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새책 [청소년 예술 깊게 읽기]기억되는 자의 삶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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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1-06 20:02 조회 6,844회 댓글 0건본문
『박완서 朴婉緖 못 가 본 길이 더 아름답다』
수류산방중심 편집부|수류산방중심|381쪽
2012.08.15|29,000원|고등학생|한국|작가
사건을 기억하는 방식은 구술과 기록으로 나뉜다. 자신의 삶을 기록할 때도 구술에 의한 타인의 기록이나 자서전 형식의 자전적 기록을 하게 된다. 예술사 구술총서인 이 책은 작가의 글이 아닌, 작가의 구술 기록이다.
‘개인 삶의 응축물이 곧 역사가 된다’는 사실을 상기해 본다면 예술사 구술총서 발간은 독자, 기록자, 구술자 본인에게 두루 의미 있는 작업이다. 이 책은 장미영의 인터뷰 구술 기록을 바탕으로 딸 호원숙의 보충 증언, 개인의 삶과 흔적이 담긴 작가 작품 발췌문, 사진, 언론에 드러난 선생의 삶, 백과사전 등 다양한 자료들을 정리해 엮었다.
박완서 처녀작은 『나목』이다. 자녀 다섯을 기르며 평범한 주부로 살았던 작가는 화가 박수근의 유작전을 보고 6.25 당시 PX에서 박수근과 함께 일했던 자전적 경험을 녹여 낸 장편 『나목』으로 늦깎이로 문단에 등단한다. 이후 작가는 소소한 일상의 단상을 놓치지 않고 차근차근 글로 풀어낸다. 『엄마의 말뚝』,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휘청거리는 오후』 등을 읽으며 일상 경험을 풀어내는 탁월한 글 솜씨나, 거대담론이 아닌 평범한 주부의 시선으로 짚어내는 사회 인식에 공감해 고개를 끄덕이며 책을 읽은 경험이 있다.
총서답게 작가의 유년 기억, 학창시절, 전쟁과 결혼, 등단, 문필 생활, 남편과 아들을 잃은 아픔과 노년의 다양한 활동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족적을 통째로 엿볼 수 있어 박완서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남녀 차별 없이 존중 받으며 살았던 유년의 삶은 그이를 당당한 페미니즘 휴머니스트 작가 대열에 서게 만들었다. 남북 분단과 좌익 사상, 전쟁이 남긴 상처와 가족사는 시대의 증언자로 서게 했다. 결혼생활, 열성적인 교육관, 자식을 잃은 아픔의 시간들은 일상의 소소함 가운데 자리하고, 고뇌와 방황과 성찰이 담긴 따스한 글은 인간 삶을 수채화처럼 투명하게 보여준다.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편안함이 작가가 폭넓은 독자층을 갖게 만든 힘일 것이다 등단 작품 『나목』에서 밝혔듯 작가는 자신이 살아내야만 했던 비극적인 가족사, 시대사, 사회현실, 그 안에 얽히고설킨 애증의 삶을 누군가에게 증언하고 싶어 했고 시대마다 글이라는 매체로 작가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운동가의 격앙된 목소리가 아니라 엄마가 옛일을 회고하며 지난날을 이야기를 하듯 풀어낸다. 시대상이나 외적 모습만 조근조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내적 상처나 욕망 감정의 변이 등 인간 삶의 족적을 촘촘하게 씨실과 날실로 엮는다. 마치 흑백 필름처럼 펼친 글 여백에, 독자들은 이따금 자기 생각의 보따리도 펼쳐 덧 담을 수 있다.
구술사 총서는 작가가 작품에 녹여낸 부분을 한쪽 면에, 또 다른 쪽엔 구술 기록을 펼쳐 놓아서 독자는 직접 작가와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착각을 하도록 기획되었다. 그만큼 작가가 기록한 작품 속 글과 작가가 구술하는 말의 간극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어쩌면 문학 작가의 구술 기록이기에 다른 작가 총서보다 훨씬 풍성한 기록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말과 글의 간극이 느껴지지 않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한다. 경험이 일천한 채 백과사전적 현란함으로 설익은 지식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닌, 경험에 토대를 둔 솔직담백한 진실한 글이 독자 가슴에 공명 줄을 울린다는 의미일 것이다. 박완서 선생의 문학적 위상이나 문학적 토대의 단단함이야 말할 나위 없지만 구술사 기록을 읽으면 독자들은 다시 한 번 작가의 역량과 뛰어난 기억력, 섬세하고 꼼꼼한 언어선택에서 작가의 내공을 새삼 확인하게 될 것이다.
예술사 구술총서답게 많은 문화 예술관련 자료와 수많은 문화 예술인의 백과사전적 자료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작품 발췌본이 많이 들어 있고 사진이나 부대 자료도 풍성해 선생의 문학세계를 연구하려는 문학도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박완서 선생 생존 시, 직접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책 나눔 운동을 하는 단체가 주관하는 송년 시낭송 자리였다. 아들을 창졸간에 잃은 충격으로 두문불출 문인들과의 교류도 뜸한 때다. 그때 작가는 아들을 잃은 후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극복하고 다시 글을 쓰게 되기까지의 심정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칩거하며 매일 기도문처럼 암송했다던 김현승 시인의 「기도」를 육성으로 들려주었다. 걸움마저 불편한 노작가의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기억력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들었는데 구술기록을 읽으며 선생은 등단 전 백여 편의 시를 외우고 작고하는 날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않던 다독가였음을 알게 되었다. 왕도는 없다. 다독, 일상을 그저 지나치지 않는 섬세한 습관이 습작 없이 1,200매에 이르는 장편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인간의 자의식이 강해지면서 자기 삶에 대한 애착이나 자신의 시각과 목소리로 시대와 개인사에 대한 기록을 남기려는 경향도 커지고 있다. 모든 이들이 시대의 증언자요 기록자인 시대가 온 것이다. 유명 작가가 아니라도 개인 삶에 대한 기록은 저마다 의미가 있을 것이다. 개인 기록의 집체물이 역사니 말이다. 다양한 매체가 발달되어 있으니, 꼭 글이 아니더라도 사진, 동영상, 육성 녹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삶의 족적을 기록해 둔다면 그 자체로 역사와 시대에 대한 충실한 증언이자 삶의 기록이 될 것이다. 기억되는 자의 삶은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