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새책 [어린이 그림책 깊게 읽기]어린 화가 박수근의 어느 하루 ― 훗날 자신이 그리게 될 그림 속으로 들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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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10-06 18:43 조회 12,018회 댓글 0건본문
『꿈꾸는 징검돌』
김용철 글・그림_사계절출판사_44쪽_2012.05.02
12,000원_가운데학년_한국_미술, 화가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고 다채롭지 않다. 나는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물론 어린아이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린다. — 박수근
화가의 말처럼 박수근은 선한 우리 이웃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 대부분의 예술가가 그렇듯 화가도 작품에 자신의 삶을 녹인다. 선한 우리 이웃의 모습을 많이 그렸던 화가는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내었을까?
박수근은 크고 작은 바위가 널려 있는 강원도 양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화가는 부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위로는 누나 셋과 아래로는 남동생이 둘 있었다. 3대를 독자로 내려온 집안에 장남으로 태어난 화가는 금이야 옥이야 하며 유년기를 보냈다. 하지만 7세 되던 해에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어린 화가 박수근은 학교에 처음 가서 도화(미술) 시간에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을 보고 설레던 마음을 잊을 수 없었다. 도화 시간에 그림을 그려 제출하면 항상 벽에 붙곤 하여 도화 시간이 기다려지고 즐거웠다고 한다. 박수근의 재능을 눈여겨보던 교장 선생님은 가끔 집으로 찾아오셔서 연필과 도화지를 사주시며 격려를 하였다.
『꿈꾸는 징검돌』은 이 시기에 산으로 들로 다니며 그림을 그리던 어린 화가의 하루를 박수근의 작품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스케치북과 물감, 붓을 챙겨 ‘빨래터(1950년대 작)’를 건너던 어린 화가는 잠시 고개를 들던 틈에 물에 빠진다. 옷이 마를 동안 숯 몇 개를 주워 징검다리에 그림을 그린다. 물 아래를 다니던 물고기가 생기고, 아이를 보고 깔깔 웃던 빨래하는 아주머니도 생기고, 아기 업은 이웃집 복순이도, 어머니도, 어미 소도 생긴다. “퐁당” 작은 돌맹이 하나가 아이를 부른다. ‘아기 업은 소녀(1960년대 작)’였다. 아이는 복순이를 따라 장으로 갔다. ‘노상(1960년대 작)’가의 떡방아를 찧는 아주머니에게 취떡을 하나씩 얻어먹었다. ‘노인(1961년 작)’ 할아버지들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이가 칭얼대자 복순이는 ‘모자(1961년 작)’ 엄마에게 갔다. ‘나무와 두 여인(1962년 작)’이 있던 마을 한복판 느릅나무를 돌아가는데 ‘농악(1962년 작)’ 소리가 들려왔다. 해가 저물 때까지 놀던 아이들은 마을로 향했다. 마을 사람들이 ‘귀가, 귀로(1962년 작)’하며 줄지어 개울을 건너온다(작품의 제작연도는 제작시기와 출품연도이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화가 박수근의 그림에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중학교로 진학을 할 수 없어서 혼자서 그림을 익혔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치부하는 것으로는 그의 그림이 담고 있는 많은 의미를 설명할 수 없다. 박수근의 그림에 담겨 있는 대표적인 특징은 독특한 마티에르이다. 마티에르는 원래 재료 또는 재질이라는 뜻이었으나 미술에서는 기법상 심미성과 관련이 있는 말로 쓰인다. 특히 유화는 물감의 성질상 두껍게, 얇게 칠할 수 있고 터치를 살려서 질감을 갖게 하는 등 칠하는 방법을 다양하게 하여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박수근은 강원도 양구 출신으로 양구의 많은 바위 중에서도 화강암을 많이 보면서 성장했다. 그래서 화가는 의도적으로 화강암의 색조와 질감을 표현하는 마티에르 기법을 그림에 사용했다. 그림책 곳곳에 보이는 우둘투둘한 질감은 이런 화가의 기법이 반영된 것이다. 또한 화가의 그림은 대상을 평면화시켜 소재뿐만 아니라 인물의 표정도 단순한 형태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회색 등 무채색 계열을 중심으로 깊이 있고 무게감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꿈꾸는 징검돌』에서는 단순화된 인물의 표정과는 다르게 웃는 모습의 표정을 그렸으며 또한 밝은 색상을 포함시켜 어린 화가의 순수한 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꿈꾸는 징검돌』 속의 어린 화가 박수근을 보고 있으면 괜히 요즘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자연과 이웃, 생동하는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와 세상의 모든 것을 작은 모니터와 텔레비전를 통해서 배우는 아이는 경험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가 아이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든다. 그래서인지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기계적으로 체험학습을 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교감이 없는 체험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린 박수근이 느끼던 세상은 그림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시 한번 전달된다. 부처님의 얼굴을 닮은 우리의 삶이 그림을 통해서 다시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