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새책 숨는곳이 아니야, 벙커는 소중히 아껴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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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11-27 02:32 조회 6,940회 댓글 0건본문
예주영 서울 숙명여고 사서교사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무엇을 해도 마음이 편치 않다. 마감일을 한참 넘기고 나서도 이달 서평을 못 쓰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그 시간들조차 불안하게 만든다는걸 알면서도 또 같은 상황을 반복하고 있으니 이런 나 자신이 점점 싫어진다. 꼭꼭 숨어버리고 싶다. 아무도 찾을 수 없는 나만의 공간에 숨어 회피하고만 싶다.
이 아이도 참 자신이 싫었나 보다. 여러 일들을 겪으며 자신을 크게 세번이나 부정하니 말이다. 열여섯 김하균은 학교에서 이른바 ‘찐따’다. 친구도 없고 학교에서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아이들 돈이나 뜯고 괴롭히는 그야말로 기피대상 1호인 하균은 평소 제대로 말 한마디 하지 못했던 반학생들의 분노가 폭발하여 집단 폭력을 당한 후 정신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진다. 3년 전, 열세 살의 김하균이 제 목소리를 낼 줄 알던 멋진 놈으로 기억하는 반장인 ‘나’는 하균의 변화가 이상하면서도 더 이상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우연히 커진 폭력 사건에 휘말려 가해자로 몰리고 한강 둔치를 배회하던 중 한강대교 다리 아래에 있는 ‘벙커’라는 은밀한 곳에 찾아가게 되면서 미스터리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나는 바다 요정 세이렌에게 홀린 듯 그 불빛을 향해 나아갔다. 불빛을 따라 물살을 헤치고 나아가자 곧 눈앞에 커다란 시멘트 기둥이 나타났다. 강물 속에 잠겨있는 한강 교각의 아랫부분이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중앙에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출입문이 나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만들어 놓은 듯 네모반듯한 모양의 완전한 직사각형 문이었다. (38쪽)
그전까지 학교 폭력으로 얼룩진 청소년들의 자화상을 그린 소설로 생각했다가 벙커를 찾아가는 과정을 읽으며 점점 책 속에 빠져들기 시작한것 같다. 그동안 우리나라 청소년 문학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소재와 사건의 전개가 돋보였기 때문이다. 벙커의 내부는 더 신기하다. 내부는 몽골의 게르처럼 넓어지기도 하고 좁아지기도 하며, 해가 뜨고 질 때만 아주 잠깐 문이 열리는, 보통 사람은 진입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공간이다. 또한 의문의 ‘메시’라는 소년과 ‘미노’라는 아이 둘이 살면서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들의 신발을 가져다가 빨아주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곳으로 ‘나’는 ‘가출’이로 불리면서 한 달을 그곳에 머물며 벙커를 직접 경험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그토록 싫어했던 김하균의 일기장을 읽게 된다. 한편 한강 둔치에서 만난 본드 할머니의 알 수 없는 말엔 미스터리가 가득하고, 더욱이 김사장과 김 할아버지가 벙커로 잠입하면서 벙커는 큰 파장에 휩싸인다.
막무가내 인생인 김사장은 김하균의 일기장에서 읽은 하균의 아버지를 추측하게 하지만, 화자인 ‘나’가 김하균이 부러워했던 반장이 아닌 김하균 자신이었다는 것으로 밝혀지며 미궁 속의 실타래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다 벙커는 순수한 아이 미노의 마음이 물리적으로 표현된 곳이다. 그곳에 셋이 찾아든 것이고, 그들은 한 사람의 미래들이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로 현재의 ‘나’가 바뀌지 않는다면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되는지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그 전에 세 사람이 어떻게 벙커에 들어올 수 있었는지 ‘나’의 깨달음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 아저씨가 사람이든 영혼이든 나처럼 마음 붙일 곳 없이 떠돌다가 다른 사람에 빌붙어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건 확실한 거죠. 진짜 자기 마음은 찢어지게 가난해서 마음 하나 쉴 곳이 없는 사람인 거예요.” (195쪽)
자신을 제3자의 시선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꾸준한 연습과 통찰이 필요하다. 특히 자아가 강한 청소년기에 그것을 깨닫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가치가 높아진다. 현실을 부정하며 희망 없이 살았던 소년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자신을 폭력에 내던지고, 전혀 닮고 싶지 않은 중년의 김사장과 김 할아버지의 모습이 자신의 미래라는 것도 알지 못한다. 한심하게 생각했던 김하균이 ‘나’라는 사실은 마지막까지 완강하게 거부한다.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작위적이지 않고 흥미진진하면서 설득력을 갖는다. 자아가 강한 청소년 시기의 내면을 잘 표현하여 재미와 감동과 내면의 성찰을 줄 수 있는 책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서사 구조는 가독성을 높여주고, 더욱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 청소년의 아픔과 상처, 그것을 치유하고 보듬어 나아가는 과정을 한강 다리 아래 벙커라는 비밀스러운 장소를 설정해 표현하여 미스터리로 녹여냈다. 우리나라 청소년 문학의 수준을 끌어 올린 점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현실을 부정하고 숨을 곳을 찾아본들 내게 벙커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건 쓰라린 현실이었다. 나는 비로소 원고를 마무리하는 오늘부터 발 뻗고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책을 이 정도로 끝내도 좋은지 자신이 없다. 글 잘 쓰는 분들의 ‘벙커’를 들여다보고 싶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무엇을 해도 마음이 편치 않다. 마감일을 한참 넘기고 나서도 이달 서평을 못 쓰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그 시간들조차 불안하게 만든다는걸 알면서도 또 같은 상황을 반복하고 있으니 이런 나 자신이 점점 싫어진다. 꼭꼭 숨어버리고 싶다. 아무도 찾을 수 없는 나만의 공간에 숨어 회피하고만 싶다.
이 아이도 참 자신이 싫었나 보다. 여러 일들을 겪으며 자신을 크게 세번이나 부정하니 말이다. 열여섯 김하균은 학교에서 이른바 ‘찐따’다. 친구도 없고 학교에서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아이들 돈이나 뜯고 괴롭히는 그야말로 기피대상 1호인 하균은 평소 제대로 말 한마디 하지 못했던 반학생들의 분노가 폭발하여 집단 폭력을 당한 후 정신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진다. 3년 전, 열세 살의 김하균이 제 목소리를 낼 줄 알던 멋진 놈으로 기억하는 반장인 ‘나’는 하균의 변화가 이상하면서도 더 이상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우연히 커진 폭력 사건에 휘말려 가해자로 몰리고 한강 둔치를 배회하던 중 한강대교 다리 아래에 있는 ‘벙커’라는 은밀한 곳에 찾아가게 되면서 미스터리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나는 바다 요정 세이렌에게 홀린 듯 그 불빛을 향해 나아갔다. 불빛을 따라 물살을 헤치고 나아가자 곧 눈앞에 커다란 시멘트 기둥이 나타났다. 강물 속에 잠겨있는 한강 교각의 아랫부분이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중앙에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출입문이 나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만들어 놓은 듯 네모반듯한 모양의 완전한 직사각형 문이었다. (38쪽)
그전까지 학교 폭력으로 얼룩진 청소년들의 자화상을 그린 소설로 생각했다가 벙커를 찾아가는 과정을 읽으며 점점 책 속에 빠져들기 시작한것 같다. 그동안 우리나라 청소년 문학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소재와 사건의 전개가 돋보였기 때문이다. 벙커의 내부는 더 신기하다. 내부는 몽골의 게르처럼 넓어지기도 하고 좁아지기도 하며, 해가 뜨고 질 때만 아주 잠깐 문이 열리는, 보통 사람은 진입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공간이다. 또한 의문의 ‘메시’라는 소년과 ‘미노’라는 아이 둘이 살면서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들의 신발을 가져다가 빨아주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곳으로 ‘나’는 ‘가출’이로 불리면서 한 달을 그곳에 머물며 벙커를 직접 경험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그토록 싫어했던 김하균의 일기장을 읽게 된다. 한편 한강 둔치에서 만난 본드 할머니의 알 수 없는 말엔 미스터리가 가득하고, 더욱이 김사장과 김 할아버지가 벙커로 잠입하면서 벙커는 큰 파장에 휩싸인다.
막무가내 인생인 김사장은 김하균의 일기장에서 읽은 하균의 아버지를 추측하게 하지만, 화자인 ‘나’가 김하균이 부러워했던 반장이 아닌 김하균 자신이었다는 것으로 밝혀지며 미궁 속의 실타래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다 벙커는 순수한 아이 미노의 마음이 물리적으로 표현된 곳이다. 그곳에 셋이 찾아든 것이고, 그들은 한 사람의 미래들이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로 현재의 ‘나’가 바뀌지 않는다면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되는지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그 전에 세 사람이 어떻게 벙커에 들어올 수 있었는지 ‘나’의 깨달음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 아저씨가 사람이든 영혼이든 나처럼 마음 붙일 곳 없이 떠돌다가 다른 사람에 빌붙어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건 확실한 거죠. 진짜 자기 마음은 찢어지게 가난해서 마음 하나 쉴 곳이 없는 사람인 거예요.” (195쪽)
자신을 제3자의 시선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꾸준한 연습과 통찰이 필요하다. 특히 자아가 강한 청소년기에 그것을 깨닫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가치가 높아진다. 현실을 부정하며 희망 없이 살았던 소년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자신을 폭력에 내던지고, 전혀 닮고 싶지 않은 중년의 김사장과 김 할아버지의 모습이 자신의 미래라는 것도 알지 못한다. 한심하게 생각했던 김하균이 ‘나’라는 사실은 마지막까지 완강하게 거부한다.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작위적이지 않고 흥미진진하면서 설득력을 갖는다. 자아가 강한 청소년 시기의 내면을 잘 표현하여 재미와 감동과 내면의 성찰을 줄 수 있는 책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서사 구조는 가독성을 높여주고, 더욱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 청소년의 아픔과 상처, 그것을 치유하고 보듬어 나아가는 과정을 한강 다리 아래 벙커라는 비밀스러운 장소를 설정해 표현하여 미스터리로 녹여냈다. 우리나라 청소년 문학의 수준을 끌어 올린 점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현실을 부정하고 숨을 곳을 찾아본들 내게 벙커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건 쓰라린 현실이었다. 나는 비로소 원고를 마무리하는 오늘부터 발 뻗고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책을 이 정도로 끝내도 좋은지 자신이 없다. 글 잘 쓰는 분들의 ‘벙커’를 들여다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