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새책 비빔밥은 그렇게 잘 비비는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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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8-06 20:16 조회 7,681회 댓글 0건본문
비빔밥은 질리지가 않는다. 왼손으로 비벼도, 오른손으로 비벼도 맛좋다. 비빔밥을 맛 본 외국인들이 ‘good!’을 외칠 때, 한쪽 어깨가 으쓱해지지 않을 한국인이 있을까?
비빔밥을 잘 비빌 때의 관건은 잘 섞는 것. 밥 위에 가지런히 올린 당근, 시금치, 버섯, 고기, 계란 등등 갖가지 재료들은 하나같이 다른 색깔이다. 하지만 고추장, 참기름과 함께 섞기 시작하면, 그들은 본인의 색깔을 잃는다. 잃는다기보다는 다른 재료들과 함께 어우러진다. 서로 다른 것들이 모여 하나의 맛을 낸다. 그 맛에 반해 누구도 고추장 범벅이 된 계란 프라이를 나무라지 않는다. 그런데 비빔밥은 이렇게 잘 비비는 사람들이 낯빛에는 왜 이렇게 관대하지 못한 걸까? 이상한 일이다.
백인 ≧ 황인 > 흑인 = 동남아인
이 집합관계는 황인종, 흑인종, 백인종을 바라보는 우리나라 사람의 인식을 간단하게 도식화한 것이다. 여기에 이의를 달 사람이 얼마나 될까? (248쪽)
부끄럽지만, 저 도식은 내 머릿속에도 ‘정답’으로 박혀 있었다. 부등호가 어쩜 저리도 정확할까. 나도 어쩔 수 없는 ‘우리나라 사람’인가 보다. 다만, ‘우~리~는 한 겨레다. 단~군의 자손이다.’ 이 노래를 습관처럼 부르고 자라 ‘단일민족국가’에 대한 자부심, 자존심이 뼈 속까지 스며 있는 한국인이라는 게 문제다. 우리나라는 이미 다문화국가가 되었고, 그 속도는 점점 가속이 붙고 있다.
이 책은 SBS에서 2011년 특별 기획하여 2회에 걸쳐 방영했던 다큐멘터리 ‘단일민족의 나라, 당신들의 대한민국’과 ‘당신들의 대한민국 2~10대의 초상’의 못다 한 이야기 편이다. 백인을 제외한 외국인 노동자, 국제 결혼하여 한국에서 살고 있는 동남아 여인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이 땅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과 고통은 상상 그 이상이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우리보다 까맣기 때문이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은 태어나기도 전부터 ‘혼혈아’라는 이름표를 받는다. 그리고 ‘우리’에서 제외된다. 그 잘난 ‘우리’라는 울타리가 대한민국을 병들게 하고 있다. 돼지우리 안에서도 이런 일은 없다. 아물지 않는 상처는 암 덩어리 보다 무섭다.
서울대학교 조영태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현재의 출산율을 유지하고 다른 변수도 현재와 동일하다고 가정했을 때, 2800년에 마지막 한국인이 숨을 거둔다는 결과가 나온다. 그리고 만약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현재보다 낮아진다면, 한국인이 멸종하는 시기는 2305년으로 앞당겨진다.(191쪽)
현 상태대로의 출산율, 그리고 그놈의 순혈주의를 고집한다면 전 세계에서 인구문제로 소멸하는 첫 번째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 될 것이란다. 끔찍하다. 단일민족국가에 대한 대단하고 대단한 우리들의 자부심은 국가 소멸과 함께 지구 밖으로 사라진다. 위기의 국가, 대한민국.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실성 있는 출산장려 정책이 시행되는 동시에 다문화 사회의 구성원들이 소외와 차별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인식이 전환되어야 한다.(194쪽)
‘누가 한국인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우리의 대답도 아래와 같아지기를 바란다.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은 한국인이다. 한국에 살면서 한국을 자기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국인이다. 한국사회에 봉사하고 한국인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은 한국인이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을 지켜나가는 모든 사람이 한국인이다. 이제 우리가 그들에게 요구했던 ‘민족’이라는 마지막 조건을 버려야 할 때가 왔는지도 모른다. 민족을 고집하는 순간, 우리는 수많은 ‘한국인’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235쪽)
비빔밥은 그렇게 잘 비비는 사람들아! 피부색에 따라 나도 모르게 달리 반응하는 그 못난 편견도 비빔밥에 함께 넣고 쓱쓱 비벼보자. 그들은 그저 다를 뿐이다. 너랑 나랑 서로 다른 것은 당연하다. 하물며 내 얼굴의 왼쪽과 오른쪽 생김이 다르고,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의 색깔이 다른데 이것을 나쁘다고 말하려거든 지구를 떠나라! 당연한 나조차 인정하지 않는데, 그 어떤 누구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공감할 수 있을까. 우주관광 한 번 하려면 2~300억 원이 든다는데, 편도티켓만 끊으면 절반 값이니 거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