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합니다! [오늘의 청소년책 북토크] 다름이 익숙한 세상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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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3-09-01 15:52 조회 823회 댓글 0건본문
다름이 익숙한 세상을
꿈꾸며
고정원, 김윤나 구산동도서관마을 사서, 추승우 구산중 2학년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말하는 청소년들을 흔히 만나곤 합니다. 고국을 떠나서 다른 나라에 산다고 해서 바로 그 나라 사람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외국에 나가서 생활하면 오히려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더 자각하기도 하죠. 언젠가부터 한국계 미국인들의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탐색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국제적인 상을 받거나 독자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중 최근 출간된 『김주니를 찾아서』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의 감수성
김윤나 『김주니를 찾아서』의 주인공 주니와 그의 부모님은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주니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한국에서 온 한국계 미국인이지요. 주니는 인종차별을 일삼는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만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참습니다. 친한 유색인 친구들도 있는데, 친구들은 불합리에 맞서 함께 행동할 것을 권하지만 주니는 달라질 것은 없다며 거부합니다. 주니는 친구들과 사이가 나빠져 고립되기 시작합니다.
추승우 주니는 이 때문에 우울증으로 심리 상담을 받아요. 그러던 중 학교에서 내 준 윗세대 사람들의 역사를 조사하는 과제를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주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한국전쟁에 얽힌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주니는 이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하게 되고, 친구들과 화해하고 연대 행동을 준비해 갑니다.
고정원 책 줄거리로 예상할 수 있듯이 이번 북토크 주제는 ‘우리나라 너머’의 이야기입니다. 청소년들이 다른 나라 가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승우 학생은 어땠나요?
추승우 저도 그 생각을 해 봤죠. 그런데 제가 사는 곳에 친구들이 많이 있으니 친구랑 관계가 끊어질 수 있어서 지금은 좀 그래요. 국내 정세를 보면 제가 어른 되면 더 살기 힘들어질 것 같거든요. 특히 전쟁이 나면 어떡해요. 그 전에 도망가야겠다 싶을 때가 있어요.
김윤나 전쟁에 대한 불안감이 있군요. 성인이 되었을 때 취직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불안감은 있을 줄 알았는데··· 승우는 공부 스트레스를 다른 청소년들에 비해선 덜 받는 줄 알았거든요.
추승우 사실 스트레스는 시험 시간에 잠깐 받는 정도니까요. 공부하는 것은 좋은데, 하려면 너무 잘해야 하고 취업은 아직 막연하지만 걱정되긴 해요. 캐나다 같은 나라는 교육환경도 근무 환경도 한국보다 낫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배드민턴을 그 나라에서 좀더 즐기면서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정원 이민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고려해 본 적 있군요. 이 책은 재미있게 읽었나요?
추승우 소설 앞부분은 좀 지루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오면서 재미있게 읽었어요. 두꺼웠지만 빨리 읽었어요.
김윤나 『김주니를 찾아서』는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많은데, 우리 셋은 한국에서 사니까 주인공이 겪는 정체성 문제에 공감하기 어렵지 않았나요?
추승우 그래서 그런지, 책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주니의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신을 찾았다?’ 즉, 정체성을 찾는 여정인 건 이해했어요. 하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뭔지는 잘 느끼지 못했어요. 인종차별에 대해 주인공과 친구들이 느끼는 감정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어요.
김윤나 저도 한국전쟁을 다룬 책들을 읽었지만 사실 인민군이나 국군에 대한 이야기가 어느 한쪽으로 치중되지 않았는데, 이 소설의 서사는 인민군 쪽으로 더 치중돼 있어서 좀 불편한 면도 있었어요. 역사 인식에 대한 우려가 들었죠.
고정원 사전 지식이 없는 청소년들에게 그런 부분이 더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전쟁은 결국 개인이 겪은 역사니까 중립성을 갖기는 힘들 것 같아요.
추승우 수업 시간에 ‘반공교육’이란 단어를 들은 적이 있지만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았어요. 한국전쟁에 관련한 책을 읽어 보면 국군이나 빨치산이나 모두 주민들을 죽였다고 하니까··· 당시 전쟁을 겪었던 사람들 입장에서 상황이 더 심각했을 것 같아요(소설에서 이념과 사상이 모두를 죽음에 이르게 할 거라는 부모의 언급이 나온다).
이주하는 사람들의 고통
김윤나 이 책에서는 ‘트라우마’도 언급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경우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사람들이 일제 식민지를 오래 겪었어요. 식민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상황에서 해방을 맞이한 직후 한국전쟁까지 겪어야 했어요. 치유는커녕 역사적 재난이 맞물러 트라우마를 회복할 겨를도 없었던 악순환이 벌어진 것 같아요.
고정원 전쟁으로 인해 모든 내국민이 피해자였죠.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이지 않을까요? 항상 지켜내고, 이겨내고, 그러면서도 이어가는 성질 말이에요. 국내 역사를 돌이켜보면 침략보다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 시간이 길었던 것 같아요. ‘생존의 역사’라고 할 수 있겠네요.
김윤나 전쟁 시대를 넘어 미래 시대에서도 ‘생존’은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 같아요.
추승우 한국계 작가가 쓴 소설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태 켈러)를 보면 ‘조아여’라는 단어가 나와요. 조용한 아시아 여자애의 줄임말인데, 대외적인 우리나라 이미지가 이렇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어요. 비하하는 행동도 옳지 않지만 광개토대왕이 개척한 고구려의 역사를 그대로 계승했다면 우리나라 이미지도 좀더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고정원 국내 근현대사만 살펴봐도 크고 작은 사건이 많이 일어났어요. 여러 사건들이 국민들에게 여러 트라우마를 남겼고, 지금을 사는 청소년들에게도 여러 영향을 미칠 것 같아요. 특히 살면서 다양한 장소와 나라를 다니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주어질 수밖에 없을 테고요. 가족 공동체에 큰 의미를 두는 국내 정서도 한몫할 것 같아요.
추승우 이민을 간 가족들에게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더욱 크게 다가왔을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애니메이션 <엘리멘탈>(피터 손)을 보고 왔는데, 거기서도 ‘불은 불끼리만’ 결혼하라고 하잖아요.
고정원 맞아요. 영화감독이 한국계 미국인이었는데, 실제로 자신의 부모님이 한국을 떠나올 때 절을 하고 왔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인이 아닌 반려자와 결혼할 때도 집안의 반대가 있었다 했고요. 혈연을 중시하는 국내에서 살다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타국에서 삶을 개척한 사람들이 겪는 소외감은 무척 컸을 거예요. 인종차별까지 당하면서 자신을 바로 세우기 녹록지 않았을 거예요.
개인의 사연이 모여 완성되는 '역사'
김윤나 이 책의 결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추승우 교과서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동·청소년문학의 섣부른 결말(편집자 주: 동화나 청소년소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이야기 패턴)’에 대해 독서동아리에서의견을 많이 나눴잖아요. 이 책도 그랬어요. 현실에서도 주인공이 이렇게 역사의식을 단시간에 잘 가질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고정원 맞아요. 주니가 친구와 맞서기로 연대하기에는 분명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일 텐데 말이에요(소설에서 주니는 학교생활에 따른 스트레스로 우울을 앓는데, 조부모에게 당사자로서의 이야기를 꾸준히 들으며‘침묵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법’을 차츰 배우게 된다).
하지만 연대는 분명 아주 중요한 가치라는 데 동의해요. 이런 방식으로 정체성을 찾으려면 거의 성인이 될 때까지 자아 성찰을 반복해야 할 것 같긴 하지만요. 이런 극한 상황에서 가족이 힘이 되어 이겨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외부에서 아무리 위협을 가해도 가족애로 힘을 얻어 쉽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기도 하고요.
김윤나 저는 이 책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연이 개입되는 부분이 아쉬웠어요. 한국전쟁 이야기를 심도 있게 다루는데,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가족의 역사’가 좀더 쓰여졌어도 좋았을 것 같아요. 주니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인터뷰하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 할머니와 사이가 좋아지잖아요. 주인공의 생활에 변화가 찾아온 장면들에서 소소하게 감동이 일어났었거든요. 친구인 에스더랑 화해한 장면도 국가적인 관점으로만 해석되던 역사를 개인의 역사로 좀더 확장한 대목이었어요.
고정원 가족 안에서 소통하면서 서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힘을 얻고, 고통을 분담하는 서사가 더 긴요한 지점이었던 듯싶어요. 실제로 이 책은 이민 3세대인 엘렌 오가 직접 어머니와 이모, 아버지에게 당사자들이 겪은 역사적 이야기를 듣고 집필했어요. 말을 나눔으로써 가족 안에서 역사적 사실을 드러내고 서사를 세우는 것, 그래서 이런 책들이 인기를 끌고 국제적인 상도 받았던 거 아닐까 싶어요.
생존을 위한 첫 단추: 다양성 인정하기
추승우 저희 학교에 외국에서 살다 온 친구가 얼마 전에 전학 왔어요. 그 친구는 한국어를 잘 모르는데, 친구들도 영어를 말하기 부담스러우니 말을 잘 걸지 않아서인지 친구가 혼자서 다니는 것을 봤어요.
고정원 그랬군요. 다민족 국가에서는 이주민 전학생이 재학생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다문화 교육 제도를 잘 갖추고 있어요. 우리나라에는 그런 제도들이 많이 부족해요. 초중고 통틀어서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이주민을 위한 프로그램이 거의 없어요. 외국인을 위해 한국어를 가르치기는커녕 한글 학습용 교재가 거의 유치원 교재로만 다뤄지는 형국이에요. 학교 생활을 시작하는 이주민 청소년들은 자신이 ‘부족한 것’처럼 인식하게 되고요.
김윤나 내국민 중 이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처럼, 국내에도 이주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난민 등 다양한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는데 우리는 제대로 된 준비를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추승우 할랄 푸드만 먹는 친구도 있는데, 정작 학교 급식에는 친구를 위한 식단이 없어요. 그럼 친구가 학교 급식으로 먹을 수 있는 게 없잖아요.
고정원 이주민의 정체성을 다룬 좋은 책들이 제법 많은데, 소개해 볼까요?
김윤나 『피부색깔=꿀색』(융)이라는 만화책을 추천해요. 만화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책으로, 해외 입양아였던 자신이 거쳤던 삶의 과정과 감정을 책으로 풀어냈어요. 당사자가 겪었던 고통을 고스란히 전달해서 무거운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이주민이 겪었던 경험을 현실적으로 그려 냈다는 데 의미가 있어요. 낯선 미국 땅 ‘아칸소’로 이주한 가족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미나리>(정이삭)도 추천해요. 작품성이 뛰어났어요. 소설 『GO』(가네시로 가즈키)도 권해요. 북조선 국적을 가진 ‘재일조선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청소년의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이 책을 통해 재일조선인의 존재를 알게 되었어요.
추승우 중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와서 부모님을 도와 모텔 일을 하는 미아의 시점으로 그려 낸 소설 『프런트 데스크』(켈리 양)를 읽어 보려고요. 주인공이 겪는 상황이 우리나라에서 타국으로 건너가 생활을 시작하는 청소년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고정원 그 책을 읽었는데, 정말 우리나라 사정과 다르지 않더라고요. 『아래층 소녀의 비밀 직업』(스테이시 리)도 중국인 이민자의 이야기인데, 같이 읽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H마트에서 울다』(미셸 지우너)는 한국인 엄마와 미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저자의 에세이인데, 감동적이에요. 다인종 사회에서도 ‘다르다’는 이유로 고통을 앓는 사람들이 많아요.
추승우 그럴 것 같네요. 우리는 어쩌면 너무 비슷한 사람들끼리 사는 것은 아닐까 싶어요.
고정원 우리 사회는 다양함에 대한 감수성이 점점 더 필요해지고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고립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발전이 어려운 사회가 될 수 있어요. 『김주니를 찾아서』는 생각해 보지 못한 사회의 틈새를 보여 주고, 나와 우리와 연결해 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함께’ 즐겁길 바랍니다.