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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새책 살아온 그곳이 역사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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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17 16:09 조회 6,30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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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이 그림책, 학부모들이 꽤나 반기게 생겼다. 분명 지식그림책이지만 전혀 딱딱함이나 따분함이 느껴지지 않고, 친절한 이야기 전개에 아이들도 즐겨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최고로 어려워하는 사회과목의 역사지리를 감칠맛 나는 이야기꾼인 김향금 작가가 썼기 때문이다. 글 솜씨 좋은 작가 덕분에 어려워하던 역사지리가 아주 재미난 ‘우리들의 이야기’로 변신했으니 말이다. 자신의 어머니에서부터 딸에게로 이어지는 3대의 이야기로 구성했다. 그림은 또 어떤가? 동강이 갖고 있는 사람의 형상을 찾아내어 표현한 ‘그림 속의 숨은 그림전’을 열었고, 그것을 기초로 만든 그림책 『동강의 아이들』로 이미 우리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김재홍 작가의 훌륭한 솜씨가 아닌가.

이렇게 글과 그림이 조화롭게 어울려, 어렵고 힘든 사회공부가 더 이상 공부가 아니라 엄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로 아이들을 찾아 왔다. 옛날 옛적에 외할머니가 아홉 살 여자아이였을 때 살았던 전라남도 장흥군의 북동마을과 엄마도 역시 아홉 살이던 그때에 살았던 서울의 청계천 주변 동네, 그리고 이제 아홉 살인 내가 살고 있는 아차산 부근의 광장동 아파트로 시간과 장소가 성큼성큼 옮겨진 것만큼이나 삶의 모습도, 가옥의 형태도, 집이 지니는 가치도 달라졌음을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변화는 그대로 우리들의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는 것도 알게 한다.

역사란 삶의 흔적이 쌓이고 쌓인 것이라고, 이리저리 터전을 옮긴 궤적과 함께 그것에 따라 변화한 생각과 생활태도라는 것까지 알려준다. 외할머니는 북동마을에 살던 아홉 살의 연이였을 때, 학교생활에 큰 변화를 겪는다. ‘히라가나’, ‘가타카나’를 가르쳐주던 일제치하의 초등학교가 8월에 해방이 되자 학교는 3개월이나 쉬었다가 다시 문을 열었고, 이제는 ‘가갸거겨’를 배우게 되었기 때문이다. 해방 직후, 그때 그 시절의 학교생활이 할머니의 어린 시절이야기로 북동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할머니가 결혼을 하고 일가를 이룬 곳은 서울이다. 모두가 서울로, 서울로 새로운 터전을 찾아 모여들던 시절, 여기에 합류했던 것. 이제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바뀌면서 이야기의 무대로 자연스레 서울이 된 이유다. 그때는 먹는 물을 대주고 빨래터 역할을 해주던 생활개천이었던 청계천 주변의 동네다. 서울로 몰려드는 사람은 많았고 모든 것이 부족하기만 하던 시절이지만 이웃 간의 정은 훈훈했다. 삶의 장소가 바뀌는 데에 따라 그곳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 사이의 예절도 바뀌었다. 다음의 대목들을 비교해 보면 점점 개인주의가 되면서 사생활이라는 것이 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할머니가 살던 곳,
이 마을에서는 낮이나 밤이나 대문을 반쯤 열어 두고 살아. / 누구나 “계시오?” 한마디 던지곤 / 남의 집 방문을 드르륵 열기 일쑤지.
엄마가 어릴 적 살던 청계천 변 동네에서,
근희네 집 나무 대문은 늘 빗장을 느슨하게 채운 채 닫혀 있었지. / 거지나 가짜 꿀을 파는 장수처럼 반갑지 않은 손님이 불쑥 들어오곤 했거든.
그러다가 내가 사는
유서 깊은 아차산과 광나루 사이에 빽빽하게 들어찬 아파트 동네. / 아파트 곳곳에서 고가사다리를 매달고 말없이 이사를 오가고 /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누가 사는지 모르지만 / 엘리베이터를 같이 쓰는 이웃끼리 겸연쩍은 인사를 나누는 동네다.

학교와 병원, 음식점과 쇼핑몰 등 온갖 편의 시설이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까운 주변에 모여 있어 생활은 더없이 편리해졌지만 겸연쩍은 인사만 나누는 이웃에게서 예전과 같은 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엄마가 어릴 적 살던 집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것처럼 엄마 어릴 적 골목 안에서 나누던 이웃 간의 정도 어느덧 먼 옛날의 추억으로만 기억될 뿐이다.

연대순으로 사건을 외우고 그 사건의 중심인물을 기억하는 것이 역사 공부의 전부라면 그런 공부는 하나도 재미가 없다. 아이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것들을 그저 외우려니 힘들고 싫증만 났던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교실을 벗어나서 삶을 알게 하는 공부면 좋을 텐데. 외할머니와 엄마와 나로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변화들, 내가 생활하는 속에서 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상황들이 켜켜이 쌓여 ‘역사’를 이룬다는 인식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이 그림책은 살아있는 사회공부가 될 것이다.

단, 아이들에게 이 책을 그저 건네주기만 해서는 부족하다. 우리 어른들에게 환영받는 그림책이라고 하여 곧 아이들에게도 그럴 거라는 생각은 크나큰 오해다. 우리에겐 아스라한 추억을 되살려주는 이야기이기에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면이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이 그림책으로 공부 효과 만점을 바란다면 우리 어른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곁들여 책 속의 어제와 오늘이 무엇이 같고 다른지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으로 즐거운 시간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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