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새책 아메데오가 만난 ‘달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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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7-08 00:57 조회 7,430회 댓글 0건본문
“사랑하다가 잃는 편이 한 번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테니슨, 19C, 영국 시인) “산사나무의 희고도 분홍빛 꽃을 모른다는 것보다 몰라서 그리워하지도 못하는 게 더 큰 슬픔이야.”(『빨간머리앤 이야기』, 루시 M 몽고메리)라는 말들은 사랑의 위대함이나 기쁨,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잘 보여준다. 나는 코닉스버그의 『아메데오의 보물』을 읽고, 사랑하고 그리워할 대상이 하나 더 생겨서 행복하다.
아메데오는 뉴욕시에서 플로리다 생말로 마을로 전학을 온 ‘이름 없는 외톨이’ 신세인 중학생이다. 그에 비해 윌리엄은 ‘혼자 동떨어진 아이, 날이 바짝 선 아이, 자신감에 찬 아이’이다. 윌리엄의 엄마의 직업은 다른 사람의 재산처분을 맡아서 해주는 일이다. 아메데오는 옆집 젠더 부인네 일을 하러 온 윌리엄과 특별한 매력을 지닌 젠더부인과 친구가 된다. 9월부터 12월까지 수업이 끝나면 그들은 젠더부인 저택에서 물건을 정리하고 닦고 분류한다. 윌리엄은 엄마의 동업자로, 아메데오는 뭔가를 찾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두 아이를 굳게 이어주는 끈이 되어서 우정이 쌓일 무렵, 그들은 모딜리아니의 그림 <달 여인>을 만난다.
<목이 긴 여인>, <눈이 가느다란 여인> 이는 모딜리아니 그림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다. 하지만 코닉스버그에게 모딜리아니는 다른 기억도 있다. 바로 제3제국(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한 1934년~1945년의 독일)아래에서 뒤틀린 근대 미술의 역사이다. 히틀러는 반 고흐, 르누아르, 피카소, 마티스, 샤갈, 브라크 등등의 그림들을 ‘퇴폐미술’이라 정하고 그림들을 없애기 위해 애쓴다. 없애려는 사람이 있으면 지키려는 이도 있는 법! 작가는 가상의 그림 <달 여인>에 자신의 상상력을 보태 감동적인 이야기를 완성하는데, 아메데오(모딜리아니 이름도 아메데오이다)의 탁월한 감각이 큰 몫을 한다. 중학생 아메데오에게 그림을 보는 안목이 있는 건 사실, 그의 아빠 덕분이다. 화가인 아빠는 『스카일러가 19번지』(E. L. 코닉스버그, 2004년)에서 탑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제이크이다.
감동이 있는 이야기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이타심을 실천하는 피터르 판 데르 발’이다. 피터르는 동생 존과 함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프린선 운하 옆(길을 따라가면 안네 프랑크의 집이 있다)에서 가구를 팔며 살았다. 독일이 네덜란드를 점령한 후에는 ‘퇴폐미술’을 보호하는 일을 하다가 나치 장교에게 <달 여인>을 건네주고, 자신은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가면서 존의 안전한 이주를 약속받았다. 존은 미국에서 살게 되었고, 아들 피터(큰아버지 피터르의 이름을 땄고 아메데오의 대부이다)는 예술센터 관장이 되어 ‘퇴폐미술’을 전시한다. 역사는 반복하고 진실은 감출 수 없는 법일까? 그들은 아메데오에게 발견(?)된 <달 여인>을 통해 잊을 뻔했던 한 영웅의 이야기와 정치에 휘둘리는 인간과 고통스러운 역사를 알게 된다. 젠더 부인의 “사람의 90%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말이다.
이 소설은 작가 나이 78살(현재 83살)에 쓴 데뷔 40주년 작품이다. 1967년, 37살에 『내 친구가 마녀래요』, 『클로디아의 비밀』로 시작한 작품들을 보면 작가는 늘 우정, 예술, 역사를 토대로, 개성 있는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을 유머 있는 담백한 문체로 정확하게 묘사한다. 전작 『스카일러가 19번지』 이야기와 맞물리는 부분은 독자에게는 속편을 보는 듯한 재미를 주지만, 작가가 내민 더 묵직한 주제 앞에서는 생각거리가 많아진다. 정치가 개인의 삶이나 예술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사람의 진짜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켜야 하는 게 있는지? 이렇듯 시간이 필요한 질문들은 『클로디아의 비밀』에 등장하는 프랭크 와일러 부인의 “너희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것들이 스스로 무르익어서 새로운 걸 배우지 않고도 세상일에 훤해지는 날도 올 것이다.”(194쪽)라는 말을 믿고 기다리겠다.
사족: ( ) 쓰기는 코닉스버그 작품 따라 하기다. 원래 작품에도 그런지, 아니면 번역자 의도인지 알 수 없으나 작품에서 ( )사용은 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