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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새책 날씨는 예측불허, 세상은 변화무쌍, 그 속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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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16 22:33 조회 6,46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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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라는 울타리 안에서 느끼는 정감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우리 집 마당은 동네 사람으로 시끌시끌했는데, 한여름 마른 쑥을 태워 모기를 쫓고, 누구는 마루에 앉고, 누구는 평상에 앉아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연속극에 숨을 죽이곤 했는
데……. 산도 없고 들도 없는 도시에서는 도저히 못 살 것 같더니 도시의 익명성에 기대어 삭막함에 쉽게 익숙해지는 것을 보면서 ‘인간 참 불가사의하다’ 하곤 했다. 오래된 습관을 그리 쉽게 버린 나를 뒤돌아보게 하는 마음 따뜻해지는 책, 이현 작가의 『오늘의 날씨는』을 만났다.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다섯 컷의 그림은 가난의 때가 묻어 있는 서민주택을 중심으로 사랑과 외로움과 치기 어린 다툼이 보인다. 양지주택 앞에 놓인 낡은 평상은 이 동네 안마당 구실을 할 것이다. 아마 이 동네 사람들은 누가 잘살고 누가 못사는지 따지지 않고 내남없이 살아가며, 친구 엄마가 내 엄마고 내 엄마가 친구 엄마고, 동네 할머니는 모두의 할머니일 것이다.

3층짜리 양지주택과 고만고만한 슬레이트집, 단층 양옥주택이 자리 잡고 있는 이 동네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한다. 새로 생긴 아파트 때문에 속을 앓는 것은 어른뿐만 아니다. 아파트 아이들이 학교에서 회장, 부회장을 도맡는다. 아파트 엄마들은 체육대회, 현장학습 때면 먹을 것을 사들고 오고, 틈틈이 간식도 돌려 기를 죽인다. 이제 양지주택 아이들이 마치 더부살이 신세가 된 것 같다. 이 작품은 재개발 지역에 사는 동희, 종호, 정아와 새 아파트에 사는 영은의 입장에서 본 네 편의 이야기가 ‘햇빛 쏟아지는 날’, ‘모두가 하얀 날’, ‘계절이 바뀔 때’, ‘비 온 뒤 갬’ 등 날씨와 연관된 소제목으로 전개된다. 각자의 입장에서 본 이야기지만 서사 구조가 마치 퍼즐을 맞추듯 완성도 높은 이야기로 만들어

간다. 이야기는 동희의 시계를 잃어버린 날, 종호의 출입국사무소 직원이 키론을 잡으러 들이닥친 날, 영은이 동희를 문병 간 날, 정아의 용철오빠가 이사 가던 날을 기점으로 과거를 돌아보는 형식이다. 동희는 아파트에 사는 승주의 사십만 원짜리 시계를 잃어버려 도둑 누명을 쓴다. 이 사건에 비친 동희 오빠의 든든한 사랑이 마음 따뜻하다. 아르바이트 해서 번 41만원 중 40만원을 꺼내 동희에게 준다.
오빠가 수표 네 장을 내게 건넸다.
“월요일에 갖다 줘. 응?”

내 눈앞에 가로놓인 수표는 세상을 반 토막 낼 것처럼 날이 섰다.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와락 무서워진다. 나는 얼른 눈을 내리깔았다. 기름때가 시커먼 오빠 운동화가 보인다. 학교 끝나고 날마다, 밤마다 주유소에서 일하느라 새까매진 운동화다. 실밥이 나달나달한 운동화 위로 내 눈물이 점점이 떨어진다. 소나기라도 내리는 것처럼 후드득후드득 떨어진다. (중략) 나는 오빠 어깨에 툭 머리를 기댔다. 오빠가 두 팔로 나를 감싸 안았다. 그래도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 넓고 따스운 품에 안겨서도 자꾸만 눈물이 난다. 50~51쪽

종호는 고물을 팔아 살아가는 아버지와 산다. 아버지는 걸핏하면 10년째 불법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 키론에게 애꿎은 화풀이를 한다. 마치 자신의 불운이 키론에게 있다는 듯이. 1월 1일 눈이 내린 날 갑자기 들이닥친 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반으로부터 키론을 지키기 위해 온 동네 사람이 나선 가운데, 키론을 고발한 사람이 아버지라고 단정하며 종호는 엄습하는 추위에 몸을 떤다.

환절기가 되면 비염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영은. 전학을 다니면서 학교에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한 영은은 기득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동희를 도둑으로 몰아 결국 반장이 된다. 하지만 동희 병문안을 다녀온 후 엄마의 흰머리에 슬픔을 느낄 줄 아는 아이가 되어간다. 정아는 우울한 이 동네의 청량제이다. 화끈한 성격에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진다. 트럭 옆구리를 탕탕 치며 사랑하는 용철오빠를 세우고 결혼할 나이가 될 때까지 한눈팔지 말라는 당당함이 정아의 시원스런 성격으로 보아 충분한 개연성이 느껴지며 미소 짓게 한다. 정아는 ‘비 온 뒤 갬’의 청명함과 상쾌함으로 세상을 맞이할 것이다.

서울 하늘 아래 달동네일 듯싶은 이 마을은 이제 고층 아파트에 터를 내주고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웃의 정도, 삶에 지친 인생이지만 묵직하게 전해오는 인간 본성을 꿋꿋하게 지켜내는 이들도 사라질 것이다. 아니다. 이들이 새로 잡은 터
에서 자부심과 긍정의 힘으로 또 하나의 양지주택 골목의 시끌벅적한 사람 냄새를 퍼트려줄 것이다. 이 작품은 제법 무거운 도시재개발 문제,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문제도 어울려 사는 삶으로 승화시킨다. 아이들에게 우리의 현실과 다원화 사회에 대한 인식을 돕고 따뜻함과 긍정적 자아 개념을 갖게 하는 동화다. 뛰어난 언어 감각, 재치, 속이 뻥 뚫리는 유머, 유쾌함, 통통 튀는 대사들로 이야기의 전개가 지
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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