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새책 천생 선생, 산골학교 탁샘의 교단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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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6-11 10:37 조회 7,523회 댓글 0건본문
『달려라, 탁샘』
탁동철 지음|양철북|452쪽|2012.01.02
14,000원|중학생|한국|에세이
성격 급하고 다혈질인 어머니, 항상 느긋하고 여유로운 아버지. 서로 다른 성격에 부딪치는 일도 잦다. 그러나 어떤 잔소리에도 초연한 듯 묵묵부답인 아버지, 덕분에 싸움은 늘 어머니의 일방적인 화풀이로 끝나고 만다. 그 중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가끔 내뱉는 한 마디, “생각하는 것이 꼭 초등학생 같다.” 다 큰 어른이 듣기에는 제법 언짢고 기분 상할 말이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동요하지 않는다. 30년을 넘게 어린 아이들과 함께 생활했으니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잔소리에 익숙해진 것인지, 좀처럼 속내를 표현하지 않는다.
천생 교사였던 아버지. 그런데 천생 교사라면 남들이 보기에는 조금 답답하고 어눌하더라도 아이들의 눈높이로 바라보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을 이해하려면 교사도 아이가 돼야 하지 않을까? 늘 당하고 사는 것 같지만 어쩌면 아버지는 아이들이 늘 그러는 것처럼 어른인 어머니를 그냥 봐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빠르고 안 틀리고 힘센 어머니가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는 아버지가 안 밉다고, 아버지를 용서한다고 했다. 그렇게 버티며 사는 것이다. 아이가 봐주기 때문에 어른이 사는 것이다. 어린아이한테 업혀서 철들고 충성스럽고 빠르고 안 틀리고 비겁하고 훌륭하고 힘센 어른이 살고 세상이 이어지는 것이다.(309쪽)
『달려라, 탁샘』의 탁동철 교사는 천생 교사다. 하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자로 잰 듯 반듯하고 완벽한 그런 교사는 아니다. 가끔은 실수도 하고 그래서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도 하고 때론 아이들과 다투고 삐치기도 하는 등 다소 엉뚱해 보이지만 사람 냄새 풀풀 나는 인간적인 교사다. 산골에서 나고 자랐고 그 산골을 잊지 않고 다시 찾은 교사. 그래서 아버지가 다녔고, 자신이 다녔던 학교를 이제는 딸이 다니고, 그는 그곳의 교사가 된다. 이 책은 그런 그가 만난 산골학교 아이들과의 일상을 담은 교단 일기다. 일기이다 보니 그날그날의 일을 생생하게 기록했고 자신의 감정도 꾸밈없이 솔직하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아이들의 글이 가끔은 어른스러워 초등학생의 글이 맞나 싶지만, 그의 글쓰기 지도에 대한 열의라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이제 보신촌집 마을에는/ 하나씩 개의 비명소리가 퍼지겠지./눈에 눈물 고인 채/한 명 한 명 뜨거운 물로 들어가겠지./도와줄 수도 없다./하지만 너의 목숨으로 나는/시를 쓰고 있다.(380쪽)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은 그가 1998년부터 2010년까지 근무했던 세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과의 일상을 전반부(1~3부)의 각 장에 나누어 담고 있다. 그리고 4부에서는 세 학교에서의 글쓰기 지도와 관련된 에피소드와 아이들의 글을, 5부에는 그가 만났던 사람들,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에 관한 단상을 담고 있다. 연도별로 서술되어 있어서 그런지 처음 글에서 만난 그보다 마지막 글에서 만난 그가 좀 더 성숙하고 어른스러워 보인다. 아니라면 글을 읽다 보니 그에 대한 공감대가 점점 커져서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른다.
교사는 항상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고 작은 실수도 하지 않는 완벽한 존재이고 싶다. 그래서 설령 실수를 하더라도 쉽게 인정하지 못하고 사과하려 들지 않는다. 때론 그 순간 교사의 권위가 깨진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책 속 그의 일화는 이런 우리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피아노에 적힌 자신에 대한 욕을 보고 분개하지만, 그로 인해 상처받은 아이가 누구인지 고민하는 교사. 그래서 자신이 상처 줬을 것 같은 아이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과하는 교사.’ 통념과 상식을 깨는 그의 생각과 행동들이 다소 엉뚱하지만 ‘참교사라면 바로 그와 같아야 하는구나.’ 하고 반성하게 만드는 교사. 처음엔 그런 그의 행동이 이해할 수 없고 다소 불편했지만 점점 머리 숙여 우러러보게 된다. 후기에 적힌 사모님의 “정말 부처님이에요.”라는 말이 절로 공감되는 부분이다.
학교에 있다 보면 종종 아이들과 이런저런 마찰로 힘들 때가 있다. 경력 있는 교사도 엄두를 못 내는데, 하물며 갓 들어온 교사들은 오죽하랴. 그래서 선배나 동료교사들과 문제를 토로해보지만 해결 방법이 쉽지는 않다. 도서관에 있다 보니 가끔 이런 고민에 대한 추천 도서를 요청받는다. 그러나 그때마다 얄팍한 지식에 기대어 피상적인 이론서만 들이밀 뿐 마음에 와 닿는 책을 권해주진 못했다. 하지만 이제 떳떳하게 권할 것 같다. 비록 초등학교 상황이지만 자신의 교사 철학에 대해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한 번 읽어보라고 말이다. 선생으로서 지켜야 될 위엄과 책임감에 힘들어하는 분에게는 위안과 위로가 될 것이며, 점점 미운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하는 분에게는 좋은 모델이 되어 줄 것이다. 비록 하루아침에 그와 같을 순 없겠지만 아이를 대하는 태도만큼은 조금 배워갈 수 있을 것이다.
기운이 빠지니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아이고, 이거 뭐하는 짓이냐. 내가 닭을 길들여 내 눈치나 슬슬 보게 해서 어쩌겠다는 거냐. 그래 봤자 나보다 약한 짐승인데. 그래, 앞으로 내가 너 눈치를 보며 살겠다. 죽을 때까지 숨 마음대로 쉬며 살아라 하고는 잡았던 닭 목을 놓아주었다.(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