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새책 [청소년 과학 깊게 읽기]‘없이 살기’를 실천하는 세 모녀의 씩씩한 좌충우돌, 즐거운 고군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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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9-05 22:48 조회 7,140회 댓글 0건본문
『없는 것이 많아서 자유로운』
도은, 여연, 하연 지음_행성:B잎새_336쪽
2012.03.10_14,000원_고등학생_한국_생태
추위를 핑계 대며 미루어 왔던 계단 청소를 해치우던 주말, 구석구석 묵은 때를 씻어내다 보니 계단 아래 먼지를 뒤집어쓴 종이 상자가 있다. 이사한 친구네 짐을 정리하다 집어온 옷가지들이 담긴 상자다. 유행이 지났으나 바느질 튼튼하고 감이 고급스러워 차마 버리지 못한 옷들은 들고 온 봉지 그대로 상자 속에 모셔져 있다. 필요한 누군가 있겠지 싶어 대문 밖에 내놓았더니 계단의 물기가 채 마르기 전에 상자째 집어 가고 없다. 끊임없이 소비를 부추기는 사회의 소비자로만 살아가고 있지는 않나 싶어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경험은 하루 이틀도 한두 해도 겪은 일이 아니건만 도무지 익숙해지지도 떨쳐버려지지도 않는다.
‘현대문명’과 ‘자본주의’의 체제를 거부하지도 적응하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세 모녀 에코페미니스트의 좌충우돌 성장기’라는 부제가 달린 책으로 만나는 이들의 삶은 참으로 특별하다. ‘아, 이렇게도 살아지는구나!’ 하는 안도감이랄까? 가난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비주류라고 스스로 평하면서도 도덕적인 자부심으로 무장하고 가치 있는 세계관을 품고 적은 돈으로 살아가는 능력을 가진 당당한 세 모녀의 이야기는 오히려 주류사회로 진입하려 아등거리다 입은 상처를 씩씩하게 위로한다.
서른이 훌쩍 넘어 자신을 낳고 길러 준 ‘땅’으로 돌아간 엄마는 15년여, 두 딸과 함께 먹고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땅과 자연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오롯이 간직했기에 무수한 실패에도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고백한다. 도시에서 성공하지 못했기에 시골로 왔고 ‘할 수 없이’ 겸손해져서 이 지구에 해를 덜 끼치게 되었다고. 엄마는 인간의 우매함을 똑바로 보고 후손에게 어떤 미래를 남겨줄지 아직도 고민하며 농사를 짓는 기쁨과 슬픔이 그 고민을 해결해 주리라 믿고 있다.
프놀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모두 9장으로 이루어진 책에서 가장 먼저 8장 ‘책에서 배우고 발견하는 기쁨들’을 펼쳐 보았다. 컴퓨터가 없고 TV를 보지 않으며 신문을 구독하지 않는데다가 학교에 다니지 않는 두 딸을 키운 것은 8할이 ‘책’이 아닐까? 엄마는 책을 시골의 삶을 지탱하고 위로한 이등공신으로 꼽는다. 일등공신은 물론 땅과 자연이고. 이불을 깔고 함께 읽은 수많은 그림책과 동화책, 판타지 소설이나 청소년 소설 등 읍내 도서관에서 빌려오거나 지인에게 물려받거나 큰맘 먹고 사온 수많은 책들은 이들에게 훌륭한 스승이자 친구이자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세 모녀가 함께 책을 읽고 함께 나눈 즐거움이 그들이 십 수년 거친 농사일을 견뎌내는 힘이 되었으리라. 아이와 대화가 되지 않아서 괴로운 부모들에게 아이가 읽는 책을 함께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책을 도무지 읽지 않는 아이라면 아이의 교과서라도 읽으며 아이를 이해해 보라고 권한다. 그리고 학교 도서실에 세 모녀가 찬사를 바치는 책을 두고 경쟁에 지친 아이들에게 책을 통해 경험하는 삶의 기쁨을 느끼게 해 주고 싶다. 세 모녀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안다. 어떤 사이든 자신을 정확하게 알고 서로의 평범함을 인정하는 순간 관계는 좋아지는 법이다.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는 이들도 수없이 갈등을 겪으면서 서로를 인정하고, 마침내 애틋한 연민으로 서로 보살피고 있다.
교육이 권리이자 의무인 사회에서 이들이 가장 길게 이야기하는 부분이 ‘학교에서 벗어나기’다. 그만큼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딸들의 ‘안스쿨링’ 이야기에서는 정규학교뿐 아니라 대안학교의 문제점도 짚어낸다. 세상 어디서든 배움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세 모녀는 학교를 벗어난 배움의 기쁨을 ‘자유를 맛보는 기쁨’과 ‘독학자의 기쁨’이라고 표현한다. 시스템을 벗어나, 스스로 배우려는 욕구를 가진 ‘자유로운 독학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 경쟁하며 앓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 비해 훨씬 건강하고 즐거운 배움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삶의 많은 문제는 구조의 문제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실천이 이 문제적 구조를 바꾸기도 한다. 학교에서 벗어나 농사를 지으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스스로 돌보면서 자발적 가난뱅이가 되어 ‘없이 살기’를 실천하는 세 모녀의 삶이 치열하게 녹아 있는 이 책을 통해 문제적 구조를 바꾸는 인간 본래의 힘과 인간의 본성 회복에 대한 희망을 발견한다.
진지하며 힘찬 엄마의 글과 풋풋하며 감칠맛 나는 두 딸의 글에는 노동과 독서로 자신을 겸손하게 벼려 온 사람들의 강직함과 정직함이 빛나고 있다. 엄마의 실패는 오히려 성공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