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새책 그림책! ‘위반의 욕망’ 어디까지 밀고 나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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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7-25 21:22 조회 6,654회 댓글 0건본문
박사문 대학강사, 국어국문학
우리 전통문화에서 소재를 발굴하고 창조적 변형을 시도해 온 작가 박연철의 작품세계가 더욱 견고하고 웅숭깊어졌다. 『떼루떼루』는 박연철의 작가적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는 데에서 더 나아가 신화·전설·민담 등에 한정되어 있던 원천소재를 민속인형극으로까지 확장함으로써 옛이야기 그림책의 지평을 넓혔다는 데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떼루떼루』는 남사당 꼭두각시놀이 연희본(박용태 구술·서연호 채록본, 총7거리)의 제4거리인 ‘이시미막’을 바탕으로 한다. 사실 꼭두각시놀이는 주로 낮이 아닌 ‘밤’에, 사람이 아닌 ‘인형’으로, 정착민이 아닌 ‘유랑단’에 의해 연행된다는 특성으로 인해 설화 및 판소리, 탈춤 등의 민중문학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에서 카니발적 특성을 드러낸다. 꼭두각시놀이의 시공간에서는 사회적·위계적 질서가 뒤집히고, 은폐된 인간 본성은 노골적으로 드러나며, 신성한 것은 저속하고 불경한 것들과 뒤섞인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민중적 웃음 속에서 이루어진다. 어린이를 1차독자로 삼는 그림책으로의 각색은, 주로 성인·하층계급을 중심으로 연희되었던 꼭두각시놀이의 이러한 특성 중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삭제 혹은 약화시키느냐’는 윤리적·정치적 고민을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이 글에서는 민속인형극에서 그림책으로의 각색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떼루떼루』가 이루어낸 예술적 성취와 우리가 함께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를 간략하게나마 짚어보도록 하겠다.
우선 『떼루떼루』가 바탕으로 삼은 ‘이시미막’은 ‘상좌춤막’(성적 방탕함)이나 ‘꼭두각시막’(가부장적 억압), ‘평안감사 매사냥막’, ‘상여막’(지배계급의 횡포와 몰락)에 비해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 가장 약하며, 서사구조가 가장 단순한 거리이다. 『떼루떼루』에서 등장인물들은 산받이와 짧은 재담을 주고받다가 이시미한테 차례로 잡아먹히고, 박첨지는 조카 딘둥이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다. 이 ‘단순한 서사’ 덕에 어린이 독자는 편안한 마음으로 우스꽝스런 한국적 언어유희와 재담의 진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서사의 형식적 편안함을 위해 기생 피조리, 홍백가, 묵대사 등 현실성을 드러내는 몇몇 인물들은 삭제되고 가족관계의 인물로 변형되거나 대치된다. 그리고 줄어든 서사의 자리는 양화면을 가득 채우는 커다란 몸으로 등장인물들을 잡아먹는 화려한 이시미로 채워진다.(3~5회) 어린독자에 대한 배려 혹은 불신은 결국 현실적 맥락과 정치적 지향성이 빠진 재담과 이시미 영상의 확대로 귀결되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없이 가볍게 다루어지는 죽음’, ‘연장자인 박첨지에 대한 어린 딘둥이의 조롱과 야유’, ‘은혜를 갚기는커녕 딘둥이 것을 죄다 빼앗아야겠다는 박첨지의 자기중심적 뻔뻔한 발언’ 등은 우리 그림책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신선한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순화된 신선함이다. 그림책에서는 채록본에서 보이는 연장자에 대한 심한 욕설과 모욕은 찾아볼 수 없다. 꼭두각시놀이의 핵심정신을 ‘현실질서에 대한 위반’이라고 했을 때, 『떼루떼루』가 가지고 있는 전복성은 다소 약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딘둥이(홍동지) 캐릭터의 왜곡으로 이어진다. 척사진경의 제의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벌거벗은 붉은 몸과 생명력과 힘의 상징으로서의 커다랗게 강조된 성기는 딘둥이의 성격과 역할을 드러내는 핵심적 특징이다. 딘둥이의 노출된 성기는 성적 욕망의 과감한 표현일 뿐 아니라 위계적 질서에 대한 위반, 권력에 대한 저항과 공격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림책에서 딘둥이의 성기는 가려져 있거나 삭제되어 있다. 성기의 삭제는 한국의 그림책 현실에서 보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그림책에서 보이는 도발적 주인공들이 그립다. 일흔 다섯의 나이에 초등학교에 다시 입학하고 심지어 여자친구와 눈이 맞아버린 『할아버지는 1학년』의 피에르, 알몸으로 학교에 가서 깡충깡충 신나게 뛰는 『알몸으로 학교 간 날』의 피에르가 시도하는 유쾌한 탈주가 그립고, 노동자의 권리를 명쾌하게 주장하는 『양들은 지금 파업 중』이라는 금기 없는 멋진 제목이 그립다. 실제로 남사당의 딘둥이는 주사용 호스를 끼워 넣어 오줌을 누듯 물을 뿜어댈 수 있게 되어 있다. 딘둥이가 오줌을 누는 장면을 과감히 넣거나, 아니면 김동익 채록의 서산 박첨지 놀이의 인형처럼 딘둥이를 자기 키만한 성기를 가진 캐릭터로 만들었다면 어떠했을까? 비속한 어휘에 좀더 과감한 욕설이 버무려졌다면 어떠했을까? 잠시 어리둥절 하겠지만 그림책이라는 허가받은 잔치판에서 아이들은 분명 더 진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앞표지에 보이는 입체감을 살린 붉은 기둥이 삭제된 홍동지의 성기를 의미한다하더라도 아쉬움은 남는다. 캐릭터를 완성하는 데에서 드러난 머뭇거림은 등장인물의 설정과 서사에서 드러나는 정치성의 약화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문화에서 이야깃거리를 찾아내는 집요한 작가 정신과 그림에 고스란히 드러난 작가의 창조적 노력에 아낌없는 존경의 박수를 보내며 글을 맺는다.
우리 전통문화에서 소재를 발굴하고 창조적 변형을 시도해 온 작가 박연철의 작품세계가 더욱 견고하고 웅숭깊어졌다. 『떼루떼루』는 박연철의 작가적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는 데에서 더 나아가 신화·전설·민담 등에 한정되어 있던 원천소재를 민속인형극으로까지 확장함으로써 옛이야기 그림책의 지평을 넓혔다는 데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떼루떼루』는 남사당 꼭두각시놀이 연희본(박용태 구술·서연호 채록본, 총7거리)의 제4거리인 ‘이시미막’을 바탕으로 한다. 사실 꼭두각시놀이는 주로 낮이 아닌 ‘밤’에, 사람이 아닌 ‘인형’으로, 정착민이 아닌 ‘유랑단’에 의해 연행된다는 특성으로 인해 설화 및 판소리, 탈춤 등의 민중문학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에서 카니발적 특성을 드러낸다. 꼭두각시놀이의 시공간에서는 사회적·위계적 질서가 뒤집히고, 은폐된 인간 본성은 노골적으로 드러나며, 신성한 것은 저속하고 불경한 것들과 뒤섞인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민중적 웃음 속에서 이루어진다. 어린이를 1차독자로 삼는 그림책으로의 각색은, 주로 성인·하층계급을 중심으로 연희되었던 꼭두각시놀이의 이러한 특성 중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삭제 혹은 약화시키느냐’는 윤리적·정치적 고민을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이 글에서는 민속인형극에서 그림책으로의 각색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떼루떼루』가 이루어낸 예술적 성취와 우리가 함께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를 간략하게나마 짚어보도록 하겠다.
우선 『떼루떼루』가 바탕으로 삼은 ‘이시미막’은 ‘상좌춤막’(성적 방탕함)이나 ‘꼭두각시막’(가부장적 억압), ‘평안감사 매사냥막’, ‘상여막’(지배계급의 횡포와 몰락)에 비해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 가장 약하며, 서사구조가 가장 단순한 거리이다. 『떼루떼루』에서 등장인물들은 산받이와 짧은 재담을 주고받다가 이시미한테 차례로 잡아먹히고, 박첨지는 조카 딘둥이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다. 이 ‘단순한 서사’ 덕에 어린이 독자는 편안한 마음으로 우스꽝스런 한국적 언어유희와 재담의 진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서사의 형식적 편안함을 위해 기생 피조리, 홍백가, 묵대사 등 현실성을 드러내는 몇몇 인물들은 삭제되고 가족관계의 인물로 변형되거나 대치된다. 그리고 줄어든 서사의 자리는 양화면을 가득 채우는 커다란 몸으로 등장인물들을 잡아먹는 화려한 이시미로 채워진다.(3~5회) 어린독자에 대한 배려 혹은 불신은 결국 현실적 맥락과 정치적 지향성이 빠진 재담과 이시미 영상의 확대로 귀결되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없이 가볍게 다루어지는 죽음’, ‘연장자인 박첨지에 대한 어린 딘둥이의 조롱과 야유’, ‘은혜를 갚기는커녕 딘둥이 것을 죄다 빼앗아야겠다는 박첨지의 자기중심적 뻔뻔한 발언’ 등은 우리 그림책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신선한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순화된 신선함이다. 그림책에서는 채록본에서 보이는 연장자에 대한 심한 욕설과 모욕은 찾아볼 수 없다. 꼭두각시놀이의 핵심정신을 ‘현실질서에 대한 위반’이라고 했을 때, 『떼루떼루』가 가지고 있는 전복성은 다소 약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딘둥이(홍동지) 캐릭터의 왜곡으로 이어진다. 척사진경의 제의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벌거벗은 붉은 몸과 생명력과 힘의 상징으로서의 커다랗게 강조된 성기는 딘둥이의 성격과 역할을 드러내는 핵심적 특징이다. 딘둥이의 노출된 성기는 성적 욕망의 과감한 표현일 뿐 아니라 위계적 질서에 대한 위반, 권력에 대한 저항과 공격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림책에서 딘둥이의 성기는 가려져 있거나 삭제되어 있다. 성기의 삭제는 한국의 그림책 현실에서 보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그림책에서 보이는 도발적 주인공들이 그립다. 일흔 다섯의 나이에 초등학교에 다시 입학하고 심지어 여자친구와 눈이 맞아버린 『할아버지는 1학년』의 피에르, 알몸으로 학교에 가서 깡충깡충 신나게 뛰는 『알몸으로 학교 간 날』의 피에르가 시도하는 유쾌한 탈주가 그립고, 노동자의 권리를 명쾌하게 주장하는 『양들은 지금 파업 중』이라는 금기 없는 멋진 제목이 그립다. 실제로 남사당의 딘둥이는 주사용 호스를 끼워 넣어 오줌을 누듯 물을 뿜어댈 수 있게 되어 있다. 딘둥이가 오줌을 누는 장면을 과감히 넣거나, 아니면 김동익 채록의 서산 박첨지 놀이의 인형처럼 딘둥이를 자기 키만한 성기를 가진 캐릭터로 만들었다면 어떠했을까? 비속한 어휘에 좀더 과감한 욕설이 버무려졌다면 어떠했을까? 잠시 어리둥절 하겠지만 그림책이라는 허가받은 잔치판에서 아이들은 분명 더 진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앞표지에 보이는 입체감을 살린 붉은 기둥이 삭제된 홍동지의 성기를 의미한다하더라도 아쉬움은 남는다. 캐릭터를 완성하는 데에서 드러난 머뭇거림은 등장인물의 설정과 서사에서 드러나는 정치성의 약화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문화에서 이야깃거리를 찾아내는 집요한 작가 정신과 그림에 고스란히 드러난 작가의 창조적 노력에 아낌없는 존경의 박수를 보내며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