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새책 그리하여 그들은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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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16 22:35 조회 7,817회 댓글 0건본문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시작할라치면, “나, 알아요.”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완전한 것일까? 보통 선녀와 나무꾼 설화의 유형은, 선녀가 날개옷을 입고 결국 하늘로 올라가는 유형, 나무꾼이 가버린 선녀를 따라 하늘로 올라가서 잘 살았다는 유형, 나무꾼이 하늘로 올라갔으나 하늘 나라에서 선녀와 함께 살기 위해 어려운 시험을 치르는 유형, 시험을 통과하여 잘 살던 나무꾼이 어머니가 걱정되어 땅으로 내려왔다 다시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슬퍼하다 죽는 유형 등으로 나뉘어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 이후 교과서 등에 소개된,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나무꾼이 선녀와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나무꾼 승천담’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일본의 영향을 받아 뒷이야기가 삭제된 형태로, 선녀와 나무꾼의 사랑 이야기로만 소개되어 실제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에 숨어 있는, 옛사람들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나무꾼 승천담’과는 다르게 선녀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보여준다. 평범한 인간이 함부로 근접하기 힘든 존재인 선녀인데 출중한 외모나 부, 권력, 재능 등 그 어느 것 하나 갖지 못한 가난한 나무꾼이 신성한 존재인 선녀와 과연 끝까지 행복한 삶을 꾸려 나갈 수 있었을까? 표지를 넘기면 나오는 면지에서부터 그 의문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면지 아래쪽에는 평범한 인간들이 땅을 일구며 그네들의 삶을 살고 있다. 위쪽에는 선녀들이 화려한 날개옷을 입고 하늘 위에서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그 사이엔 첩첩이 산들이 중첩되어 하늘과 땅 사이가 얼마나 먼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하늘에 닿기까지 첩첩산중으로 올라 갈수록 사슴이나 불상佛像, 토끼 등 신령한 존재들이 나온다. 마치 선녀가 속한 하늘은 평범한 인간이 함부로 갈 수 없는 신성한 곳임을 말하듯…….
그러면 어찌하여 나무꾼이 선녀를 만날 수 있었을까? 그가 사는 곳이 아무 곳이 아닌 까닭이다. 민족의 영산인 금강산 깊은 골짜기에 살고 있는 그이기에 신령한 사슴을 만나고 사슴을 도와준 보답으로 선녀를 얻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흔히, 선녀가 아이 셋을 낳을 때까지 날개옷을 돌려주지 말라고 한 이야기가 많은데 이 책에선 아이 넷을 낳을 때까지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점도 지금까지의 이야기와는 다르다. 날개옷을 잃은 선녀가 나무꾼의 지게를 타고 가는 장면에선 선녀의 시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은은하게 달빛이 선녀와 나무꾼을 비추고 선녀는 먼 하늘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나무꾼의 집으로 가는 것이 선녀의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에 가고 싶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눈이 향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늙은 홀어머니와 아름다운 아내와 아이 셋을 얻은 나무꾼은 더없이 행복하지만 선녀의 미소는 슬프기만 하다. 마침내 선녀가 날개옷을 다시 입었을 때, 하늘을 닮은 청자빛 날개옷을 입은 선녀가 돌아오라는 나무꾼의 외침을 외면한 채 하늘로 향하는 모습은 지금까지 나무꾼과 함께한 시간이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선녀의 날개옷 무늬 역시 학인 듯 날개를 펼친 모습에서 하늘로 향한 선녀의 귀소 본능을 느낄 수 있다. 사슴을 찾아가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게 된 나무꾼이 바라본 세상은 좌우 양쪽 펼침 페이지로, 모두 네 쪽에 걸쳐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하늘나라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두레박 속에 숨은 나무꾼을 기쁘게 맞이하는 이들은 아이 둘뿐이다. 옥황상제와 나무꾼을 등지고 선 선녀의 근심 어린 표정은 나무꾼의 등장이 환영받지 못함을 암시한다. “네가 누군지는 알고 있다만, 하늘나라에서 살자면 그만한 재주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 너는 세 가지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옥황상제의 말에 주목하자. 하늘나라는 그야말로 아무나 살 수 없는 곳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나무꾼이 세 가지 시험
을 무사히 통과하게 되지만 이 역시도 나무꾼 스스로의 힘이 아니다. 선녀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늘나라에서 부모님과 살게 된 아이들은 달릴 듯 날 듯 행복해만 보인다. 신분 상승을 한 나무꾼의 모습을 바라보는 선녀도 미소를 짓고 있으나 그 미소 역시 슬픔이 스며 있다. 땅에 두고 온 홀어머니가 걱정된 나무꾼은 땅으로 내려오게 되나 절대로 땅에 발을 디뎌서는 안 된다는 선녀의 말을 지키지 못하여 결국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게 된다. 마지막 면지를 보면 하늘나라가 드넓게 펼쳐져 있고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 그곳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나무꾼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사이에 놓인 건널 수 없는 강은 그들이 사는 세상이 너무도 먼 곳임을 짐작하게 한다.
입말체의 글이 그림과 어울려 담담하게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무꾼이 나쁘다.’ ‘선녀는 불행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늘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선녀의 입장, 선녀랑 하늘에서 행복하게 살았지만 땅에 그리운 어머니를 두고 온 나무꾼의 마음, 그리하여 결국 각자가 사는 세상에 머물 수밖에 없는 그들의 상황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펼쳐내고 있다. 옛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오늘날 감각으로 풀어낸 그림으로 퓨전의 묘미를 살리고 있다. 하늘나라를 그린 장면에선 곳곳에 숨어 있는 퓨전 감각을 맛볼 수 있다. 동물과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는 모습,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노는 장면, 신선들의 장기 두는 모습 등 숨은 그림을 찾듯 재미난 요소를 곳곳에 심어 두었다. 이 책을 접하는 부모와 아이들은 지금까지 안다고 생각했던 선녀와 나무꾼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설화에 숨은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하늘을 경외하고 살아온 우리 민족이 이야기 속에 숨겨 놓은 옛이야기의 참모습을 제대로 전해주고자 노력한 점에 주목할 만하다. 다만 금강산 깊은 골짜기에 사는 나무꾼의 집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점은 가난한 나무꾼의 상황과 거리감이 느껴져 조금 아쉽다.
이 책은 ‘나무꾼 승천담’과는 다르게 선녀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보여준다. 평범한 인간이 함부로 근접하기 힘든 존재인 선녀인데 출중한 외모나 부, 권력, 재능 등 그 어느 것 하나 갖지 못한 가난한 나무꾼이 신성한 존재인 선녀와 과연 끝까지 행복한 삶을 꾸려 나갈 수 있었을까? 표지를 넘기면 나오는 면지에서부터 그 의문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면지 아래쪽에는 평범한 인간들이 땅을 일구며 그네들의 삶을 살고 있다. 위쪽에는 선녀들이 화려한 날개옷을 입고 하늘 위에서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그 사이엔 첩첩이 산들이 중첩되어 하늘과 땅 사이가 얼마나 먼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하늘에 닿기까지 첩첩산중으로 올라 갈수록 사슴이나 불상佛像, 토끼 등 신령한 존재들이 나온다. 마치 선녀가 속한 하늘은 평범한 인간이 함부로 갈 수 없는 신성한 곳임을 말하듯…….
그러면 어찌하여 나무꾼이 선녀를 만날 수 있었을까? 그가 사는 곳이 아무 곳이 아닌 까닭이다. 민족의 영산인 금강산 깊은 골짜기에 살고 있는 그이기에 신령한 사슴을 만나고 사슴을 도와준 보답으로 선녀를 얻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흔히, 선녀가 아이 셋을 낳을 때까지 날개옷을 돌려주지 말라고 한 이야기가 많은데 이 책에선 아이 넷을 낳을 때까지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점도 지금까지의 이야기와는 다르다. 날개옷을 잃은 선녀가 나무꾼의 지게를 타고 가는 장면에선 선녀의 시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은은하게 달빛이 선녀와 나무꾼을 비추고 선녀는 먼 하늘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나무꾼의 집으로 가는 것이 선녀의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에 가고 싶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눈이 향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늙은 홀어머니와 아름다운 아내와 아이 셋을 얻은 나무꾼은 더없이 행복하지만 선녀의 미소는 슬프기만 하다. 마침내 선녀가 날개옷을 다시 입었을 때, 하늘을 닮은 청자빛 날개옷을 입은 선녀가 돌아오라는 나무꾼의 외침을 외면한 채 하늘로 향하는 모습은 지금까지 나무꾼과 함께한 시간이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선녀의 날개옷 무늬 역시 학인 듯 날개를 펼친 모습에서 하늘로 향한 선녀의 귀소 본능을 느낄 수 있다. 사슴을 찾아가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게 된 나무꾼이 바라본 세상은 좌우 양쪽 펼침 페이지로, 모두 네 쪽에 걸쳐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하늘나라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두레박 속에 숨은 나무꾼을 기쁘게 맞이하는 이들은 아이 둘뿐이다. 옥황상제와 나무꾼을 등지고 선 선녀의 근심 어린 표정은 나무꾼의 등장이 환영받지 못함을 암시한다. “네가 누군지는 알고 있다만, 하늘나라에서 살자면 그만한 재주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 너는 세 가지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옥황상제의 말에 주목하자. 하늘나라는 그야말로 아무나 살 수 없는 곳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나무꾼이 세 가지 시험
을 무사히 통과하게 되지만 이 역시도 나무꾼 스스로의 힘이 아니다. 선녀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늘나라에서 부모님과 살게 된 아이들은 달릴 듯 날 듯 행복해만 보인다. 신분 상승을 한 나무꾼의 모습을 바라보는 선녀도 미소를 짓고 있으나 그 미소 역시 슬픔이 스며 있다. 땅에 두고 온 홀어머니가 걱정된 나무꾼은 땅으로 내려오게 되나 절대로 땅에 발을 디뎌서는 안 된다는 선녀의 말을 지키지 못하여 결국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게 된다. 마지막 면지를 보면 하늘나라가 드넓게 펼쳐져 있고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 그곳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나무꾼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사이에 놓인 건널 수 없는 강은 그들이 사는 세상이 너무도 먼 곳임을 짐작하게 한다.
입말체의 글이 그림과 어울려 담담하게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무꾼이 나쁘다.’ ‘선녀는 불행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늘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선녀의 입장, 선녀랑 하늘에서 행복하게 살았지만 땅에 그리운 어머니를 두고 온 나무꾼의 마음, 그리하여 결국 각자가 사는 세상에 머물 수밖에 없는 그들의 상황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펼쳐내고 있다. 옛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오늘날 감각으로 풀어낸 그림으로 퓨전의 묘미를 살리고 있다. 하늘나라를 그린 장면에선 곳곳에 숨어 있는 퓨전 감각을 맛볼 수 있다. 동물과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는 모습,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노는 장면, 신선들의 장기 두는 모습 등 숨은 그림을 찾듯 재미난 요소를 곳곳에 심어 두었다. 이 책을 접하는 부모와 아이들은 지금까지 안다고 생각했던 선녀와 나무꾼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설화에 숨은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하늘을 경외하고 살아온 우리 민족이 이야기 속에 숨겨 놓은 옛이야기의 참모습을 제대로 전해주고자 노력한 점에 주목할 만하다. 다만 금강산 깊은 골짜기에 사는 나무꾼의 집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점은 가난한 나무꾼의 상황과 거리감이 느껴져 조금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