아닐까? 고통과 슬픔과 외로움 속에서 오직 자신의 원칙에 충실했던 사람, 이순신. 『칼의 노래』는 위대하면서도 비극적인 한 인간의 극적인 생애를 노래한 한 편의 서사시다. 그리고 그 서사시의 배경이 바로 이곳 해남의 바다다. 해남의 바다는 아름답다. 특히 우수영에서 바라보는 울돌목의 물길은 장관이다. 그 아름다운 물길이 피흘린 옛 싸움터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가장 고통스러운 역사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고통은 지나가지 않고, 원한은 소멸되지 않는다.

13척으로 133척의 왜선과 싸웠던 명량에서의 승리는 ‘해남백성’ 혹은 ‘장흥백성’으로만 알려진 익명성의 민초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명량의 승리는 민초들의 승리였다. 이순신이 남긴 여러 기록에서도 수많은 민초들의 이름과 활약상이 나온다. 싸움의 승첩을 임금에게 보고하는 장계에는 죽거나 부상당한 수많은 부하들의 이름과 정황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기록한 수많은 민초들의 역할과 그들의 고통과 슬픔, 헌신과 희생은 역사의 뒷전에 묻혀 있다. 캄캄한 선실의 밑바닥에서 배고픔과 고통을 참으며 노를 저었을 이름 없는 격군들. 전함의 후방에서 민간선단에 배치되었다 싸움에 뛰어든 백성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민초들이 겪은 고초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민초들의 울부짖음이 또한 ‘칼의 노래’이다. 징징징 칼이 울고 우우우 바다가 운다. 이 땅에서 더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명량鳴梁이 주는 교훈이다. 책을 덮으면, 울돌목에서 우는 파도소리가 들린다. 파도소리의 운을 따라 나는 희망의 노래를 부른다.

바다가 운다 /수 천 년을 울어도 다 울지 못한 울음/역사와함께/한 많은 민초들과 함께/울며 흘러온 저 바다 /울돌목이 운다// 울음은 희망의 씨앗/ 희망은 고통과 절망의 텃밭에서 자라는 꽃이거니/ 꽃 피는 이 봄날 / 나는 울돌목에 와서/식어버린 열망 아래/새로이 일어나는 뜨거운 울음을 본다.// 한때는 이 바다에서 /피 묻은 칼의 노래를 불렀으나 /칼의 노래는 불가능한 사랑일 뿐/더는 이 바다에서 칼의 울음을 듣지 말자//세상은 칼로서 막아낼 수도 없고 /칼로서 헤쳐나갈 수도 없는 곳/오직 사랑만이 우리의 길이니/ 오 사랑이여, 아득한 적이여/그대 앞에 나는 일자진을 치고/ 목청 돋아 희망 노래를 부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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