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새책 [청소년 예술 깊게 읽기]꾸미지 않은 소박한 화려함, 인도 미술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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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2-11 17:28 조회 6,830회 댓글 0건본문
『인도 미술에 홀리다』
하진희 지음|인문산책|328쪽|2012.09.10
18,000원|중・고등학생|한국|미술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 무언가를 만들어본 적, 그 언제가 마지막이었을까. 어린 시절 종이접기를 해본 기억은 너무도 멀고, 하다못해 손으로 글씨를 써본 것조차 가물가물하다. 편리해진 까닭에 너무도 쉽게 얻고, 그렇기에 너무도 쉽게 버릴 수 있다. 그렇기에 모든 것에 마음이 소홀해진 것도 사실이라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인도 미술에 홀리다』 속에는 아직도 손끝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인도인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신성한 것, 그 어느 하나 가리지 않고 정성을 다해 만드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무언가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책은 “인도인들은 왜 행복할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인도, 그곳을 떠올려 보면 카스트 제도와 흙먼지가 자욱한 길 위에 사람과 차와 소가 아무렇지 않게 뒤엉켜 다니는 이미지가 먼저다. 우리가 보기엔 지저분하고 불편해 보이기만 하는 그곳, 그런데 그들은 왜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일까. 아마도 손으로 만들어내는 기쁨과 그 소중함을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는지.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바로 이처럼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기쁨이 아닐까. 인간은 만들어내는 행위를 통해 자신뿐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많은 것들과 소통하고 애정을 나눌 수 있다. 기계가 아닌 손과 도구를 사용해 자신과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만들어냄으로써 인간이 지닌 욕구의 충족과 진정한 삶의 가치를 이해하게 되며, 정성을 다해 만들어진 물건의 소중함을 알고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22쪽)
인도미술사학자인 저자 하진희는 20년 간 인도를 드나들며 만난 2천여 점의 민예품을 통해 인도 미술과 그 기법, 그리고 그들의 삶을 소개한다. 그들의 미술세계를 들여다보면 학생 때 마지못해 배운 ‘간다라 미술’은 인도 미술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도인들은 회화에서부터 테라코타, 목공예, 석공예, 종이공예, 금속공예, 섬유공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이 섬기는 신들과 그 자신들의 삶을 그려낸다. 그들은 마음으로부터 기쁨과 즐거움을 담아 생활 공예품에서부터 예술품에 이르기까지 수일, 혹은 수개월에 걸쳐 무엇인가를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그들의 미술은 작은 사각 틀 안이나 박물관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집 벽, 문틀, 그릇, 장난감 등 일상의 모든 공간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런 순수한 열정이 그들을 장인으로, 그들의 작품을 예술품으로 여기게끔 만든다.
평생을 신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인도인들의 모습은 고스란히 작품에 그려진다. 그런 까닭에 저자는 인도 신화에도 본문을 꽤 할애했고, 덕분에 낯선 신화와 그를 표현한 작품들을 조우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인간적이고 친숙한 신과 상상력으로 가득한 신화를 만들어 낸 인도인들의 상상력이 재미있다.
“미술은 예나 지금이나 바로 사람들의 삶의 표현이다. 그래서 미술 작품을 들여다보면 기술이나 기교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보인다. 인도 미술품을 보면 인도 사람들이 보인다.” (37쪽)
그렇다. 미술은 특정 소수계층의 취미나 전유물이 아니다. 특히 인도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인도에서는 대개 미술 교육을 받아본 적 없는 하위계층이 민예품을 만들어 낸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남편은 철을 두드리고, 아내는 아이를 안고 풀무질을 한다. 그래서인지 원색의 화려함과 세밀함 속에서도 그들의 순박하고 따뜻한 삶이 엿보이는 것 같아 친숙하기만 하다. 책은 인도 미술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처럼 미술과 인도인들의 삶이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기에 그들의 사는 모습을 엿보기에는 충분하다. 좋아하는 남자를 위해 어머니나 할머니께 ‘코바르’라는 청혼 그림을 배워 그려서 프러포즈를 하는 모습이나 결혼할 때 공들여 치장하는 신부의 모습 이면에는 지참금 때문에 어린 여자아이들이 죽어가는 현실, 자신이 섬기는 신을 위해 바치는 의식인 ‘푸자’ 등이 있다.
사진에도 신경을 많이 썼는지 페이지마다 화려하고 풍요로운 색감과 만져질 것 같은 질감이 생생하다. 덕분에 인도인들의 삶과 미술품들이 한층 맛깔스럽게 담겼다. 가본 적 없는 인도지만 책을 덮고 눈을 감으면 이미 몇 차례 여행을 다녀온 듯 그들의 화려한 색감이 매혹적으로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