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새책 그림의 힘! 게으름뱅이 총각, 매력남으로 재탄생하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9-02 18:46 조회 6,219회 댓글 0건본문
박사문 대학강사, 국어국문학
민담이 가장 옹호하고 아끼는 인물은 가난하지만 착하고 부지런한 이들이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이러한 인물이 마침내 복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통해 올바른 삶의 방식을 배우고, 고난을 극복하며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권선징악적 주제로 포섭되는 이러한 이야기 곁에서 우리에게 삶의 또 다른 방식을 제기하며 용기와 위로와 웃음을 선사하는 이야기들이 있으니, 그건 바로 변변찮은 바보나 게으름뱅이들의 행운담이다.
『뒹굴뒹굴 총각이 꼰 새끼 서 발』은 먹고, 누고, 놀다가 잠드는 게 일인 게으름뱅이가 사흘 낮 사흘 밤 동안 겨우 새끼 서 발을 꼬다가 어머니에게 내쫓기지만 결국엔 재물과 아내를 획득하고 돌아와 사흘 낮 사흘 밤 동안 잔치를 벌였다는 행복한 이야기이다. 글은 운율이 있어 낭독하기에 적당하며, 부연 없이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그림으로 채울 수 있는 빈자리를 남겨둔 서사는 간결하게 절제되어 있다. 분량이 제한되어 있으며, 서사 진행을 그림과 함께 해야 하는 그림책에서 글의 절제된 간결함은 도달하기 힘든 최고의 미덕이다.
사실 이 책은 그림만으로도 이야기 전달이 거의 완벽한데, 유머가 넘치는 그림 안에는 글이 양보한 인물의 성격과 심리가 탄탄하게 구축되어 있다. 사실 옛이야기 그림책이 기반으로 하는 민담에서 인물의 성격과 심리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구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핵심 모티프인 사건이다. 인물들은 대개 이름이 없으며 따라서 전혀 개성적이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러한 관례에서 어느 정도 비껴나 있다.
게으름뱅이 총각은 그림 작가 유승하의 힘으로 완전 매력남으로 재탄생했다. 그는 게으름뱅이이지만 놀기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누구보다 부지런하다. 그는 결코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며 삶을 즐긴다. 뒹굴거리며 쌓아올린 돌무더기들을 보라. 그는 목표지점을 향해 직진하지 않으며 효율적으로 편하게 가지 않는다. 새끼 서 발로는 줄넘기를 하며 길을 가고, 물동이 위에 올라가 묘기를 부리며 간다. 머리에 인 쌀가마 위에선 참새가 쌀을 쪼아먹을 정도로 가만가만 가며, 나무 위에 올라가 낮잠을 즐기기도 한다. 그는 나귀를 거꾸로 타고 가며, 죽은 처녀와 소꿉놀이라도 즐기려는 참인지 풀과 꽃으로 상을 차려내고 꽃다발을 만든다. 그리고 우물에 빠져 죽은 처녀 때문에 엉엉 우는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이며, 살아있는 처녀와는 나무 밑에서 사랑을 속삭일 줄 아는 로맨티스트이다.
요컨대 게으름뱅이 총각은 이성과 생산력으로 상징되는 남자다운 남자의 척도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 그는 근대 이전의 남자이자 근대를 넘어선 남자이다. 남성적이기보다는 여성적이다. 시간과 속도에 구속받지 않으며,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나귀/죽은 나귀, 살아 있는 처녀/죽은 처녀로 상징되는 그 어떤 차별적 분리와 분간도 허용하지 않는 낙천적 탈근대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어른답지 않다. 게으름뱅이 총각은 영락없는 어린 아이이다.
그래서 그림책의 일차 독자인 어린이들은 물론 무의식적이겠지만 그로 인해 인생의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집을 떠나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는 서사구조는 어린이들이 분리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며, 그럼으로써 보잘것없는 자신도 언젠가는 부와 결혼으로 상징되는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로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줄 것이다. 어설프고 느려서 항상 잔소리와 꾸중을 듣는 아이들에게 게으름뱅이의 행운담은 두려운 바깥세상도 사실은 꽤 살 만할 곳이라는 신뢰감을 심어줄 것이다. 무엇이든 좋다며 교환을 거듭하는 서사에서 우리는 이미 총각의 어리숙함과 낙천성을 읽어낼 수 있긴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미덕의 많은 부분이 그림에 빚지고 있다는 사실은 글과 그림의 올바른 관계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마련해 준다.
수많은 우리 민담 중 그림책으로 옮겨낼 만한 이야깃거리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그것을 그림책이라는 매체에 맞게 글을 각색하고 그림으로 표현해 내는 작업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오늘날의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이야기, 의미 없는 우스갯소리를 굳이 책으로 다시 펴낼 이유가 없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고민을 담아내되 의식적으로 어설프게 교훈을 드러낼 필요도 없다. 지금 여기의 우리 모두는 좀 뒹굴뒹굴 느리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사흘 낮 사흘 밤을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그런 잔치판도 벌이며 신명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지금 딱 필요한 아주 멋진 그림책이다.
민담이 가장 옹호하고 아끼는 인물은 가난하지만 착하고 부지런한 이들이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이러한 인물이 마침내 복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통해 올바른 삶의 방식을 배우고, 고난을 극복하며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권선징악적 주제로 포섭되는 이러한 이야기 곁에서 우리에게 삶의 또 다른 방식을 제기하며 용기와 위로와 웃음을 선사하는 이야기들이 있으니, 그건 바로 변변찮은 바보나 게으름뱅이들의 행운담이다.
『뒹굴뒹굴 총각이 꼰 새끼 서 발』은 먹고, 누고, 놀다가 잠드는 게 일인 게으름뱅이가 사흘 낮 사흘 밤 동안 겨우 새끼 서 발을 꼬다가 어머니에게 내쫓기지만 결국엔 재물과 아내를 획득하고 돌아와 사흘 낮 사흘 밤 동안 잔치를 벌였다는 행복한 이야기이다. 글은 운율이 있어 낭독하기에 적당하며, 부연 없이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그림으로 채울 수 있는 빈자리를 남겨둔 서사는 간결하게 절제되어 있다. 분량이 제한되어 있으며, 서사 진행을 그림과 함께 해야 하는 그림책에서 글의 절제된 간결함은 도달하기 힘든 최고의 미덕이다.
사실 이 책은 그림만으로도 이야기 전달이 거의 완벽한데, 유머가 넘치는 그림 안에는 글이 양보한 인물의 성격과 심리가 탄탄하게 구축되어 있다. 사실 옛이야기 그림책이 기반으로 하는 민담에서 인물의 성격과 심리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구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핵심 모티프인 사건이다. 인물들은 대개 이름이 없으며 따라서 전혀 개성적이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러한 관례에서 어느 정도 비껴나 있다.
게으름뱅이 총각은 그림 작가 유승하의 힘으로 완전 매력남으로 재탄생했다. 그는 게으름뱅이이지만 놀기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누구보다 부지런하다. 그는 결코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며 삶을 즐긴다. 뒹굴거리며 쌓아올린 돌무더기들을 보라. 그는 목표지점을 향해 직진하지 않으며 효율적으로 편하게 가지 않는다. 새끼 서 발로는 줄넘기를 하며 길을 가고, 물동이 위에 올라가 묘기를 부리며 간다. 머리에 인 쌀가마 위에선 참새가 쌀을 쪼아먹을 정도로 가만가만 가며, 나무 위에 올라가 낮잠을 즐기기도 한다. 그는 나귀를 거꾸로 타고 가며, 죽은 처녀와 소꿉놀이라도 즐기려는 참인지 풀과 꽃으로 상을 차려내고 꽃다발을 만든다. 그리고 우물에 빠져 죽은 처녀 때문에 엉엉 우는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이며, 살아있는 처녀와는 나무 밑에서 사랑을 속삭일 줄 아는 로맨티스트이다.
요컨대 게으름뱅이 총각은 이성과 생산력으로 상징되는 남자다운 남자의 척도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 그는 근대 이전의 남자이자 근대를 넘어선 남자이다. 남성적이기보다는 여성적이다. 시간과 속도에 구속받지 않으며,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나귀/죽은 나귀, 살아 있는 처녀/죽은 처녀로 상징되는 그 어떤 차별적 분리와 분간도 허용하지 않는 낙천적 탈근대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어른답지 않다. 게으름뱅이 총각은 영락없는 어린 아이이다.
그래서 그림책의 일차 독자인 어린이들은 물론 무의식적이겠지만 그로 인해 인생의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집을 떠나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는 서사구조는 어린이들이 분리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며, 그럼으로써 보잘것없는 자신도 언젠가는 부와 결혼으로 상징되는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로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줄 것이다. 어설프고 느려서 항상 잔소리와 꾸중을 듣는 아이들에게 게으름뱅이의 행운담은 두려운 바깥세상도 사실은 꽤 살 만할 곳이라는 신뢰감을 심어줄 것이다. 무엇이든 좋다며 교환을 거듭하는 서사에서 우리는 이미 총각의 어리숙함과 낙천성을 읽어낼 수 있긴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미덕의 많은 부분이 그림에 빚지고 있다는 사실은 글과 그림의 올바른 관계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마련해 준다.
수많은 우리 민담 중 그림책으로 옮겨낼 만한 이야깃거리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그것을 그림책이라는 매체에 맞게 글을 각색하고 그림으로 표현해 내는 작업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오늘날의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이야기, 의미 없는 우스갯소리를 굳이 책으로 다시 펴낼 이유가 없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고민을 담아내되 의식적으로 어설프게 교훈을 드러낼 필요도 없다. 지금 여기의 우리 모두는 좀 뒹굴뒹굴 느리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사흘 낮 사흘 밤을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그런 잔치판도 벌이며 신명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지금 딱 필요한 아주 멋진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