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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새책 권정생을 다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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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12 22:46 조회 7,68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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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선생님의 동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하느님도, 달님도 눈물을 적시게 만든다. 애잔하여 눈물이 핑 돈다. 『하느님의 눈물』의 돌이 토끼는 자기의 먹을거리인 칡넝쿨,과남풀, 풀무꽃, 댕댕이도 먹지 못한다. 심지어 풀무꽃에게 다가가 “널 먹어도 되니?” 하고 묻는다. 어린 산토끼의 여리디 여린 마음이 하느님의 눈물 한 방울이 된다. 『아기 소나무』 중 아기 소나무가 할머니 할아버지의 초가집이 되겠다며 빨리 크게 해달라는 기도는 달님의 목을 메이게 한다.

이 세상 모두가 남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세상이 오면 보리수나무 이슬이랑 바람 한 줌, 아침 햇빛만 먹고도 살 수 있다고 했다(「하느님의 눈물」 중). 선생님의 동화들은 이 세상 모두가 이슬만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꿈과 희망을 담고 있다. 1991년 산하어린이 시리즈 9번째 『하느님의 눈물』에 실렸던 17편의 동화가 4권으로 나뉘어 저학년이 읽기 좋게 새롭게 발간되었다. 『아기 소나무』, 『학교놀이』, 『아기 늑대 세 남매』, 『아름다운 까마귀 나라』의 제목으로 나온 이 책은 각각 그림 작가를 달리하여 새로운 느낌을 주며 선생님의 글을 아름답게 받쳐주고 있다.

『하느님의 눈물』은 짧은 동화 모음집으로 낮은학년이 읽기에 적당하지만 책의 두께 때문에 아이들이 접근하지 않아 한 편씩읽어주곤 했는데 이렇게 예쁜 책으로 나와 반갑다. 여기에 실린 동화는 거창한 스토리도 없고, 화려한 수식도 없다. 하지만 소박하고 담담한 정서가 때로는 경쾌하게, 유머러스하게, 신랄하게, 세상을 풍자하며 가슴을 적신다. 무거운 주제도 독자들은 중압감 없이, 그리고 동화라는 장르 때문에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다 읽고 나면 가슴 저 밑바닥에서는 묵직한책임과 현실의 벽을 절감하게 된다.

눈물 나게 착하고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 우리 민족의 분단을 5,000년 된 느티나무에 빗댄 「가엾은 나무」, 힘없는 서민의 분노를 그린 「떡반죽 그릇 속의 개구리」, 아기 소나무의 눈을 통해 가난했던 현실을 이야기한 「아기 소나무」 등 권정생 선생님이 직접 겪은 민족사가 애절하게 스며있다.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 이런 현실에 대한 울분이나 분노보다 내 팔로 안아야 할 운명처럼 느껴진다. 선생님이 살고 죽는 것이 모두가 운명이고 마땅한 일(「하느님의 눈물」)이라고 한 것처럼 인고의 세월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순응하라는 글에 공감해서일까?
선생님은 고난도 운명으로 받아들이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명제는 던지고 있다. 현대인에게 좋은 일이란 돈을 많이 버는 일이요, 명예를 드높이는 일이어서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좋은 일(모든 이들이 이슬만 먹고 사는 일)과는 엄청난 괴리를 드러내고 있지만, 좋은 일의 최고선의 경지를 말하고 있다.

「소낙비」에서는 아기 도꼬마리와 아기 명아주풀은 세상이 송두리째 없어질 것 같은 폭풍우를 견뎌낸 후 하느님이 주시는 건 모두 좋은 것뿐이라며 달콤한 이슬을 맛나게 먹는다. 「산버들나무 밑 가재형제」에서도 운명에 순응하는 삶을 이야기한다. 언니와 헤어지는 동생 가재를 가재 할머니는 “헤어질땐 다 그렇지. 하지만 금방 잊어버리게 마련이야. 하느님이 잊어버리도록 해 주시니까”라며 달랜다.

폭력의 피해를 다룬 「고추짱아」, 「아기 산토끼」, 권력에 저항하는 「떡반죽 그릇 속의 개구리」, 빈곤한 현실을 돕는 「아기 소나무」, 자기 정체성을 강조한 「아름다운 까마귀」 등을 통해 남의 것에 혹하고, 남을 흉내 내기에 급급한 인간의 우매함을 일깨워 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유머는 인간만이 느끼는 즐거운 감정이다. 권정생 선생님은 아주 조심스럽게 책의 곳곳에 유머를 살짝 숨겨 놓았다. 「산버들나무 밑 가재형제」에서 배가 고픈 표현을 ‘배때기하고 등때 기하고 통일하려고 한다’고 표현하고 있어 웃음을 자아낸다.

“지난 여름, 억수 같이 퍼붓던 물 누가 쉬한 거예요?”
“아줌마가 눈 거예요? 아니면 해님 아저씨가 눈 거예요?”
달님은 금방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습니다.
“아기 소나무야, 그건 쉬한 게 아니다.”
“에그 거짓말. 아줌마 얼굴이 빨개진 걸 보니 달님이 쉬했군요. 그렇죠?”
“아니야, 그건 오줌이 아니고 ‘비’라고 하는 거야. 온 세상의나무들이 잘 자라라고 하느님이 내려주시는 거야.”
“그럼, 그때 시커먼 포장은 왜 잔뜩 가려 놓았어요? 누가 볼까 봐 궁뎅이 감추느라 그랬죠?”
“포장이 아니고, 그게 바로 ‘구름’이라는 물통이야.”_24쪽

「아기 소나무」의 이 부분을 읽어주면 아이들은 환하게 웃는다. 전혀 웃을 것 같지 않은 선생님의 동화에서 ‘쉬한 거…’, ‘궁뎅이…’라는 말이 나온 것만 해도 우스운가 보다. 아이들이 자극적인 코믹에만 웃는 것은 아니다. 잔잔하게 시작되는 선생님의 동화에도 웃을 줄 아는 우리 아이들의 마음속에 선생님의 글들이 오롯하게 자리 잡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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