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새책 [청소년 과학 깊게 읽기]님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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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3-12 22:07 조회 8,870회 댓글 0건본문
『인간이 될 뻔했던 침팬지, 님 침스키 Nim Chimpsky: The Chimp Who Would Be Human』
엘리자베스 헤스 지음|장호연 옮김|백년후|447쪽
2012.10.19|22,000원|중고등학생|미국|과학
제목이 흥미롭다. 『인간이 될 뻔했던 침팬지, 님 침스키』. 주인공은 침팬지다. 침팬지란 말은 현재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사용하는 칠루바어 단어 ‘키빌리 침펜제kivili–chimpenze’에서 비롯되었다. ‘가짜 인간’이라고 번역되는 것으로 보아 처음으로 침팬지를 목격하게 된 콩고 주민들은 인간과 다른 종의 교배로 태어난 산물로 믿었던 모양이다.
현대 학자들도 침팬지에 대한 관점이 콩고 사람들과 별다르지 않다. 행동심리학자로 유명한 스키너의 추종자들은 영장류 특히 침팬지에 주목하면서 이들에게 인간의 언어를 가르치려는 시도를 한다. 이들이 영장류에 그토록 매달렸던 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는, 그리고 어쩌면 인간을 바꿀 수도 있는 과학 이론을 검증하는 실험에 영장류가 사용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런 배경 아래 1973년 영장류 연구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실험-프로젝트 님–이 시작됐다.
‘프로젝트 님’이 다른 연구와 차별되는 것은 침팬지가 미국식 수화를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침팬지를 일반 가정에서 키우고 다른 아이와 똑같이 인간의 언어를 가르치는 방식이다. 이것은 컬럼비아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 허버트 S. 테라스의 아이디어였다. 만약 성공한다면 언어가 인간과 동물을 나누는 결정적 경계라고 생각하는 패러다임을 뒤흔들 수도 있는 연구였다.
노엄 촘스키Noam Chomsky는 인간의 뇌에 내재되어 있는, 따라서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보편적인 문법에 관한 이론으로 유명한 언어학자다. 그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천성적으로 문법구조와 구문을 생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고 이를 ‘언어 기관’이라고 했다. 즉, 언어 능력은 내부에서 발현되므로 다른 종에게 언어를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다.
테라스는 노엄Noam을 님Nim으로 촘스키Chomsky를 침스키Chimsky로 바꾸는 도발적인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그의 하버드 스승인 스키너와 촘스키는 ‘프로젝트 님’이 시작되기 오래 전부터 서로를 비방했다. 1959년 스키너의 기념비적인 저서 『언어 행동론』이 출간되자 촘스키는 학술저널에 혹독한 리뷰를 게재하여 행동주의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1970년대까지 촘스키의 활약으로 행동주의는 사실상 이론으로서 생명력을 잃었다. 이런 상황을 역전 시킬 수 있는 것이 ‘프로젝트 님’을 성공하는 것이었다.
이 책은 1973년에 태어나 2000년에 죽을 때까지 님 침스키가 지내온 삶을 다룬다. 님은 어릴 때부터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유명인이었고, ‘프로젝트 님’과 관련한 그의 삶은 자세하게 기록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실험이 끝나고 난 뒤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대개의 연구용 동물들은 연구가 끝난 후 시설로 옮겨지는 도중에 사라지고 만다. 저자는 님 침스키의 남은 여생을 왜 추적했을까.
님의 삶을 재구성하기 위해 저자는 그와 함께 살았던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님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그를 동물이라기보다는 오래전에 잃었던 친척처럼 대했다. 처음에는 저자는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이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의 태도가 완벽하게 이해됐다고 한다. 애완동물로 흔한 강아지를 키울 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얘가 전생에 나와 무슨 관계가 있나?” 또는 소를 본적이 있는가? 소의 큰 눈망울을 보면 마치 나에게 ‘어서 이 코뚜레와 멍에를 벗어 주소’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은 윤회가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프로젝트 님’은 실패했다. 그러나 님 침스키가 남긴 흔적은 만만치 않다. 인간과 동물간 경계를 허물기 위해 언어 습득 능력을 강요받았지만, 님은 사람들에게 언어를 구사하는 이상의 존재가 되어 마음속에 각인되었다. 어쩌면 님이 남긴 산물은 동물윤리일지도 모른다. 윤리란 나와 동일하게 존중되어야 할 대상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님과 감정의 교류를 나눈 사람들은 그를 자식 또는 친척처럼 여겼다. 우리와 같은 존재로 생각한 것이다. 더 나아가 생명이 있는 존재라면 그 지능의 높고 낮음을 떠나 가지고 있는 존엄함을 인간은 존중해야 한다고 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