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합니다! 한국 그림책 발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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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4-01 01:33 조회 19,338회 댓글 3건본문
한국 그림책은 1990년 이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이제 한국 그림책은 세계의 그림책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 그림책의 역사는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못한 상태다. 한국 그림책의 시작은 언제이며, 또 그 근거로 무엇을 제시할지에 대한 논의 역시 마찬가지다.
서구사회에서 그림책이 독립적인 매체로 등장하는 데에는 몇 가지 요건이 있었다. 먼저 독자층의 형성이다. 근대적인 의미의 학교제도가 정비되고, 이에 따라 글을 읽을 수 있는 층이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복제가 가능한 인쇄기술, 특히 컬러 인쇄기술의 발달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마지막으로는 독립적인 개체로서 어린이를 인식하는 근대적인 아동관이 성립됨으로써 어린이책 독자층이 탄생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그림책의 탄생은 근대 산업화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의미의 그림책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전후를 기점으로 탄생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서구 그림책의 형성과정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는 특히 초기 그림책의 형성 과정을 살펴볼 때 상당한 설득력을 얻는다.
이러한 여러 논란과 함께, 그림책의 형성과정을 검토할 때 우리가 부딪히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바로 1945년 이전의 실물 그림책을 실제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분야에 대한 글이 앞으로 실물 자료가 발굴되면서 새로 정리될 수밖에 없음을 미리 밝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 수집된 자료를 토대로 한국 그림책의 형성을 네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겠다. 또한 그림책이 시대적·역사적 산물이라고 할 때, 한국의 그림책이 한국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어떻게 관련을 맺으며 발전했나를 살펴볼 것이다.
1 . 근 대 이 전 한 국 그 림 책 의 자 취
한국 그림책의 형성을 살펴볼 때, 우리 그림책의 원류를 발견할 수 있는 도서를 찾아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삽화가 들어간 책은 목판으로 제작된 불경을 비롯해 다양하다. 그림의 비중이 크고 그림이 충분한 내용을 전달하는 대표적인 예로는 『석씨원류』와 『삼강행실도』를 들 수 있다. 선운사 『석씨원류』는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1648년(인조 26년)에 새긴 것으로, 하단에는 『석씨원류』 본문을, 상단에는 본문에 대한 삽화를 새겼다. 이 삽화는 조선시대 삽화 가운데 걸작에 속해 미술사, 특히 판화의 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삼강행실도』는 1434년(세종 16년)
조선시대의 아이, 부녀자를 포함하여 전 국민을 대상으로 유교의 삼강윤리를 가르치기 위해 만든 윤리 도덕 교과서이다. 그림을 통해 흥미를 갖게 한 후에 글을 통해 그림의 설명을 읽도록 그림이 주主, 글이 종從이었다는 점에서 그림책으로서 검토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하겠다.
2 . 개 화 기 ~ 1 9 6 0 년 이 전 : 근 대 적 그 림 책 의 도 입 과 형 성
앞에서 근대적 의미의 그림책 성립 시기를 언제로 볼 것인가는 어린이를 독립적인 개체로 보는 것과 맞물려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서양에서 근대 어린이 문학의 출발시점을 1840년경으로 보는 것도 이 시기에 들어서야 어린이라는 대상을 존중하고 어린이를 즐겁게 하기 위한 목적의 서적이 등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국 그림책의 형성 역시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나라의 어린이 독자층이 언제 형성되었는지, 그림책을 출판하기 위한 인쇄술은 언제 가능했는지, 이 당시 독서환경
을 살펴보는 것으로부터 출발해보고자 한다.
1) 1920년대의 근대 출판 환경의 성숙과 ‘어린이’ 독자의 형성
(1) ‘어린이’ 독자의 형성
우리에게 근대적 서적 생산과 독서의 체제가 갖추어진 시기는 1920년대이다. 1920년대에 계몽적 교육열의 확산을 통한 보통학교 입학률의 증가가 독서인구의 확산을 가져왔다. 이렇게 된 데에는 그 전까지 4.4%에 불과하던 보통학교 취학률이 전국적으로 17.4%로 급격히 증가한 것과 활발히 전개된 소년운동, 그리고 방정환이 발행을 주도한 잡지 『어린이』의 역할이 컸다.
(2) 근대적 인쇄술의 도입과 시각적 요소의 도입
1920년대에 들어 인쇄 출판업계에서는 박문서관 등 큰 규모의 자본이 등장함으로써 생산과 유통과정에 변화가 일어났다. 한편,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단행본이라고 일컫는 방정환의 번안동화집 『사랑의 선물』이 1922년 개벽사에서 출간된 후, 1만 부 이상 판매되면서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탄생되었다.
근대 이후 일러스트레이션은 1908년 2월 이도영이 발행한 『도화임본』이란 4권의 책에 삽화를 그린 것이 최초라고 한다. 1920년대에 들어 여러 신문과 잡지가 창간되면서 그에 따른 삽화가의 수요가 생겨났고, 단행본에서도 장정을 위해 미술가와 서예가가 필요하게 되었다. 1920~30년대는 인쇄업계의 성장기였다. 신문이나 잡지, 혹은 책의 내지는 단도 인쇄, 책 표지는 2~3도의 컬러 인쇄물이었다. 그러나 이 당시 그림책에 대해선 안타깝게도 실증적 자료가 발견되지 않아 확인할 수 없다.
2) 일제하 조선어 출판물의 위축과 독서환경의 변화
일제하의 모든 출판물은 1908년 ‘출판법’상의 허가제에 의해 발간되었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들어 조선어 출판물 자체가 불온시되기도 했으며. 193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일본어로 된 동화와 동시, 잡지를 읽으면서 자랐다고 한다.
“몇 해 전까지도 『어린이』니 『신소년』이니『별나라』니 하며 여러 가지 좋은 아동 독물이 많이 나오더니 요사이에 와서는 이 방면의 서적이라고는 『아이생활』 이외에는 이런 종류의 책들을 찾아볼 수조차 없는 현상이다. 그런 관계로 소년들은 서점에 들어오면 으레 현해탄을 건너온 그림책들을 뒤지는 현상으로, 이 방면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너무 적은 듯하다.”(삼천리, 1935)
위와 같은 글은 1920년 어린이들을 책의 세계로 이끌던 『어린이』, 『신소년』, 『별나라』 등 조선어 아동잡지가 모두 사라지고 조선 어린이들이 일본 그림책만을 찾고 있으며, 대중잡지 시장도 일본 잡지가 장악했음을 보여준다. 당시 상황은 아동문학가인 이오덕의 회고에서도 잘 드러난다.
“교과서가 아니고, 가끔 아이들이 사서 읽던 책이 있었는데, 그것은 일본 고단샤에서 나온 살벌한 전쟁 그림책이었다. 그 그림책은 놀랄 만한 것으로, 5, 6학년 교실 뒷벽에는 그림 솜씨가 있던 아이들이 그림책을 보고 그린 그림이 많이 붙어 있었다. 지금도 머리에 떠오르는 그림은 용맹하고 패배를 모르는 일본군이 일본도를 뽑아 중국병사의 가슴을 찌르는 그림이다. 나도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이 정신없이 읽던 그림책을 옆에서 많이 봤다.”(이오덕, 2004)
한편, 1930년 이후부터 광복을 맞기까지는 극심한 조선어 말살정책 속에서 조선어로 된 책을 본다는 것은 어린이들에게도 드문 일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말로 된 그림책이 출간되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3) 한국전쟁 전후 어린이 책의 출판
한국전쟁을 전후로 한 시기에는 일본인이 독점했던 인쇄기술이 몹시 취약했다. 해방 당시 국내의 종이 생산능력은 거의 마비상태였다. 당시에 그림이 주가 된 도서는 만화책과 거기에 약간의 형식을 달리한 그림 이야기책(당시의 이름)과 국민학교 저학년용 교과서 정도였다.
4) 1960년 이전의 어린이 책들
지금까지 1960년대 이전 시기의 어린이책을 둘러 싼 독서환경을 살펴보았다. 지금부터는 그림책의 형성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당시 그림책의 꼴을 짐작하는 데 단서가 될 만한 서적들을 검토해보도록 하겠다.
당시 ‘그림책’이라는 용어는 생소하고 낯선 개념이었다. 어린이책과 관련한 여러 자료에서 ‘그림’이라는 개념이 들어간 것을 찾으니, ‘애기 그림책’, ‘아기네 동산’, ‘그림 이야기책’ 등이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형태는 지금의 그림책과는 형식과 내용이 달랐다.
‘책’이라는 사물에 색상과 일러스트를 최초로 도입한 책으로 단연 딱지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딱지본이란 구활자본으로 만들어진 책으로, 표지가 아이들 놀이에 쓰이는 딱지처럼 울긋불긋하게 인쇄된 것에서 유래한 말이다. 딱지본의 표지는 문자가 매체를 통해 본격적으로 결합한 괄목할 만한 예이다.
1923년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근대적인 잡지 『어린이』가 방정환에 의해 발간된다. 이 시기 잡지들은 표지에서부터 내지 삽화, 만화, 디자인 등 여러 시각적 요소가 도입되어 실현되었던 장으로, 아동문학 발전의 장이자 이 시기 출판미술의 단계를 점검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중 그림책 형성과정에 시사점이 될 만한 것을 몇 가지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아이들보이』는 한국 최초로 컬러 그림 표지를 썼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편 1949년 『어린이나라』 2월호에는 ‘애기 그림책’이라는 한 쪽짜리 전면을 차지하는 그림과 함께 동요 ‘눈밤’이 소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지면의 경우 먹 1도에 파랑이나 빨강 등 단색을 한 가지 더 입힌 형태의 소박한 컬러로 정성을 들이기도 했다. 잡지의 삽화들은 화면 전체를 그림으로 할애하는 등 점점 더 과감하게 그림을 활용하여 면배치를 하고 있다.
이 당시 어린이 출판물에서 주목할 만한 삽화가로는 정현웅, 김용환, 임홍은 등이다. 당시의 삽화가는 신문이나 잡지에 만화나 삽화를 그렸으며, 책의 장정작업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
1938년 서양화가이자 삽화가인 임홍은이 편집한『아기네 동산』은 책 속 그림책인 ‘애기 그림책’도 ‘봄바람’, ‘모래성 쌓으며’ 등 열 넉 점의 삽화를 하늘색종이에 별도로 인쇄하여 아이들 취향에 맞추려고 했다. 『아기네 동산』은 우리 그림책의 큰 맥락에 속하는 중요한 예 중 하나이다.
당시 문자 해독이 여의치 않았던 상황에서 동시동요집은 좋은 읽을거리가 되었다. 대표적인 동요작가인 윤석중의 동요집 『어깨동무』는 지금 보기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호화로운 컬러 장정과 고급 재질, 아름다운 그림 등이 특징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책은 1947년 조선아동문화협회(이하 아협)에서 낸 『우리들 노래』이다.
펼친 양쪽 면 전체를 차지하는그림과 한 편의 시로 구성되어있는 이 책은 현존하는 자료들 중 우리나라 최초의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전 화면을 차지하는 그림은 당시 우리 일러스트레이션의 수준을 파악하게 해준다.
근대 이후 1960년 이전은 근대적인 그림책의 도입과 형성과정이다. 이 시기 본격적인 현대 그림책을 엿볼 수 있는 사례는 『우리들 노래』뿐이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점점 그림의 비중이 커지고, 시각적 요소를 과감하게 도입하고 있어, 이러한 변화들이 이후 현대적 의미의 그림책으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 1 9 6 0 년 대 ~ 1 9 7 8 년 : 그 림 책 의 정 착 기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성장을 위해 전 국민이 매진했던 이 시기는 국가가 주도하여 어린이책 보급과 독서 활성화 정책을 수행했던 때였다. 우량아동도서 선정위원회가 발족되었으며, 초등학교에서는 학급도서 설치운동이 일어났다. 1963년에는 ‘도서관법’을 제정, 공포함으로써 학교 도서관이 증가하였다(대한출판문화협회, 1998: 124). 이것은 1952년 초등 무상교육이 실시됨으로써 교육인구가 증가하는 것과 맞물려 어린이 독자층이 확대되는 데 기여한다. 아동문학가 어효선(1966)은 아동도서가 제대로 책의 모양을 갖추기 시작한 때는 1961년 문교부가 우량아동도서 선정기준을 발표한 뒤라고 한다.
한편 1958년에는 학원사가 근대적인 방문판매 방식을 도입하였다. 학원사는 『과학대사전』과 『대백과사전』(전6권)을 완간하면서 당시 미국에서 성행하던 방문판매를 도입,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런 전집출판 관행은 초등학교 학급도서 설치 및 도서관 증대와 맞물리면서 1990년 초까지 그림책 시장을 포함한 우리나라 어린이책 시장을 장악한다. 한편 계몽사는 1946년 창립된 이래 1959년 대형 전집물을 기획, 『세계소년소녀문학전집』을 출간함으로써 대량 전집물 시대를 여는데 또 하나의 견인차 역할을 한다.
1) 홍학출판사의 세계명작 시리즈
1960년 홍학출판사는 『어린이 세계 명작』 학년별 전 6권을 출판하였으며, 한국교육문화원도 『세계 명작 선집』 학년별 전 6권을 출판하였다. 이 책들은 연령에 적합한 책 출판이라는 개념을 출판기획에서 도입했다는 점에서, 특정층을 염두에 두는 성격이 강한 그림책 출판을 고려하는 데 디딤돌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60년대 후기는 아직 저권권법이 발효되기 전으로, 일본의 학습물 위주의 책을 각색, 복제한 그림책이 많이 양산되었다.
눈에 띄는 어린이 그림책의 주요작가로는 김용환과 김인평을 꼽을 수 있다. 김용환은 어린이만화, 시사만화, 삽화, 역사화 등 다방면에 걸쳐서 다양한 스타일을 구사했던 작가이다. 또 다른 작가인 김인평은 이 시기에 가장 활발하게 어린이책에 그림작업을 한 작가로 보인다. 그는 완성도 있는 형태감과 사실성을 살린 밀도 높은 그림으로 수준 있는 일러스트레이션을 많이 남겼다.
2) 한문당 그림책 시리즈
1962년 발행된 『창경원』을 들 수 있다. 이 그림책은 김인평이 그림을 그렸는데, 정보 그림책으로서 실감나는 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 내용을 창작한 그림책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또한 구성에서도 하나의 주제와 소재로 책 한 권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고 볼 수 있다. 책의 형식은 합지에 인쇄되어 대략 20쪽에서 24쪽이고, 면지는 없다.
3) 기타
1966년에 계몽사에서 발행한 우경희 그림의그림동요집 『어깨동무 씨동무』는 전면을 차지하는 컬러 그림 한 바닥마다 동요 한 편이 소개돼 있는 책으로, 다양하면서도 수준 높은 그림 스타일을 보여주는 책이다. 또한 1978년 홍신문화사에서 나온 『재미있는 그림동화』는 큰 활자체에 그림이 들어가 있는 형태로, 이 시기 그림이 들어간 어린이 책의 전형적인 책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한편, 1974년에 대양출판사에서 나온 『엄마랑 함께 풀어보는 능력 테스트』란 책은 지금의 유아용 학습지의 형태를 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시기에는 여전히 전집물이 주류였다. 디즈니 캐릭터가 담긴 애니메이션 그림책 류가 붐을 이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그림책은 전체적인 그림책 시장의 확대에 기여하기도 했지만, 내용적인 면에서 인간 내면의 세계와 교훈 등을 삭제함으로써 아이들의 사고력을 틀 속에 가둬버리게 하는 등 부작용이 컸다.
4 . 1 9 7 9 ~ 1 9 8 0 년 대 말 : 한 국 그 림 책 형 성 기
1979년~80년대 말은 한국 그림책의 형성기이다.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 이후 미국 교육과정 전반에 걸친 재검토는 한국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쳐, 1980년대 이후 우리나라 유아 교육은 국가적인 관심과 지원으로 급격히 팽창하고, 어린이책 시장에도 인지발달을 목표로 한 유아용 그림책이 활성화 바람이 불었다. 또한 1979년 세계아동의해를 맞아 그림책의 질에 대한 각성이 일어났으며, 1980년 컬러텔레비전 방송, 조판, 인쇄술의 성장은 컬러 그림책의 예술성 확보에 견인차가 되었다. 이에 따라 우리 그림책은 1980년대 초 전집출판에 맞는 외형적 화려함과 눈부신 양적 성장을 경험한다. 해외명작동화, 전래동화, 위인전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대규모의 큰 기획물이 만들어졌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재미있는어문각픽처북스’ 시리즈
‘재미있는어문각픽처북스’ 시리즈의 하나인 전래동화 시리즈(전 12권)는 국내 최초로 출판사와 그래픽 디자이너가 공동 기획해서 제작한 그림 동화집이다.
“1980년도 2월 신년도 사업계획에서 무엇보다도 아동도서의 교육적 질을 높이고 또한 글만을 중시했던 종래의 경향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게 된 것입니다. 이를 위해……이제부터는 종래의 그림 스타일에서 좀 더 전문성이 깊은 그래픽 디자이너의 그림이나 혹은 그 밖의 다른 특색있는 그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위의 글은 당시 어문각 편집부장이었던 심재민이 어문각 픽쳐북스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우리나라 아동도서 출판업계의 현황에 대한 언급한 것으로, 그림책 제작과정에서 전문 디자이너의 참여를 고려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 동화출판공사 ‘그림나라100’ 시리즈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60권이 만들어졌다.당시 그림책 그림작가의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그림책 작업에 순수미술 영역에서 활동하던 화가들을 대거 참여시켰다.책 면면을 자세히 훑어보면 그림의 역할을 충분히 살려내지 못하는 등 아쉬운 점도 있으나 우리나라 그림책 그림에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또한 그림책 작업자를 기존 작가들로만 제한하지 않고 확대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3) 웅진 ‘어린이 마을’ 시리즈
총 12권으로 되어 있는 ‘어린이 마을’은 1981년부터 1984년까지 당시로는 파격적인 시간과 자본을 투자한 국내 최초의 아동용 종합창작 도서로, 한국적 일러스트레이션을 시도하고 사진, 입체물 작업, 일러스트레이션 등 다양한 시각적 요소를 도입하였다. ‘어린이 마을’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대거 참여하여 우리 그림의 가능성을 보인 점, 일러스트에 대한 적극적 수요 창출이란 점 등에서 높이 평가된다. 한편 이 작업에 참여했던 화가, 디자이너, 기획자, 편집자 다수가 이후 각계의 어린이책 창작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 결과 ‘어린이 마을’은 단지 결과물인 책만이 아니라 작업역량의 전이라는 면에서 우리나라 창작 그림책 작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들 세 가지 전집물은 우리나라 출판 일러스트레이션을 활성화시킨 업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한쪽에선 외국도서의 복제 또한 기승을 부려, 상업주의적 이윤추구만을 앞세운 출판도 많았다. 외서를 불법복제해서 내거나 같은 내용의 그림책을 크기와 양만 조절해서 여러 출판사에서 반복 출판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 외에 1981년 학진출판사 발행의 ‘호화로운 원색 그림책’ 시리즈는 당시 정보 그림책의 수준을 알 수 있는 책이다.
한편 1989년 이규경이 예림당에서 글과 그림 작업을 같이 하여 『여름을 보고 싶은 눈사람』,『희망이 뭔지 아니?』, 『나무의 꿈』을 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그림작가가 직접 쓰고 그린 책이라는 광고 문구로1) 보아, 진위 여부를 떠나 이 시기에 글과 그림의 동시작업은 극히 드문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1981년 교보문고를 비롯해 종로서적, 영풍문고 등의 대형 유통서점의 등장은 단행본 그림책에 적합한 유통형태가 시장에서 마련되었음을 의미한다. 1980년대 후반 글과 그림 모두 우리 작가에 의한 창작 그림책이 선을 보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1980년대의 가장 큰 특징은 1980년 전반까지도 독자적인 장르로 인정받지 못했던 ‘삽화’가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이다. 그에 따라 일러스트레이션 안에서 어린이 책 전문작가가 분화되었고, 작업의 양과 질도 크게 성장했다. 또한 읽는 책의 문화가 보는 책의 문화로 바뀌면서 독립된 시각언어로서의 일러스트레이션이 점차 부각된다.
삽화를 주업으로 하면서 작품 발표를 해왔던 서양화가, 동양화가, 만화가 들의 모임인 ‘무지개회’가 1984년 4월 ‘한국 무지개회 일러스트레이션전’이란 명칭으로 창립전을 갖는다. ‘무지개회’는 개인적인 활동에서 하나의 그룹을 형성하면서, 당시 미술계에서 독자적 장르로 인정받지 못했던 일러스트레이션을 공식적인 분야로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일러스트레이션 관련 전시도 활발히개최되기 시작했는데, 1986년 11월 일본 오타니미술관 기획으로 ‘세계 어린이 그림책 원화전’이 워커힐 미술관에서 열렸으며, 1988년 류재수의 『백두산 이야기』(통나무)가 출간되면서 ‘백두산 이야기’전이 국내 순회전으로 개최되었다. 이 전시는 어린이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에 있어 또 하나의 새로운 사례가 된다. 한편 『백두산 이야기』는 국내 어린이 그림책으로는 최초의 단행본 출판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같은 해인 1988년 한국 출판계가 최초로 기획한 ‘국제 그림동화 원화전’이 개최된다. 이 전시회는 아시아 지역 중심의 13개국에서 64명의 작가가 180점을 출품했는데, 진행위원인 강우현이 말한 행사의 기획취지에는 당시 그림작가들의 고민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림책의 일러스트레이션은 우리나라의 경우 선진 외국에 비해 상대적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이제 세계 저작권 조약 가입과 더불어 무작정 외국의 작품을 도용, 모방, 각색하는 등의 도둑 행위가 불가능하게 되고 독자적인 창작물의 개발이 불가피하게 됨에 따라 출판 각 분야에서도 ‘한국적인’ 그림책으로 눈을 돌려 ‘세계적인’ 작품의 출현이 요청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이 행사는 다섯 달 뒤 1988년 11월 11일 한국출판미술가협회가 창립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된다. 이 시기에 활동했던 그림작가 중에 가장 대표적인 작가로는 이우경, 홍성찬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이 현대 그림책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전반으로 어둡고 암울했던 시기에 한국 일러스트레이션의 명맥을 이어준 가교 역할을 했다.
이 시기 어린이 책 일러스트레이션은 양적, 질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1990년대 우리 창작 그림책의 본격 활성화를 위한 토대를 축적한 시기였던 것이다.
5 . 1 9 9 0 년 대 ~ 현 재 : 창 작 그 림 책 의 도 약 기
1990년대 들어 경제적 부흥과 함께 이에 따르는 신흥 중산층 세력이 등장했다. 이것은 사회계층으로서 그림책의 구매자가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1970~1980년대 저항을 거쳐 정치적 변혁을 이루었던 386세대가 부모가 되는 시점과 맞물리는 때이기도 하다. 이들은 자녀에게 독서를 실천함으로써 그림책의 가장 중요한 독자층이자, 양질의 그림책 출판을 유도하는 비판적 독자층이 되었다.
또한 출판환경의 변화는 창작 그림책 활성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91년 방문판매법의 제정은 전집물 할부 판매를 위축시켰으며(최대원, 1992), 1987년 국내 저작권법이 세계저작권 협약UCC, Universal Copyright Convention을 수용하여 전면 개정됨에 따라 그 사이 범람하던 무단복제 출판 관행을 단절하는 중요한 계기가 됨으로써, 국내 작가에 의한 창작물이 활성화되는 토대가 되었다.
이에 따라 어린이책의 시장환경은 전집류 출판에서 단행본 도서로 중심이 변화한다. 여기에 1991년 대학입시정책인 수학능력시험에 관한 요강이 발표되면서 초등학교부터 대학입시를 의식하는 조기독서교육으로 확산된다. 또한 1989년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브라티슬라바 국제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BIB, The Biennale of Illustrations Bratislava에서 강우현이 『사막의 공룡』으로 황금패상을 수상한것을 필두로 1990년 류재수의 『백두산 이야기』가 볼로냐그림책공모전에서 지명작가로 선정되었으며, 1992년 김의숙의 『피노키오의 모험』이 볼로냐일러스트레이션공모전에서 수상작이됨으로써 우리 작가의 수준이 국제무대와 겨룰 만큼 높아졌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후로 일러스트레이터에 주어지는 국제적인 상에 대한 수상이 줄을 이었다.
한편, 서구 대형 출판사를 대상으로 한 빈번한 저작권 수입과 최근 들어 동남아를 중심으로 한 저작권 수출은 한국 그림책이 이미 국제 그림책 시장과 궤를 나란히 하고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독자적인 예술 장르로서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자각과 함께 이를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전시가 활발하게 개최되었다. 1995년 슬로바키아의 세계적 일러스트레이터인 두산 칼라이 DusanKallay의 원화전은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1996년 국내 굴지의 화랑인 워커힐 아트센터에서 국내 일러스트레이션 초대전이 개최됨으로써 일러스트레이션의 위상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한편 1995년 초방에서 이억배, 권윤덕, 정유정의 일러스트레이션 원화전이 개최되어, 1980년대 민중미술 작가들에게 자기표현의 새로운 수단으로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제시하는 등 그 인식을 전환하게 된다.2)
1990년대의 일러스트레이션은 위에서 서술한 시대적인 인식들을 바탕으로 민화 등 한국적인 것에서 시각적인 모티프를 가져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 결과 세계 어린이책계의 주목을 받음으로써 우리 것으로 세계와 견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획득되었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그림작가로는 강우현, 류재수, 김환영, 이억배, 권윤덕, 정승각, 이혜리, 이호백, 한병호 등이 있다.
한편 그림책에 대한 인식을 체계적으로 쌓기 위해 작가, 독자, 학계에서 다방면으로 노력이 기울여졌다. 한겨레 일러스트레이션 학교를 기점으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위한 체계적인 교육기관이 등장하였고, 2004년에는 서울시립대 디자인대학원에 일러스트레이션 전공과정이 개설되면서 많은 일러스트레이터가 양성되고 있는 상태이다.
이같은 눈부신 성장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우리 그림책의 전망을 어둡게 보는 시각도 만연해 있다. 이는 출산율의 저하와 몇몇 책을 제외한 신간 그림책의 지속적인 판매 저조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그림책 시장에서 국내 창작 그림책이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못 미치는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내용적으로 우리 그림책은 주제, 소재의 다양성, 캐릭터의 정착, 실험적 형식의 시도 등 현대 그림책이 지니는 경향이 점점 눈에 띈다. 이런 상황에서 독자들에게 인정받은 기존 도서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는 신간 그림책이 제대로 평가받고 팔리는 구조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 그림책의 형성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많은 과제를 지니고 있다. 그림책의 출간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 수집과 데이터 축적이 절실한 가운데, 자료가 새로 발굴되면서 새로 써야 할 것이 더 많은 분야이기도 하다. 이 글을 읽은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
서구사회에서 그림책이 독립적인 매체로 등장하는 데에는 몇 가지 요건이 있었다. 먼저 독자층의 형성이다. 근대적인 의미의 학교제도가 정비되고, 이에 따라 글을 읽을 수 있는 층이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복제가 가능한 인쇄기술, 특히 컬러 인쇄기술의 발달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마지막으로는 독립적인 개체로서 어린이를 인식하는 근대적인 아동관이 성립됨으로써 어린이책 독자층이 탄생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그림책의 탄생은 근대 산업화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의미의 그림책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전후를 기점으로 탄생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서구 그림책의 형성과정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는 특히 초기 그림책의 형성 과정을 살펴볼 때 상당한 설득력을 얻는다.
이러한 여러 논란과 함께, 그림책의 형성과정을 검토할 때 우리가 부딪히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바로 1945년 이전의 실물 그림책을 실제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분야에 대한 글이 앞으로 실물 자료가 발굴되면서 새로 정리될 수밖에 없음을 미리 밝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 수집된 자료를 토대로 한국 그림책의 형성을 네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겠다. 또한 그림책이 시대적·역사적 산물이라고 할 때, 한국의 그림책이 한국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어떻게 관련을 맺으며 발전했나를 살펴볼 것이다.
1 . 근 대 이 전 한 국 그 림 책 의 자 취
한국 그림책의 형성을 살펴볼 때, 우리 그림책의 원류를 발견할 수 있는 도서를 찾아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삽화가 들어간 책은 목판으로 제작된 불경을 비롯해 다양하다. 그림의 비중이 크고 그림이 충분한 내용을 전달하는 대표적인 예로는 『석씨원류』와 『삼강행실도』를 들 수 있다. 선운사 『석씨원류』는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1648년(인조 26년)에 새긴 것으로, 하단에는 『석씨원류』 본문을, 상단에는 본문에 대한 삽화를 새겼다. 이 삽화는 조선시대 삽화 가운데 걸작에 속해 미술사, 특히 판화의 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삼강행실도』는 1434년(세종 16년)
조선시대의 아이, 부녀자를 포함하여 전 국민을 대상으로 유교의 삼강윤리를 가르치기 위해 만든 윤리 도덕 교과서이다. 그림을 통해 흥미를 갖게 한 후에 글을 통해 그림의 설명을 읽도록 그림이 주主, 글이 종從이었다는 점에서 그림책으로서 검토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하겠다.
2 . 개 화 기 ~ 1 9 6 0 년 이 전 : 근 대 적 그 림 책 의 도 입 과 형 성
앞에서 근대적 의미의 그림책 성립 시기를 언제로 볼 것인가는 어린이를 독립적인 개체로 보는 것과 맞물려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서양에서 근대 어린이 문학의 출발시점을 1840년경으로 보는 것도 이 시기에 들어서야 어린이라는 대상을 존중하고 어린이를 즐겁게 하기 위한 목적의 서적이 등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국 그림책의 형성 역시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나라의 어린이 독자층이 언제 형성되었는지, 그림책을 출판하기 위한 인쇄술은 언제 가능했는지, 이 당시 독서환경
을 살펴보는 것으로부터 출발해보고자 한다.
1) 1920년대의 근대 출판 환경의 성숙과 ‘어린이’ 독자의 형성
(1) ‘어린이’ 독자의 형성
우리에게 근대적 서적 생산과 독서의 체제가 갖추어진 시기는 1920년대이다. 1920년대에 계몽적 교육열의 확산을 통한 보통학교 입학률의 증가가 독서인구의 확산을 가져왔다. 이렇게 된 데에는 그 전까지 4.4%에 불과하던 보통학교 취학률이 전국적으로 17.4%로 급격히 증가한 것과 활발히 전개된 소년운동, 그리고 방정환이 발행을 주도한 잡지 『어린이』의 역할이 컸다.
(2) 근대적 인쇄술의 도입과 시각적 요소의 도입
1920년대에 들어 인쇄 출판업계에서는 박문서관 등 큰 규모의 자본이 등장함으로써 생산과 유통과정에 변화가 일어났다. 한편,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단행본이라고 일컫는 방정환의 번안동화집 『사랑의 선물』이 1922년 개벽사에서 출간된 후, 1만 부 이상 판매되면서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탄생되었다.
근대 이후 일러스트레이션은 1908년 2월 이도영이 발행한 『도화임본』이란 4권의 책에 삽화를 그린 것이 최초라고 한다. 1920년대에 들어 여러 신문과 잡지가 창간되면서 그에 따른 삽화가의 수요가 생겨났고, 단행본에서도 장정을 위해 미술가와 서예가가 필요하게 되었다. 1920~30년대는 인쇄업계의 성장기였다. 신문이나 잡지, 혹은 책의 내지는 단도 인쇄, 책 표지는 2~3도의 컬러 인쇄물이었다. 그러나 이 당시 그림책에 대해선 안타깝게도 실증적 자료가 발견되지 않아 확인할 수 없다.
2) 일제하 조선어 출판물의 위축과 독서환경의 변화
일제하의 모든 출판물은 1908년 ‘출판법’상의 허가제에 의해 발간되었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들어 조선어 출판물 자체가 불온시되기도 했으며. 193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일본어로 된 동화와 동시, 잡지를 읽으면서 자랐다고 한다.
“몇 해 전까지도 『어린이』니 『신소년』이니『별나라』니 하며 여러 가지 좋은 아동 독물이 많이 나오더니 요사이에 와서는 이 방면의 서적이라고는 『아이생활』 이외에는 이런 종류의 책들을 찾아볼 수조차 없는 현상이다. 그런 관계로 소년들은 서점에 들어오면 으레 현해탄을 건너온 그림책들을 뒤지는 현상으로, 이 방면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너무 적은 듯하다.”(삼천리, 1935)
위와 같은 글은 1920년 어린이들을 책의 세계로 이끌던 『어린이』, 『신소년』, 『별나라』 등 조선어 아동잡지가 모두 사라지고 조선 어린이들이 일본 그림책만을 찾고 있으며, 대중잡지 시장도 일본 잡지가 장악했음을 보여준다. 당시 상황은 아동문학가인 이오덕의 회고에서도 잘 드러난다.
“교과서가 아니고, 가끔 아이들이 사서 읽던 책이 있었는데, 그것은 일본 고단샤에서 나온 살벌한 전쟁 그림책이었다. 그 그림책은 놀랄 만한 것으로, 5, 6학년 교실 뒷벽에는 그림 솜씨가 있던 아이들이 그림책을 보고 그린 그림이 많이 붙어 있었다. 지금도 머리에 떠오르는 그림은 용맹하고 패배를 모르는 일본군이 일본도를 뽑아 중국병사의 가슴을 찌르는 그림이다. 나도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이 정신없이 읽던 그림책을 옆에서 많이 봤다.”(이오덕, 2004)
한편, 1930년 이후부터 광복을 맞기까지는 극심한 조선어 말살정책 속에서 조선어로 된 책을 본다는 것은 어린이들에게도 드문 일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말로 된 그림책이 출간되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3) 한국전쟁 전후 어린이 책의 출판
한국전쟁을 전후로 한 시기에는 일본인이 독점했던 인쇄기술이 몹시 취약했다. 해방 당시 국내의 종이 생산능력은 거의 마비상태였다. 당시에 그림이 주가 된 도서는 만화책과 거기에 약간의 형식을 달리한 그림 이야기책(당시의 이름)과 국민학교 저학년용 교과서 정도였다.
4) 1960년 이전의 어린이 책들
지금까지 1960년대 이전 시기의 어린이책을 둘러 싼 독서환경을 살펴보았다. 지금부터는 그림책의 형성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당시 그림책의 꼴을 짐작하는 데 단서가 될 만한 서적들을 검토해보도록 하겠다.
당시 ‘그림책’이라는 용어는 생소하고 낯선 개념이었다. 어린이책과 관련한 여러 자료에서 ‘그림’이라는 개념이 들어간 것을 찾으니, ‘애기 그림책’, ‘아기네 동산’, ‘그림 이야기책’ 등이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형태는 지금의 그림책과는 형식과 내용이 달랐다.
‘책’이라는 사물에 색상과 일러스트를 최초로 도입한 책으로 단연 딱지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딱지본이란 구활자본으로 만들어진 책으로, 표지가 아이들 놀이에 쓰이는 딱지처럼 울긋불긋하게 인쇄된 것에서 유래한 말이다. 딱지본의 표지는 문자가 매체를 통해 본격적으로 결합한 괄목할 만한 예이다.
1923년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근대적인 잡지 『어린이』가 방정환에 의해 발간된다. 이 시기 잡지들은 표지에서부터 내지 삽화, 만화, 디자인 등 여러 시각적 요소가 도입되어 실현되었던 장으로, 아동문학 발전의 장이자 이 시기 출판미술의 단계를 점검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중 그림책 형성과정에 시사점이 될 만한 것을 몇 가지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아이들보이』는 한국 최초로 컬러 그림 표지를 썼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편 1949년 『어린이나라』 2월호에는 ‘애기 그림책’이라는 한 쪽짜리 전면을 차지하는 그림과 함께 동요 ‘눈밤’이 소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지면의 경우 먹 1도에 파랑이나 빨강 등 단색을 한 가지 더 입힌 형태의 소박한 컬러로 정성을 들이기도 했다. 잡지의 삽화들은 화면 전체를 그림으로 할애하는 등 점점 더 과감하게 그림을 활용하여 면배치를 하고 있다.
이 당시 어린이 출판물에서 주목할 만한 삽화가로는 정현웅, 김용환, 임홍은 등이다. 당시의 삽화가는 신문이나 잡지에 만화나 삽화를 그렸으며, 책의 장정작업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
1938년 서양화가이자 삽화가인 임홍은이 편집한『아기네 동산』은 책 속 그림책인 ‘애기 그림책’도 ‘봄바람’, ‘모래성 쌓으며’ 등 열 넉 점의 삽화를 하늘색종이에 별도로 인쇄하여 아이들 취향에 맞추려고 했다. 『아기네 동산』은 우리 그림책의 큰 맥락에 속하는 중요한 예 중 하나이다.
당시 문자 해독이 여의치 않았던 상황에서 동시동요집은 좋은 읽을거리가 되었다. 대표적인 동요작가인 윤석중의 동요집 『어깨동무』는 지금 보기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호화로운 컬러 장정과 고급 재질, 아름다운 그림 등이 특징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책은 1947년 조선아동문화협회(이하 아협)에서 낸 『우리들 노래』이다.
펼친 양쪽 면 전체를 차지하는그림과 한 편의 시로 구성되어있는 이 책은 현존하는 자료들 중 우리나라 최초의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전 화면을 차지하는 그림은 당시 우리 일러스트레이션의 수준을 파악하게 해준다.
근대 이후 1960년 이전은 근대적인 그림책의 도입과 형성과정이다. 이 시기 본격적인 현대 그림책을 엿볼 수 있는 사례는 『우리들 노래』뿐이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점점 그림의 비중이 커지고, 시각적 요소를 과감하게 도입하고 있어, 이러한 변화들이 이후 현대적 의미의 그림책으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 1 9 6 0 년 대 ~ 1 9 7 8 년 : 그 림 책 의 정 착 기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성장을 위해 전 국민이 매진했던 이 시기는 국가가 주도하여 어린이책 보급과 독서 활성화 정책을 수행했던 때였다. 우량아동도서 선정위원회가 발족되었으며, 초등학교에서는 학급도서 설치운동이 일어났다. 1963년에는 ‘도서관법’을 제정, 공포함으로써 학교 도서관이 증가하였다(대한출판문화협회, 1998: 124). 이것은 1952년 초등 무상교육이 실시됨으로써 교육인구가 증가하는 것과 맞물려 어린이 독자층이 확대되는 데 기여한다. 아동문학가 어효선(1966)은 아동도서가 제대로 책의 모양을 갖추기 시작한 때는 1961년 문교부가 우량아동도서 선정기준을 발표한 뒤라고 한다.
한편 1958년에는 학원사가 근대적인 방문판매 방식을 도입하였다. 학원사는 『과학대사전』과 『대백과사전』(전6권)을 완간하면서 당시 미국에서 성행하던 방문판매를 도입,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런 전집출판 관행은 초등학교 학급도서 설치 및 도서관 증대와 맞물리면서 1990년 초까지 그림책 시장을 포함한 우리나라 어린이책 시장을 장악한다. 한편 계몽사는 1946년 창립된 이래 1959년 대형 전집물을 기획, 『세계소년소녀문학전집』을 출간함으로써 대량 전집물 시대를 여는데 또 하나의 견인차 역할을 한다.
1) 홍학출판사의 세계명작 시리즈
1960년 홍학출판사는 『어린이 세계 명작』 학년별 전 6권을 출판하였으며, 한국교육문화원도 『세계 명작 선집』 학년별 전 6권을 출판하였다. 이 책들은 연령에 적합한 책 출판이라는 개념을 출판기획에서 도입했다는 점에서, 특정층을 염두에 두는 성격이 강한 그림책 출판을 고려하는 데 디딤돌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60년대 후기는 아직 저권권법이 발효되기 전으로, 일본의 학습물 위주의 책을 각색, 복제한 그림책이 많이 양산되었다.
눈에 띄는 어린이 그림책의 주요작가로는 김용환과 김인평을 꼽을 수 있다. 김용환은 어린이만화, 시사만화, 삽화, 역사화 등 다방면에 걸쳐서 다양한 스타일을 구사했던 작가이다. 또 다른 작가인 김인평은 이 시기에 가장 활발하게 어린이책에 그림작업을 한 작가로 보인다. 그는 완성도 있는 형태감과 사실성을 살린 밀도 높은 그림으로 수준 있는 일러스트레이션을 많이 남겼다.
2) 한문당 그림책 시리즈
1962년 발행된 『창경원』을 들 수 있다. 이 그림책은 김인평이 그림을 그렸는데, 정보 그림책으로서 실감나는 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 내용을 창작한 그림책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또한 구성에서도 하나의 주제와 소재로 책 한 권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고 볼 수 있다. 책의 형식은 합지에 인쇄되어 대략 20쪽에서 24쪽이고, 면지는 없다.
3) 기타
1966년에 계몽사에서 발행한 우경희 그림의그림동요집 『어깨동무 씨동무』는 전면을 차지하는 컬러 그림 한 바닥마다 동요 한 편이 소개돼 있는 책으로, 다양하면서도 수준 높은 그림 스타일을 보여주는 책이다. 또한 1978년 홍신문화사에서 나온 『재미있는 그림동화』는 큰 활자체에 그림이 들어가 있는 형태로, 이 시기 그림이 들어간 어린이 책의 전형적인 책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한편, 1974년에 대양출판사에서 나온 『엄마랑 함께 풀어보는 능력 테스트』란 책은 지금의 유아용 학습지의 형태를 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시기에는 여전히 전집물이 주류였다. 디즈니 캐릭터가 담긴 애니메이션 그림책 류가 붐을 이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그림책은 전체적인 그림책 시장의 확대에 기여하기도 했지만, 내용적인 면에서 인간 내면의 세계와 교훈 등을 삭제함으로써 아이들의 사고력을 틀 속에 가둬버리게 하는 등 부작용이 컸다.
4 . 1 9 7 9 ~ 1 9 8 0 년 대 말 : 한 국 그 림 책 형 성 기
1979년~80년대 말은 한국 그림책의 형성기이다.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 이후 미국 교육과정 전반에 걸친 재검토는 한국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쳐, 1980년대 이후 우리나라 유아 교육은 국가적인 관심과 지원으로 급격히 팽창하고, 어린이책 시장에도 인지발달을 목표로 한 유아용 그림책이 활성화 바람이 불었다. 또한 1979년 세계아동의해를 맞아 그림책의 질에 대한 각성이 일어났으며, 1980년 컬러텔레비전 방송, 조판, 인쇄술의 성장은 컬러 그림책의 예술성 확보에 견인차가 되었다. 이에 따라 우리 그림책은 1980년대 초 전집출판에 맞는 외형적 화려함과 눈부신 양적 성장을 경험한다. 해외명작동화, 전래동화, 위인전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대규모의 큰 기획물이 만들어졌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재미있는어문각픽처북스’ 시리즈
‘재미있는어문각픽처북스’ 시리즈의 하나인 전래동화 시리즈(전 12권)는 국내 최초로 출판사와 그래픽 디자이너가 공동 기획해서 제작한 그림 동화집이다.
“1980년도 2월 신년도 사업계획에서 무엇보다도 아동도서의 교육적 질을 높이고 또한 글만을 중시했던 종래의 경향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게 된 것입니다. 이를 위해……이제부터는 종래의 그림 스타일에서 좀 더 전문성이 깊은 그래픽 디자이너의 그림이나 혹은 그 밖의 다른 특색있는 그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위의 글은 당시 어문각 편집부장이었던 심재민이 어문각 픽쳐북스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우리나라 아동도서 출판업계의 현황에 대한 언급한 것으로, 그림책 제작과정에서 전문 디자이너의 참여를 고려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 동화출판공사 ‘그림나라100’ 시리즈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60권이 만들어졌다.당시 그림책 그림작가의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그림책 작업에 순수미술 영역에서 활동하던 화가들을 대거 참여시켰다.책 면면을 자세히 훑어보면 그림의 역할을 충분히 살려내지 못하는 등 아쉬운 점도 있으나 우리나라 그림책 그림에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또한 그림책 작업자를 기존 작가들로만 제한하지 않고 확대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3) 웅진 ‘어린이 마을’ 시리즈
총 12권으로 되어 있는 ‘어린이 마을’은 1981년부터 1984년까지 당시로는 파격적인 시간과 자본을 투자한 국내 최초의 아동용 종합창작 도서로, 한국적 일러스트레이션을 시도하고 사진, 입체물 작업, 일러스트레이션 등 다양한 시각적 요소를 도입하였다. ‘어린이 마을’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대거 참여하여 우리 그림의 가능성을 보인 점, 일러스트에 대한 적극적 수요 창출이란 점 등에서 높이 평가된다. 한편 이 작업에 참여했던 화가, 디자이너, 기획자, 편집자 다수가 이후 각계의 어린이책 창작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 결과 ‘어린이 마을’은 단지 결과물인 책만이 아니라 작업역량의 전이라는 면에서 우리나라 창작 그림책 작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들 세 가지 전집물은 우리나라 출판 일러스트레이션을 활성화시킨 업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한쪽에선 외국도서의 복제 또한 기승을 부려, 상업주의적 이윤추구만을 앞세운 출판도 많았다. 외서를 불법복제해서 내거나 같은 내용의 그림책을 크기와 양만 조절해서 여러 출판사에서 반복 출판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 외에 1981년 학진출판사 발행의 ‘호화로운 원색 그림책’ 시리즈는 당시 정보 그림책의 수준을 알 수 있는 책이다.
한편 1989년 이규경이 예림당에서 글과 그림 작업을 같이 하여 『여름을 보고 싶은 눈사람』,『희망이 뭔지 아니?』, 『나무의 꿈』을 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그림작가가 직접 쓰고 그린 책이라는 광고 문구로1) 보아, 진위 여부를 떠나 이 시기에 글과 그림의 동시작업은 극히 드문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1981년 교보문고를 비롯해 종로서적, 영풍문고 등의 대형 유통서점의 등장은 단행본 그림책에 적합한 유통형태가 시장에서 마련되었음을 의미한다. 1980년대 후반 글과 그림 모두 우리 작가에 의한 창작 그림책이 선을 보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1980년대의 가장 큰 특징은 1980년 전반까지도 독자적인 장르로 인정받지 못했던 ‘삽화’가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이다. 그에 따라 일러스트레이션 안에서 어린이 책 전문작가가 분화되었고, 작업의 양과 질도 크게 성장했다. 또한 읽는 책의 문화가 보는 책의 문화로 바뀌면서 독립된 시각언어로서의 일러스트레이션이 점차 부각된다.
삽화를 주업으로 하면서 작품 발표를 해왔던 서양화가, 동양화가, 만화가 들의 모임인 ‘무지개회’가 1984년 4월 ‘한국 무지개회 일러스트레이션전’이란 명칭으로 창립전을 갖는다. ‘무지개회’는 개인적인 활동에서 하나의 그룹을 형성하면서, 당시 미술계에서 독자적 장르로 인정받지 못했던 일러스트레이션을 공식적인 분야로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일러스트레이션 관련 전시도 활발히개최되기 시작했는데, 1986년 11월 일본 오타니미술관 기획으로 ‘세계 어린이 그림책 원화전’이 워커힐 미술관에서 열렸으며, 1988년 류재수의 『백두산 이야기』(통나무)가 출간되면서 ‘백두산 이야기’전이 국내 순회전으로 개최되었다. 이 전시는 어린이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에 있어 또 하나의 새로운 사례가 된다. 한편 『백두산 이야기』는 국내 어린이 그림책으로는 최초의 단행본 출판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같은 해인 1988년 한국 출판계가 최초로 기획한 ‘국제 그림동화 원화전’이 개최된다. 이 전시회는 아시아 지역 중심의 13개국에서 64명의 작가가 180점을 출품했는데, 진행위원인 강우현이 말한 행사의 기획취지에는 당시 그림작가들의 고민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림책의 일러스트레이션은 우리나라의 경우 선진 외국에 비해 상대적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이제 세계 저작권 조약 가입과 더불어 무작정 외국의 작품을 도용, 모방, 각색하는 등의 도둑 행위가 불가능하게 되고 독자적인 창작물의 개발이 불가피하게 됨에 따라 출판 각 분야에서도 ‘한국적인’ 그림책으로 눈을 돌려 ‘세계적인’ 작품의 출현이 요청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이 행사는 다섯 달 뒤 1988년 11월 11일 한국출판미술가협회가 창립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된다. 이 시기에 활동했던 그림작가 중에 가장 대표적인 작가로는 이우경, 홍성찬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이 현대 그림책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전반으로 어둡고 암울했던 시기에 한국 일러스트레이션의 명맥을 이어준 가교 역할을 했다.
이 시기 어린이 책 일러스트레이션은 양적, 질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1990년대 우리 창작 그림책의 본격 활성화를 위한 토대를 축적한 시기였던 것이다.
5 . 1 9 9 0 년 대 ~ 현 재 : 창 작 그 림 책 의 도 약 기
1990년대 들어 경제적 부흥과 함께 이에 따르는 신흥 중산층 세력이 등장했다. 이것은 사회계층으로서 그림책의 구매자가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1970~1980년대 저항을 거쳐 정치적 변혁을 이루었던 386세대가 부모가 되는 시점과 맞물리는 때이기도 하다. 이들은 자녀에게 독서를 실천함으로써 그림책의 가장 중요한 독자층이자, 양질의 그림책 출판을 유도하는 비판적 독자층이 되었다.
또한 출판환경의 변화는 창작 그림책 활성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91년 방문판매법의 제정은 전집물 할부 판매를 위축시켰으며(최대원, 1992), 1987년 국내 저작권법이 세계저작권 협약UCC, Universal Copyright Convention을 수용하여 전면 개정됨에 따라 그 사이 범람하던 무단복제 출판 관행을 단절하는 중요한 계기가 됨으로써, 국내 작가에 의한 창작물이 활성화되는 토대가 되었다.
이에 따라 어린이책의 시장환경은 전집류 출판에서 단행본 도서로 중심이 변화한다. 여기에 1991년 대학입시정책인 수학능력시험에 관한 요강이 발표되면서 초등학교부터 대학입시를 의식하는 조기독서교육으로 확산된다. 또한 1989년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브라티슬라바 국제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BIB, The Biennale of Illustrations Bratislava에서 강우현이 『사막의 공룡』으로 황금패상을 수상한것을 필두로 1990년 류재수의 『백두산 이야기』가 볼로냐그림책공모전에서 지명작가로 선정되었으며, 1992년 김의숙의 『피노키오의 모험』이 볼로냐일러스트레이션공모전에서 수상작이됨으로써 우리 작가의 수준이 국제무대와 겨룰 만큼 높아졌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후로 일러스트레이터에 주어지는 국제적인 상에 대한 수상이 줄을 이었다.
한편, 서구 대형 출판사를 대상으로 한 빈번한 저작권 수입과 최근 들어 동남아를 중심으로 한 저작권 수출은 한국 그림책이 이미 국제 그림책 시장과 궤를 나란히 하고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독자적인 예술 장르로서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자각과 함께 이를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전시가 활발하게 개최되었다. 1995년 슬로바키아의 세계적 일러스트레이터인 두산 칼라이 DusanKallay의 원화전은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1996년 국내 굴지의 화랑인 워커힐 아트센터에서 국내 일러스트레이션 초대전이 개최됨으로써 일러스트레이션의 위상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한편 1995년 초방에서 이억배, 권윤덕, 정유정의 일러스트레이션 원화전이 개최되어, 1980년대 민중미술 작가들에게 자기표현의 새로운 수단으로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제시하는 등 그 인식을 전환하게 된다.2)
1990년대의 일러스트레이션은 위에서 서술한 시대적인 인식들을 바탕으로 민화 등 한국적인 것에서 시각적인 모티프를 가져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 결과 세계 어린이책계의 주목을 받음으로써 우리 것으로 세계와 견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획득되었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그림작가로는 강우현, 류재수, 김환영, 이억배, 권윤덕, 정승각, 이혜리, 이호백, 한병호 등이 있다.
한편 그림책에 대한 인식을 체계적으로 쌓기 위해 작가, 독자, 학계에서 다방면으로 노력이 기울여졌다. 한겨레 일러스트레이션 학교를 기점으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위한 체계적인 교육기관이 등장하였고, 2004년에는 서울시립대 디자인대학원에 일러스트레이션 전공과정이 개설되면서 많은 일러스트레이터가 양성되고 있는 상태이다.
이같은 눈부신 성장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우리 그림책의 전망을 어둡게 보는 시각도 만연해 있다. 이는 출산율의 저하와 몇몇 책을 제외한 신간 그림책의 지속적인 판매 저조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그림책 시장에서 국내 창작 그림책이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못 미치는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내용적으로 우리 그림책은 주제, 소재의 다양성, 캐릭터의 정착, 실험적 형식의 시도 등 현대 그림책이 지니는 경향이 점점 눈에 띈다. 이런 상황에서 독자들에게 인정받은 기존 도서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는 신간 그림책이 제대로 평가받고 팔리는 구조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 그림책의 형성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많은 과제를 지니고 있다. 그림책의 출간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 수집과 데이터 축적이 절실한 가운데, 자료가 새로 발굴되면서 새로 써야 할 것이 더 많은 분야이기도 하다. 이 글을 읽은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