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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새책 [어린이 그림책 깊게 읽기]의욕적 시도 반가움,인물 형상화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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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2-11 16:59 조회 6,47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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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를 맛있게 먹는 방법』
강정아 글·그림|계수나무|48쪽|2012.10.01
11,000원|유아|한국|호랑이, 옛이야기

『거북이를 맛있게 먹는 방법』(이하 『거북이…』)은 다양한 호랑이 이야기의 유형 중 ‘어리석은 호랑이’ 담으로 분류될 수 있다. 호랑이가 꾀를 써 거북이를 잡아먹겠다는 발상은 민담 ‘지혜로 호랑이를 잡은 토끼’의 역발상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거북이의 탈출은 ‘수궁가’에서 토끼의 용궁 탈출 모티브를 연상케 한다. 옛이야기 그림책이 대개 잘 알려진 설화 위주로 구성된 전집 시장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마당에 창작 옛이야기 그림책의 출간 자체는 분명 반가운 현상이다. 민담은 오랜 기간에 걸쳐 다듬어진 단순한 형식과 보편성·원형성을 담보하고 있기에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다양한 방식으로 향유될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방식으로의 응용에 구심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거북이…』는 거북이를 물에 불려 잡아먹겠다는 재미있는 발상, 앞·뒤 표지와 면지를 이용해 글의 핵심 내용을 충분히 그리고 암시적으로 제시한 점, 글자의 크기나 배열의 변형을 통해 상황과 심리를 더욱 생생하게 표현한 점 등을 미덕으로 꼽을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러한 미덕에도 불구하고 『거북이…』는 인물 형상화에 실패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작품의 주제의식마저 모호해져 버리는 과오를 범하고 말았다.

어리석은 호랑이 이야기를 지배계급에 대한 풍자로 해석하건, 프레이저의 논리로 해석하여 맹수를 피하고자 하는 일종의 동종주술로 해석하건, 감정적 동일시에 의한 정신분석학적 전위 현상으로 해석하건, 아무리 저열한 호랑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외형은 강자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거북이…』에서 호랑이는 어떻게 묘사되고 있을까? ‘늙은 호랑이’, ‘뱃가죽은 홀쭉하고 기운도 없어 보였어.’, ‘이빨이 몇 개 남지 않았어. 게다가 무릎이 아파서 예전처럼 뛰지도 못했지.’, 그림에서도 호랑이는 거북이를 잡아먹으려는 흑심을 드러낼 때조차 여전히 귀엽고 순진한 형상이다.

민담에는 지배계급에 의한 하향적 이데올로기까지 포섭하는 다양한 이야기 층위가 존재하지만 강자로 대변되는 악을 징벌하고, 약자로 대변되는 선을 옹호하는 것이야말로 민담의 근본 정신이다. 『한국구비문학대계』에서 찾아낸 원천설화 ‘지혜로 호랑이를 잡은 토끼’1)의 서두는 이렇다. “우리가 이 산골에서 살을라매 그 강적, 뭣인고니 그 호랑이 이놈 때미 우리가 살 도리가 없어.” 그리고 이 설화를 재현한 『까치와 호랑이와 토끼』(시공주니어)의 호랑이는 까치를 협박해 새끼까치를 하루에 한 마리씩 잡아먹을 정도로 포악하며, 전체적으로 해학적 형상으로 그려지긴 하지만 험악하고 심술궂은 표정 역시 생생하게 살아 있다. 또한 원천설화건 그림책이건 호랑이의 말로는 죽음이며, 이는 분명한 권선징악적 세계관의 표현이다. 민담에서 ‘속고 속이기’의 ‘힘겨운 상대 지략으로 누르기’ 유형의 대표가 바로 호랑이이다. “이때 호랑이는 체구가 크고 힘이 강하며 포식의 욕망을 지니고 횡포하며 정신은 뒤떨어진 존재이다. 호랑이는 속고 속으면서 자신의 힘과 욕망에 집착하다가 결국은 파멸하고 만다.”2)

『거북이…』에서 호랑이는 제 꾀에 넘어가 결국 사냥에 실패한다. 호랑이는 거북이를 등에 태우고 가다 넘어졌을 때 “미안해”라고 말할 만큼 예의 바르며, 물에 들어간 거북이가 돌아오지 않을 때조차 ‘불쌍한 거북, 물에 빠져 죽었나 봐.’라며 연민의 정을 표한다. 거북이를 잡아먹으려던 호랑이의 이러한 심리가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이렇듯 착하기조차 한 호랑이의 실패와 체념은 별로 유쾌하지 않다. 같은 맥락에서 “그럼 여기서 기다려. 내가 알맞게 불어서 나올게.”라는 거북이의 재치와 승리 역시 그다지 다행스럽고 기쁘게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쥐에게조차 놀림받는 늙고 힘없는 호랑이가 굶어죽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약자에 대한 승리는 시시하다. 승리는 강한 악당을 이겼을 때 의미 있는 것이다. 선과 악, 강자와 약자의 대립구도가 선명하지 않을 때 과연 아이들이 이야기에 감정몰입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거북이…』의 이러한 문제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개연성에 대한 고려 때문일까? ‘만약 강하고 포악한 호랑이라면 거북이 등껍질 정도야 와작와작 씹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우려는 기우이다. 훨씬 더 황당하고 비현실적 이야기라 하더라도 아이들은 이야기 세계 안에서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또한 혹시 호랑이를 통해 배려하고 공감할 줄 아는 인성을 가르치려 했을까? 만약 그렇다면 착한 의도가 서사의 완결성에 균열을 내고, 민담의 세계관에도 어긋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 된다.

한 가지 더 문제를 제기해 본다. 옛이야기 그림책 역시 문자와 그림의 역동적 결합이다. 그림 없이도 충분한 이야기보다는 글과 그림이 보완, 확장과 강화, 대위법 등 다채로운 관계를 맺을 때 그림책이라는 장르적 특성은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가령 “호랑이는 제 꾀로 거북을 속였다는 게 너무 기뻤어.”와 같은 문장은 호랑이의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 생략했더라면 어떠했을까. 독자는 더 능동적으로 의미를 구성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옛이야기의 변용을 시도한 작가의 의욕적 시도가 무척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지만 차가운 서평이 되고 말았다. 글과 그림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국내에 몇 안 되는 작가라는 자부심으로 부디 정진하길 부탁드린다.

1) http://yoksa.aks.ac.kr     
(한국학중앙연구원)
2) 이호주, 「호랑이 설화에 나타난한국인의 의식 고찰」, 고려대학교 석사논문, 1982, 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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